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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로트 졸로토의 책은 늘 감동을 주는 동화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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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열려 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귀는 다른 어떤 감각기관보다 일찍 완성된다. 태아는 자궁에서 어머니의 심장이 뛰는 소리며 장기가 내는 소리, 숨 쉬는 소리 들을 듣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와 외부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귀는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간 뒤에도 열려 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적 능력이 있는 라마승을 부른다. 그러면 라마승은 서둘러 그 집을 방문해 정화하여 부정을 제거한 뒤, 죽은 이가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도록 『사자死者의 서書』와 함께 중요한 기도문과 경전들을 그의 귀에 대고 읽어 준다. 이렇게 죽은 이에게 여러 날에 걸쳐 경을 읽어 주는 것은 죽은 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서정록, 『듣기』, 샘터, 2007년)
샬로트 졸로토는 귀를 기울이면 저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돌아가신 아빠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나뭇잎들 속에서 새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보이지 않는 교회에서 아련히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때처럼 안개 속 뱃고동 소리를 들을 때처럼 가만히 귀 기울려 들어 보렴. 그러면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가 너에게 보내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아이는 엄마의 말을 실천한다. 달과 별이 떠 있는 밤에 눈을 감는다. 귀 기울여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러는 사이 가슴 안에서부터 환한 빛이 퍼져 나간다. 아이는 또 꽃이 피어 있는 풀밭에 편안한 자세로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 아빠를 줄곧 생각하고 있다. 하늘은 맑은 파랑색이다. 그 하늘에 하얀 구름이 있는데 마치 모자 쓴 아빠 얼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아빠의 영혼인 듯 새 한 마리가 아이의 머리 위에서 뱅뱅 맴돈다. 그러더니 멀리 날아간다. 아이는 새를 계속 지켜본다. 귀 기울여 듣는 놀라운 경험을 한 아이는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 앞으로 귀 기울여 잘 듣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긴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아이가 하는 마지막 말은 묵직한 아픔이다.
“하지만 아빠가 곁에 계셨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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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로트 졸로토와 스테파노 비탈레가 짝을 이루어 펴낸 책이 꽤 있다. 대개 그림책에서는 글 작가보다 그림 작가를 더 잘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졸로토의 경우는 반대다. 이 작품의 경우도 그림 작가인 스테파노 비탈레라는 이름보다 샬로트 졸로토라는 이름으로 먼저 기억되니 말이다.
샬로트 졸로토는 <토끼 아저씨와 멋진 생일 선물>로 칼데콧 상을 받았다. 사실 칼데콧 상은 글 작가가 아닌 그림 작가에게 주는 상이므로 샬로트 졸로토가 받았다기 보다 모리스 센닥이 받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샬로트 졸로토가 받았다고 여긴다. 물론 글 작가가 아무런 역할을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모리스 센닥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렇게 샬로트 졸로토가 그림 작가보다 전면에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로서 샬로트 졸로토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죽하면 샬로트 졸로토 상이 제정되었을까. 그러니 이 책이 스테파노 비탈레의 책이라기 보다 샬로트 졸로토의 책으로 기억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난 왜 이 책을 보면 여름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내용에서는 계절을 암시하는 그 어느 것도 나오지 않는데. 게다가 아이가 입은 옷을 보면 긴 팔이니 여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별빛이 반짝이는 것을 반딧불이로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국 그림책에서 반딧불이가 많이 나오니까 반짝이는 것을 보고 별 생각없이 반딧불이를 연상했나 보다.
여하튼 은은하고 따스한 그림과는 달리 내용은 어둡다. 그렇다고 가라앉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라앉은 것이 맞지만 엄마의 설명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직접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시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그래서 샬로트 졸로토의 이름이 먼저 떠오르는 것일까.
속표지를 넘기고 마주치는 그림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조차도 그의 그림을 한 번 보고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기에 그와 비슷한 그림이 나오면 마그리트라고 생각한다. 확신할 수 없기에 '연상시키는'이라는 다소 한 발 물러선 표현을 쓴 것이다. 하지만 첫 장면이 나오면 마그리트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꼭 그의 그림에서 나오는 모습이니까. 아무래도 그림책을 제대로 보려면 그림 공부 먼저 해야겠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인 책. 그래서 자꾸 보게 되는 책. 거창한 이야기가 들어 있거나 전개가 빠르지 않지만 마음 속에 무언가를 남기는 그런 책이다. 시와 그림을 함께 감상했다고나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