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아멜리 노통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의 12권의 전작을 다 본 사람임을 밝힌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데 상당한 플러스알파로 작용했다. 이 책은 적과의 대립이 주가 되는, 노통 특유의 작품 시리즈들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원고를 제출할 때 장르 칸에 소설을 지워버리고, <배고픔 이건,="" 바로="" 나다=""> 라는 글을 적어 픽션이 아닌 사실적 묘사임을 암시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을 사람에게, 나는 최소한 아멜리 노통의 대표작들을 최소 3권은 읽어보길 권하며 (적의 화장법, 오후 네 시, 살인자의 건강법 정도?) 그녀의 놀라운 필치를 어느 정도 느껴본 후에, "반드시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읽은 후"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은 아멜리 노통 작품 중에 상당히 소프트한 소설에 속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멜리 노통의 세살때까지의 자서전이라면, <배고픔의 자서전="">은 네살 때부터 열일곱여덟의 자서전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연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책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2부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1부를 읽어야 더욱 그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그녀는 일본에 대해서 엄청난 향수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표현되어있으며, 파이프의 형이상학 관점이라든가 하는 것이 전작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한 권에 걸쳐 표현되어있기 때문에, 보모 니쇼상의 이야기라든지 이야기를 좀 더 순탄하고 잘 이해하려면 그 책을 읽고 이번 신작을 읽는 것이 더욱 와닿을 것이다. 국내에 이제서야 번역이 되어 나온 그녀의 열세번째 신작은, 우리가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녀 특유의 적과의 대립은 아니라 조금 아쉬운 점도 있다. 아멜리가 독자로 하여금 주는, ''에너지를 뺏기는 듯한 치열함''이 이 책엔 없는 것이다. 또 이 책으로 아멜리 노통을 처음 접하는 것은, 그녀 특유의 매력을 느끼는 데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멜리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녀의 뇌 구조를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여러 차례 느꼈을 것이고, 이 책은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에 대한 동기 부여가 충실히 되어있다. 그녀에 대해 한발자국 다가가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전적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독특하다 못해 소름끼치는 표현들과 문체들이 여전히 이 작품에서 빛난다. 단, 한가지 주의 할 것은 노통의 유년시절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_-; 외교관인 아버지 덕택에, 자신의 생활이 무척이나 유복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책에서는 정말이지 축복받은 환경의 연속이다. 일본에서 3년, 중국에서 3년, 뉴욕에서 3년, 방글라데시에서 3년..... 그리고 노통은 세계 각지에서, 정말 그 나이에 상상도 못하는 온갖 새로운 경험을 다 하게 되는데, 아마 그런 환경이 지금의 그녀가 글을 쓰는데 엄청난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이토록>배고픔의>이토록>이토록>배고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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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의 발칙한 자전적인 소설. 책날개에 담긴 한 컷의 작가의 사진. 흡사 마법을 걸듯, 묘하게 어필하는 눈빛에 이 책을 골랐다. 내겐 낯선 작가였고, 다양한 나라를 옮겨다닌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꽤나 유명하며, 글의 흡입력 또한 대단한 프랑스 작가라고 소개받았다.
일단 흡입력 하나는 끝내준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방글라데시와 뉴욕으로, 벨기에에서 다시 일본으로 이어지는 다국적인 삶의 토대. 그 속에서 작가는 놀랄만큼 삶의 다양한 결들을 보여준다.
그녀의 고향인 일본. 3살때 이미 신도에 경도되어 물에 대한 신성을 경험했고, 5살때 단 것에 대한 집착과 쾌락을 얘기한다. 6살 무렵부터 언니와 함께 스카치와 칵테일을 즐겨 마시게 된다. 자신의 삶을 12살이 마지막으로 규정하고 펼쳐나가는 글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내 나의 유년기와 겹쳐졌다. 나또한 시골에서 7살 때 배고픔을 알았다. 국수에 라면을 섞어먹는 하루 한끼, 강원도 거진항에서 하루종일 명태 배를 갈라 번 돈으로 연명하던 그때. 지독한 배고픔을 알았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학교를 옮겨다녔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나, 강원도 거진으로, 서울로, 다시 대구로, 마지막은 경북 문경으로... 잦은 전학 속에서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나를 발견했다.
