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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집불통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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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노신의 '아Q정전'을 읽으며 빨리 그의 평전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책은 지난달에 일찌감치 주문해 놓은 상태였기에 이번 달 독서계획에 포함하여 읽기로 작정했었고, 이번 주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었다.  모택동은 노신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이라 부르며 "그는 단지 위대한 문학인일 뿐 아니라, 또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라고 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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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노신의 '아Q정전'을 읽으며 빨리 그의 평전을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책은 지난달에 일찌감치 주문해 놓은 상태였기에 이번 달 독서계획에 포함하여 읽기로 작정했었고, 이번 주에 드디어 다 읽을 수 있었다. 

모택동은 노신을 일컬어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主將)"이라 부르며 "그는 단지 위대한 문학인일 뿐 아니라, 또한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재작년에 감명깊게 읽었던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에서도 노신에 대한 호의적인 평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지난 달, 그 유명한 '아Q정전'을 읽으면서 커다란 감흥을 받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시대적 배경과 구체적인 작가의 삶을 알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기에 조금은 성급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간 것 같기도 하다.

 

그의 평전을 읽고 난 지금, 강직하고 변하지 않는 어쩌면 고집불통과도 같이 여겨지는 그에 대한 강렬함이 커다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는 1881년에 태어나 1936년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아왔으나,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최후의 순간까지도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역동적인 생활을 진행해 왔다. 특히 그가 운명을 달리 하기 직전의 일화들은 실로 그의 열정적인 삶과 지식인으로서의 태도, 그가 바라는 사회와 중국인민들을 향한 멈추지 않는 노력 등, 어찌보면 한없이 고집스럽지만 읽는 이에게 가슴 뭉클함을 전달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중병에 걸려 그에게 요양을 권하는 어떠한 설득과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치료하는 일본인 의사 스토의 많이 움직이지 말고 침상에 얌전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경고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평생 그런 습관을 들여 본 적이 없소. 일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못한다면 나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이오. 날 치료하는 데는 조건이 있소. 첫째, 병을 완전히 낫게 해 주시오. 다시 말해서, 날 살 수 있게 해달란 말이오. 둘째, 한 달 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움직여 두 달 만에 병이 낫게 할 것이오. 셋째, 만일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생명을 최대한 연장시켜 주시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답답스런 고집이 아닐 수 없지만, 그만큼 그에게는 열심히 읽고 일하는 것 자체가 죽는 날까지 지켜진 그만의 원칙이었고, 또한 그의 사상은 언제나 일관된 계몽과 구망(救亡)이었으며, 그 안에서도 오히려 인류의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 독립과 존엄, 보편적이되 결코 추상적이지 않은 자유와 독립의 실체, 그리고 이를 주체적으로 향수하는 실존적 인간으로서의 중국 인민의 모습을 추구했다.

또한, 그는 중병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도 공산당 친구인 구추백을 기념하기 위한 <해상술림>이라는 책을 엮을 때, "번역자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저자인 고리키도 최근에 세상을 떠났소. 게다가 편자인 나도 곧 죽을 것 같소. 이런 형편인데 아직도 교열이 끝나지 않았다니 당신들은 독자들마저 죽어 버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구려." 라고 출판을 재촉했고, 그 편지를 건네고 얼마 후 갑자기 자신의 참호에 쓰러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노신은 하나의 커다란 모순덩어리로 움직이고 있는 동아시아, 중국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복잡하게 얽힌 이념과 가치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 추상적인 구호와 주장들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중국 민중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러한 민중을 기만하고 탄압하는 모든 장치와 권력이 바로 그의 투쟁 대상이었고, 모두가 혁명을 이야기 할 때도 이를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의 공허한 외침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으며, 이는 반동으로 몰려 갖은 역비판을 당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여타의 비판적 질타에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주장을 펼쳐 나갔다.

 

그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 그의 작품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으며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노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의 문장을 거론하며 자신의 주장에 논거로 활용코자 하는 현상들...

