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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법정에선예술가들 #캐슬린김 # 작가정신 #일파만파독서모임 #별별리뷰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 예술가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경계가 모호한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술이 법정에 선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재의 책이었다. 《법정에 선 예술가들》은 예술과 법이라는 두 경계의 모호함을 이야기하는 리얼 아트 스토리이다. 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마르셀 뒤샹의 변기부터 앤디 워홀, 뱅크시, 클림트 그리고 AI가 만들어내는 예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예술가들과 작품을 둘러싼 실제 사건과 법정 공방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특히 예술 작품의 표절과 차용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작품을 소유한 사람에게 작품을 파괴할 권리까지 있는 것인지, 인간이 아닌 AI가 만들어낸 결과물도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표현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반대로 법이라는 기준으로 예술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떤 것도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답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특히 재미 기억에 남는 사례는 '조영남 대작' 사건과 "인간과 AI 창작 전쟁' 부분이었다. 평소 미술이나 예술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독자에게도 실제 사건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니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할 때도 조금은 다른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넘어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예술에는 정해진 답이 없기에 더욱 흥미롭고, 때로는 논쟁적이기에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생각할 거리를 선물해 준 책이다. *사사로운 문장 수집 (62p) 대중이 좋아한다는 것은 상업적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고, 상업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미학적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70p) 당신이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든 부르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미 이 질문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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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김의 『법정에 선 예술가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예술과 법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벌여온 오랜 분투를 기록한다. 예술가가 관습을 벗어날 때마다 법은 그 낯선 형식에 적절한 이름을 부여해야 했고, 법적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도 작품을 둘러싼 미학적 논쟁은 계속되었다. 법정에서는 예술의 독창성이 저작권 침해의 근거와 나란히 검토되고, 작품의 진정성이 소유권이나 거래의 적법성과 얽힌다. 저자는 판결문에 기록된 사실과 예술가의 작업, 시대적 맥락을 유려하게 엮으며 하나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와 판단 속에 존재하는지 드러낸다. 예술을 둘러싼 분쟁은 때때로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확신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다 보면 작품의 의도를 이해하는 일과 그것을 예술로 인정하는 일이 서로 어긋나곤 한다. 제작 과정과 역사적 맥락을 알고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설명이 부족해서 생기는 거리감도 있지만, 충분한 설명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은 또 다른 문제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감각과 경험을 통해 아름다움을 판단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에 보편적인 설득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칸트의 미학을 빌리자면, 미적 판단에는 타인에게 동의를 요구하면서도 그 동의를 객관적인 증명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긴장이 존재한다. 타인의 감상이 자신의 기준과 충돌할 때 우리는 작품의 가치를 의심하기도 하고, 상대의 안목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취향에 관한 확신이 어느 순간 타인의 창작을 인정하거나 배제할 권한으로 바뀐다면, 그 판단에는 어떤 정당성이 필요할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은 이 문제를 생각하기에 적절한 작품이다. 벽에 붙은 바나나는 시간이 지나면 썩고, 다른 바나나로 교체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작품의 고유성을 보증한다고 믿는 물질적 지속성이 여기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작품의 정체성은 특정한 과일보다 예술가가 설정한 개념과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아서 단토의 예술계 개념을 떠올리면, 사물을 예술로 이해하는 데에는 눈에 보이는 형태 외에도 예술사적 맥락과 해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작품이 그러한 맥락 안에서 성립한다는 사실과 관람자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사실은 별개다. 미술관의 전시와 시장의 가격은 작품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지만, 개인의 감각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예술을 둘러싼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각자의 취향이 달라서만은 아니다.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79쪽에 실린 “당신이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든 부르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미 이 질문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불일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어떤 작품을 보고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는 예술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나름대로 적용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나 숙련된 기술, 독창적인 발상 가운데 무엇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진다. 작품에 동의하지 않는 태도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비평적 입장이 될 수 있다. 다만 자신의 판단이 형성된 조건을 검토하지 않은 채 그 결과만을 절대화할 때, 취향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권위로 변한다. 