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가 보는 한반도의 분단 역사는 다음과 같다. 1945년부터 한국전쟁이 교착 상태로 휴전되는 1953년까지가 분단체제의 형성기, 1987년 6월항쟁까지를 분단체제의 고착기로 본다. 1987년을 기점으로 분단체제는 동요단계로 접어들어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을 통해 본격적인 통일로의 진행을 예고한다. 우리의 통일은 독일의 흡수 통일, 그동안 많이 들었던 베트남식 무력 통일, 처음 들어본 예멘식 담합 통일과는 달라야 한다. 저자는 일정 기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일회성 통일과는 다른 ''과정으로서의 통일'', ''상당한 기간에 걸친 지속적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주장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남북 현 정권의 일정한 안정성을 보장하고 남북간 주민 이동의 적당한 통제를 인정하는 국가연합 형태를 취하고, 남북간의 신뢰 구축과 교류 협력을 통한 실질적 통합을 진전시켜서, 그러한 성과가 상당 정도 축적되었을 때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남북이 합의하여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목표 달성 기간으로 나눈다면 남북 각각의 사회가 분단된 상태에서도 가능한 일상적인 삶의 개선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단기 목표''와 분단체제 극복으로서의 통일인 ''중기 목표'', 이를 통하여 세계 체제 전체를 좀더 나은 체제로 바꾸는 ''장기 목표''로 볼 수 있고, 중기와 장기 목표는 아직 요원하므로 우리 개인은 현재 이 자리에서 한반도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더 나은 사회로 만드는 운동을 벌이자고 한다. 통일의 한쪽 날개인 북한에 대한 이야기가 그다지 많이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한반도의 위상과 주변국들의 관점, 통일이 되었을 때의 성장 가능성 등 세계 정세를 보는 눈을 조금은 틔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환경이나 사회에 대한 나름대로 깨어 있고자 노력하고 있었지만, 우리 나라의 모든 운동이 통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너무 과도하게 통일과 연관시킨다는 느낌도 받긴 했으나, 이는 그만큼 저자가 통일을 준비하고 노력하며 염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5년까지 쓴 글을 옮겨서 펴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특히 새만금 간척 사업이 강행으로 판정된 지금, 이전의 희망적인 기대에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자신과 가족, 회사, 마을만 생각하며 살아도 머리가 아픈 현실에서 우리 나라를 염려하고 걱정하며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동적인 현실이었고, 이분들의 준비로 인해 정말 멋지고 세계사에 남을 통일이 오래지 않아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
| 최근에 통일과 기타 여러가지에 대한 논쟁을 여러 매체들을 통해 볼 수가 있다. 그것의 중심에 있는 서적이 바로 이 책이다.(서평이니 존칭은 생략합니다.) 최장집교수에 대한 실명비판으로 언론에 대서 특필되어서 관심을 갖고있는데 이 책만으로는 전체적인 논쟁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는데 책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다. 내용으로 들어간다면 1.저자는 기존의 운동권인 NL은 흔히 주사파로 알려진 민족해방노선, PD는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민중민주주의, BD는 개량주의로 불렸던 부르주아민주주의(동아일보 2006년 5월 4일자신문참조) 을 변혁적 중도주의으로 통합되야한다고 역설한다.(책으로는 58페이지이하에 덧글로 나타나고 있다.)- 보수쪽에서 말하는 흔히 비판하는 것으로 운동권이 현정부의 특색이라는 것과 좌파(개혁)을 중도적으로 말하는 것은 말이 길어지니 논외로 한다. 2.저자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신성시하는 경향을 갖고있다. 특히 6.15선언의 역사적의의에 바탕을 두어서 통일에 대한 담론을 전개한다. (반대로 박정희때 통일논의나 김영삼과 김일성때의 남북협상제의는 낮게 평가한다.) 3.참여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상대방은 수구세력이라는 기본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최장집교수의 발언은 그러한 결론과 일치한다고 본다.(강준만 교수는 이것을 적과 아군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이라고 비판한다.최장집교수의 비판을 강준만교수는 참여정부에 보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4.통일에 대한 주변여건,경제상황부터 여러가지 상황적인 변화가 논지의 영향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2003년도때에 발표한 기존의 논지를 상황에 따라 변화하지는 않는다.(생각해보면 학자적인 고집이 여기서 발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5.통일은 도둑같이 찾아온다고 보며 러시아나 중국의 통일방해요인보다는 미국의 통일방해요인을 꼽는다.(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사설이 길어져서 한마디를 말한다면 세계적인 시각으로 민족을 우선시 보는 가치관과도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독자인 나도 한없이 빠져들어가는 담론적인 성격의 글들로 가득차있는데 남북관계가 기존의 경색적인 관계에서 획기적으로 바뀌었다는데는 동의하지않는다.(기존의 남북관계는 계속 변화되고 있었다.어느날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자세한 이야기는 서평이어서 자제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불만이 있었던 것은 강준만교수도 지적했듯히 저자의 이분적인 시각이다.(이러한 시각은 현정부의 가치관과도 일치하고 있다.) 스스로는 통합적이고 중도적이라고 생각하지만,남이 알아주기는 힘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대방에 대한 포용적인 언어보다는 대립을 하면서도(물론 일부로 논쟁을 일으키기 위함이다.) 민족이나 통일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데 있다.