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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에서 나온 'Critical Thinkers'시리즈는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의 동명의 시리즈를 번역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이후 두번째 읽은(완독은 처음)책인데, 개인적으로는 특정 인물에 대해 특별히 추천된 소개서가 없는 경우 이 시리즈를 선택하신다면 후회는 안하시리라 보장한다. 그만큼 책은 구성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쉬우면서도 알차다. 지금까지 제젝, 사이드, 스피박, 바르트, 그리고 지금 리뷰를 올릴 홀까지 다섯권이 나왔고, 들뢰즈의 경우 태학사에서 별개로 번역되어 있으며(이 또한 들뢰즈 개론서로서 굉장히 호평을 받는 것으로 알고있다.) 앞으로 데리다, 하이데거, 보드리야르, 리쾨르, 폴 드만, 프레드릭 제임슨 등등등 기라성같으면서도(?) 만만한 개론서를 찾기 힘든 사상가들의 소개서가 나온다는데 개인적으로는 기대 만빵이다. 스튜어트 홀은 표지에 소개된대로 '이렇다 할 저서 한권 없는 이 시대의 대표적 문화이론가'이다. 사실 그가 이렇다할 저서 한권이 없는 것은 그의 전략이기도 한데 그는 권위나 상식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스스로 권위가 되기를 거부하여 대부분의 작업을 '공동작업'으로 수행하였으며, 또한 그는 영구적 단행본을 통해 자신의 사상에 일관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변화되는 상황에 변화되는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잠정적 논문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그 '수많은 홀'하나하나가 모두 오늘 우리의 문제에 굉장히 많은 시사점과 상상력의 단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를 '절합'하고,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 볼로시노프의 다액센트 개념을 융합하여 문화와 언어를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닌 하나의 투쟁의 장으로 보아 지속적인 실천적 함의를 지닌 이론들을 만들어낸 그의 면모였다. 물론 오늘날 그에 대해 '문화적 포퓰리즘'의 혐의가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는 그 자체로 비 정치적인 것이 아니며 문화건 언어건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울러 미디어를 단순히 발신하고 수신하는 것이 아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발신자의 메시지가 다 발신자의 의도대로 수신되는 것은 아님을, 결국 수신자에게도-발신자만큼 크지는 않지만-다악센트성을 지닌 언어를 가공할 여지가 있음을 밝혀낸 그의 이론 또한 관심이 갔다. 대처리즘에 대한 그의 분석과 비판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왜 노동계급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보수정당에 몰표를 줄까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도움이 될만한 해결책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처럼 몇 개의 노랫말만 배우고 음악은 잊어버리면 안되겠지만. 사실 다양한 국면마다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던, 즉 오늘의 실천과 문제해결을 위해 핵심적 입장에 지속적인 변화가 있었던 홀을 한권의 책으로 쓴다는게 쉬운일은 아닐게다. 그럼에도 저자는 묘한 줄타기(?)를 통해 그 홀의 수많은 모습들과 그 속에서 묘한 일관성 아닌 일관성(적어도 일관된 이론이 변화하는 정치에 비현실적일 따름이라는 사고에 기반한, 그의 무지개처럼 수가지의 경쾌한 연구'방법'론 만큼에는 일관성이 있는것 아닐까?)을 부여하여 저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오늘의 우리 사회, 정치 문제를 바라봄에 있어서 어찌보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울러 홀이 원채 이런저런 입장들을 많이 취해 온 터라(?^^)문화이론의 입문서로도 적당할 듯 싶다. 하여간에 일독을 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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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오래 전 아직 문화연구라는 학문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학문(그 질의 여부를 떠나)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것은 바로 ‘정치학’이라고 혼자 결론을 내렸었다. 왜냐하면 ‘정치학’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규범과 이해관계를 위한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는 정치적인 행위다!“라는 스튜어트 홀의 주장은 최소한 내게는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의 중요성을 가장 명쾌하게 확인시켜 주는 말처럼 들린다. 어떠한 문화적 현상의 발발이 그 시작점을 문화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일련의 정치적 효과를 낳게 되고 그 문화의 행위자가 정치적 위치를 갖게 되는 것, 이라고 확대해석을 해도 무리가 없을까. 직접 금뱃지를 달고 선거에 출마를 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라 우리가 약속된 언어로 소통을 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그에서 비롯된 현상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한, 우리는 갖가지 문화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작 문화연구의 한계와 범위를 규정하는 것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지만 홀과 같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긴박함 앞에서, 문화 연구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현실적인 물음 앞에서 새삼 문화연구의 정치적 측면의 가치를 깨닫게 되곤 한다. 2. 