예술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작품이 존재할 자리를 함부로 부정하지 않는 태도에는 상당한 지적 절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판단의 문제는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더욱 엄격한 책임을 요구받는다. 개인은 어떤 작품을 외면하거나 혹평할 수 있지만, 법원은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를 판단해야 한다. 앤디 워홀과 사진작가 린 골드스미스의 저작권 분쟁에서 핵심이 된 것도 작품의 예술적 우열이 아니었다. 워홀은 골드스미스가 촬영한 프린스의 사진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제작했고, 그 작업에는 원본과 구별되는 표현적 특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문제가 된 이미지의 상업적 이용 목적을 검토하면서 원본 사진의 이용과 중첩되는 성격에 주목했다. 예술적 변형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만으로 저작권자의 권리가 자동으로 제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학적 독창성과 법률적 정당성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각기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한다. 공정이용이라는 개념에는 창작의 자유를 둘러싼 법의 고민이 응축되어 있다. 예술은 앞선 시대의 이미지와 언어를 빌려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왔으며, 모든 차용에 원작자의 허락을 요구한다면 비평과 패러디, 후속 창작의 가능성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그렇다고 예술이라는 명분만으로 타인의 표현을 제한 없이 이용하도록 허용할 수도 없다. 공정이용은 저작물의 이용 목적과 성격, 이용된 부분의 양과 중요성, 잠재적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법적 장치다. 예술법 연구자 에이미 애들러는 논문 「Fair Use and the Future of Art」(2016)에서 공정이용의 변형성 판단이 작품의 의미를 특정하려는 과정에서 현대미술의 다의성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창작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적 기준이 오히려 예술의 해석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다. 법이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에도 그 제한의 정당성을 따져야 하며, 권리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창작의 가능성이 과도하게 희생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예술과 법의 관계가 복잡한 까닭은 어느 한쪽에 절대적인 우선권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저자의 서술이 특히 매력적인 부분도 이러한 복잡성을 다루는 방식이다. 법률가의 시선은 작품을 둘러싼 권리와 책임을 세밀하게 구별하면서도 예술가가 기존의 관습에 도전해온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법률 용어는 사건의 결론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동시에 창작과 소유, 자유와 책임의 관계를 살피는 도구가 된다. 예술법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다루면서도 문장은 건조한 판례 해설에 갇히지 않는다. 작품의 탄생과 분쟁의 경위, 판결의 논리를 연결하는 서술에는 예술을 향한 깊은 애정과 법률적 판단의 한계를 인식하는 신중함이 함께 배어 있다. 무엇보다 법의 판단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그 판단으로 예술에 관한 논쟁이 완결된다고 여기지 않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 오랜 논쟁에 새로운 복잡성을 더한다. 알고리즘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인간이 결과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창작의 주체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직접 닿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적 가치를 부정하기에는 이미 뒤샹 이후의 미술사가 너무 많은 사례를 축적해왔다. 그렇다고 AI가 생성한 모든 결과물에 인간의 창작물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도 없다. 작품을 예술로 감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가라는 문제에는 서로 다른 판단 기준이 적용된다. 더욱이 생성형 AI의 학습 과정에서 기존 창작자의 권리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기술이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할수록 그 표현의 생산에 관여한 인간들의 권리와 책임은 더욱 세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예술의 가치는 결국 사람이 부여한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유다. 다만 그 가치를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시대의 제도와 관습, 경제적 이해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미술관의 인정과 시장의 가격, 법원의 판결과 관람자의 감상은 하나의 작품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불일치를 성급하게 해소하려는 시도는 예술이 지닌 해석의 폭을 좁힐 위험이 있다. 법은 구체적인 사건에 관하여 결론을 내려야 하지만, 그 결론이 작품에 대한 모든 평가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브랑쿠시의 조각이 법정에서 예술품으로 인정받은 이후에도 예술의 정의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었듯, 오늘날의 새로운 창작 역시 당대의 기준을 시험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작품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태도, 타인의 창작을 존중하면서도 비판할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그 논쟁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이다. 예술을 심문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격은 자신의 감각을 신뢰하는 만큼 그 감각이 가진 한계도 살필 줄 아는 능력일 것이다. ✏️도서출판 작가정신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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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선예술가들 #작가정신 #캐슬린김 #서평 #일파만파독서모임 작가정신 출판사의 <법정에 선 예술가들>은 미술관의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치열한 법적 비하인드 스토리로 독자를 안내하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평소 전시회 관람을 즐기면서도 위대한 작가들이 어떤 현실적 난관에 부딪혔는지, 나아가 AI 시대에 예술가들이 마주한 위협은 무엇인지 궁금했던 호기심을 명쾌하게 채워준다. 이 책은 변기 하나로 현대미술의 틀을 깬 뒤샹부터 앤디 워홀, 뱅크시, 그리고 카텔란의 바나나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거장들의 6개 법정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것은 진짜 예술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시작해 창작과 표절의 경계, 5천억 원대 경매의 위작 논란, 소유자의 작품 파괴 권리 등 구체적인 사건과 판결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성찰한다. 특히 저작권 전쟁을 넘어 "80시간, 900번의 프롬프트"로 생성된 AI 작품이 법정에 선 최신 사례까지 다루며 AI 시대의 창작과 인간 예술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법과 예술의 정면충돌 속에서 탄생한 미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컬렉터와 창작자 모두에게 유용한 Q&A까지 담아내어,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더 넓혀준다. 미술이나 예술에 큰 조예가 없어도 좀 아는 척과(!) 비하인드 얘기들 그리고 앞으로의 창작시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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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법정으로 간 예술의 치열한 법정 공방 ” 캐슬린 김의 <법정에 선 예술가들> 을 읽고