(개인적으로는 민족이나 통일은 개개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무슨 말이냐하면 민족을 본다면 서양에서 근대에 자체적으로 단결을 강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든 개념이라는 것이다.통일도 마찬가지로 이용적인 개념이다.저자의 비판처럼 통일이라는 개념이 형태가 무력이든 평화든 점진적이든 정권의 효율성을 높이기위해 이용됐음을 밝히면서도 스스로의 이용성에 대해서는 침묵을 한다.) 더욱 깊게 들어갈려면 최근의 윤평중교수가 백낙청교수 분단체제론 비판을 한 부분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한없이 내용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니 짧게 끊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비판적인 시각이 있지만, 통일에 대한 개념이 평소에 정립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보아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통일에 대한 논의가 한단계 발전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가 가장 앞에 있으면서도 저자의 기본적인 전체적인 맥락을 잘나타낸다고 봅니다.) |
|
백낙청 교수가 지향하고 있는 통일 방식 바탕에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발상을 바꾸자는 주장이 전제돼 있다.
단일형 국민국가로서 완전한 통일이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했을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백낙청 교수는 분단현실을 남북의 국가간이나 상반된 이념간의
대립위주로 인식하기 보다는 한반도 전역에 작동하는 어떤 복합적인 체제와
그에 따른 다수 민중의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분단체제를 파악할 것을 주문
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분단체제가 갖는 의미 역시나
간과할 수 없기에,
백낙청 교수는 다각도로 분단 체제를 파악하면서 ,
이미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체제라고 불릴만큼 일정한 자생력과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분단체제에 대해 이렇게 파악하고 있기에, 그는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성명가 발표된 이후 진행되는 상황은 남북의 점진적 통합과정을 향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위해 중요한 들머리를 놓은 것이라고 의미 부여 하고 있다.
백낙청 교수가 언급한 과정으로서의 통일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통일작업과 개혁작업을 따로 분리시키시 않은 점과,
변혁적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분단체제 보다 나은 한반도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일반 대중,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자신의 사회를 개선하고
개혁하는 일상적인 참여의 문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남북한 통일 정책에서 벗어나
시민들, 민중들이 참여하는 원칙을 세운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 체제 극복과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민족 해방(NL)과 민중 민주주의(PD) 부르조아 민주주의( BD)
3자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 백교수의 주장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언론에서 거론됐듯이,
필자가 이 과정에서 PD계의 최장집 교수를 실명 비판했다는 것이다.
분단 체제에 대한 시각을 수용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 평화론으로
치닫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최장집 교수를 지목하고 있다.
이에 최장집 교수는 자신의 책에다 답변을 하겠노라고 응수했는데,,
이수훈 교수와 넷상에 거론했던 주장에 대해 반론글을 실은 것에
비해 최교수를 겨냥한 비판의 무게는 과히 무거운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학자들간에 계급장 떼고, 실명 비판하는 것은
논쟁의 치열함이 떨어지는 우리 학계 분위기상
생산적인 담론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밖에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필자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박정희의 공을 일컬어 지속불가능한 발전의 유공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혹자는 지속불가능에,, 혹자는 유공자에
방점을 찍어 받아들이겠지만, 진보학계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았던 박정희에 대해
긍정이 포함된 평가를 내림으로써 백낙청 교수가 변절(?) 내지는
선명성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박정희에 대해 민주 개혁없는 경제개발추구는 결국 장기적 침체나,
이슬람 혁명처럼 원리주의 적인 신정체제로 귀결하기 십상이라는 못을 박음으로써
박정희 평가에 선을 그었다.
<한반도식 통일,현재="" 진행형=""> 이 책은 월드컵에 대해서도
꽤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북한의 핵위기시
미국이 한반도 정책을 수행하는 데 월드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하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또한 새만금 간척 사업을 비롯해 필자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함을 누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또한 이 책은 세계화 시대가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노력에 어떤 정세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 세계 평화에, 동북아 안정에 어떤
힘을 실어주는지에 대해서도 국제 역학관계를 요모조모 따져가며
기술하고 있다.
