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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문화 혐오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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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파티락의 전성기에 펑크의 DIY 정신을 가지고 나타나 락신에 혁명을 일으켰던 커트 코베인은 왜 죽었을까? 이런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하는 이책은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스타벅스와 체게바라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표지까지 무척 흥미로와서 구매를 했습니다. 저자들은 반문화의 기원을 나치의 파시즘과 냉전시대, 그리고 프로이트의 억압 이론등에서 찾고 있는데 이러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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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파티락의 전성기에 펑크의 DIY 정신을 가지고 나타나 락신에 혁명을 일으켰던 커트 코베인은 왜 죽었을까? 이런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하는 이책은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스타벅스와 체게바라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표지까지 무척 흥미로와서 구매를 했습니다. 저자들은 반문화의 기원을 나치의 파시즘과 냉전시대, 그리고 프로이트의 억압 이론등에서 찾고 있는데 이러한 반문화 운동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정부주의적 일탈과 구분이 힘들고 무엇보다 이러한 반문화 운동이 스펙타클의 시대에 하나의 구별짓기로 작용하여 소비문화를 오히려 부흥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데요 머 여기까지는 읽을만 한데 뒤로 갈수록 문화 패션 정치 세계화 여행 환경과 의료에 이르기까지 동일성에 반대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는 움직임 모두를 반문화 운동으로 환원하여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수요를 창출해 내는 광고와 마케팅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광고와 마케팅의 힘을 과대평가한거라는 주장이랄지 자본의 독점적 지배는 자본의 잘못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무엇보다 세계화 반대자들 또한 철없는 반문화 주의자로 세계화가 곧 다양화인데 왜 세계화를 반대하느냐라는 이야기에 이르면 (저자들이 생각하는 세계화 = 다양화의 예 : 자기들이 사는 캐나다에서 대만 식료품을 살수 있다..-_-;;) 좀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무엇보다 이책에 동의 하기 힘든점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거기에 맞는 논거와 근거들을 대는게 아니라 반문화 사상가들이 먼저 작업한 저술과 자료를 말꼬리 잡고 비꼬고 까는걸로만 아주 편리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심지어 오독과 왜곡마저 서슴치 않습니다. 제목만 보고 반문화에 대한 비판과 거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라고 생각되기 쉬운데 다 읽고 나니 그냥 반문화 혐오자의 자기 주장 이상은 아닌것 같습니다.
b**********n 2006.06.22.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反소비주의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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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를 신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캔버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미 특정한 상표의 브랜드를 구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상품의 품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키와 캔버스 운동화가 가지는 이미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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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를 신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는 캔버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미 특정한 상표의 브랜드를 구입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상품의 품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키와 캔버스 운동화가 가지는 이미지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만들어놓은 체제에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캔버스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나이키가 대표하는 이미지를 거부하고 무언가 소비주의에 반대하고 '쿨'한 느낌을 갖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이키와 캔버스 운동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의 모든 면에 이러한 생각들이 스며들어 있다.   <혁명을 팝니다>는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의 상품을 소비하는 또 다른 소비주의에 강도 높은 비판을 시도한다. 먼저 소비주의 비판의 토대가 되는 反문화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역사를 살피면서 反문화가 탄생한 경로를 파악한다. 