"이제 법정의 문이 열리고 미술사의 가장 기묘한 재판이 시작된다." -예술법 변호사가 들려주는 미술관 밖 리얼 아트 스토리- 2019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예술 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24년 11월 20일, 뉴욕 소더미 경매장에서 불과 6분 만에 620먄 달러, 한화로 87억 원에 낙찰됐다는 것이다. 그 작품은 바로 한 예술가가 인근 과일 가판대에서 30샌트, 우리 돈 500원 남짓에 구입한 바나나 한 개와 그것을 고정한 회색 덕트테이프로 구성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87억짜리 바나나 <코미디언> 사건이었다. 과연 이 바나나 한 개는 예술일 수 있는가? 바나나 한 개와 회색 덕트테이프로 구성된 이것을 과연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책 『법정에 선 예술가들』에서 예술법 변호사인 저자는 미술관에서 법정으로 간 예술가들의 법정 공방을 다루면서 우리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예술인지,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지 더 나아가 AI가 만든 결과물오 예술이 될 수 있는지까지 질문하면서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진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예술은 일반저긍로 회화, 조각, 공예 등과 같은 창작물을 의미하였지만, 이제는 인간의 창의성, 감정, 신념 그리고 기술을 시각, 청각, 공연 등의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여 미적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 활동이자 결과물까지도 포함할 만큼 예술의 영역은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그래서 이것도 과연 예술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이제는 예술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경계를 허물고 정의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반면에 법은 경계를 짓고, 명확히 정의하며, 사회적 약속인 규범을 수호한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기에 예술과 법 이 두 세계가 자주 충돌하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된다. 저자는 예술법 변호사로 일하며 미술관 밖 법정에서 일어나는 법정 공방을 들려준다. 현대미술의 반격은 정체불명의 '변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일상적인 사물을 예술의 맥락으로 가져와 미술의 본질을 뒤흔드는 '레디메이드 실험'을 전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배관용품점에서 판매되는 남성용 소변기를 거꾸로 눕혀 놓고 가상의 서명인 'R. Mutt 1917' 을 적어 출품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고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었다. '샘' 작품은 작가의 물리적 노동이나 뛰어난 기술보다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 자체를 예술로 선언하며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인 '개념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일반인인 우리는 과연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인 '코미디언'과 마르셀 뒤샹의 '샘' 작품을 우리는 과연 예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예술은 이처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고 경계도 불분명하기에 법적 공방이 끊이지 않는다. 100년 동안 벌어진 예술가들의 법정 공방을 통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깨닫아야만 할까? 이 책에서 수록된 예술가들의 법적 공방을 따라가보면 판사의 판결이 예술을 질식시기키도 하고, 때로는 예술가의 도발이 법의 허점을 찌르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법은 어디까지 예술의 표현의 지유를 인정해야만 하는지, 법과 예술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마침내 우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궁극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판사가 "이것은 예술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예술은 안전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길들여진다. 판사가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예술은 추방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종종 역사에 의해 뒤집힌다. 모딜리아니의 누드가 그랬고, 한국의 실험미술이 그랬으며, 오늘의 개념미술 역시 그 길 위에 서 있다.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예술을 재단해도 되는가. 어쩌면 법 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예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p.23 특히 6장에서 언급된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블록체인 위에 저장된 JPG 파일이 690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예술을 만드는 주체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일 수도 있음을, 이제는 AI가 스스로 만든 창작물조차 예술로 ㅇ인정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이제는 창작은 인간만의 전유뭃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 예술과 법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법은 예술을 보호하고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통해 예술의 의미와 법적 예술 허용 범위를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 100년 간 이어진 예술의 법적 공방은 앞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예술의 범위와 창작의 자유는 더 넓어지고 커질지도 모른다. 앞으로 AI 발달을 통해 창작의 주체가 인간에서 인공지능으로까지 확대될지도 모른다.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법정에선예술가들 #캐슬린김 #작가정신 #일파만파독서모임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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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예술을 판단할 수 있는가. “법정에 선 예술가들”/도서제공 작가정신에서 보내주셨습니다.