베트남, 독일, 예멘, 중국과 홍콩, 타이완 등을 예를 들어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의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다만 루가노 보고서를 인용하고 언급하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은 분단체제를 단순히 분단 그 자체가 아닌,
분단을 재생산하고 있는 체제 모두를 포함함으로써,
사회변혁 역시나 통일을 위한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지적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민중의 참여와 사회 변혁 세력의 중도적 연합을 주창하고 있
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세계화라는 세계체제적 배경과 동북아시아와 대미 관계와
우리의 통일 작업 등 통시적, 공시적 관점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다각도의 접근으로 내용이 다소 장황해진 점은 아쉬운 점으로 여겨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고개를 끄덕여 가며 공감하며 읽은 부분도 있었다.
글쓴이는 통일을 위한 들머리는 놓여졌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그 와중에서도 분단 50년, 분단 체제에서 현재 진행형으로서 통일이 되기에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현실의 벽이 결코 녹록지 않으리라는 비관론 역시나
무시할 수 없었다. [인상깊은구절] ''변혁적 중도주의'' -기존의 잣대에 따른 ''좌''와 ''우'' 사이의 중도 지점을 찾는 타산이 아니라 분단체제 극복을 겨냥한 합작이라는 점에서 ''변혁적''인 중도주의인 것이다.한반도식> |
|
무엇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책을 다 읽은 내가 대견스러워 못 견딜 지경이다. 얼마 만에 이렇게 무게감 있는 책을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한때는 일부러 골라서 읽으려고 했던 주제의 책들을 어느 순간부터 애써 고개를 돌리고 멀리 해 왔다. 사는 것이 고달파서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그냥 읽고 싶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다. 애써 읽지 않으려는 나의 그러한 마음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 이유조차 알아내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싫었던 것이다. 정치가 그러했고 통일이 그러했고 국제사회가 그러했고 환경 문제가 그러했다. 의식 있는 민주 시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해결해야 할 의지를 필요로 하는 주제들이었지만 민주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먹는 것조차 부질없는 의지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의무감으로 읽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주제에 대한 책읽기를 애써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도 있었다. 매일매일 편하고 즐겁게만 살려고 하는, 이웃의 아픔이나 조국의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또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철저한 이기심으로 살아왔던 오랜 날들이 천천히 내 눈앞을 지나갔다. 나의 이렇게 철저한 무관심이 우리 사회를 더 아프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 몇 장을 넘기지 않고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특히 내 마음이 아팠던 것은 153쪽의 한 구절이다. <‘분단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안정희구집단’ 가운데는 분명 ‘기득권 세력’에 못 드는 대중도 다수 포함되지만, 전문지식을 포함한 유형ㆍ무형의 기득권을 소유하고서도 ‘분단 문제에 큰 관심’이 없이 ‘안정을 희구’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대목이다. 이어 작가가 “이들은 당연히 개혁 내지 자기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테고, 그 때문에 불편함이 따른다면 감내해야 마땅할 터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정말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 별로 기득권 세력에 들지도 못하면서 조국의 분단 문제에 관심 없이 내게 주어진 현 처지에서의 안정만을 바라는 내 자신이 자꾸만 걸리고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도 그러하겠지만 통일 문제 역시 대단한 사람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가 미국에 대해 전쟁공조만은 안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그냥 ‘국력신장’ 덕이 아니라 그것이 시민들의 오랜 투쟁을 통해 상당히 민주화된 국력이기 때문이며, 각종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예술창조가 이루어지며 젊은 세대의 활기가 넘치는 문화국가의 국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북간의 다각적인 민간교류를 통한 민족공조의 확대뿐 아니라, 남한사회 자체를 좀더 민주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사회-눈높이를 한금 낮춰서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덜 야만적인 사회-로 만들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직접적인 이바지가 되는 것이지요.”(239쪽) 어느 새 우리 민족이 우리 힘으로 통일을 의논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책읽기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용이 어렵지도 않았다. 미리 겁을 먹었던 처음 생각보다는 훨씬 잘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어떤 일이든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생각했다. 