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猛スピ-ドで母は :: 長嶋 有 간혹 내 개인 가정사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듣는 쪽이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부모가 이혼하여 새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던가 이복, 혹은 이부 동생들이 있지만 사이가 안좋거나 아예 얼굴조차 모른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 해도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듣게 된 마냥 상대편 얼굴이 난감함으로 굳어질 때가 있다. 비슷한 사연이 있을 경우에는 덜한데, 일반적 가정 환경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드라마 속의 상황을 트레이스하며 매우 극적으로 받아 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환경으로 이런 저런 일을 겪었다고 계속해서 사연을 얘기해 가다보면 '대단하다' '나같으면 못한다' 등의 과장스런 반응마저 나온다. 자라온 환경이 일반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숨겨야 하거나 비밀이 되고 그 환경을 가진 게 엄두도 못낼 정도로 대단히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 아닐까? 예전엔 나도 남들과 다른 가정사가 있다는 걸 대단하게 여겼다. 친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하고 피가 다른 동생과 남남처럼 지내는 것을 엄청난 불행인 것 마냥 다루었다. 아예 그 사연을 나 자신을 포장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누굴 만나서 친해지려고 하면 무슨 숨겨왔던 보물인 마냥 너에게만 보여줄게 식으로 환심과 동정심을 사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듣는 사람도 자신에게 정말 어려운 일을 해주었다고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용도로 들었다. 그러다 내가 또 다른 이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난 뒤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내 가정사는 딱 그만큼의 가치였던거다. 나는 그때 정말 불행 했을까? 그런 환경이었기에 불행했다 할 수 있는 거였을까? 일반적인 가정은 아무런 사연도 없고 마냥 행복할거라 오히려 무시했던 건 아닐까? 물론 개중엔 자신의 가정사를 진짜 수치로 느끼는 이들도 있다. 도무지 말못할 사연을 가진 집도 더러 있겠지만 내 생각엔 대개가 자기 가치를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여겨진다. 남들과 조금 다르기 때문에 그 자체에서 자신의 개별성을 확인하려 든다고 할까. 남들과 다른 환경에 소외감을 느끼기에, 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이라고 하면 억울해져서 차라리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게 된다. 역설적으로 '불행해야만' 자기다워지는 것이다. 환경이 인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평생 불행하고 수치스럽다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론 스스로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괴롭다고 하면 자기 기만이 되버리는 게 아닐까. 차라리 자신의 남다르지 못한 환경 덕에 남다른 자신이 되었다고 자부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지. 그것이야말로 [극복] 혹은 [성장] 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일반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남다르다는 말도 착각이다. 세상의 어느 집도 같지 않고 어디나 남다른 사연이 넘쳐난다. 친부모와 친형제와 어울려 산다해서 늘 행복하거나 안전한 것만도 아니고 가족구성원이 별나다 해서 꼭 불행하지만도 않다. 그러니 자기 환경이 평균치, 혹은 교과서적인 인식에서 벗어난다 해서 불행하다거나 그런 사연을 듣는다 해서 대단한 일인 마냥 생각하는 것은 절대 편견일 수 밖에 없다는거다. 더러는 어린 시절 힘든 일을 겪은 아동은 평생 괴로울 것이라 동정하지만 그것은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미디어를 통한 학습 효과에 불과하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아동 시절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고 평생 나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 안에서 행복과 불행을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처음 정해진 환경이 평생의 불행을 야기한다 생각한다면 그건 자신의 미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다름없다. 126회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한 [맹스피드 엄마] 는 이런 사회적 편견 속에서 당당하게 빛을 발한다. '일반적' 이지 못한 편모 밑에서 자란 마코토지만 그런 엄마기에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못해주지만 그렇다고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엄마 때문에 왕따도 당하지만 결코 엄마탓을 하지도 않는다. 현실에서 보기 드문 조숙한 아이일지언정 마코토의 삶은 진정 자신을 위한 삶이다.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더라도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탓하지 않는 주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수록된 [사이드카에 탄 강아지] 의 가오루도 그렇다. 부모의 싸움으로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새 여자를 데려왔지만 그리 대단히 괴롭지가 않다. 오히려 이것저것 규제 많았던 친엄마보다 뭐든 자유롭게 해주고 친절한 새 여자 요코씨가 더 좋다. 가오루는 '초콜릿'이 '초콜렛' 이 되었다하여 무슨 차이인가를 되묻는다. 어차피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고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름 과거를 잘 극복했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직 한가지 더 얽매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좋은 엄마 컴플렉스' 다. 다른 엄마들처럼 안하면 나쁜 엄마가 된 마냥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마코토의 엄마를 보니 그나마 용기가 좀 생긴다. 물론 내 아이도 마코토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아로 성장한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마코토의 엄마처럼 자기 멋대로 살아도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에게 마음을 다하면 그건 결코 틀린 일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겠다. 아이에게 '일반적' 인 걸 안해주어 잘못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 편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겠는가. 나대로, 나답게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는 그 모습만 기억하고 자기 인생을 향해 나갈 거라고, 그걸 굳건히 믿는 게 가장 '엄마다움' 이 아니겠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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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스피드 엄마라니, 최소한 육백만불의 엄마정도는 되줘야할 것 같다. 뚜뚜뚜뚜-하면서 달려나가는 엄마.
그 제목때문에 작가도 모르는 책을 골라들었다. 기분전환용인 얇은 두께도 마음을 끌었다.
그렇지만 굉장한 제목과 달리 평범하게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 엄마와 둘이서 살고 있는 마코토는 종종 새로운 아빠후보들을 만나곤 하지만 엄마는 쿨하고 약간 터프한 매력이 있긴 하지만 맹스피드 라기보다는 걷기를 좋아할 것 같다. 엄마와 둘이라 그런지 꽤나 친하지만 그렇다고 둘밖에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가깝지는 않다.
또 마코토는 반에서 이지매를 당하지만
독특한 모녀. 하지만 아쉽게도 기분전환은 되지 않는다.
아니면 제목이 뭔가 번역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발 그래야할텐데, 그럼 원제는 뭐였을까. 원래의 이야기에 좀 어울리는 이야기였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