대중이 접하는 다양한 예술의 법정다툼을 다룬 책입니다. 해설이 꼼꼼하고 판결문 보는 것보다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법이 정의하는 예술에 대해 잘 설명되어있는 책입니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게 될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저는 예술가와 법정이라고 하면 마광수 교수를 떠올립니다. 끝내 자신의 방향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망한 마광수 교수는 법이 예술을 판단한 국내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법관 포터 스튜어트의 발언은 법이 예술을 보는 시각을 상징합니다.
“나는 그것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
판단의 기준의 모호함, ‘고상함’이 생존기준이 된 예술. 미학논쟁과 더불어 때로는 범죄의, 때로는 세금탈루의 증거가 되어버린 예술. 그 예술의 법정다툼을 다루는 이 책은 우리의 판단기준을 흔들며 예술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법과 예술간 싸움의 종착역은 AI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예술은 항상 공격대의 역할을 했습니다. 모두가 말하지 못할 때 정치와 권력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건 작가와 화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판단한 것이 법이었죠. 입틀막의 기술로 지배자가 법정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읽은 건 메이슨 로스차일드의 ‘메타 버킨스’사건입니다. 표현의 자유(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대기업의 권리(상표권)와의 싸움인데 웹 3.0시대의 예술이 정의되는 방식이 법적으로 바뀌게 되는 대형사건입니다. ‘예술가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다’는 명제의 면죄부가 사라집니다. 유통되고 복제되는 디지털 창작은 이제 법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다양한 작품들은 때로는 세금 때문에, 때로는 개인의 감정 때문에 법정위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 사건들이 상징하는 시대적 변화를 함께 보면서 법적 기준이란 기득권의 이득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판결이 흥미로우실지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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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선예술가들 #캐슬린김 #작긴정신 #일파만파독서모임 캐슬린 김 [ 법정에 선 예술가들 ] 변기에서 바나나까지,100년의 창작 전쟁 우아함 뒤에 감춰진 진실과 욕망, 예술을 둘러싼 진짜 전쟁 이야기 법은 경계를 긋고 답을 요구하지만, 예술은 그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법정에 선 예술가들>은 서로 가장 멀어 보이는 예술과 법이 만나는 지점, '뜨거운 예술'이 '차가운 법'을 만나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예술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기준이 되었던 사고의 틀이 흔들린다 저자 캐슬린 김은 예술법 전문가 이자 변호사로 예술계의 대표적이고 유명했던 실제 사건들을 소개하며 설명하고 있다 1장 이것도 예술인가요? - 변기에서 바나나까지, 현대 미술이 던지는 도발적 질문들. 2장 훔치거나 빌리거나 - 어디까지가 영감이고, 어디부터가 도둑질인가 3장 진실 공방 : 진짜와 가짜의 세계 - 수천억 원을 움직이는 위작의 기술. 4장 예술과 돈 - 경매 시장의 욕망과 법의 논리 논리 5장 예술가는 죽어서도 작품이 남는다 - 창작자의 권리 소장자의 권리 6장 미래의 예술 - AI 예술과 인간 예술가 이 책은 현대 예술의 100년의 역사를 6개의 법정을 거쳐가며 법이 예술을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각각의 사건들의 법적 분쟁을 다루고 있는데 내용들이 생각보다 너무 흥미진진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예술은 질문하고 법은 답한다 때로는 법이 질문하고 예술이 답하기기도 한다 2019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공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 너의 <코미디언>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공개되었고, 5년뒤 치열한 응찰 끝에 한화로 78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낙찰이 됐다 작품의 구성은 전날 인근 과일 갑판대에서 우리 돈 500원에 구입한 바나나 한 개, 그리고 그것을 벽에 고정한 회색 덕트테이프 그게 전부였다 정확히는 '그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해야겠다 그 작품을 낙찰한 사업가 저스틴 선은 공개 행사장 벽에서 바나나를 떼어내 껍질을 벗기고 그대로 먹어 버린다 87억원짜리 바나나는 몇초만에 그렇게 사라졌다 개념 미술은 대중에게는 낯설고 환영받지 못하는 충격적이고 생소한 장르이지만 예술의 중심을 물질에서 아이디어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디어가 예술인 예술' 몇 초 만에 사라져 버린 87억짜리 바나나를 보며 '이것도 예술이냐'라 하기보단 이 행위 자체가 개념 미술로써, 예술을 대상이 아닌 '사건'으로 이해하게 만든 장면으로 이또한 강열한 개념 예술이라 하겠다 " 당신이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든 부르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미 이 질문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 바나나 하나가 만들어낸 이 거대한 소동은 현대 미술의 미래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영원히 남기 위해 존재 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p79 이 책을 읽으면 예술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생각하게 됐고 고정관념을 넘어 생각의 범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것들을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었고 내가 알지못하는 분야에 대해 알게되어 뜻깊고 즐거운시간이 되었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도 쉽고 재밌게 접할수 있는 기묘하고 매혹적인 재판이야기 읽어보면 후회는 없을것같다 - 이 책은 일파만파 독서 모임의 서평 모집을 통해 작가 정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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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경계를 허물고 제도와 규범을 비웃고 정의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예술이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수호하는 법을 만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법정의 판사가 미학의 해석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되는 것이 타당한가? 