중요한 일일수록 펼치기도 어렵지만 거두어들이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긴 시간을 요구하는 일까지도 금방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우선 실패했노라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책임자에 책임을 묻고 쫓아내곤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눈에 잡히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의 성급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막연하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행 중에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제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적으로 통일 문제에 관여하지 않더라도, 제가 처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는 일이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름 아닌 바로 그 길에 “갖가지 개혁 작업-군사독재정권의 타도에서부터 지역주의 타파, 인권신장, 부패추방, 언론개혁, 환경보호, 성차별 철폐, 빈부격차 축소”(97쪽)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다행스러웠다. 짐작은 했지만 정확하게 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작가는 시원스럽게도 밝혀 주었다. 적어도 이제는 우리나라 남북한이 통일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라고 하는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가르침이었는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말을 다시 옮겨 본다. “분명히 사람들에게는 ‘욕구(needs)''가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또한 가치들(values)이 있으며, 특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치를 따지고 평가하며 행동하고 참여할 능력을 소중히 여긴다.”(252쪽) 나도 이제는 우리 국민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겠다. [인상깊은구절] 18-19쪽 6.15 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절묘하게 해소했습니다. 연합제와 연방제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무엇보다 연합제에서는 두 개의 중앙정부가 남아 있는 데 반해 연방제는 하나의 연방 정부 아래 남북의 지방정부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겠지요-연방제의 수많은 형태 중 ‘낮은 단계’에 속하는 것과 연합제가 똑같다는 게 아니라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했으니 이론상 나무랄 데 없는 명제입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그중 어느 하나를 지금 택한다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했다는데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상대방의 굴복을 요구해서 화해와 협력을 막겠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19쪽 첫째, 한반도에서의 신뢰구축은 통일을 하지말자고 해도 불가능하고 덮어놓고 통일하자고 외쳐대도 어려워집니다. 통일을 안한다고 하는 순간 정권유지가 힘들어짐은 물론, 현실적으로도 남북한 모두의 장기적 문제에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통일을 부르짖는다고 구체적인 방안이 안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사람들의 불안이 커져서 오히려 통일사업에 역행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둘째로, 한반도의 분단현실은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그 나름의 특이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 또한 교과서에 없고 현대정치사에 선례도 없는 독특한 방식을 창안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해나가면서 그때그때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이 중요하지 기존 개념들 가운데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를 놓고 싸워대는 일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24-25쪽 오랜 분단으로 왜곡된 삶 속에서 그것이 분단으로 왜곡된 삶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망각의 타성을 깨고 밝은 눈과 맑은 마음을 찾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분단체제보다 나은 한반도 사회를 건설하려면 지금 이곳의 생활환경에서 보존할 것을 보존하고 개혁할 것을 개혁하는 일상적인 연구와 실행도 필수적입니다. 29쪽 총체적 개혁에는 반대운동의 자기개혁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중한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무모한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야 나무랄 데 없지만, 원상보존 외에는 어떤 대안도 거부한 채 대의명분만 부르짖는 것이 과연 새만금 갯벌의 무수한 생령을 위하는 길이었는가? 비록 오도된 민심일지라도 남들과 대등하게 잘살아보겠다는 지역주민들의 염원마저 백안시하는 것이 진정한 생명존중의 자세였는가? 30쪽 한반도의 분단구조는 참으로 뿌리깊고 복합적인 것이어서, 이 현실을 통찰하며 필요한 개혁작업을 도처에서 진행하지 않을 때 통일주장마저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복무할 수 있는 것이다. 47쪽 분단은 원래 한반도 주민 절대다수의 통일독립국가에 대한 소망을 짓누르면서 강요된 것이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기본적으로 반민주적이며 비자주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53쪽 국가 경쟁력 향상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통일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실력을 갖추자는 차원에서 추구할 일이며, 빈부격차의 축소는(그 자체로 바람직한 목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남한사회의 계급간ㆍ계층간 갈등이 적정선에서 제어되지 않고서는 분단체제극복을 위한 대중적 역량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접근할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의 경제력이 증대할수록 통일이 잘될 것이라는 한쪽의 도그마를 부정함과 동시에, 통일이야 되건 말건 남한사회의 평등만을 주창한다거나 오히려 남한내 계급갈등의 격화에서 통일의 동력을 찾으려는 다른 한쪽의 일방적 사고에서도 벗어나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57쪽 소중한 자연환경을 결정적으로 파괴할뿐더러 공사가 완공되는 순간 지역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남게 될 국책 사업이 강행되는 것은 공사지속이 자기 개인 또는 소속집단에 이득이 되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낡은 개발패러다임에 따른 공사로 득을 보는 소수집단이 