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이라...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절이 있었다고한다. 나와 먼 시절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그말이... 21세기라는 오늘 책 제목으로 나왔다. 내가 춤출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야!!!... 혁명에 대한 관점, 좌파의 시각으로 현실을 짚어낸 이 책은 여러가지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내가 춤출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은 미국의 아나키스트 운동가 엠마 골드만이 강연중에 여러번 언급했던 말을 가지고 온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던듯 싶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 제목으로 이 글귀를 가져오기로 한거겠지. 좌파에 대한 가장 깊은 오해중 하나가 있다면 좌파란? 재미없다이다. 좌파하면 떠올리는 그 첫번째는 딱딱한 이론과 유머없는 지루함인데... 그런 편견에 관해서다시 생각해줄 계기를 이 책이 한번쯤 마련해주지 않을까? 첫번째 이야기는 사이버상에서 펼쳐지는 컴퓨터 게임이 어떻게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현실에서 다시금 지배 이데올로기가 재 생산되는지를 유명한 시뮬레이션 게임들의 예를 통해서 쉽게 설명해준다. 예를 하나든다면, 너무나도 유명한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할경우를 들어보자. 먼저 게이머는 게임의 규칙을 숙지한다. 그다음부터는 더 많은 적들을 죽이고 레벨을 높이는 것에 집중한다. 여기서 졸(병졸)들은 단지 게임에 이기기 위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소모품에 대해서 고민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서는 순간 게임을 장악했던 게이머들은 실제 이 사회속에서 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게임속에서 가지고 있던 지배자의 의식을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낸다. 홍세화씨의 말대로 각 개인들은 자신의 존재를 통해 의식을 규정하지 않고, 의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규정해버리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게임은 게임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실의 진짜 모습을 의식하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게임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따라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도구가 될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하여금 우리가 몰랐던 사회적 실체를 분석하고 이해하게 하므로써 각자로 하여금 좌파적 관점의 시각을 갖게 할수 있는 놀이감이 될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1부에서는 이 외에도 몰랐던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SF? 보통 SF하면 사람들은 스타워즈나 스필버그의 공상 과학 영화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SF라는 과학적 허구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그럴듯해 보이는 이야기를 쓴 문학 장르로 죽 SF란 과학적 허구로 정의내릴수 있는 문학, 예술 장르이다. 판타지와는 엄격히 다른 문학 장르가 SF라는 것이다. SF도 여러 장르가 있어서 보통 전문지식을 갖고 읽는 과학 소설을 하드 SF 나와 같은 일반인들도 쉽게접할수 있는 SF를 소프트 SF라고 한다. SF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 잡지안에서 베트남 전쟁에 찬성했던 SF작가와 반대했던 SF작가들을 소개하는데... 폴 버호벤이 감독했던 스타쉽 트루퍼스의 저자 하인라인이 찬성진영의 대표적인 작가였다면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의 작가 필립 K 딕이 반대 진영의 대표 작가였다고 한다. 그 이외에도 이름을 들어봤음 직한 여러 작가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뒷편에는 처음 로봇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보여줬는데..로봇이라는 단어는 체코작가 까렐 차펙의 <로숨의 만능="" 로봇="">이라는 희곡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유래는 체코어 Robota에서 a를 뺀 단어로 Robota란 노동을 뜻한다고 한다. 결국 로봇의 최초의 유래는 노동으로 이어져온것이며 그것은 곧 노동계급의 저항과 반란 혁명에 관한 은유였던것이다. 이전까지 보아왔던 로봇들의 반란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영화속에서 보여지던 로봇들의 과격하고 잔인한 반란은 우리로 하여금 은연중 저항의 주체인 노동계급을 폭력적인 존재로 각인시킬수 있는 이미지로 작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안에는 사회주의자이자 아니키스트로 활동했던 좌파들의 이야기만 있는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인종주의자 바그너의 음악을 통해서 예술의 정치학을 발견하게 되며, jazz Suit No 2.Waltz 2로 유명한 쇼스타코비치의 외줄타기 음악인생을 통해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 자본주의로 타락해버린 소련 정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읽을수 있다. 또한 공산주의자인 피카소의 예술관과 표현에 대한 대한 당시 공산당의 사회주의예술론에 기반한 비판을 읽으면서 개인의 자유로운 창작 행위를 과연 당이나 국가가 통제하려는 시스템에 경계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의 이야기들은 학교에서 배웠던 남미 민요들이 실제는 민중 반란을 주제로 다루었다는 이야기이며, 체게바라와 관련된 에피소드.. 그리고, 역사의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서술하고 있다. 그 다음장으로 넘어가면 인터넷 광장의 대중 민주주의로써의 긍정적인 측면과 자본에 종속되어가는 인터넷 공간의 왜곡을 보여주므로써 정보 혁명을 어떻게 하면 대중의 것으로 만들것인지에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 감춰진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이라는 말에 맞게 저자는 우리 일상속에서 우리 스스로 몰랐던 좌파적 고민과 좌파적 관점을 제시한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내혁명이 아니야 - 엠마골드만 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 emma goldman로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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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진,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메이데이 2006 저 도발적인 제목이 아니었다면 인터넷에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혁명’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렇다면 혁명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보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평화가 아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발전이 아니다 누군가 관념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수락하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있다고 치자.