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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을 읽고 저자의 다른 작품도 무척 궁금해졌다. 두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반딧불 강』도 역시나 순식간에 읽어버릴 만큼 흡인력이 강했고 이 작가에 대해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절판이라 중고로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권씩 읽어 나갈 때마다 다음에 읽을 책을 구입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는 일이 즐거우면서도 소설의 색깔이 달라짐을 알아감에 따라 점점 느낌을 남기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실린「흙탕물 강」은 다자이 오사무 상을「반딧불 강」은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다. 일 년 간격으로 쓴 작품들이 이런 상을 받을 정도니 저자의 저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작가가 된 것도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읽은 단편이 너무 재미있어서라고 하니 그런 계기만큼이나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기 좋아하는 것과 직접 쓰는 건 엄연한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독자에서 작가로 신분이 전환된 저자의 글을 더 주의 깊게 읽게 되는 지도 몰랐다. 두 편의 단편 모두 강이 배경인 만큼 강과 함께 드러나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좀 더 강렬했던 건「흙탕물 강」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여덟 살 노부오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계와 집 앞에 흐르고 있는 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늘 식당에 와서 밥을 먹던 짐수레를 몰던 아저씨의 죽음으로 포문을 열고 이어 배에서 생활하는 노부오 또래의 소년이 등장한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배 위에서 살아가는 소년과 함께 흙탕물 강에서 귀신잉어를 보기도 하고 소년의 누나에게 호기심을 품기도 하며 몸이 불편한 소년의 엄마가 무슨 일을 하며 남매를 키우는지 알기도 한다. 식당을 하는 평범한 자신의 가족을 부러워하는 소년을 보며 노부오는 배 위의 생활과 앞으로 그 가족에게 닥칠 앞날에 대해 짐작할 수도 없지만 자신의 가족 또한 엄마의 건강과 아빠의 사업을 위해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다. 남매의 엄마가 몸을 팔아서 생활을 이어가고, 제대로 된 집도 없이 배 위에서 강을 따라 이리저리로 이동하며 살아가며, 전쟁터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린 짐수레를 몰던 아저씨의 죽음 등이 혼탁한 강물처럼 내 마음까지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그들이 본 귀신잉어처럼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강 위에서 생활하는 소년의 가족과 노부오의 추억도 순식간에 흙탕물 속으로 잠식해 버리는 것 같았다. 「반딧불 강」은 열네 살 다쓰오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소꿉친구 히데코를 좋아하기도 하고, 히데코를 좋아하는 동성친구와 미묘한 감정을 나누다가도 그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사월에 큰 눈이 내리면 엄청난 반딧불을 볼 수 있다는 긴조 할아버지의 말 때문에 눈이 오는 날 다쓰오는 반딧불을 볼 요량으로 흥분하곤 하는 천진난만한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고등학교 진학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꿋꿋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반딧불을 향해 가는 모습에서 잔잔함을 느꼈다. 히데코와 함께 가기 위해 엄마를 끌어들이는 어설픔 속에서도 긴조 할아버지가 말했던 반딧불의 향연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설레는 맘으로 함께 그들을 따라갔는지도 몰랐다. 반딧불을 보는 광경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환상의 빛』단편이 묘사가 너무 뛰어나서 다른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했었다.「반딧불 강」은『환상의 빛』만큼의 묘사는 아니지만 잔잔함과 함께 저자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단 두 편의 작품을 읽은 터라 뭐라 똑 부러지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무언가가 저자의 다른 작품도 계속 찾아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문체의 막힘없음이 점점 더 저자의 매력 속으로 빠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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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모토 테루의 책을 십여년 전에 읽은 적이 있다. 삼문, 이라고 지금은 없어진 듯한 출판사에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삼문 출판사에서 시마다 마사히코,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의 책들이 나왔다) 대중적인 추리소설의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문체와 인상적인 소재였다. 그 이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 보려고 맘 먹었는데, (『이별의 시작』이라는 책은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않은 채 집안의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먹은 맘을 풀어내게 되었다고나... 「흙탕물 강」.