그것은 단지 그의 훌륭한 작품과 문학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혁명을 갈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치열했던 삶과 변화를 위해 멈추지 않는 열정, 그리고 그 어떤 탄압과 커다란 기둥에도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떳떳하게 맞서 나가는 용기있는 행동들이 어우러져 오늘 날까지 그의 이름이, 그의 작품이, 그의 평전이 읽히고 있는 것일게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은 책 속의 두 가지 대목을 옮기며 노신 평전의 책 읽기를 마치고자 한다.

 

<빈하소집>의 한 대목.

....독기를 품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독기를 글로써 형상화 하는 것은 작은 독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높은 수준의 멸시는 무언(無言)이다. 더 좋은 것은 눈동자조차 굴리지 않는 것이다.

 

<죽음>의 구절들.

1. 장례에 누구에게서든지 절대로 돈을 받지 말 것. - 그러나 오랜 벗들은 예외이다.

2. 속히 입관하여 매장할 것.

3. 그 어떤 기념행사도 치르지 말 것.

4. 나를 잊고 모두들 자신들의 삶을 돌볼 것. -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말 얼빠진 사람이다.

5. 아이가 커서 재능이 없으면 절대로 실속없는 문학가나 미술가가 되게 하지 말고 다른 순수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할 것.

6.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뭔가 주겠다고 하는 것을 곧이듣지 말 것.

7.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오히려 보복을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하는 자들과는 절대 가까이하지 말 것.....

 

 

 