바로 뒤에는 반문화의 토대가 되는 이론들의 탐구한다. 모든 자본주의 비판의 선두에 서는 마르크시즘과 자본주의 시대의 대중들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억압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한 프로이트의 이론, 게다가 최근의 이론에 해당하는 포스트모더니즘까지 反문화에 영향을 미친 이론들을 두루 살펴본다.   이러한 이론적 탐구는 결코 따분한 철학적 논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 <파이트 클럽>같이 저자가 反문화 영화라고 규정지은 영화를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음악과 소설 등 우리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反문화라는 틀에서 해석한다. 결국 이러한 특징은 저자의 주장을 한층 더 와 닿을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보았던 영화, 우리가 듣는 음악이 바로 그들이 사유하는 철학의 주요한 소재가 되는 까닭이다.   反문화는 당연히 소비주의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회가 받아들이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反문화는 우리사회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체계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反문화와 反소비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기종의 제도와 규칙은 억압적이고, 인간의 '진정성'에 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반소비주의자들은 언제나 제도자체를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된다. 따라서 제도의 틀 안에서 개혁을 한다는 것은 '파상적'이라는 공격을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비판한다. 사실 반소비주의자들이라는 히피들은 그러한 비판을 한다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사실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히피가 여피족이 되는 '배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들은 50년대 소비주의의 상징인 뷰익 승용차를 모는 대신에 SUV를 구입함으로써 자신들은 소비주의에 희생되지 않고 자본주의에 '순응'하지 않는 개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은 내세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소비주의자들이 가지는 체제에 대한 전복을 비판하며 제도와 억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실 그들이 비판하는 제도의 대부분은 인간들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반소비주의자들이 하는 행동을 모든 사람들이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질문으로 함축된다. 반소비주의자들은 그들이 문화적으로 소수이고 튀기 때문에 가치를 가지며 만약 모두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이 또 다른 규칙이 되고 억압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억압과 규칙을 없애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사회에는 더 많은 규칙과 억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본을 거부하고 억압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을 이상적으로 바라보았던 우리시대의 비판가들에게 확실히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심한 모욕감을 안겨준다. 우리의 그런 행동과 사고가 사실은 위선이며 또 다른 소비주의의 원동력이라고 과감히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비판가들의 감추어진 뒷면을 살펴보고 우리사회의 긍정적인 기능을 파악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상을 지지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 책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뿐만 아니라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 유니폼의 기능 등도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으로 흥겨운 관념 뒤집기를 시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c******3 2006.05.0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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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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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지만, 스타벅스가 정말 체게바라 초상을 음료컵에 인쇄한 적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북디자이너 양반 날 농락한게요..?? 지난 번에 이어 또다시 조지프 히스.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이지 글을 얄밉게 잘 쓴다. (앞뒤 어디다 방점을 찍을지는 읽은 사람 맘)책의 입장은 counter-counter-culture라고 정리하면 맞을 것 같다. 언뜻언뜻 비추는 이야기를 보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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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지만, 스타벅스가 정말 체게바라 초상을 음료컵에 인쇄한 적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북디자이너 양반 날 농락한게요..?? 


