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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제목이 눈에 띄어 손에 든 책이다. '어린이 책을 읽는다'. '어린이에게 책을 어떻게 읽어 줄 것인가' 라든지, '어린이 책 분석'이라든지 '좋은 어린이 책 고르는 법' 뭐 이런 어떤 특정한 방향을 일깨워주는 뉘앙스의 제목이 아니었다. 그냥 어린이 책을 읽는다는 아무 느낌이 없는 듯한 제목은 오히려 무궁무진한 상상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로, 참 잘 된 제목이다.
손에 딱 잡히는 크기에 양장본이라서 왠지 신뢰가 가는 느낌, 책 끈도 있어서 읽고 있는 부분 표시하기도 쉽다. 그렇게 쉽게 손에 잡은 책이건만, 머리말부터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읽기 전엔 어린이들을 위한 부담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당한 양을 읽고 나서야 이게 어린이를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른이 어린이책을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풀어 쓴 서평집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꽤나 저명한 듯한 이 저자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진중하고 믿음직하게 여러 편의 어린이책(주로 문학)을 읽으면서 자신이 느낀 점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랜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등 우리에게 친숙한 책도 있고, 내가 처음 들어본(아마 우리나라에 소개가 안되어서 그럴 수도 있는) 작품도 여럿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심리학 책을 찾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심리학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겠지만 문학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해보면 주인공들의 심리를 저절로 분석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나도 좀 그런 성향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저자와는 약간 다른 것이, 주인공보다는 저자의 심리와 생각을 자꾸만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사실은, 저자가 주인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충분한 연관성이 있겠지만서도.
어린이책의 주인공들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그 책들 중에 과연 어린이를 위해 쓰여진 것이 얼마나 될까하는 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개중에는 아마 어른을 위해 쓰여진 것도 있겠지. 여기 소개된 10편 정도의 작품들 중 많은 수가 상처입은 아이들이나 우울한 이야기들이었다. 심리를 읽기 위해서는 아마도 명랑한 작품이 아니라 좀 어두운 작품이 오히려 수월할 것이라는 것은 추측할 수 있긴 하다.
아주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라도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의 값어치는 달라질 것이다. 좀더 진지하게 행간을 읽는 것, 그것이 어른들이 아이들 책을 볼때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처럼 그렇게 전문적으로 이야기의 액기스를 추출해 낸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좀 무리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어려서 읽었던 <하늘을 나는 교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상당히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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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딸아이를 낳은 뒤부터다. 딸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내 일터도 어린이 책을 출판하는 곳이기에 직업상 어린이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그림책을 비롯해 어린이 책을 꾸준하게 읽는 것은 다른 까닭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참고하여 가능한 내 아집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다른 차원의 세상에 가까운 존재인 어린이의 시선은 내게 가장 의미 있으며 참고할 만한 시선이다. 이러한 내 생각을 가와이 하야오를 통해 확인하는 것은 반갑고 기쁘다. 어른들의 현실 인식이 지나치게 단층적이고 상투적일 때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이 보는 것과 다른 진실을 본다. 어른의 눈은 상식으로 흐려져 있지만 아이들의 투명한 눈은 다른 진실을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말로 표현을 못한다. 아이들은 언어라는 표현 수단을 포기하고 이른바 ‘문제 행동’이라는 표현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어린이 문학의 존재 의의가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언어로 포현하는 것이 어린이 문학의 과제이다. 이 과제는 어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그 사이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달성된다. (12쪽) 가야이 하야오가 관심을 가지는 책은 ‘어린이의 눈빛’을 잃지 않은 어른이 쓴 책으로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사실 우리의 현실은 다층적이고 다양한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다층성을 직시하고 그것을 회피하지 않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진실은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문학은 진실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진실은 현대인에게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은 위험하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무심코 ‘영혼’에 관심을 가졌다가 직장을 잃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거나,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어렵사리 쌓아 올린 자연 과학의 체계가 흔들리는 등 비정상적으로 되기 쉽다. 그래서 어른들은 되도록 ‘영혼’을 외면한다. 여기에 어린이 책의 존재 의의가 있다. ‘어린이의 눈’은 어른이 간과하고 있는 ‘영혼’의 현상을 파악한다. 