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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자가 아닌지라 얼마 전 우연히 무량 스님의 수행기 <왜 사는가>를 읽고 숭산 스님을 알게 되었다. 물신에 눈먼 세상과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한 눈 맑은 ‘청년’(생물학적 나이와는 무관하게 스님은 정말 ‘청년’ 같다) 무량 스님의 글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사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알듯 모를 듯한 말들로 가득한 불교는, 내겐 그저 잡스러운 세상 일 과 대면하지 않으려는 몸짓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무량 스님이 그랬듯이, 숭산 스님의 <부처님께 재를 털면>과 <오직 모를 뿐>을 읽으면서 내가 불교를 얼마나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불교는, 불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어떤 믿음도 아니고 복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이자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펑크록’이 갈기머리를 세우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건들거리며 걷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내가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내려놓고 오직 순간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오직 모를 뿐이다. 오직 순간순간의 올바른 관계, 올바른 실천, 올바른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너’의 고통의 보이고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숭산 스님이 입적하시기 전 병실에서 한 스님이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스님의 대답은 이랬다.
‘돕고자 하는 마음만이 깨달음이네’
마치, 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나는 마늘이 좋다’라고 한 것과 같은 뜻일 거란 생각이 든다.
자의식이 강한 것이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요즘 세상에서, ‘나’를 내려놓으라는 말은 온당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런 말이,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식의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를 내려놓으란 말은, 주체는 구성되는 것이라는 포스트모던한 담론보다 덜 현학적이며 더 실천적이지 않은가...
스님의 모습 중에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무능력한 정치권력에 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우리 인간의 끝날 줄 모르는 이기심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숭산 스님의 이런 말씀 또한 마음에 새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미국 포교 시절의 생생한 일화를 비롯해 법문을 통해서만은 알 수 없었던 숭산 스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고,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을 번역한 이답게 저자가 쉽게 해설한 스님의 법문도 매우 감동적이다. ... [인상깊은구절] 선이란 안과 밖이 하나됨입니다. 그러면 삶이 간결하고 명확해질 것이며 마음속에 쌓였던 벽은 약해지고 약해져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그럴 때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됩니다. 누군가 행복해하면 당신도 함께 행복해질 것이고 누군가 슬퍼하면 당신도 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도울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자유이며 대자대비한 마음이며 위대한 보살행입니다. |
| 1권은 주로 미국과 해외 포교를 다루고 있고, 2권은 스님이 출가했을 때부터 입적하실 때까지의 일대기, 제자들의 회고록, 법문 등이 실려 있다. 특히 2권 말미에 실린 네 분 제자들의 회고가 감동적이다. 선 수행은 스님들이나 하는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깨트리는 책이다. 숭산 스님이 입적하시기 전에 나온 <선의 나침반>이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선의 나침반>을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러 일화와 함께 스님의 가르침의 요체가 쉽게 설명되어 있다. 틱낫한 스님이나 달라이 라마 같은 분은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숭산 스님은 우리나라에서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는 것 같다. <만행>의 현각 스님, 무량 스님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 제자들을 둔 것으로만 알려진 숭산 스님의 큰 가르침이 이 책을 통애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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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지, 한 6년 정도 지났고, 내 나이도 벌써 서른을 넘어섰다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무언가 확실한 답을 원했고, 수없는 밤을 불면증과 전문서적 탐독으로 보냈고, 답을 찾지 못하는 자아를 학대하며, 미칠 듯이 울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답을 알고 싶은가, 이 세상에 답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에 답이 있다'는 숭산 큰 스님의 말씀 외에 어떤 명쾌한 답도 접하질 못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유.. 직접적이고 소소한 이유는 찾을 수 있으나 결국.. 그들이 죽는 건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고,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무런 바람없이 자비심으로 그들을 돕는 것 뿐.. 누구를 탓해도 답은 없고, 그들이 그리된 연유를 거슬러 올라가도 해답은 없다.
'세상만물은 그저 거기서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말씀. 100% 이해할 수도, 나를 100% 이해시킬 수도 없는.. 세상은, 우리 모두는 <그저 그 것>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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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생 동안 무엇을 했을까?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준다.
왜 그럴까?
오직 모를 뿐.
모를 뿐이라면 어떻게 할까?
행하라, 오직 모를 뿐.
숭산 스님은 오직 모른다는 마음으로, 오직 행하라고만 하셨다.
모르는 마음을 지닌 채 운전하면 운전선(禪)이고, 대화를 하면 대화선(禪)이고, TV를 보면 TV선(禪)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항상 간직하는 것이 참선이라고 하셨다.
오직 모를 뿐인, 오직 행할 뿐인, 고요하고, 고요하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신 선생은 마지막 떠나오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공항에 그 젊은 미국 아이들이 모두 승복 입고 고무신 신고 나와 나를 배웅해주었습니다. 어른을 모신다는 관념을 갖지 못한 그들이 큰스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이 너무 진실해 보여 새삼 큰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지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역시 큰스님이 옳았구나,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했습니다.” |
| “꽃은 꽃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평화로워 뭇 생명체가 절대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은혜에 감사하고 스스로 목숨을 바쳐도 아까운 마음이 없을 때 진실로 평화가 옵니다. 인간성 회복은 인간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있습니다.” 로마의 교황에게 장문의 편지로써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 개최를 강력하게 제안했던 숭산 스님. 환경과 평화에 대한 스님의 남다른 시각과 태도를 이해해가다 보면, 오늘날의 우리도, 혹여 불가에 속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은 마음의 스승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다. 입적하시고 없음에도, 스님의 인자하고도 유머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