한 지역의 행정 및 언론을 장악하여 지역여론을 오도하고, 그런 지역여론에 발목잡힌 정치집단이 비로 소수지만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일종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를 지렛대 삼아 전국민의 새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현상이야말로 분단체제가 키워낸 지역주의 구도의 전형적인 사례인 것이다. 59쪽 분단체제 속에 사는 한은 책임을 묻는 비판자 자신도 그 체제에 연루되었다는 자의식이 필요하며, 더구나 분단현실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외면한 비판은 곧바로 체제를 굳혀주는 효과마저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69쪽 그날그날의 현장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을 폭넓은 연대를 바탕으로 지속하면서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긴 안목의 대안을 제공해주는 노선이 바로 변혁적 중도주의인 것이다. 79쪽 남북 현 정권의 일정한 안정성을 보장하고 남북간 주민 이동의 적당한 통제를 인정하는 국가연합 형태말고는 다른 합의의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89쪽 수많은 사람들이 슬기를 모아 파국을 회피하면서 남북 양쪽에서의 삶이 지금보다 고르고 화평해지며 이로써 인류 전체의 참된 평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 한결 차원 높은 평화통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93-94쪽 구체적으로는 남북 현 정권의 일정한 안정성을 보장하고 남북간 주민이동의 적당한 통제를 인정하는 국가연합 형태말고는 다른 합의의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물론 이 정도의 변화에 대해서도 남북한 기득권세력들의 엄청난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97쪽 분단체제극복으로서의 통일은 원래, 남북 각각의 사회가 분단된 상태에서도 가능한 일상적인 삶의 개선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단기 목표’와, 세계체제 전체를 좀더 나은 체제로 바꾸는 ‘장기 목표’ 사이에 놓인 ‘중간 목표’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남한 사회 내에서 통일운동과 직접적인 연관 없이 진행되어온 갖가지 개혁 작업-군사독재정권의 타도에서부터 지역주의 타파, 인권신장, 부패추방, 언론개혁, 환경보호, 성차별 철폐, 빈부격차 축소 등등을 위한 수많은 싸움들-이 모두 ‘제대로 된 통일’의 필수적 요건이다. 101쪽 현싯점의 지배적인 표어는 뭐니뭐니해도 가진 소수가 더욱 힘을 쓰는 ‘세계화의 시대’이며, 지혜와는 무관한 지식의 시대, 그리고 그 동의어로서의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인 것이다. 102쪽 이런 종류의 앎이 사회의 ‘기반’이 된다든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이 공학기술의 토대가 된다는 상투적인 진술이기보다는, 기술을 포함한 특정 종류의 지식이 한 사회의 생존과 번영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는 시대인식을 내포하는 말일 것이다. ‘지식지배사회’라는 개념도 대동소이할 터인데, 다만 “특정 형식의 지식이 명령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현상을 한층 강조하는 태도일 수 있겠다. 116쪽 ‘지식기반사회’라거나 ‘정보화사회’라는 표현 자체에 이미 ‘지식’은 경제활동의 수단으로서의 ‘정보’이지 절대적이고 자발적인 인정을 끌어내는 ‘진리’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사고가 배어 있다. 120쪽 지혜의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의 시대,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시대를 대신할 역사적 현실이 되려면 기존 세계체제의 변혁을 위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그것도 ‘민중의 시대’답게 대중적 실천이어야 할 것이다. 124쪽 중요한 점은 항심에 필요한 항산이 꼭 법률상의 사유재산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청구권, 공공재산 이용에 대한 민주적 권리, 사유재산의 자의적 사용에 대한 정치적 규제, 이런 것들이 확대될수록 개인의 실질적 재산은 늘어나는 셈이다. ‘보편계급’으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무산계급’은 바로 이런 의미로 최소한의 개인 재산과 적잖은 자동적 권리, 그리고 독점권을 주장하지 않는 최대한의 무형재산-지식과 교양-을 지닌 집단일 것이다. 132쪽 무엇보다도 전쟁 위협의 제거 또는 축소는 정권에 의한 강압 통치의 가장 큰 명분을 앗아가고 있다. 153쪽 ‘분단 문제에 큰 관심이 없는 안정희구집단’ 가운데는 분명 ‘기득권 세력’에 못 드는 대중도 다수 포함되지만, 전문지식을 포함한 유형ㆍ무형의 기득권을 소유하고서도 ‘분단 문제에 큰 관심’이 없이 ‘안정을 희구’하고 있는 집단은 별도로 구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당연히 개혁 내지 자기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테고, 그 때문에 불편함이 따른다면 감내해야 마땅할 터입니다. 164쪽 계속되는 정상들의 ‘역사적 결단’에 시민들은 박수나 치고 당국이 마련해준 이산 가족 상봉장면을 지켜보고 눈물 흘리며 따라만 가기보다는, 당국간의 합의가 더러 깨지는 불행한 상황을 겪으면서 민중의 몫을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167쪽 북한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남한과 화해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한반도에 새로운 사회가 건설된다면, 이는 세계체제의 기득권자들에게 몇몇 ‘불량배국가’나 테러조직의 건재보다 훨씬 큰 위협이 될 것이다. 187쪽 통일을 하더라도 어떤 통일을 누구의 주도로 해나갈지에 대한 갈등이며, 통일 또는 교류ㆍ협력의 과정에서 누가 더 많은 이득을 챙길까를 다투는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190쪽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를 제대로 극복한 ‘일류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햇볕정책이 장기적 차원에서 ‘무책’의 정책임을 환영하는 이유는 남다르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남북 정권 모두의 통제력과 외세의 지배력이 약화되게 마련인데, 이는 그만큼 대중들 자신의 능동성과 창의력이 발휘될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기에 이에 따른 혼란은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191쪽 한반도에 현재의 남과 북 어느 쪽보다 훌륭한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일 경우, 남북의 사회를 각기 지배해 온 집단들에 이 과업을 내맡길 수는 없으며 두 사회가 합쳐지는 날까지 이 작업을 미뤄둘 수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 처한 삶의 현장에서 자기 자신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며 나아가 세상 전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진행함으로써만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가 이땅에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235쪽 굳이 전쟁을 안 일으키고도, 아니 전쟁이라는 모험은 피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이로운 세력이 많기 때문입니다. 