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5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실학의 도전과 좌절 - 기남자 (奇男子) 박제가
"실학의 도전과 좌절 - 기남자 (奇男子) 박제가" 내용보기
실학자하면 보통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지만, 이들 외 ‘북학의’를 쓴 ‘박제가’와 그가 속했던 ‘백탑파’들 또한 뛰어난 실학자들이었다. 내가 ‘백탑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에서 였다. 김탁환의 역사 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백탑파’ 는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지성 집단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실학의 도전과 좌절 - 기남자 (奇男子) 박제가" 내용보기
 


실학자하면 보통 연암 박지원이나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지만, 이들 외 ‘북학의’를 쓴 ‘박제가’와 그가 속했던 ‘백탑파’들 또한 뛰어난 실학자들이었다.

내가 ‘백탑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역사책이 아닌 소설책에서 였다. 김탁환의 역사 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백탑파’ 는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지성 집단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은 청나라에 다녀오거나, 검서관으로 등용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한 시각과 관직에 오른 것으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들의 학문과 사상을 현실을 개선하는 데 이용하는 이용후생의 정신을 적극 실천한 인물들이다.


‘백탑파’는 박지원이 스승 격으로 참여했지만 무인 백동수 등이 중심이 돼 서로 인맥으로 한 사람 두 사람씩 참여하게 되고, '백탑(오늘날 탑골공원)’ 동네 부근에 살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시사(詩社)를 조직하게 되면서 탄생할 수 있었다.

박지원, 박제가, 백동수, 유득공, 홍대용, 이덕무, 이서구, 정철조 등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들을 보면 당대의 문장가 이거나 무예에 도통하거나 그야말로 출중한 인물들이었으니 가히 조선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동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문 수학했던 것도 아니고, 특정 당파나, 지역태생도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이들은 경직된 주자학적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연령에서나 신분에서나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당대의 인물들이 이렇게 모여 시사(詩社)를 결성했다는 게 놀라웠다. 실로 하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이들 중 박제가나 이덕무, 백동수, 유득공 등은 서얼이었지만 이들 사이엔 신분이나 나이의 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학문을 격려하고 글쓰기를 응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한 인간으로 학자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격려했던 것이다. 특히 박제가와 이덕무를 비롯해서 죽는 날까지 돈독하게 우정을 나눈 편지나 문장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들 중 박지원이나 홍대용, 박제가 등은 청나라에 다녀오면서 청나라 인사들과 교유하고, 신지식을 접했다. 서양의 합리적인 학문과 세계관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책을 모색했다.

홍대용은 근대적 우주관을 받아들여 자전설을 주장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 등을 통해 경직되고 공론에 치우쳐 있던 주자학적 사고나 중화 사상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박제가 역시‘북학의’를 통해 해외 통상을 통한 상업 활성화를 주장했다. 유생들이 나라의 과반을 차지하는 것은 농부들에게만 의무가 부과되기에 유생들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 수레를 사용하고, 농기구 제작법을 중국에서 배워 농사 시험장에 설치하자고도 했다. 유통을 통해 거둔 세금으로 소극적으로 운영했던 재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운영하자는 의견을 피력하는 등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들 외에도 ‘백탑파’의 활약은 눈부셨다.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발휘한 유득공은 ‘발해고’를 썼다. 그는 ‘발해고’ 를 통해 발해의 시조를 고구려인 대조영이라고 밝히면서 북쪽의 발해와 남쪽의 신라를 우리 민족사로 아우르는 ‘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더 적합다하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로서는 아주 파격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무인 백동수는 박제가, 이덕무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간행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고.


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안타깝게도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백탑파’들의 활약은 정조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기득권 세력이 된 사람들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았고, 정조도 문체반정의 대상자로 박제가나 이덕무를 지목함으로써, 이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리고 '백탑파' 인물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정조마저 급서함으로써 이들에게 더 이상 힘이 실리지  못했다.


‘백탑파’들이 ‘백탑파’로 사회적 힘을 지닌 지성인으로 동인집단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이들은 문구를 외우고, 글을 짓는 것으로 학문을 하는 목적으로삼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이들은 학문을, 학문하는 자의 도리를‘백성의 삶을 구하는 데 있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독서하면서 실용을 모르면 강학하는 것이 아니라는 발언은 이들의 실용적 학문관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정덕(正德)과 경세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정덕을 위해서라도 백성들의 삶을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사고였다. 이것은 왜란이라 호란의 전쟁에 대처할 능력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도  별 관심이나 위력을 보이지 않은 주자학자와는 분명하게 다른 차별점이었다.

