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루이스씨에게 봄이 다시 올까?
"루이스씨에게 봄이 다시 올까?"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돌려돌려 보던 월간지 르네상스 연재하던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 처음 르네상스를 손에 넣은 당시 이미 루이스씨는 후반을 달리고 있어서 전반을 놓친 아쉬움에 두고두고 목말라 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엮여 나오기도 했지만, 컬러면이 살아나지 않았고 작은 화면으로 옮긴 인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르네상스 게제 당시의 디테일도 함께 안타까웠다. 그나마
"루이스씨에게 봄이 다시 올까?" 내용보기
고등학교 때 돌려돌려 보던 월간지 르네상스 연재하던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 처음 르네상스를 손에 넣은 당시 이미 루이스씨는 후반을 달리고 있어서 전반을 놓친 아쉬움에 두고두고 목말라 했다. 나중에 단행본으로 엮여 나오기도 했지만, 컬러면이 살아나지 않았고 작은 화면으로 옮긴 인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르네상스 게제 당시의 디테일도 함께 안타까웠다. 그나마도 구해보려고 인터넷 중고시장을 뒤져도 이젠 찾기 힘들던 이 책이 복간이 되다니. YES24에서 하릴없이 ''이정애''를 쳤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매우 정성들인 복간본이어서 펜 선이 모두 살아있고 칼라 면들도 따뜻하게 살아 있다.(국어 맞춤법 표기를 의식해선지 영어식 표기 ''만달라''가 ''만다라''로 바뀐것도 재미있다.)게다가 절필한 작가 이정애의 2006년 3월판 서문도 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미 작가가 절필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겠지. 우연히 기가 막힌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접하고 감동해서 놓친 앞부분을 상상하며 애태우는 옛날적 시청자처럼.(예전엔 케이블도, 디비디도 없었다.) 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덜 억울한걸. 소장하시라. 극히 신경이 예민한 우리의 루이스씨의 정신이 툭하면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모습은(그러다 정말 안드로메다를 만나기도 한다.^^) 지금 봐도 유쾌하지만, 끊임없이 누군가를 동경하는 등장인물들의 심정은 한없이 스산하며, 작가의 열정이 좌충우돌 하는, 페이지 가득 쏟아지는 갈피를 잡기 힘든 현학적 수다들 사이를 헤메다 보면 십수년전 우리가 얼마나 불안했는지, 작가의 피도 얼마나 더웠는지를 금새 떠올릴 수 있다. 복간을 위해 새로 그린 듯 한 표지의, 이제는 침착하고 나른하고 담담한 주인공들의 인상과 선이 펄펄 살아 날뛰는 본문의 인물간의 차이는 덤이다.(작가는 그것을 ''드라이하고 딱딱해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제는 단행본도 살 수 있고, 좋아하는 만화가를 진심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늦은걸까. ''만화작가 이정애''를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그리고, 길찾기의 복간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빌며.

[인상깊은구절]
홍당무를 먹는 달걀은 어떤 근거로 노이로제에 등장하게 되는 걸까?