판사가 '공공질서, 선량한 풍속, 사회 퐁속'이라는 추상적 기준을 가지고 '이것도 예술이냐'라는 질문에 답을 내릴 때, 그 사회의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뉴욕주 변호사 캐슬린 김은 『법정에 선 예술가』들에서 '뜨거운 예술'이 '차가운 법'을 만난 순간의 기록을 독자에게 전한다. 현재의 질서를 보호하려는 법은 그 질서를 흔들려 드는 예술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현대미술의 운명을 뒤흔든 세기의 예술 재판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인 나의 전두엽을 풀가동시킨다. 스스로를 인간 세상의 지배적 규범을 뒤흔드는 사상이나 아이디어에 열린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법계의 사례들을 읽다 보면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념미술에 얽힌 법정 공방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제1주 Part2 <동시대 예술의 도발>부터 초집중 상태로 글을 읽어갔다. 조수들을 시켜 '스콧 페인팅' 작품을 그리도록 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예술은 '실행'이 아니라 '개념'이라 말한 허스트의 창작 행위를 읽으면서 처음 몇 초 동안 어떻게 반응했던가? 지은이 캐슬린 김이 개념미술의 등장과 의의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을 때, 조영남 대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 속 '사법자제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 독자인 나는 뭐랄까 지적으로 짜릿함을 느꼈다. 올리버 원델 홈스 대법관이 남긴 멋진 판결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 명판결문과 대조되는 한국의 예술법 판례 사례를 읽으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 예술은 언제나 먼저 도착하고, 법과 제도는 늘 나중에 뒤따라온다. 문제는 그 '나중'이 너무 늦어질 때다.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도 예술이냐'라는 질문에 판사가 답해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67쪽) 이 책은 현대미술 100년의 역사를 예술 재판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관통하는 질문은 단순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예술인가?' 질문은 간단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법은 예술을 정의할 수 없지만 정의하도록 요청을 받는다. 차용과 표절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작품의 가격과 가치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AI 시대의 창작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나열하다 보니 마치 법이라는 것의 한계만 강조하는 것 같다. 마치 법의 패배를 선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은이에 따르면 법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예술 앞에서 '겸손'을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법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전보다 나은 이해를 얻게 된다. 그 관계의 핵심은 법이 예술을 억압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은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진통 끝에 예술을 받아들이는 제도의 언어가 조금씩 확장되어왔다.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을 읽다 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 정신의 최전선'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멋진 문장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을 긋게 만든다. 새롭게 배운 것들도 너무나 많다. 비좁은 나의 사고를 확장시켜준 문장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중 하나를 남기며 이 독후감을 마무리해야겠다. " 당신이 이것을 예술이라 부르든 부르지 않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이미 이 질문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 (79쪽)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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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예술가들》 📖 저자 캐슬린김 📖 출판 작가정신 📖 총p.480
@jakkajungsin 🎨🎨🎨🎨🎨🎨🎨🎨🎨🎨🎨🎨🎨🎨🎨🎨🎨 예술과 접목된 법정 다툼의 리얼 스토리의 느낌이 너무나 잘 담겨있는듯하다.사건과 팩트인 모더니즘의 현실화가 돋보이는 책이다. 솔직히 예술의 가치와 작품의 이해도가 다소 미흡한건 사실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예술작품의 다양성과 역사..현실적인 문제를 느낄수 있었다. 한마디로 미술관이나 책에서 자주 접했던 예술작품과 거장들의 뒤편에 숨겨진 다양한 법적 분쟁과 창작 경계의 이슈를 전문적이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 예술과 법이라는 이색적인 컬래버레이션(?) '예술'은 감성과 자유, '법'은 이성과 규제로 상반되기 마련인데 필자는 현직 예술법 전문 변호사의 시선으로,창작의 미학적 논의를 법적 판단이라는 현실적·구체적 논리로 매끄럽게 기술해간다.또한 현대 미술사의 흥미진진한 스캔들과 분쟁을 흥미롭게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는 느낌이라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 . .
