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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갚아야하는것. 빚을 지고 갚지 않는 것은 도둑. 나쁜 사람. 개인의 빚을 왜 나라가 갚아줘야 하는가. 갚지못할 빚은 빌린사람의 죄이다. 등등.
나도 그리 생각했다. 2019년에 있었던 우리은행 DLF인가 파생상품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고수익을 안겨준다며 팔았고, 해당 상품의 손해가 80%까지 이어지면서 일반 투자자의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사태를 놓고, 내가 아는 사람은 산 사람이 잘못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품에 고수익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산 사람의 잘못이지 그것이 어떻게 국가가 해결해 줘야하는 일인가!라는 말을 했다. 끄덕이면서도 불편함이 몰려오는 말이였다. 끄덕이던 나와 불편함이 느껴지는 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은 무엇일까. 이 책을 보면서 알았다. 내가 끄덕였던것은 잘못된 학습에서 온 것이였고, 불편함이라는 것은 은행이라는 거대한 금융지주회사의 횡포였던 것이다. 우리는 근데 왜 은행을 탓하진 않는것일까. 그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더 전문적이고, 훨씬 더 큰 조직임에 그런 조직에 그들이 당한것이라고 왜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뭐 그 부분은 그나마 상품에 대한 판매였는데.
이 책은 개인의 빚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의 부동산 사태는 나는 현정부의 잘못이라 보지 않는다. 지난 이명박정부부터 무분별하게 풀었던 각종 대출의 효과라고 본다. 그렇다면 대출은 누가 왜 해주는 것일까. 지난 박근혜정부 대출이자가 1%대까지 떨어졌을 때 주위에서 그랬다. 할꺼없어도 미리 땡겨놓으라고, 대출이자가 이렇게 쌀수가 없다고. 이 말은 지금 최대한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해야하는 거라고.
책은 그런 은행을 비롯단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한다. 빚이 있다. '못'갚는 사람이 있다. 누구의 책임일까? 우리는 '못'갚는 사람의 문제라한다. 대체로. 왜? 그럼 그사람한테 '못'갚을 껄 알면서 빌려준 은행은? 또는 '못'갚을 만큼의 돈을 빌려준 은행은? 그럼 10년이지나 소멸된 채권을 채권추심회사에 팔아넘긴 은행은? 죄가 없는가. 그리고 대체 '추심'이라는 행위는 돈을 갚으라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죽길 바라는 것인가?
책이 현실을 최대한 애둘러서, 이야기한듯했다. 100% 현실은 더 지옥같으리라 본다. 나는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추심회사가 되어버린 현실이 더 무서웠다. 그리고 여전히 살인적인 고금리에 대하여 국회에서 어떤 행위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이 책은 의도적으로 빚을 갚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최저임금도 못받고, 최저 생계비도 벌지못하는 사람들이 지는 빚에 대해서다. 그리고 10년, 20년 쫒아다니는 추심행위에 대해서도. 금융권이 얼마나 제도권 안에서 사람을 말려죽이는지. 그런 행동들에 대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책이 조금 아쉬운것은 어떻게 해야한다는 저자의 의견이 별로 없다는점.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지? 그럼면 어떻게 바껴야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더 좋았을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문제제기가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 시작인듯.