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고 놓치기 아까운 것이라고 해도, 나의 본질이 희열로 가득차지 않는 한 그것은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식과 권위, 지적 허영같은 모든 껍데기는 가라, 도도한 개인주의의 선언으로 들렸다. 일단 이 책은 ‘혁명’에서 풍기는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켜줄 만큼 깔끔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모든 예술 아니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컴퓨터 게임과 해커, 음악과 미술, 애니메이션과 대중가요 그 모든 것에 얽혀있는 이데올로기를 해부하고 있는데, 풍부한 사례를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어 읽기쉽고 흡입력이 대단하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민주노총 정보통신부장으로 일한 저자가, 노동단체 기관지에 <세상야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모음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일상 속의 정치적 논쟁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골수 운동권에 속한 인사의 해박한 문화예술적 지식에 매료되었다. 그저 이름정도만 알고 있던 예술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작품이 어떻게 정치색을 띠었던가 하는 것, 또 간간이 정치권의 우스운 행태를 조롱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먼저 바그너. 히틀러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백번도 넘게 관람하고 악보를 암기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고 한다. 바그너 자체가 반유태적 게르만 민족주의자였으며, 나치가 가두 행진을 할 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하여, 한마디로 히틀러 하면 바그너,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떠오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트남전의 광기를 표현한 영화 <지옥의 묵시록>중, 단지 미군이 파도타기에 좋은 바닷가를 차지하기 위해 해변마을 하나를 초토화하는 장면에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쓰인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는 얘기이다. 그 다음 피카소. 1881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1973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혁명, 1차대전, 스페인혁명,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격동의 세기를 겪은 천재적 화가 피카소는 정열적인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다. 유명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에 개입한 나치의 잔학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그림이고, 좌파 정부군을 위해 지원금으로 많은 돈을 보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피카소의 지론을 보라. “당신들은 예술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술가는 눈만 가지고 있고, 음악가는 귀만 가지고 있고, 시인은 심장 겹겹이 온통 서정시로 이루어져있고, 권투선수는 근육덩어리만 가진 얼간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기는 커녕 예술가는 정치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마음을 찢기고, 열정을 느끼고, 행복하게 만드는 모든 일들에 반응하는 존재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 있고, 무수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삶에서 벗어나 우아한 냉담의 미덕을 보일 수 있겠나? 전혀! 미술은 집이나 장식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전쟁무기이다.” 피카소, 1945년 피카소는 1949년 파리 평화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포스터 <평화의 비둘기>를 내놓는 등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은 지금까지도 반전운동에서 주요한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일단 그 많은 명작들이 모두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붉은 돼지>... 하야오역시 60년대 대학에서 맑시즘과 안보투쟁에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心情左派-마음은 공산주의자-라고 밝혔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독재 권력이나 환경문제,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하야오의 경향이 이해가 되는 것같았다. 이제는 애니메이션 자본이 된 하야오에 대해, 지은이는 애정뿐만 아니라 비판을 놓지 말고 지켜보자고 권유한다. 지은이 최세진은 우리에게 “체 게바라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티셔츠에 가방에 심지어 맥주광고에까지 도용되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 자본주의는 그의 혁명사상도 투쟁정신도 아닌 오직 ‘잘 생긴 전사가 풍기는 1960년대의 낭만적 이미지’를 팔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은이는 남미의 혁명을 보기 위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에서 머문 적이 있으며, 지금도 다시 남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를 행동하게 만드는 이념논쟁은 어려워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내가 책으로 접한 그의 사유방식은 아주 마음에 든다. 분명한 철학, 성실한 자료조사, 해박하고 명쾌한 문체로 무장한 그의 책 역시 아주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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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1> 서울로 간 큰 언니가 아빠와 함께 밤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난 왜 언니가 학교에 있지 않고 집에 와있는지 엄마와 고모의 대화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이른바 언니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당시 아버지는 그런 언니를 서울까지 가셔서 직접 끌고 오신 것이었다. 아빠가 당시 내뱉으셨던 몹쓸 녀석이라는 말은..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 귀에 아직도 멍멍하게 남아있다. 학생 운동이라는 거.. 몹쓴 것이구나.. 기억 하나.
