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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읽는 최치원 풍류길》 | 김재웅 지음 역사적 인물과 나무의 조합이라니. 나무를 통해 최치원의 삶과 사상을 읽는다는 기획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에는 최치원의 발자취를 따라 만난 나무와 장소, 그곳에 얽힌 문헌 기록과 전설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무성서원의 팽나무에는 최치원이 지팡이를 꽂았다는 전설이 너무 낭만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금돈치굴을 찾아내 기뻐하는 저자의 모습에서는 문헌 속 이야기를 직접 확인하려는 답사의 즐거움도 느껴진다. 다양한 나무들의 이야기를 통해 항 인물의 쌓인 시간들을 나열하는 것이 정말 새로운 독서 경험을 맛보게 해주었다. 특히 함양의 상림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최치원이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숲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숲을 남겼다는 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까. 당장의 성과를 넘어 미래에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최치원의 삶을 따라가며 무엇을 이루었는가만큼 무엇을 남겼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와 전설을 통해 한 인물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며, 나 역시 앞으로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위 도서는 책과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과나무 #나무로읽는최치원풍류길 #김재웅 #최치원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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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의 박달나무 앞에서 저자는 최치원과 일연, 단군신화의 시간을 한데 불러 모은다.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한 인물과 이야기가 한 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겹쳐지는 순간이다. 이 장면을 역사적 사실의 복원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박달나무는 그 모든 시간을 실제로 목격한 증인이 아니며, 나무의 수명만으로 과거의 진위를 판별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장소에 쌓인 기억은 반드시 물질적 연속성을 통해서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름은 비석에 새겨지고, 어떤 이야기는 사람의 입을 거쳐 전해지며, 때로는 나무 한 그루가 그 기억들을 다시 호출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의 답사에는 이처럼 기록의 빈틈을 현장의 감각으로 더듬으려는 시도가 있다. 나무의 종류와 생태를 살피는 시선 곁에 오래된 문헌과 지역의 전승이 나란히 놓인다. 역사적 장소는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만큼이나, 후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기억하기로 선택했는가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함양 상림에는 인간의 의지가 숲의 형태로 이어진 시간이 있다. 최치원이 천령군 태수로 재직하며 홍수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고자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숲이다. 물길을 다스리고 나무를 심는 일은 당장의 재난에 대응하는 행정적 실천이었겠지만, 그 결과는 한 관리의 임기를 훌쩍 넘어섰다. 상림의 나무들은 자라고 죽고 다시 뿌리를 내리며 오랜 세월 숲의 형태를 이어 왔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역사가 함께 축적되어 있다. 일찍이 한스 요나스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논할 때 강조했던 것은 현재의 행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삶의 조건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이었다. 상림의 조성을 오늘날의 생태윤리와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가 품은 시간의 방향은 주목할 만하다. 자신이 떠난 뒤에도 계속될 세계를 위해 지금 무엇을 마련할 것인가. 숲은 한 시대의 필요에서 태어나 다른 시대의 생명을 받아들이며 자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돌봄은 자신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미래에까지 도달한다. 최치원의 정치적 생애를 떠올리면 이 숲의 존재는 더욱 복잡하게 읽힌다. 당나라에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귀국한 그는 신라의 쇠락을 목격했고, 시무 십조를 올려 개혁을 모색했다. 그러나 골품제의 질서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가 꿈꾼 변화는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다. 문장으로 세상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식인이 마주한 것은 문장의 능력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유교적 출처관에서 벼슬에 나아감과 물러남은 개인의 처세를 넘어 도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에 관한 판단이었다. 최치원의 행적에도 그러한 고민이 배어 있는 듯하다.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진 뒤에도 그는 산천을 유람하고 학문과 문학을 이어 갔다. 세상을 향했던 정신이 자연 속에서 다른 리듬을 얻는 과정이었다. 다만 그의 은둔을 정치적 좌절의 필연적 귀결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의 선택에는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기질, 당대의 사상적 풍토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청량산에서 독서와 바둑을 즐겼다는 전승, 임경대에서 마주하는 낙동강의 물길, 동백섬의 해안 풍경은 정치와 학문의 언어로만 설명할 수 없는 최치원의 삶을 펼쳐 보인다. 산천을 유람하며 시를 짓는 문인의 풍류에는 자연을 감각하는 일과 자신을 수양하는 일이 함께 놓여 있었다. 유교의 학문과 불교의 수행, 도가적 자연관이 서로 접촉했던 신라 말의 사상적 환경도 이러한 풍류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산을 오르고 물을 바라보는 동안 인간의 사유는 책상 위에서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바람의 방향과 물의 흐름은 인간의 계획을 따르지 않으며, 나무는 자신의 생장에 필요한 시간만큼 계절을 통과한다. 