읽어보시라. 은행은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이다. 금융지주회사라는. 세상 참 비정하구나. 그리고 빚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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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죽을 죄인 결코 아니다
요즘 대한민국 가정이 가계부채로 질식 직전에 있다. 2015년 2분기까지의 가계부채는 1,132조원으로 급증했다. 1분기 전인 지난 3월 말보다 무려 32조 2천억원이나 늘었다. 1년 새 94조 6천억원의 가계빚이 폭증한 것이다. 매달 10조원씩 증가한 셈인데, 이런 식이라면 올해 말이면 1,200조 원에 육박한다. 물론 수치상일 뿐 이미 1,200조 원을 훌쩍 넘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주목할 점은 가계부실 위험가구가 112만에서 190만 가구에 이른다고 하니 가계부채는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은 부동산 과열. 전세난과 전세금 폭등이라는 악재와 사상 최저 금리와 역대 최대 분양 물량이라는 호재 맞물리면서 너도나도 부동산을 위한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회계용어로 채무요, 자본과 더해지면 자산이기도 한 이 빚은 ‘레버리지 효과’라는 경제용어에 포장되면 투자금이 된다. 하지만 말이 좋아 투자지 요즘 같은 현실에서 이 투자投資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돈과 같은 재물(資)을 내던지는(投) 행위인지 곰곰이 살펴보니 후자가 더 많더란 거다(그 점에서 언젠가 꼭 한 번은 투자를 할 우리는 언제든 빚을 질 수 있는 잠재적 빚쟁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빚 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고 투자하자고 진 빚이 잘못되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 당신이 누구에게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그 빚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는 빚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서민경제 전문가이자 에듀머니 대표인 제윤경은 이 책을 통해 ’왜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가?’라며 부채는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상식에 태클을 걸었다. 저자는 전작 <약탈적 금융사회>에서 ‘약탈적 대출을 서슴지 않는 금융권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절실할 때이다. 더 이상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린 사람을 향한 과도한 비난도 거둬야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하고 금융권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빚진 자'에게만 엄해서 도덕적인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고 나아가 채무자가 되면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미래까지 저당 잡혀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금융과 개인의 채권-채무 관계는 쌍방의 거래로 이루어진 것인데, 왜 빚을 갚지 못한 비난은 온통 채무자만 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채무자의 신용이나 재무 상태 이상으로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게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돈이란 것이 국민들이 금융기관을 믿고 맡긴 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정부의 금융정책과 한국 사회의 금융이 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한 대안을 직접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업을 차려 돈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관리 방법 등을 강의를 통해 교육하는 기업가였던 저자가 어떻게 해서 사회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걸까
“나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채무자 구제 운동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어떤 단단한 신념이나 이론, 이념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거나 좌절하거나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 금융권의 수익성 때문에 사람들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각뿐이다.” 9쪽
이러한 사회문제의 가장 큰 손실은 바로 사람을 잃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추산하는 채무 취약 계층이 350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6명이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매일 같이 40여명이 자살하는데 주된 내용이 경제적 여건, 즉 빚 때문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이 넘어서고 빚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도 우리 사회는 개인 빚을 탕감해주거나 깎아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금기시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있다(12쪽). 그래서 ‘죄인’이 되기 싫은 그들은 빚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더 높은 이자의 빚으로 기존 빚을 갚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아고갈’에 이르게 되고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하나가 있다.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사정하고, 지점장이 나와 대출을 권하던 금융사는 내가 빚을 못 갚게 되자 얼마나 곤란해 진걸까?’ 놀랍게도 금융사는 큰 손해가 없다. 금융사들은 연체된 채권을 오래 보유하지 않는다.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팔아버린다. 처음 돈을 빌린 곳은 은행이었는데, 나중에 채권추심회사나 신용정보회사 같은 대부업체에서 독촉전화가 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은행과 대부업체 간의 커넥션도 숨어 있다. 은행은 석 달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부실에 따른 위험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은행은 당신과 내가 3개월 이상 진 빚을 ‘부실채권’이라는 이름으로 대부업체에 땡처리’해 버린다.
“대부업체는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연체이자와 법정 비용까지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연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5퍼센트 전후 즉 5만원에 매입한 뒤, 원금 100만원과 더불어 연체이자 및 법정 비용까지 포함해 극단적으로는 1,000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가 생긴다. 금융감독원의 2012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카드, 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부업체에 대출 채권을 넘겨준 고객이 76만 명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9조원을 넘는다.” 254~255쪽
금융사의 부실은 손쉽게 처리함으로써 부실대출의 실태를 감추고, 채무자는 여러 채권자에게 시달리도록 하는 채권 땡처리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정부 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에서조차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하고 있는 현실에 배신감을 넘어 분노케 한다. 게다가 금융사들은 일종의 컨소시엄으로 대부업체를 만들어 채권 땡처리 시장에서 또 다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다니 과연 이들이 ‘내가 주거래 은행이라 신뢰했던 그 은행이 맞나’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채무자인 우리에게 ‘빚 못 갚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돈을 빌렸으면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못 갚을 경우 어떤 형태의 형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채무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빚을 갚겠다는 무리한 의지에 있다고 말한다. 즉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다보면 은행 빚을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사채로 갚다가 결국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는 낳는다는 것이다.