239쪽 실제로 우리가 미국에 대해 전쟁공조만은 안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그냥 ‘국력신장’ 덕이 아니라 그것이 시민들의 오랜 투쟁을 통해 상당히 민주화된 국력이기 때문이며, 각종 기술개발이 이루어지고 예술창조가 이루어지며 젊은 세대의 활기가 넘치는 문화국가의 국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북간의 다각적인 민간교류를 통한 민족공조의 확대뿐 아니라, 남한사회 자체를 좀더 민주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사회-눈높이를 한금 낮춰서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덜 야만적인 사회-로 만들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직접적인 이바지가 되는 것이지요. 251쪽 지속가능성의 개념 규정-미래 세대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 252쪽 분명히 사람들에게는 ‘욕구(needs)''가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또한 가치들(values)이 있으며, 특히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치를 따지고 평가하며 행동하고 참여할 능력을 소중히 여긴다. |
| 백낙청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그가 8년 만에 한국사회에 대한 비평서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을 출간했다.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지만 그동안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분의 책이라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다. 또 책은 출간되기도 전부터 또 다른 진보진영의 대표지식인인 최장집 교수에 대한 실명비판으로 화제가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벌써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아도 큰 틀에서 이러한 짐작은 빗나가지 않는다. 저자는 한반도의 통일이 이미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핵 위기, 미국의 강경한 대북 노선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인 시점에 자칫 이러한 주장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진 현실성 없는 주장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확실한 근거가 자리 잡고 있다. 6.15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는 6.15선언으로 이제 분단체제는 흔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선언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특성은 오히려 남북의 합의를 위해 꼭 필요한 특성이었다고 주장한다. 분단은 선언이 있기 전부터도 이미 흔들렸다고 한다. 한국이 민주화를 겪으면서 분단체제는 확실한 타격을 입었고 그 이후에도 분단체제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통일국가로 만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바로 이렇게 어느 순간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야 통일이 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6.15선언에 근거해 남북이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어느 순간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 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 하면 그것이 통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의 무력통일과도 다르고 독일의 흡수통일과도 다른 한반도통일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이렇게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통일의 목적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통일의 목적은 순전히 통합된 국민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반도의 민중들이 조금 더 낳은 상태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만들기 위해 통일문제를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족해방파, 평등파, 온건개혁세력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진보세력은 한반도의 분단이 다양한 모순을 낳은 구조적인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중도적인 노선을 찾아 한반도의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반도의 통일이 다양한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진보'만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은 통일을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장집 교수는 정당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분단체제를 외면한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통일문제 외에도 저자는 원로의 안목으로 환경문제, 한반도의 발전전략, 박정희시대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그의 통일론은 통일이 더 이상 최대의 이슈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통일 문제는 언제나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
|
아 역시 어렵습니다.
고대사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 나라의 현대사는 이 책을 신청하기 이전부터 적잖이 걱정했던 것이었지만 역시나 어렵네요.