그 질서를 바라보는 일에는 인간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세계를 인정하는 태도가 수반된다. 풍류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읽는다면, 자연을 자신의 감정에 맞추어 해석하기에 앞서 그 고유한 리듬을 감각하는 능력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해인사 학사대의 전나무 앞에서는 한 인간의 마지막 행적을 둘러싼 침묵이 짙어진다. 최치원의 말년은 정확한 기록으로 온전히 복원되지 않는다. 가야산에 은둔했다는 이야기와 신선이 되었다는 전승은 역사적 공백 위에 여러 세대의 상상력이 쌓인 결과다. 저자는 학사대의 전나무를 찾을 때마다 그 웅장한 모습에서 최치원의 기상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살아 있는 나무를 통해 사라진 인간의 정신을 가늠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나무의 수명처럼 일정한 생물학적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 기억은 전해지는 동안 변형되고, 시대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최치원이라는 이름 역시 당대의 문장가에서 후대의 은둔자와 신선으로 거듭 해석되었다. 전나무가 환기하는 것은 한 인물의 변하지 않는 본모습보다, 그를 기억해 온 사람들의 오랜 시간이 아닐까. 나무 앞에 선 현재의 시선에는 수많은 과거의 시선이 겹쳐 있다. 이 책에서 나무는 자주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 양주의 녹나무가 지닌 왕성한 생명력은 당나라에서 활약한 최치원의 모습과 연결되고, 해인사의 전나무는 그의 기상을 떠올리게 한다.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인간의 성품과 대응시키는 방식은 오래된 문학적 전통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무의 존재가 인간을 위한 상징으로만 좁혀지는 순간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녹나무의 씨앗은 문장가의 명성을 위해 퍼져 나가지 않으며, 전나무는 누군가의 정신을 보존하려고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나무에게는 인간의 해석이 미처 포괄하지 못하는 고유한 생의 질서가 있다. 저자가 청량산에서 줄기 일부가 고사한 느티나무를 살피고, 오랜 나무를 보호해 온 사람들의 수고를 떠올리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각별하다. 나무를 인간의 역사와 연결하는 상상력 곁에 실제 생명을 향한 관찰과 돌봄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나 오래 기억될지 알 수 없다. 한때 세상의 질서를 바꾸려 했던 최치원의 문장은 비석과 문집에 전해지고, 그가 백성을 위해 조성했다고 전해지는 숲은 오늘날에도 새로운 생명을 길러 낸다. 그러나 문헌의 보존과 숲의 생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이어 간다. 문헌은 과거의 언어를 후대에 전달하고, 숲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명의 관계를 계속 만들어 낸다. 김재웅은 그 두 시간 사이를 걸으며 역사적 인물의 생애를 다시 읽는다. 상림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맡긴 미래를, 학사대에서는 자연을 통해 되살리는 과거를 마주한다.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무엇을 심고 어떤 것을 돌보았는가에 따라 후대가 물려받을 세계의 모습도 달라진다. 한 인간의 시대가 저문 뒤에도 숲은 자란다. 그 숲의 내일에는 우리가 오늘 선택한 삶의 방식까지 뿌리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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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일은 그저 자연을 감상하는 일일까. 오래된 나무의 굽은 줄기와 깊게 뻗은 뿌리, 세월의 흔적이 남은 껍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지켜보았을 나무,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한 시대의 흥망을 묵묵히 통과해 온 나무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 속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연대기와 기록만 따라가야 할까. 한 인물이 머물렀던 장소에 살아 있는 나무를 통해서도 그의 생각과 삶의 흔적을 읽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신라 말의 문장가이자 사상가였던 최치원. 교과서에서 만났던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당나라 유학, 뛰어난 문장력, 신라 사회의 개혁을 향한 노력, 그리고 가야산에서의 은거가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몇 개의 역사적 사실로 정리하고 나면 더 많은 질문이 남는다. 그는 무엇을 꿈꾸었을까.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이 끝내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그 마음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그 질문들을 책에서는 '나무'라는 새로운 통로로 이어 준다. 역사는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기억된다. 문헌과 비문, 시와 문장, 왕조의 기록은 과거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러나 기록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내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한 사람이 걸었던 길의 공기와 풍경, 그가 바라보았을 산과 숲, 오래 머물렀던 장소에 흐르는 정적 같은 것들이다.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최치원의 생애를 나무와 함께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독서당의 향나무에서 학문의 시간을 떠올리고, 상서장의 조각자나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을 생각하며, 해인사의 전나무 앞에서는 한 인간이 남긴 정신의 흔적을 되짚는다. 역사적 장소에 뿌리내린 나무들이 최치원의 삶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특히 나무를 통해 과거를 상상한다는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오랜 장소와 나무, 문헌 속 이야기를 함께 읽는 일은 역사에 생동감을 더한다. 나무 자체의 생태적 특징과 그 나무에 얽힌 전승, 후대 사람들이 간직해 온 기억이 겹쳐지면서 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 인물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다. 