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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의나 발표 때 자주 맨 앞장에 쓰는 그림이다. 음각 처리되어 잘 알아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부터 코흐, 파스퇴르, 플레밍, 레이엔후크다. 연대 순으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모두 세균학에 이정표를 세운 인물들이다. 연대 순으로 보자면, 레이엔후크는 현미경으로 최초로 세균을 기록한 인물이고, 파스퇴르와 코흐는 질병의 세균설을 확립하였다. 플레밍을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모두 조금씩 논란은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렇게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세균이 인류와 밀접한 연관, 특히 질병과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그로써 질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가능해졌고, 예방과 치료를 생각해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 중심에 루이 파스퇴르가 있었다.
루이 파스퇴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것부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우유부터 생각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광견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화학 쪽에 관심이 많은 이는 편광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대변되는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고 생물속생설을 주장한 인물로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이게 가장 잘 나온다). 물론 나는 세균설이니 탄저균이니 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이 루이 파스퇴르라는 열정의 과학자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의 업적을 연대 순으로 나열해보면 대충 이렇다. 생물과 무생물이 편광의 방향 차이가 있음을 발견 발효가 생물학적 과정임을 밝힘(효모가 생물이라는 것을 밝힘) 자연발생설을 반박하는 결정적 실험 혐기성 세균의 존재를 밝힘 누에 병의 원인을 밝힘 포도주와 맥주의 병의 원인을 밝힘 탄저병의 원인을 밝히고, 세균을 분리함. 콜레라의 약독화와 면역에 관한 원리 발견 광견병 백신 개발
이 중 하나만을 이룩했더라도 과학사에 남을 일이다. 이 숨이 찰 정도의 일을 한 과학자가 이룩해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모든 시설이 열악했던 19세기의 일이다. 그는 과학 자체에 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과학에 실제적 응용에 정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르네 뒤보는 이러한 루이 파스퇴르의 생애와 업적을 잘 요약하고 있다. 파스퇴르에 관한 제대로 된 평전이 참 없다(는 걸 확인했다). 다른 책에 한 챕터로 파스퇴르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어린이용으로 나온 것 이외에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이 얇은 파스퇴르 전기가 귀해 보인다. 비록 너무 요약한 느낌이 들고, 그의
어마어마한
공(功)에 비해 사소해 보일지라도 분명히 존재하는
과(過)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는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과학과
과학의 응용이 있을 분이다.” (루이 파스퇴르)
(2015.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