d*****3 2009.12.13. 신고 공감 3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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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삶, 실천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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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바둑판처럼 정확한 좌표가 주어진다면 어느 누구도 방황치 않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으련만, 세상은 그런 아량을 우리에게 허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다 간다. 남들과 비슷하게 하는 게 우리로서 택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아시아는 불행한 대륙이었다. 유럽에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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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바둑판처럼 정확한 좌표가 주어진다면 어느 누구도 방황치 않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으련만, 세상은 그런 아량을 우리에게 허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비슷한 삶을 살다 간다. 남들과 비슷하게 하는 게 우리로서 택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안전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후반의 아시아는 불행한 대륙이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자본주의는 마침내 그 한계에 도달한 듯 했다. 자본은 자신의 무한한 힘을 과시할 상대를 필요로 했고, 유럽대륙은 이를 표출하기에 너무도 좁았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기본 법칙은 구호뿐이었다. 경제적인 우월함이 인격적인 우월함으로 인식될 정도로 유럽 사회는 팽창을 요구하고 있었다. 일찍이 우리나라를 발판삼아 아시아 대륙을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심이 있었다. 전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듯 굴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오늘날에도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역시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멸만흥한''을 부르짖으며 끊임없이 한족의 부흥을 꿈꾸던 사람들. 청조는 서서히 몰락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청조 몰락 후 발생할 빈자리는 한족의 것이 아니었다. 일제의 책동이 태동하던 변화의 움직임을 짓눌렀다. 중국인들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노선이 절대화되다 못해 자신과 다른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혼란이었다. 1881년, 노신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 이러한 혼란은 이미 일상화된 후였다. 평온하되 가난했고 변화를 모르던 소홍에 대해 그는 경멸했다. 하지만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터진 조부의 부정사건은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수어 버렸다. 그것은 한 개인, 한 가정의 몰락이었으며 동시에 당대의 부패했던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민감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졸지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변화를 위한 실천을 갈망했지만, 그 때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는 현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북경여자사범대학에 교원으로 있으면서 그는 학생운동을 외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대 유행마냥 번져나가던 혁명의 흐름 역시 좌시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허한 외침만이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쉴 새 없이 혁명을 논하지만 결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은 없는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반동으로 몰릴 수도 있는 그의 비판행위는 변화를 꿈꾸는 이라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였다.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신을 이해했고, 그에게는 수천 혹은 그 이상의 적이 생겼다. 정치가에서부터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의 동지이자 적이었다. 그에게 허락된 삶은 1936년까지였다. 내부의 에너지를 모조리 끌어내 세상과 외로이 싸웠던 이에게 허락된 삶치고는 너무 길었던 것일 수도 있다. 살아서는 청나라의 멸망을 보았고, 거대한 대륙이 제국주의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는 것도 보았다. 자발적으로 조직된 단체였던 좌련이 외부의 힘에 의해 해산되었고, 그 과정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노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은 노신을 기억하고, 오늘날 우리는 그의 <아q장전>을 읽는다. 또한, 변화를 꿈꾸었지만 희생을 강요하는 혁명에는 반기를 들었던,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존엄함의 기치를 높이 여겼던 그의 삶은 여전히 평가하기 난해한 영역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인물,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게 된 인물. 경제성장은 지속되고 있지만 개인의 자유는 없는 극도로 경직된 오늘날의 중국 사회는 노신이 꿈꾸던 이상향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
q*****2 2006.08.2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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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념을 죽는 순간까지 굽히지 않은 참지식인
"자신의 신념을 죽는 순간까지 굽히지 않은 참지식인" 내용보기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 역시 거의 빼놓지 않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 노신 평전에 관한 책이 나왔길래 당연히 흥미가 생겼다. 노신이 누군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그에 대해 더욱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생각도 든다. 평전이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기도 하고 평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 보고 싶었기에 이 책을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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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 역시 거의 빼놓지 않고 즐겨보는 프로그램인데 노신 평전에 관한 책이 나왔길래 당연히 흥미가 생겼다. 노신이 누군지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당연히 그에 대해 더욱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생각도 든다. 평전이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기도 하고 평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 보고 싶었기에 이 책을 친구에게 과제해주는 대가(?)로 얻게 된 책이다. 이 평전의 가장 큰 특징은 노신의 사생활을 비롯한 노신을 인간 그 자체로서 바라보고 그의 출생부터 죽기 직전까지의 거시적 측면에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평전치고는 꽤 재미있다고 느낀점이 많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노신이라는 인간 자체의 활동적인 측면이나 그의 생각, 또한 그가 남긴 말들이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적극적(또는 전투적?)이고 솔직했던 측면이 많았고 격렬했기에 그를 인간 자체로서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노신의 출생시기부터 죽음에 이르는시기는 중국이 큰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치던 때이며 동양은 물론 세계전체가 쉴 새 없이 변화되고 싸우고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던 시기이다.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역사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새시대를 열어가는 그 첫단계과정이자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무너뜨리던 시기인 만큼 그 어느 누구도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인데 노신의 중국 인민들의 모순과 우매한 모습을 질타하고 시대를 바꾸고자 노력한 사상가이자 혁명가 였다. 그는 처음에 의학의 길을 택했으나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다시 문학의 길로 바꾸고 글과 연설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사상과 신념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또한 그가 남긴 아Q정전과 광인일기등 수많은 문학적 글과 여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버려야 될것가 새로 배워나가야 할 점을 분명히 하여 많은 청년들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남긴 지식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 민중들에 대해 독설과 비판을 함과 동시에 자신을 밟고서라도 젊은 이들이 높은곳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 참지식인이었다. 그의 수단으로 그가 문학을 택한만큼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등의 문학작품속에서 민중을 변혁하고자 하였으며 많은 연설은 항상 젊은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여서 자리가 없을정도였다. 어느 시대나 참지식인이 있고 지식인 행세를 하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지식인을 사칭하는 사람"의 선의 명확히 긋고 진정한 지식인은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면서 언제든지 사회를 위해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비단 이 시대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또한 그는 자신을 적이라 여기며 또한 자신이 적이라고 여기는 자들에게 매우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였는데 그의 논리력과 문필력은 상대할 만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민중들이 우매하더라도 노신의 정당함과 논리를 통한 글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참지식인들이 있고 지식인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나 권력자들에게 옳은소리 하지 못하는 언론과 학계는 아마도 이러한 노신의 투쟁을 본보기로 삼고 배울점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되는데 과거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들이 권력이나 재물 또는 이익과 관련되어 부패와 악영향에 많은 일조를 하였고 지금도 어디선가 사이비 지식인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느 시대나 사상가나 혁명가가 있기 마련이지만 죽는 순간까지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적들에게 죽는 순간까지 글과 말로써 이만큼이나 공격을 한 사람도 없을것이다. 이 책의 분량이 지는 않지만 많은 사진과 자료를 담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에 상세히 알려주고 있고 노신이라는 한 인간의 삶과 행동을 돌아보는데 있어 그리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데 있어 아주 좋은 책이라 보이면 적극추천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적과 원수는 적지 않은데 신식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해보고 나서 이렇게 결심했다. 그들에게 얼마든지 증오하게 하라. 나도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p*******2 2006.07.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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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은 글을 쓴 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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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대화>를 보고 노신이 궁금해졌다. 존경했던 사람이 닮고 싶어해서 어느 순간에 노신의 삶과 실천과 글이 닮아져 있는 모습을 보인 리영희 선생님..단지 리영희 선생님만 보고 선택한 노신의 일대기...사람의 인생이 한 순간은 드라마틱해서 흥미와 관심이 있겠지만 살다보면 다 인생이 그기서 그기 아닐까라는 생각에 어쩜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책을 읽었다.그러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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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대화>를 보고 노신이 궁금해졌다. 존경했던 사람이 닮고 싶어해서 어느 순간에 노신의 삶과 실천과 글이 닮아져 있는 모습을 보인 리영희 선생님..단지 리영희 선생님만 보고 선택한 노신의 일대기...사람의 인생이 한 순간은 드라마틱해서 흥미와 관심이 있겠지만 살다보면 다 인생이 그기서 그기 아닐까라는 생각에 어쩜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책을 읽었다.그러나 태어나서 죽는 과정은 똑같았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삶은 결코 지루하기 보단 그  치열한 삶에서 가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를 받은 느낌이였다. 그리고 반성도 남았다. 하루도 일하지 않고 그냥 보내는 삶은 살아있어도 죽은 삶이라는 노신의 말에서 내 삶은 뭔가? 싶어서..난 살아있어도 죽은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기 반성과 지금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그토록 원한 내일이였을텐데...그 내일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낭비하고 있는 모습...조금이라도 이 책으로 인해 내가 실천을 하는 모습을 보일거라는 희망을 걸어보면서...