내가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심리 치료사로서 ‘영혼’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직업상 ‘영혼'의 문제 때문에 어린이 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셈이다. (21쪽) 가야이 하야오가 직업상 어린이 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 또한 나와 닮았다. 나 또한 직업상 어린이 책을 읽는 게 필요하기도 하다. 가야이 하야오가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어린이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고, 직업상 필요해서 어린이 책을 읽지만 어린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가와이 하야오는 심리 치료사인 자신이 왜 어린이 책을 읽는가 밝힌 뒤에 어린이 책 12편에 담긴 어린이의 시선과 삶의 진실, 영혼을 밝힌다. 이를테면 필리파 피어스의『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에서 “환상의 개는 소년의 마음속에 완전히 내재화되어 소년이 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고 얘기한다. 페터 헤르틀링의『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에서 카롤루스 선생님이 히르벨을 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자는 오히려 히르벨이 카롤루스 선생님을 두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보였다며 “버리는 사람과 버림받는 사람, 치료하는 사람과 치료받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우리가 단순히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구별하기 힘든 게 아닐까?” 의문을 갖는다. 이와 같은 가와이 하야오의 독법은 아주 흡입력이 강해서 또 하나의 어린이 문학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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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아동문학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과학동화나 역사이야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아동문학이 출판되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아동문학은 작가가 아동이나 동심을 갖고 있는 어른들에게 읽히기 위해 창조한 시·동화·소설·희곡 등의 문학을 말한다. ''어린이 책을 읽는다(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군 옮김, 비룡소 펴냄)''에서는 이를 어린이 책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와이 하야오는 분석심리학자이다. 분석심리학은 알 수 없는 상징을 실마리로 무의식속의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킨다.쉽게 말하면, 꿈속에서 본 상징물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거나 연상법을 사용하여 알아내고, 현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석심리학자로서 하야오는 어린이 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어린이 책을 우리 삶의 본질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어린이 책 안에서 인간의 깊숙한 곳에 내재된 본연의 성질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투명한 눈을 가진 아이들은 어른들이 놓치는 진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말로 조리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문제 행동''으로 나타낸다. ''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 에서 정신지체아인 히르벨은 자신을 도우려는 선생님에게 오줌을 눈 팬티를 던진다. 히르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자신의 방법대로 한 것이다. 어린이 책은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이 책은 어린이의 시각으로 쓰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실적 다층성과 마음의 다층성을 볼 수 있다. 현실적 다층성은 선과 악의 대립구조 사이에 제3의 길을 찾는다. ''하늘을 나는 교실''에서 사춘기 소년들은 유스투스 선생님의 올곧은 권위를 인정하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니히트라우허 아저씨를 찾아간다. 아이들은 두 종류의 권위를 적절하게 판단하여 자신들의 길을 간다. 마음의 다층성으로는 무의식의 세계,즉 ''영혼''이 있다. ''거기 마니가 있었다'' 에서 입양아인 안나는 마니라는 친구를 사귀지만, 마니는 현실이 아닌 상상속의 친구였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을 가졌던 할머니의 영혼, 마니와 친구가 된 것이다. 하야오가 추천하는 책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독서지도사로서 평범한 아이들과 조금 달라서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할까. ''거기 마니가 있었다''와 ''목 없는 큐피드''에서는 각각 입양과 재혼가정에서 힘들어 하는 아이가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입양을 확산시킬 요량으로 올해부터 입양의 날(5월 11일)을 지정했다. 앞으로는 입양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여성이 재혼하면서 데리고 간 아이는 누구의 성(姓)을 따라야 하는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따라서 가정환경의 변화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 아이는 히르벨이었다''에서는 정신지체아가, ''요새''에서는 신체장애아가 나온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서 정신지체아 ''미나코''는 고다니 선생님의 노력으로 아이들과 친해지게 된다. 친구들은 당번을 정해 미나코를 도와주고, 미나코를 반대하던 학부모들도 배려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한다. 우리는 아직도 장애 아이를 만나면 어색해 하고,불편해 한다. 그러나 미나코를 돌봐주었던 반 친구들처럼 조금만 양보한다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야오는 어린이 책을 "''어린이의 눈빛''을 잃지 않은 어른이 쓴 책이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이 책을 통해, 어린이는 여러 가지 사랑을 경험하여 건강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어린이들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