특히 주요 연대나 선언 등의 명명함을 익숙하게 알지 못하는 젊은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첫 장을 넘길 때 부터 이 책을 어떤 방향에서 읽어야 하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그리 박식하게 알고 있지 못하고 부끄럽게도 현재와 가장 가깝다는 해방 이후의 분단의 역사와 분단 이후의 현대사도 얼버무릴 정도로 알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 독서는 앞으로 공부하고 익숙케할 디딤돌의 역할로 해 두기로 하였습니다. 여지껏 감동적이고 귀감이 되는 내용에 밑줄을 긋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잘 모르고 있는 부분과 꼭 알아둘 상식적 내용에 밑줄을 긋고 이후에 자료를 검색해서 정리하는 형식으로 일종의 교재를 정독하는 식으로 읽자고 다짐하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읽었음에도 여전히 난해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런 기회가 있어서 좀 더 현대사와 통일에 대한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백낙청.
작가의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본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이 어떤 경향의 사람인지, 정치인인지 작가인지 학자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익히 들어온 이름이었습니다. 책과 함께 딸려온 자료를 보니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또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에 대해서 남한의 사람들은 주로 남한의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남과 북은 상반된 이념으로 선이 그어졌으므로 통일 이후에도 어떤 이념 중심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적 상황으로 볼 때 냉전시대는 갔으나 종교전쟁이 새롭게 발생하고 있듯이 ''너와 내가 다르다''는 인식의 차이를 부수지 않고는 진정한 통일이란 어렵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설사 외적인 통일이 달성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일어날 분쟁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딜레마의 통일은 같은 한민족임에도 다른 시각의 논점을 내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분단체제의 붕괴''와 어떤 나라의 통일과는 다른 ''한반도식 통일''의 중요성은 일부 동감합니다. 빨갱이라 지칭하던 사람들 보다는 북한을 하나의 체제로 인정하는 사람이 늘었고 정권 교체와 친대북노선의 영향으로 북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가 말하는 분단체제의 붕괴로 진입하는 예로 들 수 있고, 또한 이러한 분단체제의 붕괴가 지속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한 가족이 되어 자연스러운 통일의 길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한반도식 통일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놀랐던 것이 나 스스로가 ''통일이란 북한에 흡수 또는 남한에 흡수되는 이분법 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해득실과 엮여 있는 문제여서 남 눈치보랴 내 눈치보랴 바쁜 상황이 한국사람들 마음 속에 진정 다른 방법의 통일은 없는가 하고 빌미를 줄 여유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자연스러운 통일로 가는 길에 대해 일부 동감하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향의 부재에서는 적잖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렇다할 구체적 방안은 없이 두루뭉실하게 전체적 흐름만 제시하는 모습이 조금은 조심스럽지 않았나 싶습니다.
통일은 어느새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은 것'' 이라 여기는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후세대들이 늘고 분단이전의 세대가 줄면서 남과 북이 분단된 것이 더 이상 ''분단''이나 ''휴전''이 아닌 영원한 남남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도 좋은데 꼭 통일을 해야하는지, 한민족이라는 것 이외의 어떤 이유에서 통일이 필요한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단체제의 붕괴 이전에 분단체제를 통감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앞 뒤 상황을 모르는 젊은세대에게는 분단직후와 현재의 시간적 괴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많은 젊은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역사와 통일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니까요.
책을 읽기 전에 막연하게 ''나는 한국사에 대해 잘 몰라''라고 생각했던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뼈저리게 와닿더군요. 내가 이렇게 몰랐나 싶을 정도로 책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몇일 전 선거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쥐었던 투표용지는 비단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이나 개개인이 모두 한반도 역사의 시작에서 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 흐름을 알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한반도의 통일이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독일식의 급격한 일방적 합병도 아닌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오랜 분단으로 왜곡된 삶 속에서 그것이 분단으로 왜곡된 삶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망각의 타성을 깨고 밝은 눈과 맑은 마음을 찾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
|
제목처럼 한반도식 통일이라는 단어가 쓰여야 하고 그렇게 되어 오고 또 되어 가야한다는 내용을 다분히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예멘의 통일처럼 억지적이지 않으며 베트남의 통일처럼 강제적이지 않고 그리고 독일의 통일처럼 급진적이지 않는 세계 유례에 없는 우리 한반도에서만 가능한 통일 과정을 말하고 있었다.