‘백탑파’는 공론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적인 학문을,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현실을 위한 학문을 추구함으로써,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데 힘을 바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담은 책을 펴냈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해 발언했다.

이들의 등장으로 학문이 좀 더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역할론에도 무게가 실리게 됐다. 이들의 등장과 활약은 정체돼 있던 조선 사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고, 주자학 일색이었던 조선 지성사에‘북학파'라는  새로운 학문적 흐름을 형성했다. 조선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또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사족이지만 박제가와 젊은 그들’이라는 제목을 보고 궁금한 점이 한가지 있었다. 왜 박제가만 유독 이름을 기명으로 내세운 것일까?하는.

재주나 슬기가 아주 뛰어난  사나이라는 기남자(奇男子)라는  평가를 받은 박제가 한 몸에 조선 후기 실학 사조의 발흥과 전개, 몰락의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하지만 이런 묵직한  존재감에 비해,‘박제가’에 대해서 제대로 된 평전 하나 없는 것이 저자는 못내 안타까웠다고 하니, 그런 만큼 제목에서 박제가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함께 박제가를 비롯한 실학자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데에 대한 애석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e****0 2010.10.18. 신고 공감 15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죽어서 사는 이들
"죽어서 사는 이들" 내용보기
어느 시대에나 변화는 힘들다. 이미 형성된 권세가의 특권을 부인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개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곤 한다. 위로부터 시도되었던 수많은 변혁의 움직임이 완성되지 못한 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게다가 민중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 역시 무참히 짓밟혔던 것이 우리의 지
"죽어서 사는 이들" 내용보기
어느 시대에나 변화는 힘들다. 이미 형성된 권세가의 특권을 부인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개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곤 한다. 위로부터 시도되었던 수많은 변혁의 움직임이 완성되지 못한 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게다가 민중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 역시 무참히 짓밟혔던 것이 우리의 지난 역사이다. 물론 이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가슴 벅차면서도 시린 기억으로 남아 이후의 변혁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오늘날까지 작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조선시대는 왕 1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체제였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국가는 유지되었다 하지만 왕 아닌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면 그 500년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말이 꼭 필요할 듯 싶다. 양반 세력에게 있어서 역사는 물 흐르듯 매끄럽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르나 임진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이 민중에게 가져다 준 것은 헤어날 수 없는 가난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에 따른 차별이,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듯한 성리학만이 그 사회에선 중시되었다. 자연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현실의 가난을 타계하고 모든 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가의 질문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수의 권력층만이 호의호식하는 사회. 조선은 그런 사회였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오늘날의 시각에서 북학파의 사상은 실제 삼과 유리되었던 학문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재조명 받고 있다. 물론, 이는 완벽하게 유학의 범주를 벗어난 신학문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조선사회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혼란 속에 찾아온 잠시의 번영을 통해 이는 미약하나마나 주목을 받았다. 재주는 있으나 신분이 미천하여 자신의 뜻을 펴지 못했던 인물들이 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가문과 학파에 따라 출세가 미리 결정되어 있던 지금까지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파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변화에 대한 반대 세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자신들만의 무한 권력을 추구한 그들의 눈물겨운(?) 반동의 노력은 급기야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신진세력의 양성에 앞장섰던 정조 역시 묘연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제가의 <북학의>는 이용후생 학파의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저서이다. ''우물''이라는 다분히 한국적인 사물을 통해 그는 소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소비를 강조했다는 점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1930년대 미국 사회를 전체주의의 늪으로부터 구해낸 케인즈 사상과도 흡사해 보인다. 조선은 외부의 적을 통해 내부의 단결을 모색해야 할 정도로 혼란했던 것일까? 이미 멸망한 명나라를 섬기며 나날이 발전하는 청나라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을 외교노선의 기본으로 삼았던 노론 벌열들에게 그의 사상은 실로 위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총애를 받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끊임없는 모함 역시 받았다. 시대가 죽인 영웅들이 어디 그 뿐이겠는가. 박제가와 두터운 정을 나누었던 그리고 실학적 태도를 취했던 대다수의 이들이 뜨겁게 타오르다 금방 꺼져버린 촛불 마냥 자신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올곧은 심성으로 한결같이 살았던 인물들의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웠다. 정조 사후 들어선 세도정치는 조선이라는 한 사회가 얼마나 처참하게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를 증명이라도 해 보이는 듯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유지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보다 용감히 사라진 자들을 기리고 있음을 본다면 그들의 삶을 실패라 단정지을 수만은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견지한 실학적 태도만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q*****2 2006.08.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조에 의해 발탁된 서얼 출신 이용후생 학자들의 이야기
"정조에 의해 발탁된 서얼 출신 이용후생 학자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조금 어정쩡한 내용의 책이다. 백탑파에 촛점을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박제가에게 많은 내용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박제가와 그의 동지를이라고 하기에는 동지들의 비중이 강하지 않나 한다.    박제가와 그들이라고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양반 사족이 아닌 서자 출신의 그들에게 중심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러움을 같이 나누어 줄 같은 환경의 친구들이 있어서
"정조에 의해 발탁된 서얼 출신 이용후생 학자들의 이야기" 내용보기

