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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킨과 월터 킨 두 부부가 세상을 상대로 펼쳤던 사기극, 그리고 자멸적 내분에 대한 드라마이다.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 때문에 극이 다소 초점을 잃거나, 반대로 팀 버튼만의 몽환성이 배어나는 대목이 있다. 언뜻 보아 영화는 일방적인 피해자인 (전) 아내 마거릿 킨의 명예 회복을 위한 투쟁에 동조하고, 범죄에 가까웠던 남편 월터의 학대와 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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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킨과 월터 킨 두 부부가 세상을 상대로 펼쳤던 사기극, 그리고 자멸적 내분에 대한 드라마이다.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 때문에 극이 다소 초점을 잃거나, 반대로 팀 버튼만의 몽환성이 배어나는 대목이 있다.

언뜻 보아 영화는 일방적인 피해자인 (전) 아내 마거릿 킨의 명예 회복을 위한 투쟁에 동조하고, 범죄에 가까웠던 남편 월터의 학대와 뻔뻔스러운 악행을 고발하는 톤처럼 말하지만, 실화(객관적으로 팩트로 드러난 부분)를 살펴 봐도 그렇고, 영화 내적인 내러티브를 분석해 봐도, 냉정히 따지면 '두 분 다 잘한 것 별로 없음'에 가깝다. 물론 마거릿은 자기 '예술'에 열심히 몰입했을 뿐 남한테 피해 준 것 없고, 월터는 극중에서 묘사되듯 특정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뻔한 사실을 부정, 왜곡하고 든다든가 하는 '범죄 성향'이 두드러진 인물이니, 후자 쪽에 비난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픽션이건 현실이건 흑과 백으로 선명히 경계를 긋는 건 언제나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많은 경우에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마거릿 킨은 예술관 면에서나 기교 면에서나 아마추어를 갓 벗어난, 그대로 지냈으면 결코 성공 못 했을 2류에 가까웠다. 그러던 그녀가 월터 킨이라는 부동산 중개인(자기 적성이 따로 있었으나 희한하게도 적성과 현실적 성공을 경멸하고, 예술가로서 다시 태어나기만을 집착)을 만나고, 이름도 페기 얼드리치(이미 한 번 결혼하여 애까지 있었음)에서 바꾼 후 본격적으로 남편의 내조(?)에 나선다. 무작정 '큰 눈'만을 고집하여 화폭에 담고 보는 그녀의 화풍이란 그리 독창적이지도 않고 깊은 성찰의 산물도 아닌, 그녀 자신도 분명한 근원을 찾지 못한 어느 과거의 불안과 상처 그 흔적에 지나지 않는, 일개 반사동작 정도였다. 헌데 여기다가 사업 감각이 천재적이었던 남편 월터 킨이, 시장에서 잘 통할 만한 '의미(때는 1950년대 후반이었고, 아직 유럽 각지가 전쟁의 참화로부터 복구 안 된 시절. 커다란 눈으로 슬픔과 절망을 표현하는 전쟁 고아의 형상화 등등)'를 갖다붙이고, 마케팅까지 성공적으로 해 낸 것이다.

극중에도 등장하는 비평가 존 캐너데이의 독설도 있었지만, 지금 대중이 느닷 이 '무명화가'의 왕성한 창작에 열광하는 이유는 작품이 딱히 완성도와 성취를 증명해 보여서가 아니라, 상업적 센세이션의 일시 광풍에 휩쓸린 현상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게 냉정한 중론이다. 어쨌든 마트에서조차 이 '빅 아이즈'를 본뜬 캐릭터 상품이 유행하고, 본품을 갤러리에서 구매할 여력이 안 되는 대중에게는 포스터라도 판매해서 만족을 주었는데, 이 방식은 극중 배역의 대사에 따르면 '앤디 워홀보다도 먼저 착안해 낸' 월터 킨만의 혁신이었다고 한다. 아마 맞을 것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부부가 듀오로 나서되 원작자(아내 마가릿)를 분명히 밝혔다 해도 큰 지장은 없었을 것을, 구태여 창작 과정에는 손 하나 까딱 않고 뭘 만들어낼 재주조차 없었던 월터가, 마치 자신이 직접 그린 양 허위 배경을 널리 퍼뜨린 데에 있다. 좌절한 예술가인(대신 돈은 많은) 그는 거짓 선전을 통해서라도 뭔가 자존을 세우고 싶(이런 녀석들은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었겠고, 실제 아내의 작품이 큰 흥행에 성공한 건 작품의 매력보다는 자신의 사업 수완이 더 결정적 기여를 했다(이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봄)는 '억울함'도 작용은 했을 것이다. 여튼 물감과 파레트를 해당 창작 과정에서 잡아 본 적도 없는 자가, 유럽 여행 당시 무슨 느낌을 받은 거라며 뻔뻔스럽게 사기까지 치고 다녔으니, 대중을 속인 죄가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아내 마가릿은 그럼 '선의만 품었고 억울하게 명의와 명예를 빼앗긴 피해자인가' 하는 점이다. 둘 사이가 좋았을 때는 같이 사기를 치고 부와 영예를 누리다가,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벌여 또다시 대중의 주목을 받고자 했던 의도는 아니었을지.

영화는 시종일관, 상처 입고 소극적이었으며 언제나 남편에 주눅들어 살았던 피해자 이미지로 그녀를 그린다. 성격만큼은 저 극중 캐릭터에 가까웠으리란 짐작도 하게 된다. 에이미 애덤스가 열심히 연기했으나 각본 자체가 중심을 못 잡고 휘청대며, 고발극인지 코미디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진행이라서 그녀의 분투가 피부로 와 닿지를 않는다(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물 마거릿 킨 여사와 배우 애덤스가 나란히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이미 애덤스는 이 역, 혹은 <줄리 앤 줄리아>에서처럼 차분하고 담담히 자아실현을 꿈꾸는 여성 역도 어울리고, 혹은 정반대로 <박물관...> 2편에의 아멜리아 이어하트(의 밀랍 인형)처럼 세상에 당찬 포부를 펼치는 의욕 가득한 역도 잘 소화하는데, 무엇보다 그녀는 목소리가 너무도 맑고 그윽하며, 어느 외국어 대사를 표현해도 그 딕션이 기가 막히도록 감정을 잘 담는다.

예컨대, 죄의식에 몸부림치며 (감리교 신자인데도) 천주교 성당에 찾아가 고해를 하던 씬에서, 고해 칸막이 사이로 비치는 다른 큐비클의 파편적 인상이, 마치 오래된 성당 창가에 장식되곤 하는 모자이크 구조와 완전히 똑같이 보이게 찍은 건 팀 버튼만의 마술이 맞다. 이 장면에서 오가는 대화도 인상적인데, 신부 말이 '남편분이 세상의 허점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분이군요. 그러나 아내는 남편에 순종하라는 성경 말씀도 있으니, 부인께선 그저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게 현명하겠습니다.'이다. 요즘 같으면 이처럼 양심에 반하는 비굴한 충고를 하는 사제가 없을 텐데, 여튼 캐릭터 마거릿 킨은 젊었던 시절 이 한 마디에 다른 생각을 접고 만다. 그녀가 회심하는 건 세월이 한참 지나서였고, 다만 법정 투쟁을 벌이는 과정을 너무 희화적으로 찍은 건, 도대체 장르를 불문하고 자기식 해석만 무리하게 고집하는 팀 버튼 특유의 고집이자 병통이라고 하겠다

s****o 2023.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