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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당신을 만난 것은 1999년 3월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는 게 형벌같다며 엄살을 부리던 스물세살짜리 여자애였습니다. 엄살만은 아니었던 것이, ''부모''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열아홉살 이후부터 저는, 무척 가난했고, 가족이라곤 여덟살 터울의 동생뿐인 사고무친이었으며, 젊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꾼 채 생계유지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던 제가, 처음 만난 당신 앞에서 제가 처해 있는 상황과 제 삶의 고달픔과 잠들어 깨고 싶지 않은 피로감에 대해 속속들이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맑고 고요하고 무엇이라도 꿰뚫을 듯 깊었던 당신의 눈빛...
헤어지기 직전, 제가 당신 앞에 수줍게 내민 책 <봉순이언니>에 당신은 이렇게 적어주셨습니다.
"많은 날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책 한귀퉁이에 당신처럼 예쁜 글씨체로 집주소와 이메일주소, 휴대전화번호까지 자글자글 적어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힘든 시간은 곧 지나갈 거예요. 하지만 더는 못 견디겠다 싶게 힘들거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모나미 볼펜으로 적힌 그 두 줄의 문장이, 당신의 그 말들이, 제겐 얼마나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지요. 당신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삶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야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 하지만 정말 혼자는 아니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벼린 송곳처럼 날카롭고 위태로웠던 저의 청춘은 당신의 위로 앞에서 본디의 여리고 순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날 이후, 힘든 상황에 놓일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인가. 내가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 일인가. 번번이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래서 당신께 다시 연락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이 제게 주문을 건 것처럼, 그때 이후 저의 삶은 눈에 띄게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10년만이라는 당신의 산문집을 읽었습니다.
거기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당신의 개인사와 속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언제나 빛나고, 당당하던, 그렇게만 보이던 당신이었는걸요. 당신에게도 그렇게 힘들고 외롭고 슬픈 날들이 있었다니, 그렇게 눈부시던 당신이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니, 그렇게 고요한 눈빛을 가진 당신이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다니, 그렇게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당신이 비오는 날 ''혼자'' 소주를 마시다니,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소설 열 권보다 힘들었을 오늘 당신의 고백들이,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것입니다. 이제 곧 지나간다, 지나간다, 낫는다, 낫는다...
혹시 아직도 외롭고 힘드신가요. 그렇다면 이제 제가 받았던 위로를 되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은 날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당신은 남의 아픔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작은 일에 감동하고 ''맥주도 와인도 위스키도 아닌 소주''를 좋아하는 소박한 사람이며, 누가 뭐래도 제겐 닮고 싶은 좋은 사람입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 당신의 이름은 공지영입니다. [인상깊은구절] 저는 처음으로 일기장에 그렇게 썼습니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러니 눈을 감지 말고, 책장을 덮지도 말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 간다...... 앞으로 가는 길이 아파도 간다...... 너는 소설가이고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 하고.봉순이언니> |