저자께서는 6.15 공동선언으로 인해 무엇보다 통일을 향한 첫 관문을 잘 넘어서게 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는 말씀과 그에 대한 근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북한에게 ''퍼주기식 정책''을 통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인 거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일이 아니냐는 일부 국민들의 주장을 쉽게 떨치기엔 조금 부족한 설명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정말 통일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고 통일이 되어가는 과정에 바로 맞닥뜨려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들 역시 어느 정도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알려주는 지침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통일에 관한 내용이 담겨야 할 책에 새만금 문제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목차에 있길래 조금 일관성이 없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처음 했었는데
6.15 시대 속의 정부와 이전의 정부에 대해 조금 더 알게끔하고 담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ps.역시 이 책 역시 개인적 교양의 부족으로 넓은 시각으로 책을 읽지 못해서 정말 형편 없는 리뷰를 쓴 듯한 느낌이... [인상깊은구절]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한반도식 통일 |
| 맨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무슨말이야? 였다. 약간 생소한 통일 방식이어서 인지, 새로웠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용이 약간씩 이해되면서 작가의 생각에 공감이 되었다. 음.. 먼저 형식이 새로웠다. 강연문을 약간 다듬은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처음이어서 어색하였지만, 뭔가 내가 그곳에 가서 듣고있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나는 약간 그렇게 느끼긴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그리고 새로운 내용이나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된것들은 밑에 주석을 달아 설명을 해주었다. 솔직히 낙청님의 글을 접하는게 처음이라 무슨 말인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음.. 이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최근에 나온 책이라서 최근의 문제라던가 세계적인 시세같은것을 다룰때 좋은 기분이 들었다. 최근의 내용을 담아서 인지 더 진짜 말하고 있구나. 강연하는 구나 라는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음.. 내용에서는 우리나라 통일 방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누구나 그래.. 라며 맞장구 쳐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단지 우리나라안에서의 통일이 아니라 다른, 우리나라와 관련을 맺고 있는 나라들의 정세도 반영하셔서 논리적으로 설득하신 것 같았다. 다양한 소재들을 이용하셔서 (박정희라든지 새만금 이야기 등등)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시니.. 뭔가 다!! 흡수할 수는 없없지만, 조금 더 여유로와 질때 읽어본다면 남는게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방식의 새로움과 어떤 한가지 일을 한다고 할때 이렇게 치밀하게 다양한 관점에서의 서술이 필요하구나.. 라고 느꼈다. 아!! 그리고 참고자료를 복사해서 넣어주신 ''창비'' 너무 감사했었다. 뭔가 정성이 가득!! 하게 느껴졌기때문. 날짜나 그런것도 써주시고.. 이슈가 되는 작품이라서 인지 많이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내 역량의 한계를 느꼈다; 휴... 더 발전하자.. 라고 생각했던; |
| 통일이라는 문제에 있어..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나로서는 이책에서 얻은것은 크다고 하겠다. 통일.. 그리고 북한.... 가슴아파하면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대로 통일은 자연스러워야하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통일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지양하고자 한다. 6.25 전쟁이 나고, 다시 휴전이 되고.... 우리나라와 북한의 상태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라고 한다. 이제 다시 싸우기도, 아니면 아무일 없들이 하나로 합치기도 어려워져 버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것이다. 그사이이 벌러지고 어긋난 것은 말이나 경제력뿐만이 아닐것이다. 이제 통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앞서 북한이라는 한 나라로 인정해주는 아량이 필요로하지 않을까 싶다. |
|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통일과 분단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통합과 분할이 강제성(약육강식의 방식)으로 순환되면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전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이런 방식이 아닌 SOFT화 방식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창하시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식의 전쟁방식도 아닌 독일처럼 일방적인 흡수통일도 아니고 예맨처럼 처음엔 대화로 나중에 무력으로 흡수통일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서로의 주체을 인정하면서 3단계방식으로 점진적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려면 우선 남한이 체계개선을 하면서 받아들일 준비를 가진다면 서독이 겪었던 경제적 혼란은 방지할 수 있을것 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안밖에서 벌어질 엄청난 압력을 누가 조정하고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인지 진정 궁금합니다. 작금의 중국은 동북공정이라고 하면서 북한을 자기네 영토로 수복해야 할 지역으로 선포해 놓은 상태이며, 팍스아메리카인 미국은 일본의 안위(?)때문에 눈치를 보면서 북한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천만 다행인것은 북한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석유와 같은 부존자원이 나왔다면 언재 이라크같은 꼴을 당할련지) 또한, 일본은 자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행동을 하지만 지금 보유하고 있는 군사력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오히려 남북한이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남북한 주변국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형국에 과연 물흐르듯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는 형세인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현상태로 고착화 작업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많은 혼란이 올 것 같습니다. 중국에선 스스로 허물어지는 북한의 자기들이 흡수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고 일본및 미국등에선 암묵적 동의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한내부에서 혼란이 초래할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답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이 나오지 않는것 같습니다. 아득한 천길 낭떠러지를 헤매고 있는 사람들만 불상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자의 통일에 대한 노고를 가슴깊이 치하하면서 같은 땅, 같은 하늘아래에서도 통일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못하는 소시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