지난 번에 이어 또다시 조지프 히스.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지만 정말이지 글을 얄밉게 잘 쓴다. (앞뒤 어디다 방점을 찍을지는 읽은 사람 맘)


책의 입장은 counter-counter-culture라고 정리하면 맞을 것 같다. 언뜻언뜻 비추는 이야기를 보면 조지프 히스 자신도 좌파진영, 반문화진영에 꽤 오래 관여한 전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나 과거에 날을 세우는 걸 보면 뉴라이트의 내면이 이럴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 조지프 히스의 정치적 지향이 오른쪽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때리는 말이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얄밉게 잘 쓴다고 하지 않았나. 

《노 로고》의 나오미 클라인을 무지 까는데, (까는 말 가운데는 귀담아 들을만한 것도 있다.) 나한테는 책을 쓸데없이 길게 쓴다는 데서 둘이 똑같다. 《쇼크 독트린》도 결국 1/3 읽다 도서관에 돌려줬다. 이 책도 이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자료 조사한게 어지간히 아까웠던 모양이다.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히피=여피"이다.(나오미 클라인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60년대 사회비판이라는 오래된 내용의 새로운 판본을 꾸며댈 뿐, 정작 자신들이 아무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 반대, 즉 허상을 반대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실상 counter-culture의 그 counter야말로 주류 자본주의 체제에 영원한 동력을 공급하는 비밀임에도 말이다. 조지프 히스가 만난 반문화 운동가들은 충분히 극단적이고 전복적이지 않은 모든 대안은 적(=주류체제)에게 포섭된 결과라고 비난할 뿐, 실제적인 개혁에 눈꼽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지프 히스는 세계 차원이나 지역 차원보다는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이야말로 '실제로 일이 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반문화 운동가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급진적 자유주의의 덫(정부는 나의 성채에 간섭하지 마라)에 걸리거나 유기농 및 공정무역 브랜드로 가득한 값비싼 개인주의 유토피아에서 자족하게 되기 일쑤다. 이상의 주장에는 분명 이해할 만한 여지가 있다. 실제 북미에는 히피=여피를 겨냥한 시장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그 시장이 얼마나 번성하든 우리가 실제 사는 세상은 그 사이 꾸준히, 다수에게 힘든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반문화 운동가들의 화려한 수사로도 메꿀 수 없는 간극이다. 그러나 자신의 격렬하면서도 예리함을 잃지 않은 전문가급 공세에 도취된 나머지 책의 많은 부분은 그저 중심 에피소드를 변주하고 또 변주한, 공세를 위한 공세로 낭비되어 버렸다. 조지프 히스가 선호하는 보다 진지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뭔지 알아내려면 돋보기를 들고 찾아야 할 정도다. '로컬푸드 운동' '적정기술 운동'등 신좌파의 다양한 상상력을 죄 극단화시켜 비웃고, '반 프랜차이즈 운동'을 비판하면서는 그레이트 하비스트로 맥도날드를 변호하고(그레이트 하비스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북미 원주민의 토착문화가 생태운동에 영감을 주는 현상에 대해선 '인디언들은 그저 들소를 절멸시킬 기술이 없어서 절멸시키지 못한 것 뿐'이라 조롱한다. 이렇듯 거의 악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몇 군데 있었다. 지금 그가 스스로를 '전향자'라고 생각하건 아니건, 옛날 '운동권' 시절에서 배워온 비난과 공박의 기술만큼은 전혀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전향자'라고 해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헌신을 그토록 쉽게 폄하할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는 '거짓 아시아적 가치'에 푹 빠진 반문화 운동가들을 비난하기 위해 '본디 물질주의적이었던' 아시안과 아시안 문화를 대변하기까지 한다. 지나가는 아시안이 이런 소리 듣지 말게 하라.


조지프 히스가 400페이지 가까이 열거할 수 있었던 풍부한 실패와 좌절의 기록 및 그가 반문화 진영에 가하는 비난의 강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북미 지역에서 counter-culture가 점유한 지배적인 위치 정도인 것 같다. 한국에는 히피도, 급진적인 자유주의도, 반문화 전통도 없기 때문에 조지프 히스의 헌신적인 자료 조사 및 글쓰기 노력에서 한국 독자가 보편적으로 의미있는 무언가를 얻어갈 일은 극히 적다. 나에겐 그저 또 하나의 흥미로운 박물기(博物記)일 뿐이었다. 


그 밖에 아쉬운 점. 막대한 원고량이었음은 인정하지만 오탈자가 눈에 여러번 띈다. (공교롭게도 같은 출판사의 WORK도 400페이지 가량이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오탈자가 빈번했다)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Silent Spring》은 한국엔 《침묵의 봄》으로 알려져 있다. 

b****a 2012.07.2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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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 진정한 혁명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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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는 내재된 질서가 있다. 물건이 널브러진 방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균형 잡힌 몸매와 얼굴에 매력을 느끼고 정해진 법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기 원한다. 질서는 곧 윤리와도 연결된다. 가족과 사회,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존재한다. 모두가 충실히 자신의 역할에 맞게 일상을 영위한다면 더할 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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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는 내재된 질서가 있다. 물건이 널브러진 방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균형 잡힌 몸매와 얼굴에 매력을 느끼고 정해진 법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기 원한다. 질서는 곧 윤리와도 연결된다. 가족과 사회,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존재한다. 


모두가 충실히 자신의 역할에 맞게 일상을 영위한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는 없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기술발전과 소비사회, 도시개발과 환경파괴를 경험하며 인류는 디스토피아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하여, ‘저항’이라는 코드는 대중사회를 비판하고, 환경주의와 연결되며, 대안적인 삶을 제시하는 ‘반문화’를 탄생시켰다.


