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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저자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받들어 사기 33권을 완성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룩한 업적이기에 가치 있는 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그의 작업으로 인해 중국 고대사가 살아났고, 잘 정리되어 후대들에 전해진다. 만일 그가 고통스러운 삶에 굴복하고 이러한 일을 포기했더라면 중국의 역사가 어떻게 남았을까? 생각해 볼 때 아득한 마음이 된다. 우리 후대인들은 이 사기 하나로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이 책은 동양 역사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저서다. 저자는 후한 무제 때 사람이다. 흉노와의 싸움에서 이릉 장군이 흉노에 마지못해 투항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때 혼자 이릉을 변호해 무제에게 큰 노여움을 산다. 그리고 큰 형벌인 궁형에 처해 진다. 그 후 저자는 모든 것을 잊고 아버지의 유지 속에 역사 편찬에 마음을 다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념비적인 역사서가 완성된다.
이 책은 소장용으로 괜찮은 편찬이 되어 있다. 3권으로 이루어졌는데 번역도 깔끔하고, 표지도 단단한 재질로 되어 있어 읽기에 좋고 보관하기도 좋다. 그리고 옆에 두고 수시로 참고하기 좋을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한문 원본의 글들이 원문을 앞세우고 직역을 해 보여주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완전히 의역이 되어있다. 번역가의 의도대로 따라가면 저자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뜻을 접할 수 있다. 내용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누구나 독자가 될 수 있다. 어린 학생들도 읽어낼 수 있을 듯한 번역서다. 참 감사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가가 참으로 소중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에는 자신이 겪은 여러 고통스러운 인생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나는 역사 속의 그런 인간관계의 불합리성을 바르게 교정하여 제시해 주는 일을 하는 역사가의 고귀한 사업에 심취해 있다고 해도 될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에 조금은 보상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역사 속에서 만난 내용들을 가장 합리적으로 다듬어 보여주는 관점을 지니고 있다. 객관을 바탕으로 한 평가가 담겨져 있는 제대로 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1권은 인물 열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이숙제로부터 시작하여 진시황의 의부로 인식되는 여불위까지 제시되어 있다.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항에서 우리들에게 만을 걸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건너면서 숱한 인물들이 명멸해 갔고, 이 부분에서는 그 시대의 인물들이 전부를 이룬다. 정치가도 있고, 사상가도 있다. 각 국의 왕들보다 실질적인 힘을 가졌던 왕족들의 이야기도 있고, 춘추오패를 이끌던 유명한 인물들도 나열되어 있다. 또한 병법가도 있고, 진나라의 통일에 기여했던 정치가, 사상가도 있다. 모두가 쉽게 기억 속에 들어온다. 한 예로 제나라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던 인물인 관중의 이야기를 한다. 포숙아와의 관계 속에서 ‘관포지교’란 유명한 고사성어를 남기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환공이 된 인물과 정치적인 적의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환공이 왕 위에 올랐다. 그의 당연히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포숙아가 그를 환공에게 추천을 하고 환공은 통이 크게 그를 수용한다. 그리고 그를 재상에 임명한다. 관중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재가 춘추시대 패자국으로 등극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상히 나열하면서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된 책이다.
노자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신릉군 등을 통해서 전국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소진과 장의를 통해서 진나라에 대행해 나가는 육국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오자서를 통해서 오월동주, 와신상담의 고사를 알게 하고, 손자, 오자를 통해서 병법의 진수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악의, 인상여. 굴원 등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시대의 흐름도 당대의 풍속도를 잘 알게 만든다. 인물들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깨우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부분이다. 많은 일화들에 제시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혀진다.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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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이 녹아있는 [사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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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은 '천하에 흩어진 옛 기록을 망라하여 역대 왕조며 왕자들의 흥망 성쇠를 시종일관 관찰함으러써 사실에 입각, 고찰 논증하니, 대중 삼대를 추정하여 기술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를 기록하되 위로는 황제 헌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래로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12본기를 지은 것'이다. 이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사마천의 관심과 기술 태도는 쉽게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같은 양상을 띠지만, 사마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백과사전을 역사서로 정립해 낸 것이다. (마지막에 '태사공 자서'라고 자신의 열전은 한 편이다.)
위와 같이 간략히 [사기]에 대해 살펴본 바와 같이 백과사전식의 역사서인 이유로 수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 나에게 깊이 와닿은 인물이 있음은 물론이다. 나와 같은 고전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백이와 숙제부터 시작하는 이 인물들의 열전은 때론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형광펜으로 돌돌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할 만큼 기찬 인물들의 열전이 기록되어 있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에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이사. 이사열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사는 본래 초나라 상채 사람으로 마음 품은 바가있어 진라라 왕에게 유세한다. 하지만 진나라의 종실 및 대신들은 왕에게 그가 진나라 사람이 아니므로 추방하라 한다. 이에 이사는 글을 올린다.