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 중 하나로 미야모토 테루가 그의 나이 서른에 쓴 처녀작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십여년이 흐른 시점, 오사카만의 한 켠으로 흘러드는 아지강 주변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인 노부오와 노부오의 가족, 그리고 노부오가 만나게 되는 친구 기이치와 기이치의 누나 긴코, 그리고 긴코의 엄마가 그려내는 이야기이다.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인 일본의 기층민중(전쟁 가해국의 국민 또한 전쟁의 패하지일 수밖에...)들을 소설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쟁이 끝나고 이 년쯤 지나서 덴노지 암시장에서 특공대 출신의 젊은 사내가 일본도를 휘둘러대며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 이놈들아, 일본은 패했어. 패했다구! 이놈들아, 분한 줄 알아라! 가미카제 따위에 속다니, 가미카제는 이리 나와! 사람들 앞에 나와봐! 하고 외쳐며 울더군. 멍청한 놈, 종이쪽지 한 장에서 처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군대에 끌려간 사람들에게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상관이야? 죽었느냐 살았느냐가 문제지...” 우동집을 하면서 엄마 사다코, 아빠 신페이와 함께 지내는 노부오는 어느날 소년 기이치를 만나게 되고 우정을 나누게 된다. 소년 기이치는 배집에서(강 위에 떠 있는 배를 살림집으로 사용하는) 살며 몸을 팔아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누나 긴코와 함께 산다. 그리고 간간히 기이치의 배집에 놀러가게 되는 노부오... “방 안에 은은히 맴돌고 있는 이 신기한 향기는 안개와도 같은 땀과 더불어 기이치 엄마의 몸에서 스며나오는 피곤하면서도 요염한 여자의 향기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노부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향기 속에 숨어 있는 간지러운 느낌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노부오는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고 기이치 엄마 곁에 있고 싶었다.” 박태원의 『천변풍경』만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해 활개치지 못한 채 호구지책의 기로에서 항상 전전긍긍해야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오와 같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책무에 여념이 없는, 그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미야모토 테루는 이 첫 작품으로 다자이 오사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의 두 번째 작품으로 아쿠다가와 수상작... 전처를 버리고 늦은 나이에 2세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치요와 결혼한 시게타쓰,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나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어 있는 다쓰오... 하지만 젊은 시절 패기만만하던 시게타쓰는 몇 번의 사업 실패 이후 지금은 갑작스러운 병의 악화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세이고, 때문에 다쓰오는 아버지가 건네준 어음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는 오모리에게 찾아가 차용증을 써줘야 하는 신세이다. 하지만 이제 한창 자라고 있는 다쓰오는 이러한 자신의 처지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막 자라기 시작하는 성기의 터럭처럼 그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들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도 히데코라는 소녀를 향한 흐릿한 사랑 또한 조금씩 윤곽을 잡아간다. “반딧불이 내리는 거야. 본 적이 없지? 반딧불이 무리 말이야. 무리가 안라 덩어리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이타치 강 아주 상류에, 넓은 논만 잔뜩 있는 곳보다 훨씬 더 저편에,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 반딧불이가 태어나는 거란다. 이타치 강도 그 언저리는 물이 맑거든. 아무튼 굉장히 많은 반딧불이야. 큰눈처럼 이쪽저쪽에서 반딧불이 쏟아지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반딧불 강’은 반딧불을 보기 위해 히데코와 함께 하기로 한 약속, 소년의 로망이라고 해야 할 이 짧은 여행의 종착점 혹은 시작점(그렇게 성장한 소년이 세상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떼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이다. 「흙탕물 강」과 마찬가지로 소년 다쓰오를 중심으로 엄마인 치요, 아버지 시게타쓰를 비롯해 반딧불 강의 어느 지점에선가 목숨을 잃는 친한 친구인 세키네, 세키네의 죽음 이후 실성하는 그의 아버지, 다쓰오에게 반딧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긴조 할아버지 등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이 각각에게 필요한 만큼씩 조명을 받으며 소설을 받쳐주고 있다. 그때 그 시절 보았던 『피서지의 고양이』와 같은 알싸한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아내는 굉장히 재밌게 보았다고 하는데,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디? 라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잊혀졌던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과 생활에 대하여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일본인들에게 국한될 이야기이지만) 매력은 지니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