기억2> 학교 교정, 앳된 나와 친구들 사회 운동, 학생 운동에는 통 관심이 없다. 연애.. 남자친구.. 패션.. 학점..맛집.. 내게 당시의 고민들은 이런 주제들이었다. 이른바 386세대들이 학생때 고민했던 사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민주화 등 나에겐 그런 고민들이 전혀 없었다. 기억 두울..
늘 내가 생각하는,기억하는 좌파들의 사회운동이란 가난하고 아프고 공감받지 못하는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부터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니.. (제목은 엠마 골드만의 발언 중에서 딴 것) 한없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당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운동을,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저자는 말한다. 혁명이란, 어느 한 날 갑자기 땅에서 핑~솟는 것이 아니라 오랜 투쟁과 논쟁의 결과물이고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지속되는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또한 맑스가 이야기하던 그 사회는, 약자를 억압하고 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들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사회 운동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같은 이들이 일상 속 정치적 논쟁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봐달라고 이야기한다.
상상할 수 없는 그림들을 그렸던 피카소가 정열적인 공산당원이었음을.. 학생들이 즐겨부른 노래들이 금지곡으로 묶여버린 박정희 정권의 황당한 노래 검열과 2002년 미선·효순양의 죽음으로 시작된 광화문에서의 사회운동 등 알려지지 않은 혹은 알려졌지만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불순한 상상력'을 통해 그려낸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내가 사회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는 되지 않았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언론이 왜곡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불순한 상상력'을 통해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길..
한줄 리뷰> 좌파니 혁명이니 이런 단어들에 막연한 부담감 느끼는 사람들에게 강추 |
| 좀 엉뚱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 제목을 듣고는 그 노래가 먼저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 에 삽입된 노래. 난 춤을 추고 싶어 춤을 추면 내 온몸에서 열이나난 꿈을 꾸고 있어 꿈속에서 난 빛으로 변했어난 내가 아닌가봐 내 몸은 허공에 떠 있어내 몸속엔 빛이 가득 찼어 갈 수 있어 너의 기억속으로열이나 온몸이 열이나 난 춤추고 있어가벼워 온몸이 가벼워 난 꿈꾸고 있어나는 너야 너는 나야 너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어난 하늘을 날고 싶어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고파난 내가 아닌가봐 내 꿈은 날아가고 있어내 몸속엔 빛이 가득 찼어 갈 수 있어 너의 영혼속으로(기회되면 들어보시길)책을 놓고 뜬금없이 상관도 없는 노래 얘기냐, 라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내게는 이 두가지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원더풀데이즈를 꿈꾸는 것과 내가 춤을 추며 혁명을 꿈꾸는 것은 궁극적으로 희망가득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것이니까.사상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굳이 좌파라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함께 어우러져 신명나게 어깨춤 출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다보면 무척 색다른 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되어 재미있어진다. 그저 흥겨운 댄스풍의 월드컵 노래로만 알고 있었던 첨바왐바의 노래들이 실제로는 영국의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하나의 상품처럼 쓰이는 체 게바라의 사진이 사실은 사진작가 꼬다르의 작품으로 그가 유일하게 소유권을 요구했던 것은 체의 사진을 영국의 한 보드카 회사에서 광고로 썼을때뿐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야기들도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조근조근 얘기해주니까 훨씬 더 쉽게 이해되고 그 뜻을 알 수 있어 좋다.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이다.인터넷을 비롯하여 음악, 미술, 종교까지 세계관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아주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고 있으니 굳이 '투쟁하자!'