'진나라에서 나는 물건만을 쓰신다고 하면, 야광의 벽옥을 조정에 장식할 수 없고, 우각, 상아로 만든 물건은 감상할 수 없으며, 정나라와 위나라의 미녀는 후궁으로 올 수 없고, 준마들도 마구간에 넘칠 수 없으며, 강남의 금과 주석도 쓰임새에 충당할 수 없고.....그런데 인물을 취하는 것은 이와 다르게 논설의 가부와 행위의 곡직을 말하지 않고 진나라 사람이 아니면 추방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진나라가 존중하는 것은 여색과 음악뿐이며 인물은 경멸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천하의 제후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아~~ 사기를 읽다보니 많은 인물들의 언변은 정말 놀랍다. 그 언변은 오랜 세월 책에 몰두하여 습득한 것이고 (한 인물은 삼 년동안 두문불출. 책만 읽었다 한다.) 그것을 사마천이 정리하고, 교수님들이 번역 후, 내 눈에 읽히고 마음에 와닿는다. 이 사기열전이 이천여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고하나 세월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나는 중간중간 건너뛰면서 관심분야의 열전을 골라서 읽은 후 작품해설을 읽었으나, 나 같은 비전공자는 필히 작품해설부터 읽었으면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품해설은 절대 미리 읽지 않아서...) 그러면 작품들의 넓이와 깊이에 더 많이 감동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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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의 원제목은 《태사공서》였다. 태사공 사마천이 42세 이후 본격적으로 집필하여 14년에 걸쳐 완성한 모두 130권 52만 6,500자에 이르는 기전체통사로, 제왕을 기록한 12본기, 제후를 기록한 30세가, 뛰어난 인물을 기록한 70열전, 그리고 각종 제도를 기록한 8서, 연대기에 해당하는 10표로 이루어졌다. 시간적으로 전설상의 삼황오제에서 한무제까지 약 3천년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옛 로마시대의 지중해에까지 널리 아우르고, 내용으로는 정치, 역사, 천문, 지리, 철학, 문학, 경제, 군사, 법학, 의학, 수리 등 다방면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포괄한 중국문사의 금자탑이다. 고금의 역사적 변화와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사마천이란 위대한 역사가/문학가/저널리스트의 다중적 시선으로 마름질한 대작이다. 중국문학에 있어서 《사기》의 영향은 지대한데 진한시대의 산문중의 으뜸이요, 뒷날 당송8대가의 산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한유韓愈는 《사기》를 「웅심아건雄深雅健」 즉, 웅장하고 깊고 우아하고 강건하다 평하였다.
![]() 저술의 취지는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꿰뚫어 일가의 설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총130편 52만 6천5백자로, 12편의 《본기本紀》、10편의 《표表》、8편의 《서書》、30편의 《세가世家》、70편의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체제는 유기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텍스트인데, 본기는 연대기형식으로 제왕을 논하고, 세가는 제후를, 표는 연표로 시사적 기록을, 서는 제도와 문물을 상술하고 열전은 인물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기란 말은 고서 《우본기》에서 유래하며 황제로부터 한무제에 이르는 역대 왕조와 제왕의 흥패 그리고 중대한 정치적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흩어져 있는 천하의 옛일들을 수집하고 망라하여 제왕 행적들의 시말과 성쇠를 탐구하고 관찰한 다음, 사실에 근거하여 위로 3대의 역사를 간략히 추구하고, 아래로는 무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12본기를 서술했습니다. 순서대로 열거하면 이렇습니다: 오제본기(황제, 전욱, 제곡, 요, 순),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진본기,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고조본기, 여후본기, 효문본기, 효경본기, 효무본기. 표는 시간을 축으로 삼고 표 형식으로 세계, 인물, 역사 사실을 나열하여 맥락을 밝혔습니다. 사적에는 시대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연대의 차이가 분명치 않아 10표를 만들었는데 크게 세표, 연표와 월표로 구분됩니다. 「삼대세표」(춘추이전) 「십이제후연표」(춘추) 「육국연표」(전국) 「진초지제월표」(진초교체기) 「한흥이래제후왕연표」(한나라) 「고조공신후자연표」 「혜경간후자연표」 「건원이래후자연표」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가 있습니다. 서는 《상서》에서 유래하고 사기의 총론에 해당하며 사회, 경제, 정치, 천문, 종교 같은 문물제도의 변화과정을 살폈습니다. 시대에 따라 예약의 늘어남과 줄어듦, 율력의 바뀜, 병권, 산천, 귀신, 하늘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해 그 득실과 폐단을 살피고 변화에 통하는 내용으로 8서를 지었습니다. 예의에 관한 「예서」, 음악에 관한 「악서」, 군사에 관한 「율서」, 역법에 관한 「역서」, 별과 기상 등 천문에 관한 「천관서」, 종교에 관한 「봉선서」, 물길을 다스리는 수리에 관한「하거서」, 경제에 관한 「평준서」가 그러합니다. 