87억 원에 팔린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작품 뒤에 숨겨진 저작권 침해 소송이라든가..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사진 무단 차용과 패소 사건이라든가..법정에서 작품이 소각될 위기에 처했던 에곤 실레의 외설 사건..한국의 조영남 예술작품의 진위 주작논란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에게 창작은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행위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이전 세대의 작품과 문화적 전통,다른 창작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정당한 영감이고, 어디부터가 표절일까?라는 자연스런 의구심을 품게된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제도지만, 지나치게 넓게 적용하면 후속 창작과 문화적 발전을 제약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술의 독창성이야말로 아무에게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기존의 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이 아닐까싶다.미술 작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제작되었는지,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따라 작품의 가격과 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위작 문제는 미술계에서 매우 민감할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품과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도 작가의 서명이나 제작 이력, 작품의 출처가 거짓이라면 구매자와 시장 전체를 속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또 한가지가 예술과 법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인공지능(AI)과 NFT다.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의 고유영역을 벗어난 AI가 생성한 그림을 누구의 창작물일지 생각해볼 시간이 온 것이다.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것으로 인간의 창작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기존 창작자의 권리와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NFT 역시 작품의 디지털 소유권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을 불러온만큼 예술법은 과거의 작품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술과 창작 방식이 바뀔 때마다 예술의 권리와 책임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분야인 것이다.
결국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예술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사회와 제도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창작자의 권리를 지키고 공정한 창작 환경을 만드는 보호막이 될 수도 있다.예술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안목뿐 아니라 작품의 권리와 가치,창작의 의미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넓힐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미술과 법률,현대사회의 창작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예술의 파격 뒤에 숨겨진 차가운 법과 현실의 상호작용을 파헤치는, 미술사와 법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매혹적인 교양서📚📔 ✍️ 출판사로부터 @jakkajungsin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법정에선예술가들 #작가정신 #캐슬린김 #예술법정공방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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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지급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미술은 어떤 것일까? 오늘 만난 <법정에 선 예술가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예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까진 어떤 내용을 소개할지 궁금했었는데 막상 읽고나니 예술 또한 인간이 만든 창조가 어디까지 자유로울까? 그리고 법은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사례를 읽다보면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펼쳐진 예술과 법이 생소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실제 판례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는데 그 중 개념미술 설명은 나 역시 예술로 봐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또한 에술로 인정이 되었다는 것. 국내에서도 오래 전에 이 미술을 시도한 예술가들이 있었지만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는 새로운 창조하지만 한편으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따라다닌 질문이었다. 예술은 이제 보여주는 것을 넘어 무엇을 질문하느냐로 넘어갔다. 과거 아름다움것과 물질을 그렸다면 지금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존 미술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는 그 시대마다 배척이 되었지만 결국 다른 것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미술관에 전시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저자가 말한 "예술은 언제나 먼저 도착하고, 법과 제도는 늘 나중에 뒤따라온다" 이 문장이 예술을 바라보는 현 시점이다. 이제는 인간만이 예술을 창조하지 않는다. AI 등장은 단순히 인간의 편리성을 넘어 인간사에 흡수 되었다. 80시간과 900번의 명령어로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AI가 그린(?) 이 작품은 과연 창조성의 기준을 바꿨다. 표절과 사생활 침해 등 예술을 창조하는 그 시작을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이 책을 질문을 던진다. 여러 판례를 보면 결국 그 결정은 법정에 따라 달라지니 예술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하지만, 이 또한 앞으로 계속 달라질 예술이 걸어가야 할 길이고 과제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생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 책, 미술을 그저 미술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인간사와 같이 생각하게 만든 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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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독특한 예술 관련 책이다. 요즘 미술계가 활기를 띠면서 예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들이 출간되는 것이 반갑다. 얼마 전에는 예술 산업과 생태계를 다룬 책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예술과 법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예술 작품을 둘러싼 실제 사건과 판결을 통해 예술의 경계와 창작의 자유, 저작권과 소유권 등 다양한 문제를 짚어 나간다. 내용이 알차고 글도 흥미롭게 전개되어, 다소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법률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뜨거운 예술이 차가운 법을 만나는 순간의 기록.” 