노신은 1881년에 태어나서 1936년에 세상을 떠났다. 격동기 같은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중국인민의 계몽과 구원에 힘을 쏟으면서 치열하게 결코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아니 보통 인간의 인생에서 보면 그 시간이 길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노신의 그 치열한 삶은 어쩜 길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아무일 없이 보내는 삶을 증오한 노신...그 증오에 맞게 언제나 많은 일을 끊임없이 해 냈던 노신...보통 사람들의 두배 아니 세배 같은 삶이 아니였을까? 보통 사람들의 세배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노신...계몽과 구원을 위해 더 살아있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유럽인이라면 벌써 5년전에 죽어을꺼라는 그 몸으로도 구추백을 기념하기 위새 출판사를 재촉하는 그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아직까지도 노신의 글은 중국의 문학이나 학문에서  중요함의 강조의 수단으로 논쟁의 판단기준으로  인간이 지녀야 할 보편적인 가치의 기준으로 인용되어지고 있단다. 중국의 논어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인용되어지듯이 노신의 글과 말도 논어와 같이 중요하게 인용되어지고 있는 중국에서 노신의 위치란 무엇일까? 공자가 3000년동의 중국인의 가슴에 남아있는 사상가라면 노신은 3000년동안 내려온 중국의 무지,나태,우매,탐욕,갈등,교활,분열, 양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내면의 모습에 미화나 합리화를 거부하면서  그 약점들을 극복하도록 자신을 먼저 시대의 흐름에 맞게 혁명하기를 바란 사상가였을지 않았을까?
시대에 맞게 생각의 흐름도 바꾸어야 더 나은 사회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지지 않을려나? 지금의 이순간만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지금의 나만의 만족만을 위한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인 만족을 위해서 노신은  자신을 밟고서라도 젊은 이들이 높은곳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 참지식인이었다.
참지식인 같은 이런분이 정치를 하면 세상은 좀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면서....
너무 괜찮으신 분이다. 울 아들에게 꼭 읽히고 싶네...ㅋ

