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0.0
리뷰 총점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감독 10 조지 클루니 - 유쾌함과 진지함의 사이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감독 10 조지 클루니 - 유쾌함과 진지함의 사이" 내용보기
무심코 지나치다 '이 사람이 이 영화를 제작했구나' 혹은 '감독했구나' 혹은 '이 영화에 나왔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킹 메이커>와 <굿나잇 앤 굿럭>같은 정치 영화의 감독이 조지 클루니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 배역으로 보여주는 유쾌하면서 진지한 모습과는 다른 깊은 진지함이 있다.         분명히 조지 클루니는 연예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배우이면서도 영화에서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감독 10 조지 클루니 - 유쾌함과 진지함의 사이" 내용보기

      무심코 지나치다 '이 사람이 이 영화를 제작했구나' 혹은 '감독했구나' 혹은 '이 영화에 나왔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킹 메이커>와 <굿나잇 앤 굿럭>같은 정치 영화의 감독이 조지 클루니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 배역으로 보여주는 유쾌하면서 진지한 모습과는 다른 깊은 진지함이 있다.

 

      분명히 조지 클루니는 연예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배우이면서도 영화에서 유쾌하고도 발칙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게 말을 건네는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의 핵심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러닝타임동안 배우를, 대사를, 상황을 보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 배우의 이름이 희미해져도 그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배우가 괜찮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스마트폰 세대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진짜 이랬다. 정치상황이 어수선하고 어떤 사람 하나를 몰아가면서 색깔로 사람을 매도하던 1950년대. 그 중심에 매카시 의원이 있었다. 중국은 공산화되고 한국은 전쟁직후 이념논란이 한창이며 구 소련과 정치적인 대립이 극심했던 때. 국무성안에 공산주의자가 250명이나 된다고 폭탄발언을 하며 국무장관 덜레스까지 긴장시켰던 정치인. 그에게 누구도 사실이 아니라며 항변하거나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공무원, 정치인, 학자들조차도.

 

      이 때, CBS의 <See It Now>의 앵커, 에드워드 머로우(데이빗 스트라탄)는 저널리스트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떤 대상을 매도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되는 상황을 유지하면서 당시의 시대속으로 보는 사람을 갖다 놓는 현실감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매도할 수 있지' 싶으면서 침묵하게 되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감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방송할 수 있지' 하며 눈빛을 빛내며 주시하게 된다. 사실이 왜곡되고 진실이 죽어버린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저널리스트가 살아있는 사람같아서.

 

      프로듀서 프레드 프랜들리(조지 클루니)와 함께 방송에서 일하는 작가들과 엔지니어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겪어내는 일들이 긴장과 위대함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산을 오르내리듯 힘겹고도 힘차게 느껴진다. 방송국 내에서도 방송의 사실과 공정함보다 정치적인 입김으로 방송국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조심하는 분위기가 변호사와 다른 동료들을 통해서 그대로 반영된다. 이러한 모든 상황속에 레드 혐오증으로 사리분별력을 상실한 매카시 진영측에 제동을 거는 방송인들의 모습은 더욱 조용하고 위대하게 보인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대에. 그러면서 어느 시대에나 눈빛이 빛나면서 머릿속이 맑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사람들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힘겹게 사는 아시아의 여성이나 같은 선상에 서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어느 순간, 아무 표정없이 그저 진실을 말하고 싶은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머로우의 한 마디 "Good Night and Good Luck!"이 희망이 된다. 잠자는 것조차 불안한 시대에 편안한 밤과 내일의 행운을 함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진실을 드러내는 거울처럼, 딱 그만큼 힘이 될 것 같아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 한 마디,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힘이 느껴지는 고요한 영화다. 특히, 프로듀서와 앵커의 대화는 이성과 객관적인 언행이 감정적 호소보다 더 시선을 끌며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굿나잇 앤 굿럭!"



