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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한국사상선 / 임화·김수영·신동엽 - 문학이라는 사상과 시적 창조> 임화 · 김수영 · 신동엽, 창비 ✒️ 시를 읽는 일이 조금 즐거워진 건 입시에서 아주 멀리 멀어진 뒤였던 것 같다. 정답을 맞추기 위해 배울 때는 그토록 무뚝뚝하고 재미없던 시가, 이젠 아무도 내 해석에 점수를 매기지 않고 나니 제법 다정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창비에서 한국사상선으로 『임화·김수영·신동엽』이라는 세 시인을 다루는 책이 나온 것을 보고무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은 철학과 사상을 다룬 책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구보다는 시인들이 문학을 통해 세상 속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지만,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좋았다. 🌾 세 사람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들이 남긴 비평과 산문은 역시 꽤나 낯설었다. 시인의 글이라고 해서 모두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가 다른 만큼 문장의 결이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고, 같은 문단을 두 번 읽었지만 무슨 말인가 싶어 잠깐 책을 덮어두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완성된 시 한 편만 볼 때는 미처 몰랐던 고민과 망설임을 엿보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교과서 속에서만 봤던 이름들이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 임화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는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일과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일이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평소 문제를 마주하면 쉽게 포기하거나 안 된다고 결론부터 내릴 때가 많은데 임화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뜨끔하기도 했다. 김수영 시인이 머리나 말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한다고 말할 때는 더 마음이 찔리기도 했다. 말로는 소신과 자유를 쉽게 이야기하면서, 정작 내 일에 관해서는 괜히 불이익을 받고 시끄러워질까 봐 적당히 타협하고 물러선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론을 읽다가 뜬금없이 자기반성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 신동엽 시인은 시를 ‘생명의 발언’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시인에게 있어서 시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쉽게 감은 오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멋진 표현이란 생각을 했다. 앞으로는 시를 단순히 아름다운 표현이나 위로의 도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은 들었다. 세 사람의 생각이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일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을 끝내 떼어놓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무언가에 그렇게까지 치열한 적이 나에게는 있었을까 돌이켜보게 되기도 했다. ✒️ 책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는 시를 읽을 때 잘 벼려진 표현에 감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문장 문장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시인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시대를 통과하며 무엇과 치열하게 다투었고, 어떤 내일을 간절히 바랐던 걸까 깊이있게 생각도 해봐야겠다. 철학책을 읽을 때는 개념이 엉켜 머리가 아파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감동도 느낀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시를 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눈이 밝아졌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시 한 편을 앞에 두고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조금 더 늘어날 것 같기는 하다.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던 이름들이 비로소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으로 다가왔다는 것에 무척 만족감을 느끼며 이 책을 만난 것이 무척 즐거운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 책은 창비(@changbi_insta)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한국사상선 #창비 #한국사상 #한국철학 #독서모임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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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김수영·신동엽》, 창비 한국사상선 29 '사상'이라고 하면 보통 서양 철학자들의 정교하고 복잡한 이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고, 그들의 생각을 겨우 이해해 보려고 해도 공부를 꽤나 오래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든다. 학창 시절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서도 자연계열을 전공했던 나에게 사상이라는 단어는 결코 친숙한 분야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창비의 '한국사상선'이라는 기획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매우 반가운 발견이었다. 적어도 과거 학창 시절 한국사 시간에 이름이라도 들어본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니, 사상이라는 낯선 학문의 문턱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넘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기획 시리즈 중 29권을 가장 먼저 골라 든 이유는 요즘 들어 시를 읽는 소소한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오직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한 목적으로만 시를 접했다. 특정 시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시인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답이 과연 무엇인지 찾는 데만 전전긍긍하며 읽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문장 그 자체가 주는 울림과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즐기며 읽는다. 시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시를 읽는 독서모임에도 선뜻 참여하게 되었는데, 문학을 향한 관심이 깊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시를 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품고 시대를 살았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임화, 김수영, 신동엽이라는 한국 문학사의 거대한 세 이름은 이 책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책 속에는 세 문인이 생전에 남긴 대표적인 문학론과 비평, 그리고 산문들이 차곡차곡 수록되어 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내용이 너무 딱딱하거나 난해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예상과 달리 글은 술술 잘 읽혔다. 