반문화의 대표적인 예는 1960년대 미국의 히피를 시작으로 펑크와 비행청소년 집단, 과격한 여성해방운동, 급진적 종교 종파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하위문화의 행동양식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새로운 소비시장을 형성시켰다. 체 게바라는 ‘쿨함’의 상징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티셔츠와 가방뿐만 아니라 문신으로 사람들의 몸에 새겨지면서 ‘혁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반문화라고 부르는 저항행위도 결국 그들 나름의 정해진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정신이상자를 만났을 때 자리를 피하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펑키족이나 기타 반문화행동가들의 행위는 예상가능하고 사람들에게 불안한 심리를 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반문화의 흐름 속에 ‘무질서’가 교묘히 무임승차하면서 발생한다. 난잡한 성행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활동하고, 정치적 의도로 포장된 근거 없는 음모론이 활개를 친다. 무조건적인 순종도 올바른 행동이 아니지만 지향점 없는 반대는 우리 삶의 기반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대안적인 삶은 혁명과 사회 전복으로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때 가능하다. 신뢰가 회복된다면 윤리도, 질서도 바로 서게 될 것이 분명하다. 

s********8 2016.08.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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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까지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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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책이었다. 10년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 당시의 대중영화라든지 책들이 메인이 나와 나쁜 기억력으로 가물가물 기억해내기도 힘든 책읽기 과정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혜안을 갖고 있는 작가라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지 않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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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책이었다. 10년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그 당시의 대중영화라든지 책들이 메인이 나와 나쁜 기억력으로 가물가물 기억해내기도 힘든 책읽기 과정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혜안을 갖고 있는 작가라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지 않은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반체제 문화에 대한 하나의 표현은 아닐까 생각한다.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안에서 자율경쟁을 하게 하여, 승자에게는 많은 이득을 갖게 하고 패자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구조다. 퍠자인 빈곤층을 위해 국가는 정책을 세워 도와주고 있지만, 이런 자본주의사회에서 커다란 격차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고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를 추진했다가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서는 많은 국가를 보면 알겠지만, 공산주의 내에서도 결코 넘나들수 없는 계급이 생성되고 그 계급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되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였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돼지들과 나머지 동물들간의 모습 말이다.

 

 작가는 신자유주의로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격차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완벽할 수 없는 자본주의 틀에서 빈틈을 노려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세력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그들은 막대한 광고로 끊임없이 자본을 순환시켜 부자가 부자를 낳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다.

 이런 역활,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고 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개인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며 국가라는 조직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체제 문화, 즉 주류에서 벗어난 문화들이 어떻게 다시 주류가 되는 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 이 책은

그 반체제 문화도 자본의 이름으로 포장하려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힙합하고 랩으로 욕을 하는 것이 아주 별개의 소수만 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어느새 대중문화에서 이 분야도 꽤 수익성을 올리고 광고의 수단으로도 변질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주의의 굉장한 흡수성을 생각하게 된다.

 

 정,반,합의 원리가 반복되는 사회이지만, 현재는 언제나 자본원리가  항상 승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을 향한 끊없는 욕심, 인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축복을 거부하고 거위의 뱃속에 가르는 탐욕의 선택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자본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느리게 살기라든지 불편하게 살기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빨리 빨리 움직이고 최신사양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데에서 벗어나고, 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난 삶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반자본주의로 가는 것 같지만, 대중의 주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삶의 만족을

느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혁명을 팝니다] 보다 [혁명까지 팝니다]라고 책 제목을 지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자본주의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d***8 2016.06.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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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문화에 대한 생각해볼 만한 주장....하지만 지나치면 곤란
"반문화에 대한 생각해볼 만한 주장....하지만 지나치면 곤란" 내용보기
김규항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진보의 걸림돌은 개혁주의자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혁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때우는 보수공사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개혁들 때문에 대중이 자본주의에 그릇된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혁명을 팝니다>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책이다. 가능치 않은 얘기들을 떠들어대는 진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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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말을 빌리자면 진짜 진보의 걸림돌은 개혁주의자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혁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때우는 보수공사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개혁들 때문에 대중이 자본주의에 그릇된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혁명을 팝니다>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책이다. 가능치 않은 얘기들을 떠들어대는 진보 때문에 당장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조차 해결이 안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류 문화에 대한 딴지걸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강화하고 자본주의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미 많이 들어본 중도우파의 전형적인 입장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반문화(countercultural)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개혁주의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독자라도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볼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기 때문에 귀기울여볼 가치가 있다. 