최치원을 문장가로만 기억하는 것과 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한계, 자연을 대하는 태도, 지역과 백성에게 남긴 흔적까지 함께 살피는 것은 분명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최치원의 삶에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뛰어난 능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학문을 익히고 과거에 급제했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한 역량을 지닌 인물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한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가 속한 사회에서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치원은 신라로 돌아온 뒤 개혁을 모색했지만, 당시의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한계 속에서 자신의 뜻을 온전히 실현하기 어려웠다. 이 대목에서 그의 삶은 오래전 한 지식인의 이야기만으로 머물지 않는다. 능력을 갖추고도 현실의 구조에 가로막히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은 시대를 달리해도 되풀이되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치원의 삶을 좌절한 천재의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는 않다. 그가 남긴 문장과 사상, 여러 장소에 전해지는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한 인간의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일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알게 된다. 뜻을 이루었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을 고민했는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남긴 생각이 후대에 어떤 질문을 건네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다음 문장은 최치원을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당나라의 수입학을 탐색하여 신라의 자국학을 섞어서 창조학으로 나아간 학자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문장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른 지식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려 했다는 점이다. 외부의 지식을 무조건 따르거나 기존의 전통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를 이해하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태도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서 벗어나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방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때 지식은 비로소 살아 있는 힘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치원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새롭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에서 특히 마음이 머무는 장소는 함양의 상림이다. 이 이야기가 인상적인 까닭은 숲의 의미가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는 일은 당장 눈앞의 성과를 얻기 어려운 일이다. 묘목은 자라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숲이 제 기능을 하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흐른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해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지금의 편리함만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환경까지 생각한다는 의미를 품는다. 자신이 심은 나무가 자라 거대한 숲이 되었을 때, 그 숲을 거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일일까. 진정한 돌봄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데 있지 않고, 누군가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남기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나무와 숲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오늘의 작은 행동이 내일 당장 결실을 맺지 않더라도, 그것이 다음 세대의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상림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책임과 보살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결과를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남기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일 것이다. 나무를 심는 행위가 한 시대의 애민 정신과 연결되고, 그 나무들이 오늘날 숲이라는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인간의 선의가 반드시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때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훨씬 긴 시간 동안 그 흔적을 이어 갈 수도 있다. 🔖“느티나무 한 줄기는 고사했지만, 건강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한 줄기가 죽었다고 해서 나무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일부를 잃었어도 다른 부분은 여전히 살아 있고, 나무는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이어 간다. 사람은 상처를 입거나 무언가를 잃었을 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회복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선택을 하기 전으로, 힘들었던 일을 겪기 전으로, 아무런 흠도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야 비로소 괜찮아졌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어떤 경험은 우리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회복이란 상처를 지닌 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무의 생태와 인간의 삶을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줄기가 고사한 뒤에도 살아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인간의 회복을 생각하는 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손상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손실 속에서도 삶을 이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더욱 마음이 머무는 것은 느티나무 주변에 보호막을 설치한 사람들의 손길이다. 