| 공지영 님이 일으킨 파문이 마음결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어쩌면 뼛속까지 저릿하게 울리는 듯 합니다. 그런데 골수에 와 닿는 그 떨림에 왠지 익숙한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아 처음엔 의아하였는데 곰곰 따져보니 이는 늘 내가 풍기던, 나에게서 퍼져나가던 고약한 악취와 같은 종류의 것임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다음부터는 더욱 헤어날 수 없는 강력한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어 속수무책, 그의 빗방울이 이끄는 세계로 흠뻑 젖어들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아픔과 그것을 낳은 버거운 세상이 혼자서만 감당해온 눈물이 아니었음을 가슴이 먼저 받아들이고 있음에 아연해졌습니다. 의식보다 먼저 온 몸이 그 자극에 기꺼워하며 함께 젖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새 꼭 닫아걸고 있었던 나의 <빈집>이 사람의 향기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공지영 님이 던지는 간곡한 위로를 수용하게 되면서 공연히 마음결 추스르기에 급급하였던 지난날의 모습이 억지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세상은 마음 다잡고 결연하게 나아가야만 하는 무자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새삼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리하여 공지영 님의 빗방울은 외따로이 흘러내려 아무 의미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눈물로 촉촉하게 적시며 다가와 나의 그것과도 한 움큼 큰 물방울로 합쳐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늘 스스로 지어낸 관념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나날이었습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서문에서 공지영 님이 들려준 고백과 같이 "세상은 따뜻한데 나만 늘 추운 듯 하였고, 유리창에 온 몸을 기대었으나 끝내 안쪽 불빛 있는 곳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어두운 바깥에서 떨고 있는 빗방울" 신세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분노의 언덕과 고독한 계곡을 지나며 부딪치고 멍들어 바다를 푸른빛으로 물들였던" 회한 가득한 생이라고 지레 못박아버렸습니다. 사실이건 관념에 기초한 것이건 간에 이러한 의식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머리로는 부정했지만 안다는 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휘둘린 듯 눈 못 뜨고 치달렸던 삶과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나를 <빈집>에 유폐시키고 스스로 세상을 향한 창을 닫아버리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지난날을 곱씹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자인 나에게 빗방울이 슬몃 다가온 것입니다. 그것도 우아한 자태로 근엄하게 훈계하듯 군림하는 모습이 아닌 때묻고 일그러진, 생채기를 그대로 지닌 나약하고 아픈 인간의 형상으로 넌지시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동일시 대상을 찾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우산을 던져 버리고 비를 맞고 있는 나와 같이 젖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흠뻑 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상처에 더불어 울먹이다보니 오랜 마법에서 깨어난 듯 내가 디딘 오늘의 땅이 비로소 또렷하게 보이고 아낌없이 보듬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일어났습니다. 패배로 여겨 안타깝게 부여잡고 있던 삶이 결코 끝은 아니었음을 밝히 알게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님을 다시 온몸으로 전율하며 받아들입니다. 함께 상처받으며, 쑥물 들며 흘러가는 생이니 나만 그리 아파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환하게 차 올랐습니다. 하여 공지영 님, 그의 치유의 능력에 기대어 갈피 못 잡고 흩날리던 마음결을 다시 추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의 아픔을 드러내놓고 또 다른 상처를 향하여 먼저 손짓하며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마음까지 생겨난 듯 합니다.빈집>빗방울처럼>빈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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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으로 공지영 이라는 작가가 쓴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뭐 유명하다는것 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나를 유혹할만큼,.. 혹은 유명한 인물이라
더 기피했을 수도,.. 요즘은 더욱 잘나가고 있으니,.나의 외면은 더 당연하리라.
읽어보지도 않고 지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가 해봤자 달콤한 말들로 나의 말초적인 감각 끄나풀들을 잠시 움직이게 하는게
다겠지,.. 그런 식으로 감정 소비하느니 냉소적인 웃음한번 날려주겠어!
이게 나의 공지영의 글을 처음 대할때의 마음자세, 태도 였다.
하지만 이책을 잡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신처럼 화려한 사람이, 부러울게 없는 사람이, 삶으로 부터 상처를
이렇게 받았단 말이야????????
어머, 어머나,.. 나의 호들갑은 이제 텍스트를 읽어가며 이렇게 뒤바뀐다
당신도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군요.
누구나 다 자신만의 지옥을 짊어지고 산다더니
당신도 예외는 아니였소 그려.
지금, 혼자라고 생각하며 몸서리치게 외롭고, 쓸쓸하고, 상처받은 영혼이있다면
공지영 선생님으로 부터 치유받기를 바란다.