세가는 역사를 움직인 주체적 인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30개 수레바퀴살이 모두 하나의 속바퀴에 집중되어 그 운행이 무궁한 것처럼, 보필하는 신하들을 여기에 비기어 그들이 충신의 도로써 천자를 받드는 모습을 내용으로 30세가를 지었습니다. 세가란 작위와 녹봉을 받으며 그 지위를 대대로 물려 주고 받는 지반으로 서주 이래 분봉 받은 제후국과 서한 이래 역대 황제들이 봉한 유씨 종실 및 개국에 협조한 창업공신들을 포함합니다. 「오태백세가」에서 「전경중완세가」에 이르는 16편은 귀족제후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공자세가」는 공자 일생의 여러 활동을 기술하고 교육가와 정치가로서의 공자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진섭세가」는 진의 멸망을 초래한 진 말기 농민봉기군의 수령 진섭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외척세가」「초원왕세가」「형연세가」「제도혜왕세가」「양효왕세가」「오종세가」「삼왕세가」의 7편은 모두 한나라 황실의 외척과 종친에 관한 기록이며, 「소상국세가」「조상국세가」「유후세가」「진승상세가」「강후주발세가」의 5편은 한나라 개국공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열전은 정의롭게 행동하고 남에게 억눌리지 않는 기개로 세상을 대체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친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70편을 지었습니다. 열전은 인물을 서술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한 사람만의 전기인 「전전專傳」(위공자열전), 두 사람 이상의 전기를 합친 「합전合傳」(굴원가생열전), 한 사람의 전기 뒤에다 그와 관련된 사적이나 측근의 전기를 덧붙인 「부전附傳」(위기무안후열전), 같은 부류의 인물들을 같은 전기에 다룬 「유전類傳」(혹리열전, 자객열전)으로 나뉩니다. 태사공자서는 열전의 마지막편이지만 사실은 사기 129권 전체에 대한 서문이자 결론입니다. 자신의 생애와 가문내력, 그리고 학술적 배경과 경력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 사마담의 중요 논문인 「논육가요지」 전문을 수록하여 아버지의 염원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자신의 학술적 입장을 동시에 밝혔습니다. 전문은 7,812자로 이루어졌는데, 1)사마천의 가계 서술, 2)사마씨 부자의 「논육가요지」, 3)사마천의 청년시절과 부친의 죽음, 그리고 태사령이 된 자신, 4)사마천이 아버지 유언을 받는 과정, 5)사마천과 호수와의 《춘추》논쟁, 6)궁형을 받고 발분저술하게된 동기, 7)《사기》 전편의 해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기가 참조한 참고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정식 텍스트만 따진다면 102종의 전적이 참고서로 등장합니다. 그 중 6경 및 주석서가 23종, 제자백가서가 52종, 고금 역사서 및 황실 기록이 20종, 문학서가 7종입니다. 이 밖에도 조정의 공식문서와 비밀문서, 개인이 수집한 기록과 채록, 현장탐방 그리고 조상 대대로 편집하고 정리해 놓은 옛날 기록과 이야기들이 이용되었습니다. 가령 역사서를 살펴보면, 《상서》《춘추》《좌전》《국어》《세본》《전국책》《초한춘추》등이 있었는데, 이들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보완한 것이 기전체입니다. 단순히 시간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춘추》의 편년체와 《국어》의 국별체國別體의 장점을 흡수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황로사상을 신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로도가는 양생과 정치가 동일한 이치에서 비롯되었으며 양생의 도를 정치에 운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논육가요지》란 글에서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가의 여섯 학파를 논하면서 앞의 다섯학파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도가만은 각 학파의 장점만을 두루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의견이신지요? 육가에 대한 견해는 제 아버지의 생각과 동일합니다. 음양가의 장점은 사시운행의 큰 순서에 맞춰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고, 단점은 금기와 구속이 많고 사람을 두렵게 하는 요소가 많다는 점입니다. 유가의 장점은 군신, 부자, 부부, 장유의 구별이 분명한 점이고, 단점은 학설이 광범위하여 요점이 모자라 애를 써도 효과가 적다는 점입니다. 묵가의 장점은 경제에 대한 관심과 비용절감을 주장한 점이고, 단점은 지나친 검약을 강조하여 지키기가 어렵고 모두 실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법가의 장점은 군신 상하의 직분을 정확하게 규정한 점이고, 단점은 엄하기만 하고 은혜와 인정이 모자란다는 점입니다. 명가의 장점은 명분과 실질의 관계를 바로잡은 점이며, 단점은 지나친 명분에 얽매여 실질을 잃기 쉽다는 점입니다. 도가의 장점은 여러 학파의 장점을 취하여 시세와 더불어 순응발전하며, 요지는 간명하면서도 쉬워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며, 단점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태사공자서」이외에, 제자백가에 대한 선생님의 사상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무엇 무엇입니까? 