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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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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화면을 켜면 자극적인 썸네일과 함께 누군가를 단죄하는 목소리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제보를 받았다’는 가벼운 문장과 ‘판단은 시청자 몫’이라는 비겁한 면피용 멘트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들은 타인의 불행을 마구잡이로 해체하고 유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 강경윤 기자의 신간 《파괴자들》은 바로 그 무자비한 폭로 산업의 최전선에서, 진실이 난도질당하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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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화면을 켜면 자극적인 썸네일과 함께 누군가를 단죄하는 목소리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제보를 받았다’는 가벼운 문장과 ‘판단은 시청자 몫’이라는 비겁한 면피용 멘트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들은 타인의 불행을 마구잡이로 해체하고 유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 강경윤 기자의 신간 《파괴자들》은 바로 그 무자비한 폭로 산업의 최전선에서, 진실이 난도질당하고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는 현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이의 처절하고도 진솔한 기록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고 서늘해졌다. 그동안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심코 소비했던 수많은 가십과 자극적인 영상들이 과연 누구를 향한 칼날이었던가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20년 가까이 연예부 기자로 살아가며 연예 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맞서 싸워왔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통쾌한 권선징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고 가해자의 책임을 일부 인정받았음에도 저자는 자신이 ‘위너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피해자의 일상과, 한번 새겨진 주홍글씨는 판결문 한 장으로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은 몇 마디면 순식간에 퍼지지만,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이다.” 이 문장은 오늘날 미디어 생태계가 가진 가장 잔인한 폭력성을 정확히 관통한다. 사이버 레커들이 직조해 낸 서사는 언제나 매끄럽고 명쾌하다. 대중이 손쉽게 분노하고 손가락질할 수 있도록 확실한 악인을 만들어내며, 그 쾌감의 대가로 거대한 조회수와 돈을 챙긴다. 반면 진실은 언제나 수만 갈래로 찢긴 울퉁불퉁한 파편일 뿐이어서, 그 복잡한 진실을 맞춰나가는 과정은 지루하고 외롭기만 하다.

특히 책 속에서 다뤄지는 누군가의 비극과 벼랑 끝으로 몰린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더욱 뼈아프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겨진 산 자들은 고인의 뜻마저 제멋대로 편집해 또 다른 이윤의 수단으로 삼는다. 화면 너머의 사람이 진짜 살아숨쉬는 인간임을 잊어버린 채, 타인의 고통을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단순히 악질적인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날카로운 취재의 시선은 어느새 저자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타인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동안, 정작 자신 역시 갉아먹히며 내면의 괴물과 싸워야 했던 기자로서의 고뇌와 상처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끝내 펜을 놓지 않고 진실의 기록을 남긴 것은, “그래도 기자”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파괴자들》을 덮으며 우리 자신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거짓이 돈이 되고, 타인의 불행이 누군가의 축제가 되는 이 왜곡된 사슬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해한 방관자였는가, 아니면 또 다른 공범이었는가. 자극적인 스피커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매끄러운 거짓 대신 울퉁불퉁한 진실을 마주하려는 태도—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무겁고도 소중한 숙제일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 위에 세워진 화려한 탑이 더 이상 무소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 못하도록, 거짓이 돈이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에 우리 모두 눈을 떠야 할 때다.

l******2 2026.10.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