12살때 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교실에 혼자 선 채로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 한명 한명이 나를 몰아세우는, 인민 재판의 뼈저린 기억도 있다. 철저한 소외와 고립을 맛봤다. 하여 노통브가 쏟아내는 유년의 기억들이 내가 가슴에 새기며, 때론 상흔처럼 남아있는 그것들을 헤집고 다녔다.
소설의 서두에 '바누아투'가 등장한다. 배고픔을 모르는 사람들. 너무 풍족하여 애써 노동하며 먹고 살 걱정이 필요없는 파라다이스. 노통브는 '배고픔은, 진정한 배고픔은, 벼락같이 느껴지는 식욕이 아니라 가슴을 풀어헤쳐 영혼의 본질을 빼내 오는 배고픔이요, 사랑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위대한 연인들은 다 배고픔의 학교에서 배웠다'라고 말한다.
유년의 노통브에게 배고픔은 곧 소통의 부족, 일상 속에서의 결락을 의미한다. 그런 그녀가 소통하는 방식은 다름 아닌 책읽기와 글쓰기다. 배고픔에 관한한 따라올자가 없다라고 호기롭게 말하는 그녀. 어느 날 콜레트의 '초록 밀랍'이란 단편을 접하며, 문장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문학적 아름다움을 경험한 일을 남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마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자기 애인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혼자 저절로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 P169
허무의 나라(라오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미얀마), 중국과 베트남, 방글라데시, 일본 등 1970~80년대 세계사적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이의 시각으로 명민하게, 또한 발랄하게 그려내는 작가에 경의를 표한다.
글쓰기를 '배고픔과 싸우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생존 수단'으로 삼았던 그녀. 책읽기를 통해 감탄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그 오묘하고도 절묘한 행위 뒤에 존재의 아름다움을 찾는 그녀를 상상해본다. 이 소설에 대한 리뷰들이 호의적이진 않으나, 단순히 좋다라고 표현하기엔 내게 선물한 유년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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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소설로만 읽혀지지 않는 작가의 이야기.
[두려움과 떨림],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등을 통해 아멜리 노통브의 생이 어떠했는지를 어느 정도 짐직하고 있었다. 벨기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미국, 중국, 방글라데시 등등 여러 나라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경험은 저자의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배고픔의 자서전] 은 제목에서 풍기고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유년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면모를 읽어볼 수 있었다. 어찌보면 조금은 지루하고, 또 반복적인 이야기라 "또??"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아멜리 노통브표 글쓰기로, 겹쳐지는 지루함보다는 그녀가 성장 과정을 통해 얻고 배우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구나 약간은 그녀만의 엉뚱하고 발랄함도 함께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지루함을 잊기에 충분했다.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게 느꼈던 음식에 대한 욕구, 그러한 욕구는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얘기하는 곳에선 웃음이 피어나고, 미국 뉴욕에서 사춘기 시절을 통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서 받았던 숭배, 그것에 대해 저자가 생각하고 취한 태도들을 읽으면서는 발칙함까지 들어서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조금은 남다르게 생각하고, 그러한 것들이 하나하나씩 쌓여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라는 사실은 부럽기까지 했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은 보통 그 이상이라는 생각을 종종 가지게 된다. 아름다움 앞에서 저자의 황홀함 그 이상인 태도가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 또한 다른 작품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남다른 영민함이 그녀의 생각하는 폭을 넓혀 주고, 남들과는 다르게 성장하게 해 주었고, 그러한 것들이 사춘기 시절의 다양한 독서를 통해 드러남은 놀랍기까지 했다.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한 편씩 소설을 발표할 정도로 글쓰기광이자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 온 그녀만의 독서는 어느덧 글쓰기에 대한 욕망으로까지 이어지고, 지금의 뛰어난 작가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유아기 때의 음식에 대한 배고픔이 사춘기 시절 어느 덧 책에 대한 배고픔으로 이어져 옴은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로선 너무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녀만의 그러한 배고픔의 과정이 없었거나, 설혹 있더라도 방향을 달리 했었다면 지금의 아멜리 노통브를 만나는 행복한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전적 소설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겐 저자를 좋아하는 데 한발짝 더 다가 갈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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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른들이 흔히 질문을 마구 퍼부어대는 아이들을 보면
노통브의 다른 책들이 항상 그렇듯
식욕 따윈 없이 자연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예의상만 먹을 뿐인
결국 철지난 다이어리 뒤쪽의 썩 크지도 않은 세계지도를 펼쳐 들고
당최 가당키나 한 말인가?
