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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 ''고전비평선독''이라는 이름의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대숲에 가서, 왕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복두장이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이옥으로 끝난 것 같다.
새파란 나이였던지라, 모방론은 낡은 것이고,,, 표현론은 새로운 것, 곧 진보적인 것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더랬다.
대학 시절 들은 수업 중 아주 즐거웠던 수업인데, 이건 모두가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한문으로 된 원전을 복사제본한 교재를, 교수님 지도 편달 하에 간신히 따라갔으며, 시험도 무지하게 어렵게 준비했다. 한문을 공부하는 애들을 꼬셔서 같이 공부했던 것 같다.
이번에 이 책 <우리 겨레의="" 미학사상="">은 그때 들었던 수업에서 다룬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문학의 본질을 묻는 문학론, 문체과 주제의식을 대립시키며 벌이는 논쟁 등등...
몇몇 가지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같은 정신으로 엮인 책이다.
북에서는 1960년대에 만들었다 하니, 그게 놀랍다.
북의 학자들의 연구 정신, 학문적 깊이, 진보성 앞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80년대에도 이런 책이 있었다면, 굳이 복사 제본한 걸로 공부 안 해도 되었겠다 싶다. 하긴 그것도 나름의 맛이 있긴 하지...)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해야 하는지를 옛사람들에게 배운다. 그런 점에서 글쓰는 걸 업으로 삼는 분들이 읽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즐거움은, 20세기부터 21세기를 사는 내가 갖는 문제의식을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몹시 반갑다.
일본인이나 영국인과 말하면서, 같은 문제의식(그것도 진보적인)을 확인할 때 무자게 반갑듯이, 이 책을 읽을 때도 몹시 반갑다.
꼭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는지? 남의것부터 일단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 등등, 물론 이건 나의 도발적인 문제의식에서 건진 것들이다.
그 밖에도 아주 많다. 그래서 출판사 측에서 책 뒤에다가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논쟁이란 언제나 반복되고 있다고 해놓은지도 모르겠다.
대학 때도 이규보와 허균, 박지원, 정약용, 이옥이 중요하다 배웠는데, 이 책에도 이들이 쓴 글이 많이 실려있다.
역시 이규보와 박지원의 글은 이런 글이 문학가가 주장하는 철학이구나 싶다. 둘 다 정말 최고의 문장가이고 철학자이다 싶다. 미학 사상가라고 해야 할까?
정약용의 글은 너무나 뻣뻣해서, 경세가지 문학가는 아닌 듯 여겨진다. 그러니까 정치가로 보인다.
하여튼, 서양의 미학을 주로 읽으면서 자신의 문학, 철학의 깊이를 다져 온 분들, 고민을 발전시켜 온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의 미학을 읽어봅시다요. [인상깊은구절] 글을 짓는 사람은 아무리 비루해도 이름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속되더라도 실지 사실을 파묻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맹자가, “성은 다 같으나 이름은 저마다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글자는 다 같으나 글은 저마다 다 다르다는 뜻입니다.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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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사물 가운데 귀천과 빈부를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정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훌륭한 문장은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서 빛나는 것과 같아서, 구름이 허공에서 흩어지거나 모이는 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지 못할 리 없으므로 감출 수 없다. 그리하여 가난한 선비라도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빛을 후세에 드리울 수 있으며, 아무리 부귀하고 세력 있는 자라도 문장에서는 모멸당할 수 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옛 선비들은 문학과 음악, 미술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을까. 우리는 흔히 옛 선비들의 미학은 고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그것이 얼마나 큰 우리의 고정관념인가를 알게 된다. "문장학이란 우리 도에 크게 해로운 독이다. 대체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문장이란 것이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땅에 깔려 있어 바라볼 수 있거나 바람결에 달려가 붙들 수 있는 것인가"라고 다산은 '여유당전서'에서 선비들의 고루하고 사대부적인 사고를 비난한다. 다산은 사마천을 일컬어 '기이하고 협기 있는 것을 좋아하여 옛 법도에서 벗어' 났으며, 한유와 유종원의 문장에 대해서는 '그들의 문장이란 내면 세계가 드러난 것이 아니고 형식만 갖추어 놓고 잘난 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뿐인가, 구양수와 삼소로 일컬어지는 소식을 빗대어 '겉은 번드르하지만 내용이 없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바르지 못하다'라고 평한다. 다산은 내용이 없는 문장은 아무리 멀쩡하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따라 갈 수 없으므로 몸을 편안히 할 수 없고, 그러므로 그들의 문장은 좋은 문장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던 다산은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특별한 조예를 보여 준다. 다산 뿐만 아니라 연암은 책벌레라는 이덕무의 글이 옛것을 따르지 않아 수준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이덕무의 시는 과거의 시가 아니라 현재의 시"라고 간단히 일축한다.
이 책은 읽기 어렵고 따라서 작가의 안목을 평가하기 어려웠던 고전에 대한 옛 선비 33인이 쓴 문학과 예술론이다. 주로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선비를 위주로 실어 놓았으므로 지금의 우리가 읽어 보면 좋은 책이다. 특히 김려와 홍석주, 정약용, 임춘, 박지원, 이덕무 등의 글을 보면 시대를 초월한 그들의 예술혼과 학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더불어 고전에 익숙하지 않고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던 옛 선비들의 예술과 학문에 대한 평가가 실려 있으므로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문집을 일일이 읽지 않고도 중요한 것들만 발췌하여 실어 놓았으므로 공부에 많은 시간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여유당전서를 사놓고 그저 제목만 바라보기 수년이 되었다. 가끔씩 읽어 보려고 펼치지만 고문과 한문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아 번번이 그대로 덮곤 하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여기 실린 여유당전서의 내용을 가지고 대조하면서 아쉬우나마 읽게 되었다. 그러자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 여겨지던 여유당전서가 한두편 읽히기 시작하니 이 아니 즐거울소냐. 내친김에 한글로 번역된 여유당전서를 사서 몇년째 먼지만 쓰고 있는 완역본을 한번 읽어 볼까 하고 겁도 없이 생각이라도 해 보는 것이다.
책들이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재미있다. 숱하게 가지 친 책들이 한권 두권 쌓여 갈 때마다 나는 그들의 원줄기를 더듬어 보곤 한다. 무엇 때문에 저 책을 사게 되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묻혀졌던 일들도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이 책은 그냥 공짜로 고전미학을 공부하게 된 것 같이 횡재한 기분이 들게 한다. 문학에 관한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문학을 공부하는 나에게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제 막 고전에 흥미를 갖게 된 아마추어에게 좀 더 쉽게 고전에 접근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 책이 가지치기한 또 다른 책은 사마천이 쓴 '사기'이다. 굴원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나는 '굴원열전'을 읽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이미 인터넷으로 '사기'를 주문해 놓았다. 가을이어서 저수지 둑에 있는 흰 억새풀들이 나의 방랑벽을 흔들지만 예전보다 훨씬 여행이 줄어든 것은 이런 책들 때문이다. 요즘은 고전을 번역하느라 고생하는 번역가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만치 고전에 빠졌다. 재미와 깊은 사상이 녹아 있는 고전은 아직 어렵지만 다행히 쉬운 번역본들이 쏟아져 나오므로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행운일 것이다. 고전비평집인 이 책은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이 달의 읽을만한 책'에 선정되었으며, 앞에 소개한 보리 출판사의 고전문학선집 13권째 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