저자는 그 배려를 사랑스럽고 고맙게 바라본다. 나무가 오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나무를 함부로 훼손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필요한 보호를 마련하는 일이다. 나무의 상처를 바라보며 그저 안타까워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가 내민 손길까지 살펴보는 시선. 그 부분에서 자연을 사랑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해인사의 학사대 전나무에 관한 문장도 여운을 남긴다. 🔖“비록 최치원의 육체는 예전에 사라졌지만, 그 기상은 학사대 전나무처럼 오랜 생명을 지속하면서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한 사람의 육체는 유한하지만 그가 남긴 생각과 글, 삶의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직접 만나 본 적 없는 옛사람에게서도 삶의 방향을 배우고, 수백 년 전의 문장에서 지금의 고민을 비춰 볼 만한 구절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인상적인 것은 최치원의 정신을 눈앞에 서 있는 전나무의 모습과 연결했다는 점이다. 웅장하게 자란 나무를 바라보며 한 사람의 기상을 떠올리고, 그 나무의 생명력을 통해 오래된 가르침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름조차 잊히는 사람이 많고, 기록으로 남은 사람조차 후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렇다면 오래 기억되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일까. 아니면 내가 남긴 생각과 행동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충분할까. 특히 ‘올곧게 살아가라’는 의미에 마음이 머물렀다. 올곧음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와는 다를 것이다. 현실의 복잡함을 이해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는 것, 타인과 자연을 대할 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기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나무가 큰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서도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듯, 사람의 가치 역시 반드시 화려한 성취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치원이라는 인물을 떠올릴 때 풍류라는 말도 빼놓기 어렵다. 그러나 풍류를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고 시를 읊는 여유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의 삶을 충분히 들여다보기 어려울 것이다. 🔖“나무가 오래도록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최치원 발자취를 찾아가는 우리의 산책도 평안하길 빌어 본다.” 나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사람의 산책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문장 안에 놓여 있다. 인간의 안녕과 자연의 안녕을 서로 분리하지 않는 태도다. 우리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연을 인간의 편의를 위한 자원으로만 바라볼 때가 있다. 숲은 휴식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고, 나무는 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되며, 생태적 가치는 인간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에 따라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나무는 인간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라고, 인간의 계획과 무관하게 계절을 지나며, 그 자체의 생명으로 존재한다.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은 인간이 아닌 생명도 그 자체로 살아갈 자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보여 주는 풍류는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가까워 보인다. 천천히 바라보고, 함부로 훼손하지 않으며, 그 안에 쌓인 시간을 헤아리는 태도 말이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며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서로 다른 층위다.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의 시간, 나무가 자라는 시간, 인간이 한 장소를 기억하는 시간, 그리고 오늘날 독자가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읽는 시간이 겹쳐진다. 사람은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으려 하지만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한 해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만큼 천천히 자라면서도 계절을 지나고, 햇빛과 비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명을 이어 간다. 그 과정은 인간의 성취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속된다.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바라보는 일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나무라고 생각했던 존재에서 수령과 생태, 주변 환경과의 관계, 그 장소에 얽힌 역사까지 발견할 수 있다.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풍경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통해 최치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 역시 비슷할 것이다. 역사 속 인물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다른 시선으로 다시 읽으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문장가의 삶을 따라가다 생태를 생각하고, 숲의 역사를 살피다 인간의 책임을 돌아보며, 오래된 나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짚게 된다. 