평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작가나 작품 중에는 이미 이름이라도 알고 있거나 이전에 직접 읽어본 것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익숙한 문학적 맥락과 이야기들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고, 사상을 잘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리 지레 겁먹을 필요는 전혀 없었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임화의 글에서는 무엇보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깊 깊은 시선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현실에는 우리가 분명히 비판하고 고발해야 할 모순과 부조리가 수없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현실 전체를 그저 어둡고 불결한 세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암흑 가운데 광명이 있고 광명 가운데 암흑이 존재한다는 구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사회의 나쁜 점을 날카롭게 찾아내어 비판하는 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비판에만 매몰되어서는 현실의 다층적인 면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모순 속일지라도 그 내부에서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희망의 사실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영의 글을 읽을 때는 시인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치열한 문장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처음에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 이름을 얻고 기존의 제도권 안으로 안주하게 되면, 결국 주변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게 된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비단 옛날 문단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지점이었다. 자신이 어렵게 얻은 자리와 기득권을 지키려다 보면 정작 하고 싶은 소신 발언을 다 하기 어려워지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만약 시인이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싸워나가야 한다면 그 외로운 싸움이 과연 시인이라는 특별한 개인만의 몫이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꼬리를 물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을 지속적으로 누리고, 소외된 민중들은 여전히 외곽에 홀로 남겨진다. 시대와 기술이 아무리 급격히 달라졌다 해도 쉽게 변하지 않는 삶의 모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터에서 스스로 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거창하고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투쟁과 변화의 짐을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 같은 방향을 향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그렇게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벅차고 짜릿해졌다. 단순히 시론집을 읽다가 이런 현실적인 고민과 감정의 확장까지 경험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신동엽이 시를 가리켜 '생명의 발언'이라고 정의한 대목 역시 잔상이 매우 길게 남는다. 시를 그저 보기 좋은 아름다운 문장이나 개인의 소소한 감정을 다스리는 수단 정도로만 여겼다면 결코 떠올리기 어려운 파격적인 표현이었다. 시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주체적인 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시가 '생명을 침투하고 파괴하고 조직한다'는 식의 대담한 표현은 한 번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약간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모든 의미를 즉각적으로 완벽히 파악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생소하고 강렬한 문장을 마주할 때, 시인은 도대체 어떤 간절한 마음으로 이 말을 세상에 뱉었을지 그 속내가 더 깊이 궁금해지곤 한다. 개인적으로 독서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글이나 비평을 통해 그들이 실제로 살아냈던 그 시대의 공기를 한층 더 실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문학 작품만 단독으로 읽을 때는 작가가 어떤 시대적 고통과 배경 속에서 숨 쉬었는지 잘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당대 작가들의 글을 다각도로 함께 읽으니, 각기 다른 문장을 쓰던 문인들이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문학의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사실이 매우 생생하게 와닿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파편적으로만 접하던 이름들이 하나의 시대라는 테두리 안에 한데 모여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비교적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하셨던 이어령 선생님의 성함이 언급된 대목도 반가웠다. 책 속에서만 고착되어 있던 이름들이 활기차게 연결되면서, 아득하게 느껴지던 한국 문학사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세 문인의 글을 모두 읽었다고 해서 그들의 깊은 사상적 궤적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감히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지는 개념들도 남아 있고, 내가 과연 저자의 의도대로 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대목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상이라는 분야가 나와는 전혀 무관한 까마득하고 고답적인 학문일 뿐이라는 오랜 편견만큼은 깨끗이 깨어졌다. 잘 모르는 낯선 분야라 할지라도 나에게 익숙한 문학이나 시라는 통로를 통해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고,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면 결국 내가 지금 발딛고 서 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단순히 시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읽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펼쳐 든 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인들이 온몸으로 견뎌낸 시대의 무게와 고민의 깊이까지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다. 앞으로 시를 읽을 때면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에만 머물지 않고, 그 문장을 써 내려갔을 시인의 깊은 생각과 시대적 고민까지 함께 궁금해질 것 같다. 이번 읽기를 계기로 창비 한국사상선의 다른 시리즈들도 하나씩 천천히 찾아 읽어보고 싶다. *본 리뷰는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독서모임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창비 #창비한국사상선 #한국사상선 #임화김수영신동엽 #독서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