대안은 연체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 즉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 워크아웃 등의 제도를 이용하거나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한 국민행복기금 등의 신용회복 프로그램, 그리고 지자체를 통한 금융복지 상담센터 등을 이용 채무조정 절차를 밟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2012년 “교육, 의료, 주거 등과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서민들이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국민들의 부실채권을 추심회사로부터 사들여 소각한 미국의 롤링주빌리 프로젝트에 모티브를 얻어 ‘주빌리 은행’을 설립,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792명의 빚 51억 3,000만 원을 소각했고 곧 더 큰 규모의 ‘99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에 의한 빚 탕감 시민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르뽀 형식의 생생한 현장감에 실사구시의 유익함을 더한 책,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은 베어도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패소하게 만든 포샤의 명판결 같은 책이다. 안토니오와 같은 빚쟁이라면 일독하시라. 빚에 대한 현명한 대응력을 선사할 것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402호) 경제경영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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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부채가 문제시되고 있다. 가계부채는 폭증하고 있고 기업부채도 상당하며 국가부채 또한 위험수위에 다다렀다. 저금리 기조에서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이달에 예정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전 세계적으로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부채의 문제는 앞으로 심각한 경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책의 저자 제윤경은 돈에 대한 철학과 관리 방법을 교육하는 에듀머니의 대표이자, 금융으로 병든 살림살이를 치유하는 희망살림의 상임이사이다. 빚을 사들여 소각하는 롤링주빌리 운동을 통해 빚으로 인해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라는 제목에서부터 파격을 느낀다. 빚을 못 갚을 권리라니, 조금은 상식에 반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빚을 권하는 사회라는 표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국민이 대출관련 전화를 받고 있고, 대부업체의 수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빼앗고 약자를 착취하여 돈을 버는 일이 많아진다면 정의가 무너지고, 효율이 망가지며, 혁신도 지체될 것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돈과 힘, 정보를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들을 쥐어짜면서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공동체는 파괴될 것이기 때문에 재산권 보호와 더불어 약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건강한 시장경제 발달의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경제의 현실을 둘러보면 가치 창출보다 가치 약탈로 돈을 버는 일이 만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주주에 의한 소액주주 권리 침탈, 생산성은 증가하는데 실질임금은 올려주지 않아 기업 이윤만 확대시키는 노동 착취,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쥐어짜는 불공정거래, 장사 좀 잘되면 임대료를 올려버리는 건물주에 의한 임대인 갈취, 본사가 가맹점이나 대리점을 후려치는 갑질 횡포 등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이 크고 돈의 힘이 적나라하게 작용하는 금융산업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금융기관은 위험한 투자를 감행해서 고수익을 거두고 그러다 망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받는다. 금융소비자들을 유혹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게 하고, 망하면 투자자 책임이라고 발을 뺀다고 한다. 금융의 가장 악질적인 행위는 약탈적 대출인데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주고 온갖 비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두고두고 ‘마른 수건 쥐어짜기’로 돈을 뽑아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약탈적 대출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금융회사는 책임을 피하고 서민들은 죽어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어떻게 ‘국민행복시대’가 ‘서민절망시대’가 되어버렸고, ‘국민행복기금’은 ‘은행행복기금’으로 전락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은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가진 자들이 덮어씌운 ‘도덕적 해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이젠 빚을 그만 갚으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채무노예 상황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고리로 급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 제도로 구원의 손길을 뻗는 나라다운 나라가 되자고 호소한다.