스튜어트 홀에 대하여 문화 연구에 관한 글을 읽어갈수록 반복해서 나오게 되는 개념 중 하나인 ‘절합articulation’이란 단어를 이 책(‘스튜어트 홀 지금’)의 서문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책에서 정의된 내용에 따르자면 ‘절합’은 ‘특정 조건에서 두 개의 상이한 요소들을 하나의 통합체로 만들 수 있는 연결 형식’이다. 물론 그 안에는 다른 의미들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표면적이든 내재적이든 이 ‘절합’이라는 개념은 스튜어트 홀의 연구 업적과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임과 동시에 ‘문화연구’가 전통적 연구 학문으로부터 비판받을 만한 요소를 제공하는 취약점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대중문화의 ‘多악센트성multi-accentuality’, ‘브리콜라주Bricolage’ 개념과 함께)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데이비드 몰리David Moley가 ‘문화연구가 비판받는 점’으로 지적한 여러 부분이 바로 다른 학문과 태생적으로 상이한 의제발견의 과정에서 오는 ‘모호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 부분과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스튜어트 홀의 연구자로서의 행적은 다소 방만해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 표지에 노골적으로 언급이 된 것처럼 ‘이렇다 할 저서 한 권 없는...’이라는 표현은 문화연구학계에 수많은 업적과 영향을 남긴 대학자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은 용감했고 실용적이었으며 ‘진정한’ 문화연구자로서의 임무를 다 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현명한 지식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폭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세계 구석구석에 산재한 문제들을 짚어가는 여행을 한 기분이다. 홀의 이론과 개념들 뿐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CCCS(현대문화연구센터)의 이론적 중심을 잡아온 과정이 그려지는 것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확고하다. 문화주의에서 구조주의로의 유연한 변화, 알튀세와 그람시 등의 선택적 포용이 그의 사유의 저변을 넓혔다는 것, 그러한 사실과 변화의 가능성 자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다시금 다듬어진 연구결과와 이론을 내어 놓는 모습은 그가 자신만만한 참여형·실천형 지식인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발표한 수많은 저술 중 특히 내가 흥미로웠던 부분은 1972년 영국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과 그 당사자들에게 ‘강도’라는 낙인을 찍은 미디어의 ‘라벨링’에 대해 비판한 부분이었다. (도덕적 공황에 의한 불안의 해소방법으로서의 ‘라벨링’, 이것은 중세시대 유럽을 휩쓴 마녀사냥 현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곧 이어 데이비드 몰리의 계급에 관한 연구 결과가 제시되고 있는데 평소 수용자의 ‘계급’이 메시지의 해독에 가장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하게’ 믿고 있던 나로서는 몰리의 연구 결과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의혹!)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디어를 해독하는 방식이 계급(인종과 젠더도 포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동일한 메시지를 각양각색으로 수용하는 행태의 개인차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이란 말인가.(홀 본인도 ‘기호화’와 ‘기호 해독’의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제시했으면서도 정작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내가 스스로에게 이런 수많은 문제의식을 던지게 된 주제들이 대부분 미디어와 인종, 계급과 이데올로기, 프로이트의 ‘전이’ 개념 등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또 하나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회에서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문제가 되고 그것들에는 연구와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화연구의 영역이 필요한 것이고 그 폭넓은 과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의 롤모델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스튜어트 홀이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3. 나오며 수많은 문화연구의 갈래 안에서의 스튜어트 홀의 관심사들은 그 종류도 폭도 깊고 다양하지만 그의 문제의식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바로 ‘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성性’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무인도에서 영원히 혼자 산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갖가지 ‘정치적’인 문제들. 그것이 디아스포라를 직접 체험한 半이방인으로서의 홀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 요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렇다 할 저서 한 권 없는’ 스튜어트 홀의 연구 스타일이었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그럴듯한 제목 하나 쯤 가져보겠다는 욕심 하나 내지 않고 집단연구 작업을 즐겨 했던 스튜어트 홀이야말로 ‘문화’가 ‘정치’와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정확히 포착한 그야말로 ‘유기적인(진정한)’ 지식인의 전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긴 하다. 그의 메시지는 여전히 ‘편집’되고 누군가에 의해 ‘주관화’의 필터링 작업을 거쳐야만 우리에게 당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