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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해석과 오해 속에 재탄생한 인물, 사드
"수많은 해석과 오해 속에 재탄생한 인물, 사드" 내용보기
어디선가 쿡쿡 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살짝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힐끔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읽고 있는 책 표지에 쓰여진 단 하나의 단어가 그들의 시선을 이토록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게 된다. 책 표지에 쓰여진 단어는 다름 아닌 4글자, S, A, D, E였다.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에 관한 수많은
"수많은 해석과 오해 속에 재탄생한 인물, 사드" 내용보기
어디선가 쿡쿡 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살짝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힐끔거림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읽고 있는 책 표지에 쓰여진 단 하나의 단어가 그들의 시선을 이토록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게 된다. 책 표지에 쓰여진 단어는 다름 아닌 4글자, S, A, D, E였다.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과 만날 수 있다. (인터넷 상에 사드와 관련된 사이트는 무려 1만 7천여 가지에 이른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아도 이들 대부분이 학문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마조히스트들에 관한 것들임을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사드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와 같은 방대한 자료들과 연관을 맺고 있단 말인가? 대다수의 저서가 완성된 그의 감옥시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실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무엇의 영향으로 인하여 그가 그토록 독특한 세계관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게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에 의해 주목 받지 못한 유년기 시절부터 주목하고 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아버지의 이중 생활, 하지만 아버지는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만은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렇기에 당시 경찰의 보고서에 의할 것 같으면, 튈르리 공원을 어슬렁대는 ‘남색가’나 혹은 미소년을 통해 극단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짓까지 마다 않을 만큼 제멋대로였던(P65) 아버지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헥헥, 이름 한 번 길다.)는 무한한 애정을 형성하게 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어마어마한 양의 원고를 꼼꼼히 읽어댔으며, 감옥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아버지의 서류만은 자신의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반면, 프로이트에 의하면 남아의 경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한다고 하지만, 사드에게선 오히려 안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준 기이한 행각과, 자신의 연극을 통해 연출해낸 여성의 임신과 출산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어마어마한 기록과 결코 균형을 이룰 수 없을 어머니와 관련된 빈약한 자료들을 보면 그에게 어머니는 부재(不在)한다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와 같은 불균형적인 시선이 그의 삶 내내 반복되는 방탕의 밑거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의 격동 못지 않게 불안정했던 삶을 살았던 사드에 대한 평은 어떠한 시대가 도래하느냐에 따라 극에서 극을 오갔다. 곳곳에서 균열이 일어났으나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던 19세기까지 사드의 이름은 일종의 금기와도 같았다. 어떠한 학문적 연구의 가치도 없는 미치광이로서 그리고 당대의 모든 윤리를 부정하는 타락한 인물로서 그려지던 사드는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찬양의 대상으로 급작스레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저급한 포르노가 그러하듯 화려하되 쉬이 질리는 혹은 역겨울 뿐이라는 평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감정에 충실한 에로티스트, 인간의 육체에 가해지는 각종 검열들을 부정하는 실존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존재해온 사드를 향한 수많은 시선들을 살펴보면서 작가는 사드에 대한 수많은 판단들이 사드를 정확히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사드에 대한 그 어떠한 해설도 결국에는 사드를 완벽히 이해한다는 우리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한 사람의 생애를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같은 사람을 놓고도 어떠한 관점에 의해 서술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이 탄생하기 마련인데, 사드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들을 때면 가장 먼저 <소돔 120일>이나 <쥐스틴> 등을 떠올리지만, 사드 특유의 역겨움(!)으로 인해 이들 책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욱 베일에 쌓이게 되고,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사드는 철저히 재탄생 되어 온 것이 아닐지…
q*****2 2006.12.0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