특히나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최대 30퍼센트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챙기는 제2금융권 대출은 저소득층에게 약탈적인 대출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신용도를 꼼꼼하게 평가해 책임대출을 해야 할 채권자로서의 의무는 져버린 채, 오늘도 문자로 고객님을 외치며 돈 빌려 쓰라고 아우성이다. ‘상환능력 이상을 빌려주면 되돌려 받지 못한다’는 징벌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에서, 금융사들은 편안하게 무책임한 대출 영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여운 사람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 가혹하게 추심하는 현실을 저자는 개탄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과 개인의 각성, 그리고 조직화된 캠페인을 제안하고 있다.
빚이 왜 나만의 문제가 아닌가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한국의 롤링주빌리를 시작하는 저자의 훈훈한 캠페인과 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업과 신용카드라는 빚 권하는 사회의 두 기둥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폐해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금융제도와 법은 인간의 기본권보다 재산권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며, 왜 약자의 편이 아닌지를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다.
대출에 따른 추심이 어떻게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들려주고 있으며, 그 악랄성에 대한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저자는 후기에서 밝히기를 그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거나 좌절하거나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 금융권의 수익성 때문에 사람들의 인격이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되는 대로 갚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한다.
You are not A loan! 미국의 롤링주빌리 운동은 이렇게 말한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채무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당신은 빚이 아닙니다 not a loan'이고, 발음으로 해석하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not alone'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문장이 아닐 수가 없다. 채무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표현인 것이다. 당신은 빚이 아니고, 혼자도 아니라는 선언. 이 따뜻한 선언으로 채무자 구제의 사회적 정당성과 필요성을 외치는 것이다.
이 사회의 부조리 가운데서 누군가는 지적하고, 대다수는 공감하며,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모두가 함께 발걸음을 내딛는 선한 운동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꿈꾸게 하는 책이다.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아픔과 서러움을 직시하고,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켜 모두가 공감하고 더 나아가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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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기대됩니다. 명료하게 파악할 수도 없고 정리 할 수도 없지만 뭔가 막연하게만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세상..이런 부분에 문제 제기를 해 주신 작가님 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고 일단은 금융회사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정신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내용인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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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저자 제윤경/출판 책담/발매 2015.08.21.
우리의 금융 환경은 미국보다 더 잔인하다. 미국에서는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약탈적 금융'이라고 비판한다. 못 갚을 줄 알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다른 식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비판 의식은 법률에도 반영되어 있다. 주택소유및자산보호법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HOEPA)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법안은 1994년 미국 주택 담보대출 시장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제정된 법안으로, 대출자의 상환 노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걸 시혜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걸 시혜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약탈로 규정하는 이유는, 금융이 의무와 책임이 강조되는 사적 계약이기 대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은행 문턱 낮추는 걸 강조하며 금융과 복지를 혼동한다.
P254~255 대부 업체는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연체이자와 법정 비용까지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연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5퍼센트 전후, 즉 5만 원에 매입한 뒤 원금 100만 원과 더불어 연체 이자 및 법정 비용까지 포함해 극단적으로는 1,000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가 생긴다. 금융감독원의 2012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카드, 캐피털 등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부 업체에 대출 채권을 넘겨준 고객이 76만 명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9조 원을 넘는다.
P268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질병이나 사업 실패 등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변수에서 빚이 시작되거나 심화된다는 점이다. 내담자들의 질병, 사업 실패 이야기는 얼핏 그 사람만의 불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인 안전 부실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불행이다. 좀 더 선진화된 사회는 개인에게 발생하는 통제불능의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맞추고 있다. 의료와 주거, 교육의 복지망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들로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시민이 연체자가 되고 빚에 쫓겨 자살을 선택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또한 실패사 성공의 중요한 밑천이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동의가 있기에 사업 실패 이후의 새 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수밖에 없다.
사실 소득을 묶어놓고 부채를 늘려서 민간 소비를 키우는 경제성장 패턴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성장 메커니즘이었다. 가계 부문은 부채로 소비하려 구매력을 유지하고, 금융 부문은 부채 공급을 위해 다양한 대출 상품을 쏟아내면서 성장 동력을 확대하고 부동산과 자산 시장은 투기를 유도하여 저축을 자산 시장으로 유입시켜 성장세를 이룸으로써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안정기를 누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최종적인 붕괴가 바로 아직도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다.