지금 케이블 TV 음악채널을 틀어보자. 무수히 쏟아지는 뮤직 비디오들은 반항, 일탈, 저항, 비주류 등의 이미지와 메시지로 가득하다. 뮤직 비디오의 그러한 저항성은 역설적으로 가장 상업적이다. 소비자들이 '저항'이라는 이미지를 구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반문화는 체제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그 자체가 체제이다. 60년대 히피는 90년대 소비를 이끄는 여피가 되었다. 현대 도시인의 일탈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하는 SUV(Sports Utility Vehicle)는 그러한 반문화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속박을 벗어난 자유의 이미지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상품인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주류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방법인 것 처럼 잘못 인식된 것은 사회이론들,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주류 문화를 인간에 대한 억압 체계로 해석했던 탓이 크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반문화는 일종의 유행과 같다. 저항해야 쿨하게 보인다.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과 계급기반사회 철폐를 말하면 촌스럽다. 또한 반문화는 향락주의로 변질되는 경향이 많다. 저자들은 묻는다. 과연 이게 혁명적 독트린인가?

그리하여 저자들은 주장한다. 진보 좌파는 사회정의 문제에서 반문화를 분리시켜내야 한다고. 사회를 변화시켜온 것은 반문화 운동이 아니라 체제내에서 추진된 신중한 개혁들이다 (민권, 여권신장 등).

너바나(Nirvana)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의 권총자살은 반문화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베인은 얼터너티브 음악에 대한 자신의 약속과 너바나의 대중적 성공을 조화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주류에 대한 대안으로 들고나온 음악이 주류 문화에서 너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념의 시대가 끝난 21세기 초 한국에서 체게바라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가 젊은이들에게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시장이 반소비주의자들의 요구에 훌륭히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신자유주의가 대세인 한국에서 'B급 좌파' 논객 김규항의 책들이 잘 팔리는 까닭도 설명이 가능할 듯 싶다. 김규항이 쿨한 좌파기 때문이 아닐까?

브랜드에서 말하는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키워드는 바로 '차별화'다. 반문화주의자들이 부르짖는 것도 바로 차별화다. 

마르크스나 쟝 보드리야르는 보편화된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광고를 쏟아붇고 소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욕구 또한 보편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들의 더욱 개별화, 차별화된 상품을 원한다. 이른바 rebel consumer의 탄생이다.

문제는 차별화를 기대하며 구입하는 소비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모두가 명품을 사면 결국 모두 다시 출발선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소비를 통해 게임이론의 일종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주류에 저항하는 반문화가 인기를 끌어 모두가 반문화주의자가 되면 그순간부터 반문화 자체가 주류 문화가 된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화보다 ‘과감히 동일해지는 것’ (p. 237)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처벌과 보상체계가 갖춰진 자신들 만의 규칙을 생성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창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체계가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p.97).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국가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모여 다시 국가를 꿈꾼다.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무더기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보다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빠져나갈 때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가 없으면 아수라장이 되고 결국 생존자 수는 줄어든다. 다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한 발만 더 내딛으면 전체주의적인 주장이 될 수도 있으므로 위험해보인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살아도 내가 죽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간의 문제는 저자들의 주장처럼 그렇게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다.

또한 저자들은 다양화보다 '획일화'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표준화는 모두에게 편하다. 우리가 상품을 구매할때는 이 상품을 주변사람들과 공유할수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한 고려요소다. 재화는 사회적 맥락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도 오늘날 500개 채널이 존재하는 북미지역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사람들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참고 들어주겠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저자들의 주장에 의구심믈 떨치기 어렵다.

저자들은 국제 무역이 획일화보다 다양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제 3세계를 옹호하는 반글로벌 운동가들을 비판한다. 반무역 반문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인도, 네팔 등 다른 나라의 문화에 투영하여 이국적인 것을 자신 고유의 이데올로기로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의 결론은 시장철폐가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것.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은 진보 좌파 진영에서 충분히 귀기울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지배 이데롤로기의 합리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회이론,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상품을 인용해가며 반문화가 어떻게 시장에서 구매를 촉진해왔는지 증명해보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읽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후반부는 무척지루했다.