"나는 이 곳간 같은 바누아투의 세 주민을 조금 관찰해 보았다.
그래.
배고픔 결핍이란 그런 거다.
삶의 원동력
해설에 써 있는 말처럼 이 책에는 아멜리 노통브 장편소설이란 말 따위는 없다.
외교관의 딸로 태어나 일본-중국(베이징)-미국(뉴욕)-방글라데시-다시 일본 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그녀를 둘러싼 가족, 환경, 여러 관계들-보모, 형제자매, 손님 등-과 얽혀 각 장이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 하나의 큰 틀 속에 각각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펼쳐진다.
노통브는 일찌기 자전적인 장편소설을 펴낸 바 있는데
사실 시간 순서로 보자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막 읽은 지금,
심지어 살인자의 건강법, 머큐리, 오후네시 등을 아우르는
각 장이 매번 흥미진진한 주제와
바누아투 사람들에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배고픔이라는 욕구는
가장 결핍된 것에 맞추어 재해석된다.
이별의 슬픔에 빠진 연인에겐 세상의 모든 이별을 노래하는, 이제 막 사랑에 빠져 달뜬 연인에겐 티격태격하다 뻔한 해피엔딩을 맞는 결핍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노통브는 다시금 식욕을 되찾아 주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워너비가 되는 이유는
나는 배고프고, 고로 존재한다. |
| 작가 스스로 소설이라는 장르 표기를 뺄 정도로(아멜리 노통브는 자신의 전작들의 제목 아래에 항상 <소설>이라는 표기를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초판 10000부까지는 <소설>이라는 표기가 있었으니 이후 판본에서는 <소설>이라는 표기를 뺐다고 한다) 자서전의 색채가 강한 작품. 물론 소설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자전적 에세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정도로 책은 에세이적 성격이 강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 작가의 세 살 이전의 자서전(이라고 해봐야 세 살 이전에 대한 기억을 기억이라고 할 수 없으니 어차피 픽션이라고 불러야 할)이라고 한다면,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 이후, 그러니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나이인 세 살 이후부터 스물 두 살(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세 살 이후부터 열다섯 살까지에 한정되어 있지만), 작가 스스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라고 하는 그 즈음까지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월적 인간, 나는 이건 아니다. 초월적으로 배고픈 자, 이건 누구보다 더 그렇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형식을 띤 이 자서전은 어떤 허기들로 가득하다. 최초에 작가를 허기지게 한 것은 바로 단 것이다. 일본인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유일한 벨기에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어린 아멜리 노통브는 그들과 자신 사이의 차이를 느끼며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 혹은 인종적인 차이를 단 것에 대한 허기로 치환하여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녀는 설탕과 초콜릿, 그리고 알코올에 이르는 기나긴 단 것에 대한 배고픔의 길에 접어든다. 하지만 이제 작가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니쇼상의 나라 일본을 떠나면서 그녀는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맞는다. 어째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나라를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듯 중국으로 향한 작가는 깊은 허무와 영원할 것 같은 상실 앞에서 허덕이게 된다. 일곱 살의 허무를 지나 그녀는 문화혁명으로 황폐화된 중국을 드디어 벗어나 신세계와 같은 미국의 뉴욕으로 가게 된다. 그녀는 뉴욕에서 삶의 희열에 눈을 뜨고 어떤 충족감으로 가득하게 되며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과 자신이 사랑하는 무리들을 근거리에 두고 강한 행복의 시대를 맞이한다. 하지만 작가 인생의 최고의 나이였던 열 살을 지나 열한 살이 되자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먹고 마시는 나라인 미국의 뉴욕에를 떠나 세계에서 가장 배고픈 나라인 방글라데시로 옮겨진다. 그곳에서 나는 이제 모든 허기들에 대한 혐오의 길로 접어든다. 그렇다고 돌이 될 수는 없는 법... 나에게는 이제 다시금 상실의 시대가 도래한다. 일본을 떠날 때 느꼈던 상실의 느낌과는 또다른 상실 앞에서 나는 이제 모든 허기들을 뒤로 한 채 독서라는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는 것으로 그 상실을 치유한다. 