결론적으로 소비자 신용의 증가는 금융회사와 기업에는 크게 이익이 되지만 소비자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소비자 신용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소비자의 파산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소비자 신용의 증가를 통해서 금융회사와 기업이 수익을 얻고 국가 경제가 성장하였다면 그로 인한 부담도 소비자만이 아니라 금융회사, 기업, 사회 전체가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소비자 신용의 증가에 따른 이익을 금융회사, 기업, 국가 모두가 누리면서 그에 따른 손해는 소비자들만 부담하하라고 하는 매우 이상한 논리가 판치고 있다.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도 없고 노후는 비참해질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이자율이 낮아 저축하면 손해지만 빚을 내서 투자하면 그것이 지렛대가 되어 부자가 될 것이란 달콤한 거짓말도 끊임없이 들었다. 현금을 쓰면 손해,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혜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월급날마다 카드 결제액으로 뭉칫돈이 빠져나가 허탈해졌다. 빚을 갚느라 생활비가 부족해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빚을 내서 충당하면 된다고 여겼다. 이자가 점점 생활을 조여 오면서 빚이 폭탄으로 변해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공포에 길들여져 간다.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한 노동과 시간에 갇혀 자존감과 이타심을 버리기 시작했고 시민 의식은 실종되었다. 내가 아파트 한 채로 벌어들이는 돈이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지불하는 비용이라는 것쯤은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서로를 착취하더라도 그저 돈 벌어 나만 부자가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제윤경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더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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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갓 대학생이 된,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에게 낯선 남성이 다가와 무언가를 권했다. 싫은 내색을 보일만 하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스스로 차버리냐며 남성은 끈질기게 구애를 펼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귀찮기도 했고, 친절이 과한 이 남성에게 모질게 대하는 게 왠지 미안헤 그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그렇게 생애 첫 신용카드를 만들었는데, 당시 나의 수입은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이 전부였다. 한동안 곳곳에서 열심히 신용카드 만들 것을 권해왔다. 즉석에서 10만원을 준다는 이도 있었고, 최고급 여행가방, 명품백 등으로 유혹을 하기도 했다. 이미 해당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하면 기존의 것은 해지하고 다시 만들 수도 있다 하였다. 이미 연체 중인 카드가 있다고 하면 대출을 받아 갚으면 바로 발급이 되는데 왜 아직도 손을 쓰지 않고 있냐는 소리까지 했다. 참으로 질긴 족속들이었다. 돈이 좀 궁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누군지, 내 벌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말하는 건지, 적게는 700만원부터 많게는 1600만원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에 비한다면 난 상대적으로 경제나 금융 방면의 지식이 없는 편이다. 고로 그들의 말을 들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결코 겪을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은 1998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전까지는 다같이 가난했을지언정 희망을 내버리진 않았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 믿었고, 실제로 나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1998년을 기점으로 우리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세상에 존재하는 안정적인 것들은 모두 파괴되는 듯했는데, 어제까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이 무너졌고 차곡차곡 돈을 저축하던 은행이 도산했다. 있을 땐 몰랐는데 어려워지니 하나둘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허황된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시절부터 사람들은 조금씩 빛을 잃고 빚에 눈뜨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나의 경험대로 곳곳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크게 필요성이 없는 물건도 남들이 지녔는데 나만 없으면 사고파 미치는데,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라면 그 정도가 더할 것이다. 사치품을 구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은 돈이 필요했고, 그 마음에 세상은 화답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대부업체가 돈을 빌려준다고 했다. 이자율이 다소 높은 게 흠이긴 했지만 은행에선 조건이 맞지 않아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그 돈이야말로 생명수와도 같았다. 근데 세상 일은 내 생각대로 되는 법이 아니다. 금방 받게 될 줄 알았던 보험금이 차일피일 지급이 미뤄지고, 갑자기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가 앓아누우면서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대출이 필요해진다. 말로만 듣던 '돌려막기'는 개그의 소재가 아니라 생존 방편인데, 세상은 이 시점부터 돌변하기 시작한다. 그리도 친절하던 사람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언제까지 돈을 갚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정해진 기일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그 때부터 과격하기 짝이 없는 행보가 진행되는데, 이른바 불법채심이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아주 모호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질지라도 일상생활의 영위가 불구가능할 정도의 수치심을 야기한다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례가 흔했다. 그리 독촉을 하지 않아도 채무자들은 자신이 빚진 금액이 있으며 이를 갚아야 한단 사실을 잘 안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손가락질이 더해지면서 그들의 모습은 더욱 어두워진다. 수년이 지나 더는 갚지 않아도 된다 싶을 시점이 도래했을 때 오히려 이름도 못 들어본 업체에서 종전보다 훨씬 불어난 금액을 들이밀며 갚으라고 종용하는 일도 잦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지, 그 과정을 책을 통해 읽으면서 난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중한 게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 땅은 천민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곳과도 같았다. 