스타벅스 커피 컵 안에 들어간 체게바라의 이미지를 채택한 표지를 보고 이 책을 집어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이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그 독자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i*****0 2008.0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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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외치는 자들, 다시 굴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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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수히 많은 혁명가들이 있었다. 그들중 몇몇은 봉건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가였고, 그들 중 몇몇은 이 자본주의가 주는 인간의 소외를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봉건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일련의 혁명가들의 혁명은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자본주의는 승리를 구가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 혁명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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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수히 많은 혁명가들이 있었다. 그들중 몇몇은 봉건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가였고, 그들 중 몇몇은 이 자본주의가 주는 인간의 소외를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봉건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혁명은 훌륭하게 성공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일련의 혁명가들의 혁명은 허무하게 끝나버렸고, 자본주의는 승리를 구가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 혁명가는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종의 영웅주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그들은 훌륭하게 자본주의 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려던 혁명가들이 자본주의의 하나의 문화로 소비되는 현상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한국의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제일 많이 볼수 있는 티셔츠 중 하나는 아마 체게바라 티셔츠일 것이다.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은 마오쩌둥의 초상을 여러 색깔로 찍어냄으로써, 자본주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자본주의의 다양한 상징들도 이런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음료 캔과 마릴린 먼로가 대표적일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 는 이런 모순들을 지적한다. 혁명가까지도 자본주의 적으로 소비하는 체제의 엄청난 중력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이것과 동일선상에서 서구에서 일어난 다양한 문화혁명들이 어떻게 그들 이상에서 좌초되어 버렸는지도 이해할 수가있다. 기존 체제가 갖는  엄숙함과 자본주의의 모순들(남과 북의 빈부격차), 그리고  전쟁기계 미국이 벌이는 전쟁은 더 이상 젊은이들로 하여금 체제에 순응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들이 세상에 반항하는 방법은 1910년도의 레닌주의적인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반항의 방법이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생활 이나 문화적인 방법으로 재생산 되는데, 1968년의 젊은이들은 이런 자본주의적 사회 문화 를 파괴해버리는 방식으로 저항하고자하였다.

지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방법이 기존의 정치, 경제투쟁에서 문화 사회적 투쟁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적인 투쟁방식들이 좌파 사상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조류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히피 캔버스 자유로운 섹스 는 이런 투쟁의 결과로서 탄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앞서말한 체게바라 티셔츠와 같이 이런 히피나 캔버스 자유로운 섹스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한 투쟁으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를 더 공공히 하는 조류로 변해버렸다. 자본주의는 그러한 조류를 오히려 포용해버리며 스스로를 강화 시켜나갔다.  현대사회에서 반문화주의는 더 이상 반자본주의 적이지 않다.

힙합이나 락과 같은 자유를 슬로건으로 하는 음악 역시, 히피와 같은 운명을 맞이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은 결코 정치경제 투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오히려 미시적인, 우리 일상 생활의 진보는 그런 문화투쟁들이 좀 더 큰 역활을 했을지도 모르곘다.





y******4 201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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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재미있는 지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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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보다는 지은이의 생각을 본다. 학교다닐때는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불량청소년이하는 복장은 다하고 나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불량학생만 혼냈다고한다. 반항적기질 역발산의 정신 참 재미있는 그의 이력에 저절로 웃음이났다. 지은이는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상식이 풍부하니까 책을 썼겠지만 그는 재미있게 글을 쓴다. 반세계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1999년 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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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보다는 지은이의 생각을 본다.

학교다닐때는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불량청소년이하는 복장은 다하고 나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불량학생만 혼냈다고한다.

반항적기질 역발산의 정신 참 재미있는 그의 이력에 저절로 웃음이났다.

지은이는 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상식이 풍부하니까 책을 썼겠지만 그는 재미있게 글을 쓴다.

