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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메이지유신을 거친 일본이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요인, 그리고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 차츰 군국주의화 되면서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패하면서는 정작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무책임체제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신랄하게 파헤치고 이러한 이중적 또는 무책임 체제의 치명적인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책이다.
먼저 동양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유신의 성공 배경을 분석하였다. 천황 즉 덴노 정부가 권위를 지니고, 쇼군의 정부인 막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는 오랫동안의 이원적 지배구조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덴노의 정부인 메이지 신정부가 권위와 권력을 독점하는 중앙집권적인 지배구조로 변모하는데 성공하였고, 일본 역사에서 정통성의 근원이었던 덴노를 권위와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음으로서 메이지 신정부는 정통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국가의 역량을 근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덴노를 정권의 상징으로 세움으로써 권위의 절대화와 권력의 집중화를 꾀한 후 메이지 신정부는 덴노가 가진 신적인 권위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심을 국민에게 주입하였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군인칙어'와 '교육칙어'를 잇따라 반포함으로써 국민을 덴노와 연결하고 덴노의 신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것은 후에 일본이 군국주의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태평양 전쟁에서, 덴노를 등에 업은 군부의 명령에 국민들이 절대 복종하게 하였으며, 전쟁의 정당성을 인식시키는데 아무련 어려움을 겪지 않게 만들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군부의 쿠데타와 잦은 내각의 교체는 군부가 내각을 장악하는 빌미를 제공하며 일본은 급기야 아시아 경영이라는 허구성을 가진 군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여 중국, 미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에는 패전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전쟁 책임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는 이들이 없었다. 도쿄 전범재판에서 피고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없다.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무책임체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덴노에게 절대적인 주권이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통치 실패의 책임은 덴노를 보필한 아랫사람들이 잘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책임 전가에 있었다.
전후로 일본은 오랜 전통처럼 또다시 덴노에게 상징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내각이 통치 권한을 갖는 이중 정부 체제를 오늘날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권력은 확실한 핵심이 존재하지 않는 분산형태를 띠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여전히 통치행위에 대한 책임소재의 불확실성을 내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일본의 통치구조는 정상적인 국가의 그것이 아니라고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일본이 가진 '권위와 권력의 이원적 지배구조를 일본 정치 문화의 '주변성 혹은 후진성'이라고 파악하며, 덴노 또는 내각이 자신들의 핵심적인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책임 또한 명백하게 지려고 할 때 이러한 주변성 혹은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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