그것이 한 권의 책이 지닌 확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이전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무는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인간의 기억에서 멀어진 이야기들 곁에서도 묵묵히 계절을 통과한다. 그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해결하려 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최치원의 삶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는 일은 과거를 향한 여행인 동시에 책을 읽으며 사유하는 나를 돌아보는 여행일 것이다. 오래된 문장과 살아 있는 나무가 만나는 자리에서 잊고 있던 삶의 속도를 되찾고, 무엇이 진정 오래 남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누군가가 더 오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어 준 그늘인지도 모른다. 나무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오늘 내가 심을 수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실제 나무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향한 배려일 수도 있으며, 쉽게 포기하지 않을 신념이나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실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천년을 건너온 나무의 시간 앞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남기는 깊은 여운이다. _ #나무로읽는최치원풍류길 #김재웅 #책과나무 #최치원 #생태인문기행 #인문도서 #철학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도서추천 #책소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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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나무로 읽는 최치원 풍류길 by김재웅 🌱 나무의 그늘에서 다시 만나는 최치원 천년의 문장가를 따라 걷는 생태 인문 기행! 고독한 지식인의 발자취에서 나무의 삶과 지혜를 발견하다. 🌱 ~ 최치원이라고 하면 학창시절 역사 시간에 공부했던 기억으로 신라시대의 천재 유학자였음이 먼저 떠오른다. 당나라에 유학을 떠났고 신라로 돌아와 개혁을 위한 시무10조 를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독특하다. 최치원의 생애를 나무와 연결시켰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최치원의 문학 작품에서 다양한 나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보았고 그의 발자취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 이야기를 생태 문학적 감성과 더불어 풀어냈다. 그래서 책에는 수많은 나무들과 그의 작품들이 함께 실려있다. 이야기는 경주에서 최치원이 태어난 독서당에서부터 시작한다. 이곳은 최치원이 태어나고 공부한 곳으로 해송이 감싸고 있고 향나무와 골담초가 있다. 6두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아찬 이상의 벼슬에 오를 수 없었기에 당나라도 유학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최치원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면 가는 곳 마다 멋진 나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상서장의 조각자 나무, 쌍계사의 삼나무, 국사암의 느티나무, 범왕리의 푸조나무, 성주사지의 보리수 등 곳곳에 그의 이야기와 함께 나무 이야기도 함께 펼쳐진다. 심지어 당나라 유학시절 장안에서 과거급제를 상징하는 계수나무, 화청지의 용뇌향나무, 지미성의 배롱나무, 쌍녀분의 팽나무 등 그의 발자취가 다국적이었던 만큼 나무이야기도 다국적이다 그는 가야산에 신선으로 환생했다고 하여 해인사에 그를 상징하는 전나무가 있는 데, 현실을 넘어 신화 속까지 그와 나무들이 함께 한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정치와 사상적 흐름을 파악한 최치원은 신라 개혁에 필요한 생태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더욱이 당나라의 수입학을 탐색하여 신라의 자국학을 섞어서 창조학으로 나아간 학자" 였다. 그럼에도 뜻을 널리 펼치지 못하고 은거하여 글을 쓰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 그에게는 자연이 유일한 친구였을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시대는 천재를 품지 못하는 것 같다. 문학과 자연을 사랑한 학자들은 많았지만 최치원만큼 넓디넓은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광범위했다 그리고 최치원의 풍류길을 따라 걸으며 재구성한 저자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자연과 문학을 풍류길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거니는 방식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시도가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booknamu 🔅< 책과나무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나무로읽는최치원풍류길 #김재웅 #책과나무 #최치원 #생태인문기행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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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읽는 최치원 풍류길 #나무로읽는최치원풍류길 #책과나무 #최치원 #나무 #김재웅 세이암_흐르는 물에 귀를 씻는다. 바위에 새긴 석각을 찾으러 이 바위 저 바위를 뛰어다니는 작가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찾고 나서 찍은 듯한 사진을 모변 괜히 내 귀에 흥분된 그 기분이 전해지는 듯하다. 그저 최치원의 흔적을 찾고 그 흔적 주변에 나무를 말한다. 단순해 보이는가? 읽다 보면 엄청난 내공이 느껴진다. 최치원의 글과 삶의 여정, 그리고 그 안에서 알 수 있는 나무 이야기를 현재 자라고 있거나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경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지지 않을 듯한데 이어지고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그의 글과 행적에 나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배경이 된다. 나무 이야기 흥미로운 것은 이 나무는 이래서 이런 이름이야~라는 생경한 정보의 제공에서부터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 책이 아니더라도 어디 숲에 가서 오래 근무하신 숲 해설가님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던가? 