아름다운 언니와 함께 하는 그 기나긴 독서의 시간, 세상의 가장 후미진 곳의 아픔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이 어린 나이의 작가는 성장하고, 동시에 쇠락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를 떠나 미얀마로 이동하면서 발생한 열세 살 거식증의 시기와 다시 이년이 흘러 라오스에서 그 거식증을 벗어나는 열다섯 살의 시기를 거쳐 열 일곱 살에는 벨기에에서 대학을 다니고, 스물한 살이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나... 그리고 이듬해... “내가 전력을 다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1989년부터이다. 일본 땅에 다시 발을 디딘 게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이때 생긴 습관이 이제 내게는 리듬이 되었다.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은 글을 쓰는 것... 이때부터 지금까지 글쓰기는 내게 역동적인 밀어내기, 짜릿짜릿 쾌감이 느껴지는 두려움, 끊임없이 거듭나는 욕망, 관능적인 필요에 다름 아니다.” 천재적이며 동시에 노력파인, 그녀의 국적인(정확히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벨기에나 그녀의 문학적 활동 무대인 프랑스, 혹은 그녀가 자신의 창작의 본원지로 삼고 있는 일본과는 별개로 그저 세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해 보이는 아멜리 노통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아주 오래전 작가란 모름지기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콤플렉스’를 가진 자들이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누구의 인터뷰였고 어디서 주워 들은 것인지는 금세 잊었지만 그로부터 한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는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다. 아멜리 노통브를 소설가로 이끈 콤플렉스는 바로 배고픔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먹어도 아무리 읽어도 해소되지 않는 그녀의 배고픔, 그리하여 쓰는 것으로밖에는 충족되지 않는 그녀의 허기, 그녀의 창작에 대한 비밀을 슬쩍 엿본 기분이다.소설>소설>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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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류에 나오는 어기적거리는 단어조합의 느낌보다는 에세이류의 가히 살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는 내가 즐겁고, 슬프다.
자서전은 꼴보기 좋은 자기자랑이다. 꼴이 보기 좋으니... 뭐... 가지고 싶다.. 그런 이유에서... 소장하는 책의 절반 이상이 에세이류일 정도이다.
다른 이유없이.. 자서전이라길래.. 일단 구입했다..
노통은 자서전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배곯이에서부터 이상의 결핍에서 오는 배곯이와 성장기 소녀의 육체적 쾌락의 배곯이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런 배곯이는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 배곯이의 지속이야말로, 삶의 이유이며, 원동력이다.
하지만... 지난 과거의 찬란했던 배곯이의 향연이 지속되기를 갈망하는 것은 아니다.
배곯이도 정도껏이지.. 이건 심하다. 곯고 곯아서 썩은내가 나기 전에 가끔은 맛이라도 보고, 그 향이라도 맡아볼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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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고픔을, 배고픔들을, 내 배고픔을, 다른 사람들의 배고픔을, 심지어는 배고픔을 느낄 수 잇는 사람들 자체까지도 증오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 동물, 그리고 식물을 증오했다. 돌만이 예외였다. 나는 돌이 되고 싶었다.
작년 도서전에 갔다가 구입한 책이었을 것이다. 제비일기로 접했던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내게 단지 조금 독특한 작가였다. 양장판으로 된 노통브의 책들 중에서 나는 '배고픔의 자서전'을 택했다. 왠지 재밌는 제목이네?라며 구입했다.
자전적 색채가 강한 책이다. 노통브의 삶을 이야기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마도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어린시절을 보자면 자전적인 책일거라고 생각해본다.
배고픔. 소설 속에선 배고픔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 뉴헤브리디스의 바누아투라는 섬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어린시절 일본에서 보모 니쇼상과 보냈던 이야기- 민들레반 아이들. 입맛 뻥긋하다 들통난 노래부르기 시간.