 조금 어정쩡한 내용의 책이다. 백탑파에 촛점을 맞추는 것 같기도 하고, 박제가에게 많은 내용을 주는 것도 아니다. 박제가와 그의 동지를이라고 하기에는 동지들의 비중이 강하지 않나 한다.

 

 박제가와 그들이라고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양반 사족이 아닌 서자 출신의 그들에게 중심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러움을 같이 나누어 줄 같은 환경의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공감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세상의 기득권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학문이 높은 것을 서로에게 자랑할 만하다. 이 대표 그룹으로 <건연집>을 낸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 일것이다. 양분 신분인 이서구가 이들과 함께 사귄 것을 보면 이분은 뭔가 다른 특징이 있을 것 같다.

 

 서얼 출신인 이들에게 기회를 준 것은 정조였다. 정조가 규장각을 만들면서 검서관이라는 직책으로 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리수를 등용한 것이었다. 비주류라고는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임금이 특별하게 인정하는 사회적 신분을 획득하게 된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들이 학문이 높아, 시서화에 뛰어난 점도 있었겠지만, 조선이 노론 정권에서 성리학만 학문으로 인정하는 시대에, 실학이라는 현실적인 학문에 눈을 뜬 것이 의미가 있다. 아마 기득권 계층이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신분적으로 배척받고 소외되어 있어 오히려 껍질을 뚫는 시각인, 현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을 이용후생학파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책에서 읽는 골자는 중국(여기에서는 청)의 문물을 받아 들여,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북학이라는 것이 중국의 학문을 뜻한다. 그래서 박제가의 주장에서 신분 철폐와 같은 내용도 있었지만, 크게 주장한 것이 수레의 이용이다. 수레이 이용으로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고자 했다. 그리고 농사기술의 보급과 발전이다. 시범생산을 통해 보급 발전을 하고자 주장하였다. 박제가의 주장중에 상업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한 주장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정조 시대의 이덕무,박제가,유득공의 활동을 대강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울러 백탑파의 원조 혹은 스승격인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도 나오고, 정조에 대한 내용은 빠질 수가 없다. 정조 어정쩡하긴 하지만 이러한 인물들을 기용한 것으로 봐서 개혁군주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z******g 2010.11.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제가와 젊은 그들" 내용보기
제목에서 이미 어느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예상이 빗나길 바라고 책장을 펼쳤지만 역시나 였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미 안대회 선생-박제가의 저작물들에 대해 정통하신 분-의 번역물을 상당수 원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밝혔으니 내용이야 그렇다 치지만 책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를 쏙 빼닮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까.... 가 이덕무를 주연으로 하고
"박제가와 젊은 그들" 내용보기
제목에서 이미 어느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예상이 빗나길 바라고 책장을 펼쳤지만 역시나 였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미 안대회 선생-박제가의 저작물들에 대해 정통하신 분-의 번역물을 상당수 원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밝혔으니 내용이야 그렇다 치지만 책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책만 읽는="" 바보="" -="" 안소영="">를 쏙 빼닮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까.... <책만 읽는="" 바보="">가 이덕무를 주연으로 하고 그의 백탑친구들이 조연으로 캐스팅되어 이야기가 엮어졌다며, <박제가와 젊은그들="">은 이덕무와 박제가가 서로의 자리만을 바뀌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관계가 서로를 떼어 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사이라 할지라고 <책만 읽는="" 바보="">를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이 책의 나머지 반을 구성하는 2부 "알아주는 이 있으니 무에 두려우랴" 편에서야 불편을 마음을 지우고 오롯이 박제가란 인물과 그의 사상을 보다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외 이 책이 그간에 읽었던 백탑파 관련 책들에 비해 좋았던 점은 상당수의 사진과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박제가의 38세때의 초상화-박제가 사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를 비롯하여 청나라의 유리창 거리, 산해관의 모습, 전북 태인에 소재한 이서구의 공적비 등이 그것이다. 흡족하진 않았지만 ''고루하고 폐쇄적인 조선사회를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신명을 바친'' 박제가의 사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p****q 2006.08.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