YES마니아 : 골드 n********y 2014.03.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옳은 것을 말하기
"옳은 것을 말하기" 내용보기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즈음인 1940-50년대 미국은 전례가 없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그 중심엔 위스콘신주의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가 있었다. 그는 미국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두려워했던 미국인들은 매카시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나 친공산주의자로
"옳은 것을 말하기" 내용보기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즈음인 1940-50년대 미국은 전례가 없는, 공산주의자 색출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그 중심엔 위스콘신주의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가 있었다. 그는 미국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두려워했던 미국인들은 매카시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공산주의자나 친공산주의자로 찍히지 않기 위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CBS의 애드워드 머로우와 그의 동료들이 그 주인공 들이었다. 그들의 활동은 매카시즘 열풍을 잠재우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역사적인 대결이 영화로 재구성 되었다.   컨패션으로 이미 재능을 확인시킨바 있는 조지 클루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벌써 이 영화는 흥미를 끈다. 또한 흑백으로 촬영된 영상은 시대적인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매카시즘이 맹위를 떨치는 시대에 CBS 방송국도 매카시즘 열풍을 빗겨나가지 못한다. 방송국내에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서약서가 돈다. 서명을 거부하는 것은 곧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방송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뉴스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레드 프렌드리와 에드워드 R. 머로우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헌법을 무시하는 매카시즘에 대항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공군에서 전역해야만 했던 장교의 이야기를 통해 증거가 없이는 무고한 사람을 고발할 수 없고, 양심의 자유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것이며, 자신의 죄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을 재확인시키고 매카시즘과의 대결에 들어간다.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을 가지지만 엄청난 권력과 싸우는 일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머로우와 프렌드리와 머로우는 광고가 떨어져 방송사의 경영에 어려움이 올 것을 염려하는 사장을 설득해야만 하고 시청율도 걱정해야만 한다. 또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정치권력과도 싸워야 한다. 심지어 대결의 당사자인 매카시는 머로우를 공산주의자라고 폭로하기까지한다. 또 그들은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자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시 틀린 것이라면, 매카시의 행동이 오히려 대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어쩔까 하는 고민은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일을 끝까지 밀고나간다. 방송이 나가고 호응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매카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결국 그들은 승리한다.   영화가 보여준 매카시즘과 머로우 뉴스팀의 대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때온 엄청난 희생이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아 머로우처럼 호응조차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비난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이야기 하듯이 진실이 왜곡되어있고, 그것을 내가 깨달았다면 반드시 말해야 한다. 비단 이것은 영화에서처럼 언론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파괴하고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를 짓밟는 그 무엇을 발견했다면 그 누구도 머로우가 가졌던 의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런 행동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우리 역사는 우리가 만든다고 말씀드렸죠. 우리 방송이 이대로 가면 역사의 비난을 받을 것이며,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생각과 정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맙시다. 에드 설리번이 장악한 일요일 저녁 시간이 '미국 교육현실 진단'에 할애되리란 꿈도 가져봅시다. 한 두 주 뒤면 스티브 앨런의 시간도 '미국의 중동정책 철저분석'에 넘어가겠죠. 그런다고 광고주 기업의 이미지가 손상을 입을까요? 주주들이 불평과 분노를 토로할까요? 수백만 시청자들이 조국과 기업의 미래가 달린 주제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 외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자만에 빠져 고립되던가 말던가 아무도 관심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단 한 기자의 의견이라도 논박하려면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요. 만약 그들이 옳다면 무엇을 잃어야 될까요? 그들이 옳다면 TV는 바보상자가 되어 세상과 격리시키는 도구로 전략하겠죠. TV는 지식을 전합니다. 깨달음도, 영감도 선사합니다. 허나 그것은 오직 최소한의 참고용으로 쓰일 때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TV는 번쩍이는 바보상자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머로우가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여기서는 언론매체로서의 텔레비전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과연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머로우는 그렇다고 말한다. '미국 교육현실 진단'에 대해 일요일 저녁에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일들은 텔레비전을 그렇게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금 우리의 텔레비전을 살펴보면 어떨까? 과연 우리의 텔레비전은 '바보상자'가 아니라 깨달음과 영감을 선사하는 도구일까? 아쉽게도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텔레비전은 정보를 원하는 대중들의 열망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온통 월드컵 이야기만 전해주고 있다. 과연 이런 텔레비전이 과거에 머로우가 그러했듯이 잘못된 일에 맞서고 진실을 알리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굿나잇 앤 굿럭>은 매카시즘과 대결한 실존 인물 애드워드 R. 머로우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그것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인 헌법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상기시켜주고 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안보위협이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언론으로서의 텔레비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100분의 시간을 투자해 영화를 본다면 100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c******3 2006.06.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