나는 두번째 읽는 이 소설에서 왜 처음엔 정말 배고픔밖에 발견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픔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요소였다. 소설속의 그녀는 정말 부족할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그녀 스스로 말하고 있었다. 유복한 환경. 그 환경속에서의 배고픔이라. 아버지가 외교관인 덕에 정착하고 싶어도 다른 나라로 옮겨다닐 수 밖에 없던 어린 그녀.
배고픔이란 표현은 먹는 것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 사랑, 관심, 책 등등 그녀는 많은 것에 배고파했다.
독특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읽는 내내 심심하지 않았다. 인간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배고픔.이라는 단어. 그녀가 쓴 '배고픔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는 내 삶의 배고픔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다. 다행이 배고픔은 어린시절에서 끝난다. 성장과정에서 사람들은 배고픔을 느낀다. 그 배고픔이 사라지면 어른이 되는 걸까? 그 배고픔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채 나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독특한 그녀의 문체가 좋아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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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때 하도 위인전기 이런걸 읽어서 그런지.. 자서전쪽 부류의 이야기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 책도 "아멜리 노통브의 자서전" 이었으면 절대로 읽지아니하였으리라. "배고픔"이란 단어가 이 책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배고픔.. 항상 배고픈 나에겐 꼭 필요한 책인거 같았다. 외교관의 딸인 아멜리 노통브가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말그대로 자전적으로 쓴이야기다. 자서전을 읽는건 내게 큰 고욕이었지만 처음에 아멜리 노통브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부분이 맘에 들었다. 나중엔 죽음 직전까지 갈정도로 거식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아멜리 노통브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꼭 4시간은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하루에 4시간을 투자한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난 시작하는건 많은데 꾸준히가 안된다... 반성 또 반성 나도 미쳐보고싶다.. 어딘가에 푹 빠져서 미쳐버림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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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껏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언제나 톡톡 튀는 그녀의 발상의 근원지가 언제나 궁금 했었다. 그건 그녀의 허기로 부터 비롯 된 것이었다. 배고픔과 허기를 달래기위한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갈망에서 부터 그녀의 창작욕은 발현 되고 있었다.
이 어찌나 깜찍 발랄한 소설인고. 그녀의 독설, 위트, 풍자,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단어들, 볼때마다 어벙벙하게 어느새 그녀의 문체들을 보며 고개 끄덕이고 있는다.
무의식에 의한 중독이란게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이번책은 그 어떤 책들보다 자전적 색체가 짙다 때문에 여타의 자신의 어린시절에서 소재를 따와 썻던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또한 이 책에서 그녀의 전작 소설들에 언급됬던 그녀의 어린 시절이 주욱 나열이 된다. 한 작가의 팬이로서 그 작가의 전작 소설속의 내용들을 다른 책들에서 찾아 낼때면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거 멀로 설명을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을 찾기 힘든 그런기분. 반가움에 가까운 기분이랄까?
정말 한참 정신없이 재미 있게 읽었다. 그어느 책보다 그녀의 입담이 단연 돋보였던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녀의 창작욕의 원천을 들여다본 기분이다.
20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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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자신을 신이라고 굳게 믿는 꼬마 여자아이가 있다. 뭐든 자신의 뜻대로 해야하며 그렇게 될거라 믿는 아이. 이것이 아멜리 노통브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배고픔의 자서전=""> 말그대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문득문득 보이는 전작들의 분위기도 보이만 그보다 전작에서의 내용이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유년기의 그녀는 온통 배고픔으로 가득 들어 차 있다. 단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신적인 음식인 초콜릿에 탐닉하고, 갈수증으로 물을 아무리 마셔도 다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모든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손만을 잡기를 바란다. (머리채를 잡으며 싸우면서도.) 이렇게 배고픔에 시달리지만 오히려 배고픔으로 인해 삶이 나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먹어도 먹을 것이 널려있던 <바누아트>인들의 공허함만 봐도 알수 있듯이. 전작에서 보이던 주인공들의 싸이코적인 싸가지 없음의 모습들은 작가를 닮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좀 더 인간적인 작가를 만날수 있었다. 그녀의 일본인 보모 <니쇼상>으로 인해.니쇼상>바누아트>배고픔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