모든 법이 옹호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돈이었고 인권이 아닌 채권이었다. 애초에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무리다 싶을 정도의 돈을 빌려준 이에겐 왜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단 말인가.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관점이래 하는 것이 얼마나 한 쪽으로 편중된 것이었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었다. 사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었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돈을 빌려주고 빌려본 경험을 한 번 즈음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빌려준 입장일 때 내 돈을 빌린 이가 갚을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그 때부터 얼마나 초조했는가. 언제 즈음 돈을 갚을 수 있는지를 묻고 싶고, 당장 내놓으라고 찾아가 윽박 지르고픈 그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온 우주가 나서서 채권자만을 옹호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하물며 상대가 돈이 궁해 보여서 내 돈을 내밀었다면 대가를 바란다거나 이자까지 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호통을 치는 건 옳지 않다. 근데 오늘날 사회의 법과 제도는 그런 것을 옹호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앞장서서 행하고 있는 것의 방향 또한 크게 다르지가 않다. 채무를 탕감시켜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갚게끔 만드는 것인데, 그런 경우에도 이자율은 10%가량으로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사람을 오로지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단 말인가! 일부러 작정하고 거액을 빌린 후 잠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며 채권추심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고령자 등 일상생활이 버거운 이들이다. 그들의 채무는 도덕적 해이 차원이 아니라 생존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 먼저 살리고 보는 정책을 나라에 기대하는 게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위험한 사고거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그릇된 발상이려나. 다시 예전의 경험으로 되돌아가본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카드값 인출일이 다가오는데 3만원이 부족했다. 그 정도야 금액이 큰 것도 아니고 열흘 정도만 있으면 목돈이 들어올 예정이었는지라 괜찮겠지 했는데 왠걸, 아니었다. 3일쨰 되던 날부터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금액이 너무도 소액이라서였는지 상대의 목소리는 꽤나 친절했다. 하지만 정해진 기일까지 돈을 넣지 않으면 신용정보가 어디론가 넘어간다는, 알 길 없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건 은은한 협박이었다. 창피했지만 동생에게 전화해 3만원만 꿔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동생은 돈을 빌려주며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30만원도 아니고 3만원을 달라는 나를 우습게 여기진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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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나 케이블이나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고가 대부업 관련 광고이지 않나 싶다. 정부에서도 부동산 관련 대출을 권장하며 저금리로 대출받을 것을 권하기도 한다. 1년치 등록금이 천 만원을 쉽게 넘겨버리는 사회. 전,월세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에서 빚 없이 살아간다는 건 희망사항에 불가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빚을 갚아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불가피하게 갚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상황에 있을수록 더 쉽게 돈을 빌려주는 대부업체에 자연스레 손을 내밀기 마련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정해진 기간 내에 갚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빌린다. 그러나, 연쇄적인 대출을 해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경우 급격히 빠르게 빚이 늘어날 위험도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금융회사들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탐욕스럽고 잔인하게 채 무자로부터 빚을 받아내는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금융사로부터 사들인 부실채권을 통해 수익을 내는 대부업체는 채무자의 삶을 망가트리는 방법을 쓰면서까지 수익을 내기에 혈안이 되있다는 것을 말한다. 책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대부업체가 보유한 채권은 7조 738억원이고 인원은 325만명, 이들이 이러한 부실채권을 사온 가격은 원금의 5.7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간단히 계산해보면, 1억원 짜리 부실채권은 570만원에 대부업체에 팔려나가며, 이를 통해 원금 전체를 받아낼 경우 약 9천4백여 만원의 순이익을 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만 해도, 빚 거래 시장이 이 정도로 심각한 지 알지 못했다. 더불어 채무자가 이토록 쉽게 신용불량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개인의 인권이나 재산권을 책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것이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 주빌리 은행이 출범하면서 빚 족쇄를 끊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에는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상담 센터가 있다. 아무쪼록 이런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더 많아지길 바람해본다.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 : http://sfwc.welfare.seoul.kr/sfwc/main.do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 : http://www.seongnam-fw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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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니 내가 얼마나 깊이 커다란 자본을 등에 업은 언론의 주장에 세뇌되어 있는지 깊이 깨닫게 해준 책이다.