라는 전투적인 용어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또한 이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점이고, 또한 다른 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춤을 추고, 꿈을 꾸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것이 혁명인 것이다. 그런 멋진 미래의 상상은 얼마나 멋진가. 나는 혁명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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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좌파? 제목을 보며, 나야말로, 책 속에 감춰진 것들에 대해 불온한 상상을 했더랬다. 좌파라는 말을 통해 미리부터, 정치적 반감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했다면, 나 역시도 현대 정치 문화를 양분화 하는 사고에 이미 깊숙이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생각이긴 하지만, ‘정치’라는 말은, ‘한다.’ 라는 동사 외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동사가 없는 듯하다, 쉬운 예로, 공은 던지고, 받는다, 밥은 하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대부분의 단어들이 그래도 썩 어울리는 두 개 정도의 상대적인 의미의 동사, 혹은 행위의 동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정치’를 당한다, 정치를 받는다, 내 짧은 어휘로 아무리 연결해 봐도 피동적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 혼자 비약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런즉슨, 정치는 모든 사람이 ‘하는’에 닿아있는 주체적인 단어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상의 모든 행위는 정치다. 티브이의 채널을 선택하고, 상품을 소비하고, 영화를 보고, 예술을 관람하는 행위,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단순해 보이는 그것조차도 말이다. 그 모두가 실은 모두 명백히 정치적인 것이라는 논리를 우리는 이 책을 넘기면서 낱낱이 목격할 수 있다.
그럼 우선, 좌파라고 일컬어지는 사람, 그들은 누구인가, 실은 지금껏, 좌파는, 진실을 남김없이 까발리면 되버리곤 했다. 그 어느 시대나 다수가 사용하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은 자, 그들이 좌파가 되어 버렸다. 다수가 진리라고 말하는데 아닌 것 같다며 손을 드는 자, 좌파가 되었다. 여기,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이 또 한 번 드러난다. 음악과 미술과 인터넷과 영화와 온갖 분야를 아우르는 곳에서 우리는 깜짝 파티라도 하듯, 좌파라는 옷을 입은 그들과 마주친다. 왼손을 들었을 뿐이다. 사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해 혹해 상상력을 발휘했을 뿐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세계의 모든 곳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좌파를 색출해 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어리석게도 좌파라며 그 존재를 그 상상력을 싹 다 없애 버린다면? 조지오웰이 ‘1984’에서 말하는 그 세계로 직행하는 것이 되는가? 아니면 존 레논이 상상한 평화로운 세상이 될까? 그것을 이 책은 묻고 있다.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좌파가 있다. 불편한 진실을 당당히 드러내는 자, 불편한 것들을 우리는 뒷주머니에 감추듯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호주머니에서 떨어지는 진실이 있고, 그것을 주어서 자기 변화의 촉매로 쓰는 자가 있는 것이다.
나는 묻는다, 진실을 안다면, 우리의 일상이 행복할까? 실은 지독히도 머리 아픈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음악을 들으며 그의 정치 성향과, 사회적 상황을 생각하고, 피곤에 절어 스트레스라도 털어버리기 위해 선택한 가벼운 영화에서도, 기분 풀이로 한 번 해본 게임에서도, 그 나라의 뿌리 깊은 정치색을, 편견을, 숨겨진 자본주의의 논리를 발견해 내야 한다면, 예술을 예술이 아닌 정치논리로 봐야 한다면, 매 번 마주하는 진실들이 불편하고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감춰진 진실이라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언제나 드러나 있었다. 한 장의 종이 보다 더 얇은 현실은 조그마한 바늘 하나로도 손쉽게 뚫을 수 있었다, 바늘 끝이 날카롭게 다른 한 손가락을 찌르는, 그 찰나의 아픔에 우리는 얇은 현실을 들추기를 감히,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러나 알고 있다. 진실은 어디에서건 들쭉날쭉 역사라는 긴 실을 따라 내 눈 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끊임없이 나에게 알기를, 알아차리기를 강요할 것이라는 것을.