혼자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래 문장을 찾았다. 옮겨 적어본다. 난 이 책에서 작가님이 계속하고 싶은 말이 이런 것 아닌가 싶었다. '나뭇잎이 아닐 비(非)를 닮은 비자나무는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반대할 수 있는 젊은 날 최치원의 도전과 용기를 보여 주는 듯하다. 이렇게 동백나무와 비자나무는 절집 창건과 관련된 최치원 이야기를 운거산 구름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잇고 또 이어간다. 지팡이를 꽂았더니 나무가 되었다는 그 허무맹랑하다 싶은 싱겁고 흔한 이야기가 달리 읽힌다. 그때 지팡이의 굵기가 떠오르고 사진에서 보이는 아름드리나무의 품이 상상이 된다. 그때 그 지팡이가 아니면 어떠하고 굳이 그 나무가 지금 나무가 아니어도 괜찮다. 읽다 보면 말이다. 그냥 이어지고 연결되는 느낌 속에 빠져있다.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이야기는 꼭 아재 개그 같다. 느티나무는 '늦게 티가 난다'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우람하게 자라는 학사루의 느티나무를 보면 이름의 유래가 단박에 이해가 된다고 한다. 처음 듣고 이제라도 알게 되어 좋았던 지식이다.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라 상수리나무 모과나무는 '나무에 달린 참외'라는 뜻의 목과(木果)가 변한 것으로 아주 오래된 과일이라는.. 배롱나무 꽃이 백일홍, 백일 동안 피어있어서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피어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말에 장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산 나무 이야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고사목이 누워 있는 곳에 김성기의 시 '휴(休)'가 일품이다. "서 있느라 수고했네 / 이제 편히 누우시게나"와 같은 인용문에서는 눈길이 한참 머문다. 나무 이야기만으로는 이 책의 매력을 절반만 표현할 수 있다. 최치원이 쓴 시, 글에서 당나라에서까지 필력을 떨친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다. '~몸은 영화 티끌에 더럽기 쉽고, 마음 때는 물로도 씻기 어렵네. 누구랑 담담한 맛 의논하리오. 세상 사람들은 달고 취함 즐기는 것을~' 그 당시의 시로 지금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첩첩이 쌓인 바위 계곡을 굽이치는 물소리에 지척에서도 사람들의 말을 분간하기 어렵네. 항상 시비 소리가 귀에 들릴까 염려하여 흐르는 물소리로 온 산을 둘렀네' 그렇게 물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신선이 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동료가 주변 아파트 숲을 산책하다가 계수나무 향을 맡았다고 한다. 다음 산책에 끼어 그가 보았던 계수나무가 어디 있는지 이 책을 옆에 끼고 따라가 보리라 마음먹어 본다. 사람과 나무를 더불어 생각하며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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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3일을 비워 가을을 즐기러 목적지 정하지 않고 차가는대로 가고 가서 쉬고 자고 먹고 하기로 맘먹고 있는데 이 책이 딱 그 여정을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많은 진귀한 나무와 풀들이 있었나? 이곳에 가면 이 나무를 볼 수 있겠군 하는 것이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이 많아 지도를 펴들고 가볼곳을 책 속에서 본 곳중 찾아 본다.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 많게 책에 나와있어 어디부터 가야할지 모르지만 꼭 보고 싶은 나무가 몇개 있다. 서광사의 대문지기를 보고 싶고 풍혈대 바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보고 싶고 독서당에가서 한나절이상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 있어보고 싶다 혹시 이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쉬워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로드맵이 될 것이다 도서를 협찬받아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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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 사람의 마음을, 오늘의 숲에서 읽는 시간이라~~ 제목도 특이하지만...와, 나무를 따라 최치원을 만나다니 참 색다르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어요. 역사와 나무 이야기를 엮어 함께 산책하는 듯한 느낌!! 개인적인 느낌은 2장 ‘상림’이 좋았어요. 백성을 홍수에서 지키려 숲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누군가를 걱정한 마음이 오래도록 그늘을 내어 준다니요. 나무를 보면 꽃이나 단풍부터 떠올렸는데, 이제는 그곳에 얽힌 이야기도 궁금해졌어요. 이 책을 나들이를 가고 싶은 생각이 가열차게 들엇어요. 목차에서 가고 싶은 장소들... 체크하고 다음 나들이에 챙겨보려구요. 익숙한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해 줄 책이랍니다. #나무로읽는최치원풍류길 #책과나무 #김재웅 #최치원 #생태인문기행 #나무인문학 #인문학책추천 #역사기행 #함양상림 #책추천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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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나무'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 이번에 만난 책은 『나무로 읽는 최치원 풍류길』! 나무와 함께하는 최치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마치 숲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 1️⃣ 고운 최치원의 삶과 문학을 나무로 풀어낸 생태 인문 기행서 2️⃣ 독서당의 향나무부터 시작해 쌍계사의 삼나무까지! 나무와 함께하는 여행 3️⃣ 저자 김재웅 교수님, 나무 인문학의 행복한 만남을 위해 열심히 연구 중!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무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어요. 🌲💖 나무와 문학의 조화, 정말 멋지지 않나요? 이런 감동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 📖✨ #최치원 #나무 #생태인문학 #책추천 #독서 #숲속여행 #김재웅 #문학사랑 #인문학 #자연사랑 #독서모임 #책읽기 #소중한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