갚지도 못할 빚이라면 왜 빌려서 채권추심이라는 어려움을 당하는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자들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다소 유식한 용어를 붙이며 비난 했었다.
은행은 흔히 자신들을 금융기관이라고 칭한다. 자본주의에 혈액과도 같은 돈을 공급하며 자신들이 하는 모든일을 공공성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은행은 주식회사일 뿐이다. 철저히 수익성을 추구하는 회사일 뿐이다. 이 은행이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공공성을 가진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라는 판단에서 하는 투자행위일 뿐이다.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연체라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심하는 은행의 행위는 본인들의 투자실패를 개인에게만 돌려는 비열한 행위이다.
그럼 저소득층이 돈을 빌릴 곳이 없지 않느냐, 우리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시혜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주장.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 등 기본적인 사회보장시스템이 필요하다.
불법적인 추심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갑작스런 가족의 사망, 질병, 실직 등으로 최소한의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린 경우이다.
많지 않은 돈을 빌리고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안전망 구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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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될 것이 분명한 결핍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p147>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이 되는 대로 갚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p306>
이 책을 보니까 <동행> 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사회적 약자의 사연을 알리고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줌으로써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의 반응은 2가지로 나뉜다. 저렇게 될 때까지 뭐한거야? 썼으니까 없겠지. 없으면 안 써야지? 그래도 살아가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 도와줘야겠다.?!
뭐 저렇게 나눈다는 것도 일반적일 뿐 확실하지는 않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빚을 빌려주고. 종국에는 이 빚을 갚으라고 종용하고 협박하고 결국엔 자살로 이르는 사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금융권의 횡포와 국가의 방치가 얼마나 심각하느냐를 보여준다. 과연 이게 빚을 진 사람만의 잘못일까? 라는 것이다.
근데 이게 참 복잡한 느낌을 받게 한다. 빚을 주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 그 사람들이 그것들을 수용하고 잘 살아갔을 것인가? 이다. 또 다른 수단으로 빚을 얻었을 수도 있지 않나 라는 모순이 자리잡는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다. 재무상담과 함께 현재의 생활을 파악해주면서 부족한 부분은 보충해주고 함께 이끌어가는 부분이 계속해서 지원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저자의 말처럼 계속해서 늘어나는 대부업체의 노출이 아니라. 국가가 든든히 당신의 재정을 알아준다는 대책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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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 책은 급전을 당겨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투자를 할때 수익성과 위험성을 고려해서 투자를 하고
투자가 실패할 시 발생한 손해를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은행등의 금융권들은 사채 쓰는 사람들의 신용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대부를 하고 그들이 빌려쓴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아내는
현상을 고발하는 책이다.
대부를 하는 금융회사들은 돈을 빌린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기를 바란다.
계속되 연체를 통해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이자를 메겨
금융회사의 노예로 만들길 원하는 것이다.
파산제도가 굉장히 어렵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희망도 없이
늘어나는 이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한다.
그렇지만 돈을 못갚게 함정을 파놓고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사실 채무 면책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원이 없으면 또 다시 빚의 노예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다른 정책이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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