복잡한 거리에서도, 골목길에서도, 너른 광장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는 진실들과 시시때때로 마주쳐야 한다면, 결국 그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더운 여름에도 우리는 서늘한 추위를 느끼는 사람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걷게 되는것이다. 다만 내 신발의 코만을 바라보며 걸을 뿐이다. 그리고 설령 눈을 들어 깃발을 보았을지언정, 어느 누군가는, 끄집어내려, 밟았을 것이고, 걸레처럼 사용 했을 수 있다. 아니, 어느 누구가 아니다. 내가 그렇다, 나는 한 번도 진실이라는 깃발이 펄럭이는 그 높이까지 눈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불편했다. 나는 경직된 자세로, 행진 하듯, 걷고 있을 뿐이었다. 진실을 알고서도 그 진실을 다른 이에게 알릴 용기도 없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아주 작은 행동으로라도 옮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음을 알기에 감히 알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허나, 생각해보자. 지금은 혁명의 바바리코트를 걸쳐 입고 서로의 팔짱을 끼고 무겁게 걸어나가야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껏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색다른 자리에 서서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고, 노래하듯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혁명이 피로 물들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 조차도 우파적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었다면, 생각을 깨자. 혁명이 일상적이고 가벼울 수 있다는 불온한 상상력을 발휘하자, 우리가 일상을 혁명으로 전복시킨다면, 함께 춤을 추게 될지 모른다. 체게바라까지, 혁명까지도, 웃음거리로 만들고, 상품화 시키고 소비해 내는 시대이다. 혁명조차도 지금은 파티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알던 혁명보다 더 가벼워지고, 핏빛은 연해져야 한다. 춤을 추며 뛰어 노는 축제와 같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가는... 이라는 말로 한꺼번에 폭발하려는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바로 그 파티 위한 준비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회의 급격한 질적 변화'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오로지 그날을 위해 참고, 희생하고, 결의하고 , 투쟁- 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 혁명은 그날부터 시작한다고 믿었던 것은 잘못된 생각일지 모른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의식의 급격한 변화가 어느 한 날에 일어날 리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날은 오랜 논쟁과 투쟁, 반란의 결과물이고, 하루하루가 바로 그날 이었습니다. 그 혁명은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 지속되는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그 준비는, 나의 오늘을 꿰뚫고, 내일에 대한 상상을 반전시킴으로서, 일상에 대한 불온하지만 즐거운 상상을 통해, 감히, 일상을 전복시킴으로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좀 더 즐겁고 유익한 새로운 운동들이 가능하지 않을까요?p37
나를 춤추게 하는 것,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상상하고, 꿈꾸고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나와 우리의 혁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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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 - Emma Goldman 혁명은 변화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변화하고자 하는 몸부림. 육체적인 과격함과 정신적 투쟁. 소리없는 투쟁이라 하여도 변화의 시작은 소리없이 이루어 진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에서는 자신들이 투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혁명을 시도해 나갔던 좌파들이 나온다. 사실 생소한 이야기도 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존레논, 첨바왐바, 피카소, 체 게바라, 쇼스타코비치, 조지오웰, 미야자키 하야오... 등등 게임, SF, 핵커, 인터넷... 문화현상과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작은 움직임을 경험했다. 그것이 작은 움직임이라 했을 지라도 혁명의 몸짓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변화의 시도는 아름답다. 올바른 변화는 혁명이 된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수많은 혁명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혁명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동원해 우리가 해 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모습도 자신이 춤추고자 시도하는 변화와 혁명의 물결이 아닐까? 광고주를 압박하고, 특정당을 해킹하고, 칭찬받을 사람은 칭찬하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혁명이 될 것이다. 누군가가 싸웠기에, 우린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작은 행동이 미래의 후손에게 혁명이 될 수 있겠지. 칭찬하고 싶다. 우리의 행동을... 좌파들의 상상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