나의 털어놓은 마음 한마디에,.글들이 치유해줄것이고 선생님의 그 솔직함이
치유해줄 것이라 믿는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니 이제 J, 실은 그를 용서하는 일보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감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도 저를 그 기억의 언저리에서 맴돌게 하는 이유겠지요. 이제는 다만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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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기간 동안에 회사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생기도 책의 내용도 짧아 연휴를 시작한 첫날에 그만 다 읽어버렸다. 현재 함께 읽기를 진행 중인 나머지 책 두권은 회사에 모셔놓구 온 참이라 아주 약간 (그러나 즐겁게) 난감했다. 아버지 집에서 책장을 둘러보았으나, 대개는 나하고 한참 취향이 빗나간 책들이었고, 한켠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내 젊은 시절의 책들은 변화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낡은 이야기를 담았거나 소설, 수필 등 시대를 초월할 능력을 가진 몇 권도 그나마 다 읽은 것들이었다.
그리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장을 뒤져 잡은 책이 공지영님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였다. 한 삼년 전쯤에 아내가 출간되고 얼마 안있어 구입한 책인거 같다. (잘 생각은 안 나지만..) 일년여 전에 반쯤 읽다가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해 다시 책장에 전시해 두었는데, 소설은 이미 진행 중인게 이미 있어 스토리를 섞기가 그렇고, 설날 연휴의 어수선함을 피하기 어려운 개인적 사정을 고려할 때, 딱딱하고 어려운 책은 영 아니란 생각을 하고나니 선택의 폭이라는게 별로 없었다.
절반 정도밖에 안 남은 분량이고 보니 앉은 자리에서 금방 다 읽어버렸다. 일년 여의 시간 동안 얼마나 내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는지, 또는 얼마간의 에스트로겐이 내 몸에서 추가로 생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의 별로라는 느낌과는 달리 쉽고 재밌게 읽혀졌다. 체 게바라라든지 루쉰에 대해 쓴 글이 특히 공감이 가고 좋은 느낌이었다. 그 동안 거의 신변잡기적인 수필류를 읽지 않다가 최근에 몰아쳐 읽은 것이 나의 편협한 정서에 약간의 확장을 초래한 모양이다. (좀 더 경청하는 사람, 따듯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까^^)
한 편의 제법 유명한 시와 그에서 파생된 단상들을 풀어나가는 형식의 글쓰기는 어쩜 그다지 매력있고 세련되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으나, 공지영님 특유의 거침없지만 호소력있는 글쓰기로 그러한 형식이 줄 수있는 약간의 유치함이나 지루함을 매우 잘 보완한 책인거 같다.
보통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말하기의 꼬투리를 잡기가 어렵다. 그것은 상대방이 그런 헛점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괜히 말트집을 잡았다가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처럼 상대방의 역습에 오히려 이쪽 기가 잔뜩 눌려버릴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공지영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그런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 모를 기에 압도되어 주눅이 들어 의견이 멈추어 버리는 느낌... 주위에 너무도 많은 그녀의 팬들이 존재해서인지, 원래 기싸움을 별로 싫어라 하는 나의 약한 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그녀의 책을 읽는 건 그런 느낌이 싫지만은 않아서 인거 같다. (마조히스트??)
