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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라고, 죽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인생이 크게 남다르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삶을 깨닫는데 왜 이리 더디었는 지.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아직까지도 피붙이의 죽음을 접하지 않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체감하지 못했지만, 칠순을 맞이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얼마나 더 뵈올까 싶은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릅니다. 원체 아이를 싫어했던 내가 내 아이를 통해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로부터 내 하나 뿐인 누이가 더 없이 소중해졌다. 어디 혈육뿐인가. 가깝게는 처가와 외가의 사람들의 작은 기쁨과 슬픔이 하나 둘씩 의미로 새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를 알고 기억하는 사람들 가슴 속에 흔적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시작했습니다다. 둘째 아이를 얻었을 즈음인 것같습니다.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는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란 형제로부터 오갈데 없는 무주고혼에 이르기까지 생명가진 모든 것들에게, 아니 자연을 나눈 모든 것들에게 보내는 초혼가이다. 이념의 부질없는 논쟁이나 물질의 속됨도 없이 그저 생명에 대한 절절히 끓어오르는 노래입니다.
새삼 느끼는 일입니다만 옛 선비들의 글은 참으로 간결합니다. 서문이나 발문이 그렇고 시가 그렇습니다. 그 간결함 속에는 숨기지 않는 진솔함이 있습니다. 한 글자 한어귀 소홀하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옛 글을 현대말로 옮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옛 사람들의 글이 정아하면서 읽혀지는 데 다소 소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는 옛 선비의 간결한 문체와 정을 참으로 잘 옮겼습니다. 차분차분 간결한 글 맛을 살리면서 조금은 감정에 격한듯 옮겨진 번역은 선빈의 가슴을 헤아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듯 합니다.
옛 글 다음에 붙여진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 풀이는 옛글과 교직하면서 한판 어울리는 굿판을 이룹니다. 그 속에서 죽은 자를 애통해 하였던, 그러나 지금도 죽어버린 선비를 애통히 여기는 저자의 그리움과 애통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선비는 먼저 죽은 자를 애통해 하고, 그리고 저자는 또 애통해하는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오히려 죽음을 애도 하는 자들의 비통함보다 그들의 가슴 속에 묻힌 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행복하리라 생각됩니다. 죽어도 기억되지 못한 것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까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묻히고 싶습니다. 차마 묻힐 수 없는 옥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 하나, 기다리는 시간은 한없이 길고 피어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기 때문이다. 죽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자체다. 이 어둠이 빛을 낳는다. 인간의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