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골라서 후다닥 읽어 버렸다. 쥐스킨트의 『향수』와 히토나리의 『질투의 향기』, 그리고 퍼시 캉프의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 책을 읽고 난 다음, 냄새를 주제로 한 소설목록을 써먹을 일이 언젠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책장을 눈으로 뒤지는데 더 이상의 목록은 못 만들겠다. 다음에 무료함으로 방안을 데굴거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한 번쯤 더 도전해볼 일이다.
프랑스 작가들의 사물이나 상황, 그리고 인물에 대한 집착 내지는 몰입은 대단하다. 퍼시 캉프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는 향수라는 하나의 사물이 주인공 엠므 씨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서 시작해,결국 향수가 그를 자신의 의지에 의한 생의 마감이라는 데에까지 이르도록 치밀하게 조정한다.
주인공 엠므 씨는 69세이며 혼자 살고 있지만,항상 자기를 점검하고 자신에게 이런저런 투자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전직 스파이 출신의 사내이다. 그에게는 이브라는 애인이 있고 지정 좌석이라 불릴만한 자리가 항상 확보 되어 있는 레스토랑이 있고, 즐겨 찾는 호텔이 있으며 종신 연금으로 받은 집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2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머스크라는 이름의 향수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머스크라는 향수의 포장용기가 바뀌면서 시작된다. 제조회사와 포장용기가 바뀌었으며, 발정기의 사향노루 분비물 대신 다른 물질의화학적 결합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과거의 머스크와 그 향에는 차이가 없다는 담당자의 편지에도 불구하고 엠므 씨는 자신이 사용하던 머스크와 새로운 머스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결국 과거의 머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느라 자신의 심신이 피폐해지는 지경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보한 머스크를 아끼고 아껴 가며 쓰느라 제대로 보이지 않던 자신의 늙은 육체까지를 느껴야 했던 엠므 씨는 결국 남은 머스크를 실컷 쓰고,자신의 의지에 따라 죽을 결심을 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사실 우리들은 비범한 척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두 번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크게 좌우되는 자신을 보게 되고는 한다.갑작스레 맞닥뜨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때문에 일주일 이상 편두통을 앓는다거나, 친구의 친구의 친구쯤 되는 이가 자신에게 보냈던 알 수 없는 표정을 해독하느라 두 끼 정도를 거른다거나, 애지중지하던 펜던트가 사라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 좋은 일이 생겨 애를 먹게 한다거나, 항상 시켜 먹던 중국집 자장면의 맛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사실에 불같은 화가 치미는 그런 경우.
그럴 때 우리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아니 자신 내부에 존재하지만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에 놀라게 된다.그리고 이러한 사물이나 사람, 상황에 대한 몰입 내지는 몰이해는 나이가 들수록 좀더 집요해진다. 오년 동안 썼던 향수와 이십년 동안 썼던 향수가 다르고,스무 살에서 스물 다섯 살 사이에 썼던 향수와 오십살에서 오십 다섯 살 사이에 썼던 향수는 다른 것이다.
자신이 지배한다고 여겨왔던,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누려왔다고 여겨왔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안간힘. 그 안간힘조차 소용이 닿지 않을 때 찾아올 좌절. 그 좌절 속에 피차 손해 볼 것 없다 싶은 타협. 그리고 소설 속 엠므 씨의 타협점은 바로 죽음이다.
주인공은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를 잃지 않지만, 그 어설픈 자기도취와 죽음의 순간에도 잃지 않으려 하는 자긍심들에서는 묘한 유머와 비틀린 위트를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 그리고 그 동작에 맞물린 세세한 심리 상태까지를 나른하게 짚어내는 서술 방식이 좀 지루하다 싶지만, 어느 정도 독서가 진척이 되었다 싶으면 마지막까지는 꽤 잘 읽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