이 책에 쓰여진 글들은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그다지 감상적이거나 하지 않다. 빗방울이 혼자인 것은 우리가 저마다 혼자인 것을 빗방울이라 부르기 때문인만큼 필연적인 선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자유로이 그러나 혼자서'(Frei Aber Einsam)는 철저히 의지적인 부분이기에 '혼자인 나'는 빗방울보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독특한 색채를 지닐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모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 한 괴테의 말처럼 나의 방황도, 그녀의 방황도 우리의 노력의 부산물일 뿐이라면,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운 방황'은 계속 되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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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던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과거의 나를 회상할 수 있게 해주어서 한참을 잊었던 내 지난날들의 상념에 젖게 해준 점이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던 기억의 한자락속으로 들어가보니 나 역시 혼자였었다. 젊은 날 방황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 한번 피식 웃어버렸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풋내기 아기 마음이였다 할까? 스무 살 시절 나는 세상이 주는 시련을 이겨내기에는 너무 어렸다. 시련을 이겨내는 나름대로의 비법은 달팽이처럼 안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최고다. 아니 그땐 그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런 나를 세상으로 불러 준 것은 다름아닌 그대. 이 책에서는 공지영님에게 J가 있듯이 나에게도 그대가 있었음이 떠오른다. 그 때 내가 사랑을 갈구했듯이 공지영님이 갈구했던 사랑역시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랬던 그대가 이별을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다. 난 이미 그대의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었는데 ..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눈물을 흘리는 행위밖에..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그대를 그러나 지금 그대가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는 걸 그대는 아는지. 가끔 아주 가끔 이렇게 그대가 생각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지금처럼 시를 읽거나 .. 그러나 빗방울처럼 흔들리는 나의 연인이여.슬퍼하지마 나는 언제나 혼자였음을 ... 달리는 나를 잠깐 멈추게 한 공지영님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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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이러니하게도 50ml, 100ml씩 다량으로 쏟아내는 그 빗방울이 혼자라니... 공지영의 10년 만에 발표한다는 에세이집은 일단 제목부터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 무턱대고 자신의 살아온 인생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박완서의 에세이처럼 자신의 가족얘기를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다만 공지영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통해서 혼자라는 외로움, 그리고 자연 속에서 찾는 평화와 자유에 대한 것, 그리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을 외면했었던 젊은 날들... 이런 것들에 대한 조용한 사색이 들어있는 에세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이 책은 마냥 시집처럼 자꾸 소리내어 읽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소리로 읽어낸 순간 따라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들이 있는데, 제가 그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친구에게 '그러지 마, 이건 진짠데,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하고 담담하게 말할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난 남들보다 더 많이 아파해... 같은 말인데도 어찌 공지영의 표현은 이렇게 마음을 꿰뚫는 것일까.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이라는 것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멀리 기웃거리기만 했지만, 결국은 사랑했고, 사랑받았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다는... 그 때의 내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다는... 그런 말들이 무수히 많은 빗방울 속에서도 언제나 혼자인 것만 같았던 나의 마음을 조용히 파고든다.
"진정한 외로움은 최선을 다한 뒤에야 찾아온다" 어떤 명쾌한 해답처럼 내 가슴을 치며 지나갔던 한 문장!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이겨 왔었구나... 잊고 있었던 외로움이 이제서야 뒤늦게 고개를 드는 것은, 내가 그동안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말이 되는구나... 그래서 살 수 있었구나.. 다 이기고, 다 견디고 이제는 이까짓 외로움 찾아와도 되기에 오는 거구나...
그 때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본다.... 그 시절이 있어 좋았노라고,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괜찮아, 괜찮아... 지금도 괜찮아... 혼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혼자인 것 같은 많은 빗방울들 속에 우린 같이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울지마... [2007-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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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우선은 제목에 끌렸습니다.
공지영 작가하면, 모두 알아주는 작가이니까. 라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했습니다. 99%는 책 제목 때문에 구입했다는 것이 옳은 것이지요.
비오는 밤, 따뜻한 우유 한 잔을 하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읽지 않고 쟁여 두었다가, 마음이 심란하고 괜히 짜증이 울컥 올라오는 엊저녁. 침대에 등을 대고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편지글이랄까요. 비슷한 문투였습니다. J가 누군지 굉장히 궁금하다가도, J를 나로 생각하면서 읽기도 하고요.
왼쪽 페이지의 시들이 굉장히 닿았습니다. 그 시인들에 대한 공지영 작가의 애정도 따뜻했고요. 가끔 묻어나는 인간적인 공작가님의 일상 모습도 따뜻했습니다.
쉬이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고, 뭐, 굳이 비오는 날 읽지 않아도 됐고요. 우선은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한 제목이더라고요. 모르고 있었는데 몇 번씩 되뇌일 만큼 입에 착 붙더라고요. 조금은 외롭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산문집 같습니다.
