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쇼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은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길이에도 미치지 못 하는 짧은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곤자쿠 모노가타리 속의 한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은 이 소설이 명작인 이유는 단순히 극한에 달한 인간의 본질적인, 비천한 모습을 강렬하고 함축적으로 그려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의 윤리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역설하는 소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삶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은 소설의 역할 중 아마도 가장 비중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쿠타가와의 이 소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작가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람과 삶의 어두운 잔상들을 조망하는 소설들은 대부분 그런 인간의 잔인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고 고발함으로써 독자를 각성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작가들의 의도 역시 그렇다.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의 경우 그는 인간과 인생의 어두운 면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 면을 경멸하나 한편으로는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쿠타가와는 다르다. 그는 그런 면을 비판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애정의 눈길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는 있었던 그 사실 그대로를 현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아프기까지 한 시선이다. 『라쇼몽』의 원전인 노파와 도둑의 이야기도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어느 누구를 비난하지도 않으면 그저 상황만을 말해줄 뿐이다. 자연과 사랑을 유머가 섞인 미문으로 그려낸 다른 작품들의 이야기와 비교한다면 문학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겠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야말로 그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비추어주는 그래서 사회와 부딪히는 '''' 문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실적이고 박력 있는 소재로 그려낸 아쿠타가와의 소설 『라쇼몽』은 어떠한가. 물론 약간의 살이 붙어서 소설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문장도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작가의 눈을 통해 걸러진 그 이야기를 보며 전율한다. 그 이유는 독자가 흔히 냉정함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지극히 담담한 시선 때문이다. 원전에 충실하느라고 혹은 역설적인 의미와 여운의 효과를 노려서 그 소설이 그렇게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쿠타가와는 왜 『라쇼몽』을 썼는가. 이미 충분히 인생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는 일본 인 독자들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려고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쿠타가와는 그저 삶에 대해 그린 것뿐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교훈이나 가치 판단도 들어 있지 않다. 결국에 소설이란 사람과 사람의 인생, 삶에 대해 쓰는 것이니까 아쿠타가와는 이런 현실도, 사회도 있다는 것 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그 원전의 시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시대에도 어두움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아쿠타가와는 옛날이야기를 끌어와 근대에 소설로 썼다. 다만, 아쿠타가와는 완벽한 어떤 세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결국에는 그도 인간을 믿고 싶었던 것 아닐까. 『라쇼몽』 이외에 다른 작품들은, 특유의 필체는 여전하나 어딘가 분노와 허망함이 느껴진다. 관심, 애정이 있을 때 경멸의 감정도 생겨난다. 그의 자살은 그런 요소 -인간과 사회에 여전히 아는 것 이상의 감정을 가져 절망하는- 도 어딘가 들어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추측해본다. 코 이케노오에 사는 젠치 나이구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코가 아주 길었다. 대여섯 치나 되는 긴 코 때문에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늘 웃음거리가 되었다. 늘 열등감에 시달리던 중 코를 작게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비웃음과 냉소를 보냈다. 겨우 불행에서 벗어난 자신을 다시 불행에 빠뜨리고 싶어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기주의를 깨달은 나이구는 매일 코가 짧아진 것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아침 코가 하룻밤 사이에 옛날의 긴 코로 돌아오자 나이구는 이제 비웃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안도하게 된다. 가벼운 필치로 인간 심리의 명암을 섬세하게 써내려 가면서 주인공 젠치 나이구의 위선과 허영을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방관자의 이기심을 폭로한 작품이다. 인간의 만족도, 불만족도 모두 세상과 대면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자기 내부에서 자연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세상과, 세상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리고 자기를 파악하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인생에 대한 회의와 마음을 열어 따뜻한 애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성에 대한 체념이 흐르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아쿠타가와의 세계는 부정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그에게 세상이란 그저 현실 그 자체일 뿐이다. 이런 자세는 설핏 냉소적인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나 섬세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알맞은 시선이다. 이런 유형의 작가, 인간은 자신에게 철저히 몰두할 수 있는 동시에 언제든지 자신을 탈바꿈시킬 수도 있다. 절대적인 정의나 부정은 없는 것 아닌가. 일본인이라고 또 같은 세대라고 다 성향이 같을 수 없다. 다만 공통된 취향은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은 단언하는데, 한국인에 비해 현실적이다. 앞서 언급한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쿠타가와를 비롯한 일본인의 특징일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작품은 오로지 사랑만 이야기한 작품부터 현실적이고 어두운 면만 지독하게 파고드는 작품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이야기라고 언급한 문학작품의 현실외면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작품의 가치(판단)때문이 아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현실에 몸 담근 인간들에게 환상 또는 미학추구는 죄악이 아닌 축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나 이러한 사랑 이야기들은 특이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현실과 정치에 괴리된 작품이 많았던 일본인의 머리 속에는 오히려 이런 사실이 언제나 존재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우선적으로는 익숙한 것보다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아쿠타가와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많지 않은 페이지에 그려내어 사람들의 어떤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그의 그런 짧은 이야기들을 아는가. 아쿠타가와의 진수를 아는가 말이다. |
|
내가 좋아할거라며 누군가 이 책을 나에게 선물했다. 한가한 사무실, 단편이니 하나만 잽싸게 읽어봐야지. 했다. 첫 번째 글인 라쇼몽을 읽고, 소름이 돋아 다음 이야기를 읽지 못했다. 이렇게 짧은 글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이렇게 많은 느낌을 줄 수 있다니. 일본인이라서 이렇게 쓸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글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단편들이 감탄 < 경탄 < 소름돋음 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나에게 선사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 작가는 어쩌면 너무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은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였는지는 설명하기가 힘들지만.
