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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동파의 인생과 문학세계를 밝힌 책이다. 중국문화의 여러 측면에서 발군의 기량을 드러낸 소동파는 21세기에 걸맞는 문화적 거인으로서 반드시 새로운 조명과 각광을 받으리라고 믿는다.(역자의 뒷말) 그는 개성을 중시하고 자유정신을 추구한 송대의 학풍과 사유가 잘 드러난 대표적인 문인이자 예술가이다. 그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핵심을 꿰뚫을 줄 알았다. 또한 그것을 한마디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의 향기를 만방에 내뿜은 중국의 문호(文豪)이다. 저자는 중국 당송문학, 특히 소학(蘇學: 蘇東坡學)의 세계적 권위자인 중국 복단대학의 왕수조(王水照)교수이다. 동파를 잘 모르는 독자도 본서를 일독하게 되면 핵심을 터득하게 한다. 나아가 21세기의 우리 현실, 우리네 인생에 있어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지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상, 저자 한국어판 자서와 역자 서문에서 인용)
전공자나 이 분야에 심취한 자가 아니면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으나 차분히 읽으면 그 이상의 성취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유배시절의 문학이 특히 뛰어난 부분이 많으므로 그 부분을 먼저 읽고 나머지를 읽는 방법도 있겠다.(책 읽는 법에 대한 역자의 한 의견) 원서에서의 약간의 오자를 수정하였고, 상당수 역자주를 두어 원서에 없는 작품의 창작 시기나 나이를 수록해 내용의 이해에 편리하게 하고, 부록을 추가한 점은 좋게 보인다. 다만 소동파 관련지도가 있으면 좋겠다. 공간감각을 넓히기 위해. 또 서명이 멀리서는 잘 안보인다. 또 색인 등은 재판낼 때는 염두에 두길 바란다. (어느 벗의 견해)
2. 인간 소동파의 특징: 소동파의 매력은 넓은 흉회로 자연을 사랑하고 선배를 존경하고 후학들을 발탁하였으며 평생 자신의 신조를 지킬 수 있었던 인간미이다. 애국자이며, 백성을 사랑하였고, 이지적이면서 천성의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주관이 강하면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요. 그리고 역경의 처지도 자신의 내면세계에서는 항상 창조의 계기로 전환시켰지요. 무엇보다 그는 광맥이 크고 넓은 문인인지라, 평생 연구해도 캐내야 할 광구가 있어 캐기만 하면 계속 광석이 쏟아 나오지요. 소동파는 서예, 그림 등 예술에도 뛰어났고, 동적인 성향이 있어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했으며, 요리 만들기, 술의 제조, 차의 품평 등에도 뛰어났지요. 자신은 유가도로 자임하고 있지만, 또한 유모어가 뛰어나 禪僧들과의 재치 있는 대화는 많은 일화를 만들어 냈고, 도교의 도사들과도 깊은 교류를 하였지요. (역자의 뒷말) [인상깊은구절] '누구나 소동파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소동파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그를 아는 사람이 많으나, 제대로 알기는 어려움을 토로한 말이다. (역자 서문) 올해는 소동파(1036-1101) 서거 9백주년이다. 이때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일대기가 출판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문학과 경학(經學), 고고학(考古學), 서법(書法), 그림, 의약(醫藥), 요리 등에 모두 창조적 공헌을 하였으며, 또한 여러 분야에 걸쳐 시대의 최고봉의 위상에 있다. 그는 우리 고려, 조선시대의 문인에게 가장 많이 읽혀지고 영향을 준 중국문인중의 한 분으로 우리 한문학 및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저자 서문)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취해도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고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遇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適. -(<前赤壁賦>) "어디를 간들 즐겁지 않을 손가(安往而不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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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지금의 내 나이 때 이런 글을 하나 썼다고 한다. "인생길 가는 곳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그것은 나르는 기러기가 눈 진흙 밟는 것이다. 눈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겨 놓았지만 기러기 날아가면 그 날아갈 방향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역시 젊었을 때 쓴 시라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어도 그 이미지의 참신함만큼은 흉내내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중국의 숱한 문인들이 그들의 문장에서 거듭 기러기 발자국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하니 그만큼 외물을 살피는 데 있어서 소식이 아주 뛰어났던 모양이다. 그에게 관찰이라는 것은 "마치 바람을 묶고 그림자를 잡는 것"과도 같아 무릇 사물의 교묘한 이치를 구해 뜻을 전달해낼 수 있어야만 했다. 그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신시神視>, 즉 신으로 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 한 가지 외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즉 "군자는 모름지기 사물에 뜻을 담을 수 있을 뿐이지, 사물에 뜻을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한 상태에서 일체의 외적 형체를 초월한 경지에 다가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리하여 자신도 모조리 잊어야 한다고 하였다. 외부의 자극에 구속되는 감각기관의 영향을 벗어나 신과 몸을 뒤섞는 이른바 <신교神交>의 경지에 들도록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은밀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후후, 아래는 그가 술에 취해서 남의 집 담에다 그림을 그리며 썼다는 글이다. (그 집주인은 나중에 고맙다는 내용의 시를 써보내며 칼 두 자루를 선물했던 모양이다)
<빈속에 술을 마시니 날카로운 붓 기운이 싹트듯 돋아나 어느새 간과 폐에서 자라난 이파리가 대나무와 돌이 되었다. 이를 삼키고 있을 수 없어 그대 집 눈처럼 새하얀 벽에 토해낸다.> 보건대 중국의 문인들 가운데 그처럼 "보는 바가 기묘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사람도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그가 아무리 토해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이러한 게움마저도 어디까지나 당시의 까다로운 운음 법칙과 그것의 배합이라는 문제를 같이 고려하고 있어야만 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그의 천재적인 조합을 보고 있으면 이를 다시 거침없이 다다다다 읊조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는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문장은 원칙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내 문장은 마치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아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온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내려 하루에도 거침없이 천리를 간다. 산과 바위에 이르러서는 구불구불 꺾여 "사물에 따라 그 모양을 바꾸어나가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라곤 오로지 가야할 곳에서는 항상 가며 멈추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항상 멈춘다는 사실뿐이다. 이외의 것은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이런 걸 두고 <가지가지로 녹인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에 대해서 한 중국 남자는 말하길, "보기에는 비교적 쉽게 읽히는 듯해도 이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벌써 중국인들의 경지는 반은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난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시비를 걸 수 없다는 게 다시 한번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적어도 우리의 글쓰기라는 문제와 그들의 글쓰기라는 문제에 분명히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은 음악이다. [인상깊은구절]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시지 않습니까. 물이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이와 같으나 결코 더 줄거나 늘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저 또한 모두가 무궁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또 부러워하겠습니까. 무릇 천지간의 만물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취해선 안되겠지만,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속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취해도 막는 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 이가 바로 조물주의 무한한 보고요, 저와 당신이 지금 함께 즐겨야 할 것들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