프롤로그의 이 문장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정의에 도전하지만, 법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는 순간,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무엇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질문은 ‘어디까지가 예술인가?’하는 예술의 정의와 범위였다.. 변기와 바나나가 현대미술 작품이 되고, 작가의 의도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해석이 엇갈리는 세상이다. 무엇이 예술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예술 작품으로 인정되는지에 따라 저작권이나 외설 논란뿐 아니라 관세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미술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실험이자 도발이었다.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사회가 불편해하는 지점까지 나아가며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 왔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강렬한 메시지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과 사회적 규범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까?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은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뱅크시의 작품과 경복궁에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주소를 남긴 낙서를 비교한 대목이다. 둘 다 기존의 공간에 남겨진 글과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하나는 예술 작품으로 이야기되고 다른 하나는 문화유산을 훼손한 범죄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무엇이 이 둘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예술적 의도와 표현 방식, 장소의 의미, 사회적 맥락은 어디까지 고려되어야 할까? 예술과 범죄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물론 책에 소개된 모든 사건이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판결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어떤 결정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약탈당한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다. 원래 부석사에 봉안되었던 불상이 일본으로 약탈된 역사적 배경이 있음에도, 소유권을 판단하는 법적 기준과 역사적 정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법이 정해진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고 해서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실감했다.
위작과 진품을 둘러싼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부인한 작품이 진품으로 검증되고, 반대로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을 작가가 자기 작품 주장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예술의 진위와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복잡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예술과 돈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들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특히, 경매에서 낙찰된 직후 액자 속 파쇄 장치에 의해 절반가량 훼손된 뱅크시의 작품은 예술과 자본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에는 경악을 불러일으켰던 파괴 행위가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역설적이다.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을 인정받는 상황이라니. 예술의 저항마저 시장의 논리 안에서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이 사라지거나 훼손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부패하거나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작품은 어디까지 보존해야 할까?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처럼 기술적 장치의 수명이 다했을 때, 부품을 교체해 작품을 되살리는 것은 원작을 보존하는 일일까, 아니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일까? 예술 작품을 단순히 물리적인 물건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의 본질이 재료에 있는지, 작가의 의도에 있는지, 관객이 경험하는 의미에 있는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책은 예술을 둘러싼 여러 법적 쟁점을 살펴본 뒤, 마지막에는 인공지능과 NFT, 블록체인 등 오늘날 더욱 첨예해진 문제로 나아간다. 특히 인간이 아닌 존재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AI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누구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창작과 소유,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과거의 예술 논쟁이 ‘이것은 예술인가?’를 물었다면, 이제는 ‘누가 창작자인가?’, ‘어디까지를 창작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까지 더해진 셈이다.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무엇이 예술이며,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할 권한을 갖는가? 예술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규정해야 할까? 반대로 질서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예술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사건과 판결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부록도 유용하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알아두면 좋은 법률 상식부터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 관리 방법, 작품 구매 시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 작품 소유자의 권리와 의무까지 실질적인 정보를 정리해 두었다. 예술을 공부하거나 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미술 작품을 소장하거나 구매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하다. 예술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는 기존의 기준을 흔들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고 모든 도발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예술과 법의 관계는 더욱 어렵고 흥미롭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작가의 의도만큼이나 그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과 제도에도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익숙한 작품과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예술을 잘 모르는 독자라도 흥미로운 사례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법정에선예술가들 , #변기에서바나나까지, #캐슬린김, #작가정신, #책과콩나무, #책콩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