중간의 체게바라 이야기도 감명깊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시인 분들의 작품이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말로 쓰여진 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 언어를 적절하게 잘 버무린 그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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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에는 비가 내린다. 주르륵 주르륵 쏟아 붓는 빗줄기는 멈출 생각을 않고, 서글픔 자아내는 뼈저리게 사무치는 외로움만이 허공을 맴돌 뿐이다. 계절은 반드시 늦은 가을, 혹은 겨울이어야 하며, 고요하게 가슴을 내려치는 쓸쓸함의 눈물만이 손등위로 툭툭 떨어져 내린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하며, 누구와 조우해야하는가…….
누구나 이런 삶의 단편적인 고독들이 처절하게 사무쳐 올 때가 있다. 그때는 주저앉아 울고 싶지만, 메말라버린 내 가슴엔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살아야지. 공지영, 그녀가 말했듯이 지금 이 시간이 주인은 다름 아닌 나인 것을. 그래서 자신을 죽일 수 없으니 외롭더라도 견뎌야 한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시간들을.
아직 나는 그녀의 인생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보지 못했으나 인간은 누구나 혼자라는 외로움의 처절한 굴레 속에서 방황과 혼동을 겪게 되리라 생각 한다. 그녀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은 짤막한 작가의 프로필만으로도 짐작 할 수 있지만, 사적인 내면의 고통들을 토해내는 ‘문장’이라는 고백 속에서 더욱 그녀를 느끼게 되고, 그 고독의 허전함에 동참 할 수 있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통해 그녀가 얼마나 ‘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달게 되는 기회였다. 원래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시는 천재만이 쓸 수 있음을 알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그녀의 겸손한 고백 속에서도 시를 향한 그녀의 남다른 동경과 흠모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대성공을 거둔 작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도 간간히 그녀의 배려가 가득 담긴 성인들의 ‘시’가 등장하는데, 이번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시를 찬양하기 위한 에세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가득한 멋진 ‘시’들이 등장한다. ‘압둘 와합 알바야티’ 의 <외로움>이라는 시의 첫 구절인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고즈넉한 가을 밤 창가를 내려치는 외로움이 함축된 듯 느껴지는 이 고독한 한 문장이 주는 글의 힘은 얼마나 대단한지. 슬퍼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고 분주하게 보냈을 그녀의 삶의 편린은 불의의 습격처럼 내 빈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과연 실제 인물인가, 허상의 인물인가, 헷갈릴 만큼 J를 향한 고백과 일상의 소박함을 잠재우는 삶에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명백하다. J는 분명 그녀가 지극히 연모하는,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시겠지만, 여러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보인다. 가령 J가 절대적인 ‘신’의 입장이거나, 그녀 자신이거나, 혹은 부모이거나. 사랑을 하고 있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 존재의 유에서부터 출발해 귀결점을 맞게 될 미지의 누군가가 될 지도 모르겠다.
문득 어느 날 거울을 볼 때 내 자신이 혐오스러울 수도 있음을 그 언제인가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왠지 초라해 보이고, 슬퍼 보이고, 작은 일에 만족하지 못함을 스스로의 불만으로 쌓아두면서 힘겨운 내면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조금 더 많이 기도하고 조금 더 많이 침묵하면서’에 나왔던 그녀의 모습이 나와 많이도 닮아 있었다. 언제부터 나는 나 자신에게 불신을 가졌던가. 되돌아보면 부질없는 감상에 지나지 않을 그런 허전함의 망상을 그녀도 느꼈을까. 피로에게 툭툭 던지듯 회복을 바라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는다.
자전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에세이,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의 솔직한 일상의 고백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인간으로써의 과정들을 면밀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여행에서 느꼈던 환희, 소소한 삶의 구석에서 발견하게 되는 작은 기쁨, 사회로부터의 불신, 과거를 통한 미래의 점층적인 화해. 그 모든 것이 오늘날의 그녀를 있게 한 힘이자 모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단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도 스스로 자초하게 될 고통들과 부딪히면서 한 사람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그녀가 몹시도 부럽다.