반세계화 운동의 기폭제가 된 1999년 시애틀 시위 도중 시내중심가의 나이키 타운이 시위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현장에서 촬영한 비디오에 그들 중 여러 명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앞 유리문을 발로 차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나이키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면 나이키 신발을 절대 신지 않아야 할 텐데, 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나이키를 거부한다면 또 다시 대안 신발을 위한 확실한 시장이 생길 것이다. --본문중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심심할떄 읽기엔 그만인 책인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0.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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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의 반문화 비주류 대해 알고 싶고 나 역시 그런 성향이 있어서, 그 것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게 된 책일단 목차를 보면 충분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반문화의 탄생이라 든지 혹은 코카콜라 식민지화 라든지 말이다. 책의 주된 논점은 자본주의 에서의 반문화? 어떻게 존재하고 성장하고 어떤 자리를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따른 저자의 주장 그리고 여러가지 논거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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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의 반문화 비주류 대해 알고 싶고 나 역시 그런 성향이 있어서, 그 것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게 된 책

일단 목차를 보면 충분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반문화의 탄생이라 든지 혹은 코카콜라 식민지화 라든지 말이다. 


책의 주된 논점은 자본주의 에서의 반문화? 어떻게 존재하고 성장하고 어떤 자리를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따른 저자의 주장 그리고 여러가지 논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반문화의 탄생 배경에 대해 프로이트와 나치정치의 영향이라던지 하는 ..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정확히 하자면 이러한 소비주의 자본주의에 반하는 반문화가 오히려 자본주의 와 함께 한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지 싶은데, 판단은 자신이 스스로 책을 읽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n*******9 2016.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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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다시금 찾은 것은 체 게바라였다. 의사라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한 채 전장으로 뛰어들었던 체의 삶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그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 쉰 것도 볼리비아 투쟁 무대였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는 방식은 과거와 달랐다. 사람들은 어깨에 총을 둘러메거나 한 정부의 붕괴를 지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케케묵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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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다시금 찾은 것은 체 게바라였다. 의사라는 보장된 미래를 포기한 채 전장으로 뛰어들었던 체의 삶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그가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 쉰 것도 볼리비아 투쟁 무대였다. 하지만 그를 추모하는 방식은 과거와 달랐다. 사람들은 어깨에 총을 둘러메거나 한 정부의 붕괴를 지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케케묵은 것처럼 외면당했듯 체의 투쟁 방식 역시 있는 그대로 계승되진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맥락을 고스란히 따랐다. 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나 머그컵 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은 체제의 전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는 독창적인 상품이 되었고, 사람들의 소비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반항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을진 모르나 그 반항은 금전적인 여건이 허락된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혁명은 판매 중이었다. 어이 혁명뿐이겠는가. 사회에 변화를 가져다 준 많은 현상들로부터 사람들은 상품가치를 발견했다. 색다른 시도라며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열광은 결국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혁명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그토록 갈구하던 새로운 소비계층이었다.

 

많은 문화가 상품이 되어 팔리는 요즘이다. 반문화 역시 문화의 일종이요, 상품이 된 지 오래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사례들은 기득권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것이 이들 반문화가 지닌 명백한 한계가 아닐지 싶다.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반문화에의 순응이 곧 현 체제의 긍정일 수도 있음을 간과했다. 날카로운 가사, 난해한 음의 연속인 곡들은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저항의 정신을 노래했던 이들은 자신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일련의 일탈행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약을 복용하는 것이 곧 혁신으로 이어졌던가? 이를 저항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이들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저항이 거세어질수록 이들을 억누르기 위한 권력 또한 강화되었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생성된, 다소 온화한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각종 캠페인 역시 문화라면 문화이다. 반문화로 인해 강조된 문화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절망에 빠져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은 어떨까? 강력한 혁명의 시도마저도 현 체제를 긍정하는 맥락에서 해석되었던 지난 날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자해를 한다거나 사회를 파괴하기 위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것도 그다지 현명한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쪽을 택했건 반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려는 경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문제 많은 자본주의 못지 않은 악랄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합리성이지 않나 싶다. 우리가 정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초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사회를 그저 해체하는 것보다는 명확한 지향방향을 설정하고 어떻게 하면 그 방향으로 함께 잘 걸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개량주의적이라며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도 판매되는 곳이 바로 이 땅, 우리 세상이다. 슬프지만 그건 사실이다. 책이 내게 세상의 진실을 외면치 말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갈 시점에 우린 서 있다.

q*****2 2010.07.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