YES마니아 : 골드 d*******1 2011.06.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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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 평전]영원히 현실에 맞서는 사람,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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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평전을 읽었다. 사후 8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의 학자들이 자신의 글에 루쉰의 글을 인용할 정도로 루쉰은 가치의 척도로 인정받는 작가이다. 혁명가이자 문학가로서 격동기 중국 현대사에 이 정도 거인이 없다는 것은 뭐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니 루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책에 대한 것만 간략히 적겠다.   이 책은 중국에서 루쉰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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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평전을 읽었다. 사후 8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국의 학자들이 자신의 글에 루쉰의 글을 인용할 정도로 루쉰은 가치의 척도로 인정받는 작가이다. 혁명가이자 문학가로서 격동기 중국 현대사에 이 정도 거인이 없다는 것은 뭐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니 루쉰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 책에 대한 것만 간략히 적겠다.

 

이 책은 중국에서 루쉰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임현치 선생의 세번째 루쉰 평전을 번역한 책이다. 임현치 선생은 두번째 평전의 오류를 바로잡아 세번째로 이 책을 내었다하니, 도대체 언제까지 루쉰 평전을 내실지 알 수 없다. 평전의 주인공인 루쉰 선생도, 평전을 쓰신 임현치 선생도 존경스럽다.

 

책은 루쉰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다. 평전이지만 열렬한 찬사와 의미부여는 없다. 담담하게 루쉰의 행적과 저술 내용, 논쟁을 요약해서 들려줄 뿐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개입해서 해석하지 않는다.  '루쉰은 혁명을 흉내내는 사람이 아니라 천성적인 혁명가였고 영원히 현실에 맞서는 사람이었다.(- 58쪽에서 인용)' , '권력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저술을 통해 근본적으로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그의 노선이었다. (- 136쪽에서 인용)' 이 정도의 밋밋한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좋다.

 

1,2부에는 어느 정도 전기적 상황 서술이 보이지만 3부는 상해 정착 이후 논쟁 과정 위주로 되어 있어 좀 지루하다. 루쉰 선생의 판화 이야기도 없다. 저자는 문필 관련 활동에만 촛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관심있는 루쉰의 두번째 부인 쉬광핑(허광평)에 대한 부분 서술이 조금밖에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쉬광핑이 루쉰 내조만 하고 외적 활동이나 집필 포기하는 대목에서 '허광평은 노신의 이런 생각에 순순히 따랐다,''이는 그녀가 원한 일이기도 했다.'라고 서술한 부분을 보니, 사악한 나는 "그건 아저씨 말이고! 허광평 마음 속 생각은 들어나 봤나?"하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 책에는 당시 중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저자분은 자국민 독자들은 당연히 아는 역사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쓰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2.9 운동이다.'라고 들입다 써 버리시니,,, '허광평이 호랑이 꼬리에 간다'라고 아무 전후 설명 없이 서술해 버리시다니,,, 이 '호랑이 꼬리'가 베이징 시산티아오에 있는 루쉰의 서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 다들 알까? 어느 정도는 좀더 친절한 역자 주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듯 이 책은 어느 부분은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기에는 대략 난감일 수도 있는 책이다. 루쉰 뿐만 아니라 관련 문예운동가들의 사진이 많은 점은 좋았다.

 

여튼, 생각 외로 루쉰 선생의 작품에는 소설 창작보다  외국 소설 번역 작품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세계와 팽팽히 대결하는 혁명가의 길과 근면한 작가의 길을 동시에 치열히 걷다 가셨다는 것도 인상 깊다. 아래 유언은 정말 읽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물론 이 외에도 할말이 있었지만 이미 잊어버렸다. 다만 열이 몹시 날 때면 유럽인들은 임종시에 흔히 남이 너그럽게 용서해줄 것을 바라며 자신도 남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의식을 지낸다는 사실이 기억날 뿐이다. 나의 적과 원수는 적지 않은데 신식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해보고 나서 이렇게 결심했다. 그들에게 얼마든지 증오하게 하라. 나도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본문 397쪽에서.  루쉰의 유언에 해당하는 <죽음(死)>의 일부분.

 

 

 

*** 사소한 지적.

 

187쪽 단체 사진, 넷째줄 왼쪽에서 첫번째 인물이 노신이다. => 오른쪽에서 첫번째 인물임. 눈썹 보면 티난다.



m******n 2013.07.0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