한 편 한 편을 매우 조심스럽게 아껴가며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이제까지 읽었던 단편 소설들과는 너무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인간의 사악함, 인간의 선함, 인간의 밑바닥, 인간의 욕망, 이런 것들을 너무 무시무시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서, 그리고 너무 cliche 하지 않게 표현하고 있어서 일게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아! 우와! 이야! 하며 감탄사를 내뱉으며 읽고 또 읽었다.
아아아아. 단편 소설이 가질 수 있는 힘이란. 정말 놀랍기만 할 뿐. |
| 아쿠타가와 작품선 ★★★★★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아쿠타가와의 천재성에 비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이 될 수 밖에 없어서 늘상 아쉬워하고 섭섭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읽지 못한 책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던 아쿠타가와의 "라쇼몽(나생문)"을 진즉에 읽은 터, 더이상 그의 책은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물론 이 책 "아쿠타가와 작품선"의 반은 전에 읽었던 부분들과 겹치기는 하지만, 그 외 나머지 부분 "톱니바퀴" "겐가쿠 산보 "신기루" "어느 바보의 일생"등은 접하지 못했던 부분이었고 아쿠타가와의 또 다른 스타일(사소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아쿠타가와의 작품들이 모두 좋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전설의 고향"식의 권선징악적 이야기는 솔직히 별로이다.) 이 작품선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작(라쇼몽)에는 없었던 사소설이 분명한, 그의 실생활을 소재로 한 솔직한 이야기들일 것이다..뚜렷한 사건이 이렇다할 만하게 전개되지 않아 소설로서는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철학이 봄볕에 새싹이 돋듯 돋아난다.(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소설선이 아닌 작품선인지도 모르겠다.)특히 "톱니바퀴"와 "어느 바보의 일생"이 눈길을 끌었는데, 톱니바퀴는 그의 정신이상적 증세에 대해서 솔직과감하게 밝혀, 대 작가에 대한 약간의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레몬"의 "가지이 모토지로"의 폐결핵을 읽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어느 바보의 일생"은 전작이었던 "난장이가 하는 말"류의 명언록과 비슷하기는 하나, 오히려 요즘의 블로그식의 단편적인 짧은 생각들 (사물, 세상, 연인, 가족, 죽음 등의)을 펼쳐놓아, 오히려 짧은 이야기(무어라 표현할지 모르겠다. 촌평이라기에는 사생활적인 모습이 너무 많다.)에 깊은 감동+슬픔에 놀란 가슴 오줌지리듯 절절이 배어나왔다. "겐가쿠 산보" 정도가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문화소설쯤으로 분류를 해아할까? 아쿠타가와는 (몇 작품 없겠지만) 유난히 사람의 일생과 죽음에 대한 부분을 다루는 작품들이 많다. 소설가로서 혹은 철학자로서의 짧은 그의 삶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음을 말로 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남음이다. 솔직히 이 책을 펼쳐 낸 "범우사"라는 출판사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범우의 작품선은 빼어난 작품들만을 한데 그러모아 고민하지 않고도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는 장점은 있다.그러나 조금 싼 가격으로서의 만족을 다하기에는 너무 오타가 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
| 솔직히 <라쇼몽> 한 작품 읽어보려고 샀다. 세계영화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명작이라기에 원작으로 한번 보고 싶었던게 그 이유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내가 알던 영화 <라쇼몽>과 소설 <라쇼몽>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길이도 불과 몇쪽에 불과하고. 맨 처음엔 연작소설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정작 내가 찾던 영화<라쇼몽>의 원작은 <덤불 속="">(다른 번역판에선 <대숲이야기>로도 번역되어있다.)이었다. 왜 엉뚱한 이야기의 제목을 빌려왔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그 이유는 영화 감독인 구로자와 아키라만 알 일. 아쿠타가와의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끼나 요시모토 바나나등의 요즘 소설들 같은 감각적인 글은 아니다. 그러나 명불허전이라고나 할까. 읽고난 후의 여진은 굉장하다. 특히 <지옥변> 같은 작품은 섬뜩한 느낌마저 들 정도 였다. 내가 보기엔 재미도 별로 없고 엉성해 보이는 소설도 몇몇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읽어볼 만한 소설집이다. 하지만 군데군데 어색한 번역은 옥의 티다. 오래된 소설이라는 티를 내려고 번역자가 일부러 그렇게 번역한 건지도 모르지만.지옥변>대숲이야기>덤불>라쇼몽>라쇼몽>라쇼몽>라쇼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