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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은 버려둔 채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고 연구해서 내 삶 속으로 이식한다면 과연 어떤 것이 진짜 삶이고 어떤 것이 가짜 삶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손님은 왕이다는 이같은 발상을 커튼 뒤에 숨겨두고 관객을 받는다. 누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헷갈리기 십상이다. 명이발사 안창진, 이제는 손님이 뜸한 이발소이고 남편을 무시하고 바람기 다분한 아내 전연옥이 있지만, 안창진에게 이 둘은 모두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어느 날 이 평온한 공간에 정체불명의 협박 엽서가 도착한다. 아내에게 추악한 비밀을 들키지 않고, 자신의 보금자리인 이발소를 지키려는 이발사의 처절한 몸부림은 결국은 불어나는 빚 때문에 둘 다를 잃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저예산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세련된 스타일을 구사하는 손님은 왕이다는 ;친절한 협박자라는 일본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단편소설인 원작만으로는 장편 극영화의 길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원작에는 없던 협박자의 사연을 첨가해 넣었다. 게다가 명계남이라는 배우에 겹쳐지는 허구와 픽션을 교묘하게 섞어놓음으로써 적당히 유머스러우며 감상어린 동점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세련된 형식미는 퇴색하는 감이 없지 않다. 무성영화 형식의 차용과 과감한 화면분할, 그리고 모노톤의 미장센을 통해 차갑고 냉혹한 현실 법칙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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