유가에 대한 입장은 「중니제자열전」과 「맹자순경열전」, 「백이열전」과 「유림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니제자열전」은 공자의 77인의 제자들 중 35인의 사적을 기술하고 나머지 42인은 이름만 남겼습니다. 특히 단목사(자공)의 상업활동과 한 번 움직여 세상의 판도를 새로 짤 수 있는 외교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맹자순경열전」에서는 의를 중시한 맹자와 예를 중시한 순자를 같이 기술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개인과 사회에 대한 동일한 작용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백이열전」에서 당대 주류 사상이었던 춘추 공양학이 주장하는 천인감응설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백이와 숙제를 빌어 세상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하늘이 착한 이에게는 복을 내린다는 이른바 유가적 천도관의 허구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이, 숙제는 인덕(仁德)을 쌓고 행실이 깨끗했으나 굶어 죽었고, 공자 제자 중에서 가장 학문을 좋아하였던 안연은 가난해서 거친 음식조차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사람을 회로 먹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도둑놈’ 도척은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자연사했다. 만약 천도가 참으로 존재한다면, 이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었겠는지 심히 의혹스러울 뿐이다.」 「유림열전」은 유학의 발전사 및 전승관계를 서술하면서 고금의 유림인물 53명을 기술했습니다. 공자와 육경을 매우 존숭하지만 동중서와 공손홍으로 대표되는 한무제 당시 수구적 유학자들의 허위성 또한 풍자했습니다. 한마디로 곡학아세하는 위선적 소인은 조롱하고 반면에 정도를 걸은 군자는 존중했습니다. 음양가에 대한 견해는 「맹자순경열전」, 「일자열전」과「귀책열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유물론적 시각을 지녀 천도와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점복의 역사와 그 작용 및 한무제 시대의 각종 미신적 폐단을 비판적 어조로 서술했는데 귀신과 신선에 대한 갈망이 장생불사에 이르는 길이라는 미신에 반대했습니다. 도가에 대한 언급은 「노자한비열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자 4인의 합전으로, 도가와 법가의 연원관계를 밝히고 한나라 초기 도가가 실용주의화되고 은둔과 장수의 상징인 노자가 통치자의 구미에 맞추어 신선화되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의 황로철학을 이어받아 유물론적 자연관을 견지하면서 신비화된 음양오행설을 비판했습니다. 법가에 대한 언급은 「노자한비열전」, 「상군열전」, 「이사열전」과「혹리열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노자한비열전」에서 한비자의 비극에 대해 동정을 표하고 있고 봉건사회의 군신관계에 대한 감회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상군열전」에서는 상앙의 변법을 그리고, 「이사열전」에서는 입신출세, 처세술, 진시황을 도와 통일 대업을 이루고 각종 법제들을 마련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혹리열전」은 서한 전기에 살았던 12명의 포악한 관리들의 행적을 통해서 통치의 근본은 혹독한 법령이 아니라 도덕임을 강조했습니다. 법 적용이 지나치게 엄하면 도적이 들끓고 농민봉기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물론 혹리들 가운데 청렴하게 공적인 일을 처리하고, 법 집행을 함에 있어 아부하지 않는 자들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묵가에 대한 견해는 「맹자순경열전」과 「유협열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맹자순경열전」에서 묵적을 아주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비공과 검약만을 강조하고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의협심이 강한 유협들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보임안서〉에서 밝혔듯이,「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의 표시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짊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은 의리가 드러나는 바이며, 치욕을 당하면 용기로 결단하게 되며, 뜻을 세우는 것은 행동의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선비는 이 다섯을 갖춘 다음에야 세상에 몸을 맡겨 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제가 실제로 만나본 협객 곽해는 한나라 초의 유명한 관상가인 허부의 외손자로 조정에서 금지한 불법행위, 가령 가짜 동전을 만들거나 무덤을 도굴하는 등의 일을 하는 자입니다. 「유협열전」은 문제 이래 끊임없이 박해를 받아 무제 때 철저하게 소멸된 반체제 인사 유협들의 행적을 기념했습니다. 반고의 《한서漢書》라면 꿈도 꾸지 못할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