깊어 가는 가을 밤, 외로움을 잊고 싶어 외로움을 찾게 될 때, 어김없이 곁에는 아무도 없지만, 반병쯤 남은 소주 한 병을 발견 할 때 나오는 희미한 미소. 책 읽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 하며, 볕 좋은 날, 테이블 위에 간단한 다과와 따스한 차와 책을 읽으며 그렇게 웃고 있을 공지영, 바로 그녀는 더욱 단단하게 여물어 가면서 소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노래하는 시인이 되리라. 더불어 이 책과 함께 두 시간의 데이트를 하며 외로움과 인생을 알아가는 내 모습 또한 한 층 성숙해 지리라. [인상깊은구절] 되돌아보면 진정한 외로움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거리를 기웃거리는 외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87외로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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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접한 공지영씨작품.
첫번째로 만난 작품은 즐거운 나의집이라는 소설이었고 두번째는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라는 이 시+수필집이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접한 곳은 라디오였다. 중고등학교시절 나는 라디오 듣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는데, 그때 라디오 광고에서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라는 책의 광고를 무척이나 자주,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광고는 나에게 공지영씨에 대한 막연한 몇가지추측을 하게 해주었다.
첫째, 공지영은 유명한 여류작가이다. 둘째, 공지영은 유명한 베스트셀러작가이다. 셋째, 사랑 후에 오는것들 이라는 책을 썼다.
그당시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이정도 였다.
그러나 지난 여름에, 즐거운 나의집이라는 소설을 읽고 공지영 작가에 대한 관심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기회가 된다면 공지영 작가님의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접하게 된, 몇년동안 우리집에 있었는데도, 나의 좁은시야로 인해 발견되지 못한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러브액츄얼리,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같은 영화를 옴니버스 영화라고 부른다면, 이책은 옴니버스 산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이책에서 또다른 인상적인 점은, 바로 J에게 말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이 J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줄 알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J는 Jesus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ㅡ후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인터넷에서도 사람들끼리 지영의 j이거나 jesus의 j일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ㅡ
즐거운 나의집에서 약간이나마 얻은 공지영작가님에 대한 정보 때문이었나보다.
키다리아저씨와 같은 편지형식에, 옴니버스 구성, 그리고 공지영 작가님의 필체까지!
나에겐 너무너무 완소할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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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문학가들이 쓴 산문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기형도의 시집은 없어도 산문집은 가지고 있고 하루키의 소설들도 좋지만 그의 수필집과 각종 기행문들도 눈에 띄면 찾아서 읽는다. 박완서님의 글들은 따뜻해서 계속 찾게된다. 소설가나 시인들의 산문집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남의 이야기들이 산문에서는 좀더 공감되고 인간의 냄새가 느껴져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여지껏 공지영의 소설들이 어딘가 주변을 맴도는 듯한 느낌과 잠시 경험했던 일들을 부풀려 작품의 상품성을 띄울려고 하는 건 아닌가라는 선입견에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러면서도 내 책장을 일정 부분을 그녀의 책들로 채우고 있는 게 내 자신도 놀랍다. 외적인 면만 본다면 그녀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살만큼의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 <봉순이 언니>에서 유추할 수 있는 유복한 유년시절, 그리고 외모나 학벌 글을 쓰는 능력 등... 하지만 그녀의 지나온 길들을 언론이나 그녀의 글들에서 들여다 보면 그녀의 개인사가 결코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의 그녀가 쓴 산문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예전보다는 풀어진, 어떤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려고 하는 모습이 그나마 줄어든 편안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본인은 외롭고 힘든 모습을 내 비쳤지만 이제 그러한 모습도 부끄럼 없이 숨길 없이 내보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그녀의 모습에서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이 떠나온 곳과 그 생각들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되어 편안하게 글을 쓰고 생활했으면 하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의 바램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