a*****i 2006.06.29.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시 찾은 봄~
"다시 찾은 봄~" 내용보기
이정애 작가님의 1990년 작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찾아왔다. 2001년 갑작스러운 절필 선언 이후,오랫동안 근황이 궁금했던 작가의 단행본 발간 소식에 무엇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혹시 다시 만화를 그리실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에 머리말부터 급하게 읽어 나갔다. 그러나 ‘프로작가로서 펜을 꺾은 마당에’라는 글귀가 가슴을 쳤다. 아
"다시 찾은 봄~" 내용보기
이정애 작가님의 1990년 작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찾아왔다. 2001년 갑작스러운 절필 선언 이후,오랫동안 근황이 궁금했던 작가의 단행본 발간 소식에 무엇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혹시 다시 만화를 그리실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에 머리말부터 급하게 읽어 나갔다. 그러나 ‘프로작가로서 펜을 꺾은 마당에’라는 글귀가 가슴을 쳤다. 아아아~~~ 이젠 정녕 당신의 새로운 작품은 만날 수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예나 지금이나 ‘봄’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가 있었다. 고등학교 국어 과목을 충실히 들었던 사람이라면 이때의 ‘봄’은 계절적인 봄이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봄, 바로 광복을 의미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에서의 ‘봄’은 학문적 열정으로 가득 찬 순수청년 루이스씨의 첫사랑을 의미한다. 만화 속의 노엘이 순수하고 열정에 찬 청년이었듯이 이 작품을 그리던 시절의 작가 자신도 순수한 창작열정으로 몸살을 앓던 때였나 보다. 비록,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는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소재와 전개로 심의의 칼날 앞에 무릎 꿇려진 구멍이 송송 난 작품을 내세웠을지언정, 그 시절의 무모함과 열정은 무엇보다 진한 추억 한 자락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프로작가로서의 펜을 꺾은 마당’임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응한 이유는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 탓이라고 말한다. 그 시절의 무모함과 열정,불안과 우울,혹은 기쁨과 섬세함 같은 것들이 그리웠단다. 폭풍 같은 정열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젊은 날의 감성을 앨범에 담는 기분으로 내는 책이라고……. 이정애 작가님이 이 작품 《루이스씨에게 봄이 왔는가?》를 연재하던 당시의 나이가 꼭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으리라. 지금 현재의 나에겐 그런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정열과 열정이 있느냐고 냉정하게 따진다면 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직은 넘치는 젊음에 기대어 조금 더 무모하거나 서툴러도 된다고 자위하지만, 이미 팍팍한 현실에 길들여져 버린 내 자신의 젊음의 무게는 나약하기만 하다. 하긴,누군가 내게 지금 당장 가장 두려운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넘쳐흐를 것 같은 이토록 지독한 열정이 사그라져버리는 한 순간이 두렵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젊음이란 언제나 싱그럽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듯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위태롭고 찰나처럼 짧은 순간이기에 그토록 아름답게 기억되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자신의 표현대로 지금 만화를 보기 시작한 독자라면 ‘이정애’라는 이름은 생소할 것이다. 이미 5년 전에 절필 선언을 해 버린 작가이며,굳이 절필 선언이 아니었더라도 소위 말하는 주류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아니었으므로,많은 독자들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는, 아니 안다기보다 좋아하는 만화가의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즐겨주었으면 하는 것이 만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의 조금쯤 과한 욕심이려나.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루는 소년 왕들의 이야기《열왕대전기》나 중세유럽이 배경이면서도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모호함 속에 순수하고 신비로운 소델리니 교수를 만나는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 등의 작품에서도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과 이상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두 작품 모두 완결을 맺지 못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가의 절필선언 이후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열왕대전기》나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 등의 작품으로 이정애 작가를 만난 독자들에게도 이 작품은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는 보석이 있듯이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만큼 오래도록 읽혀지고 사랑받는 만화도 있다. 지금 뿐 아니라 조금 더 세월이 흐른 후에도 ‘이정애’라는 작가가 있었다고, 이런 만화를 그렸었노라고 알아주는 독자들이 있었으면 한다. 이 작품의 재판이 계기를 마련해 준다면 더욱 반가운 일일 테다.
s****r 2006.07.13. 신고 공감 8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그래, 왔다.
"그래, 왔다." 내용보기
내가 기억하는 한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잡지는 였다. 매달 발행일이 되면 동네 어귀 책방에 들어가 두툼한 르네상스를 사들고 나오곤 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두께가 거의 전과 수준이었다. 을, 를, 를, 를 (물론 만화 말이다.) 꼬박꼬박 한 달씩 기다려가며 에서 읽었다. 아하, 가히 그때는 기억력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몇 년 전 격월간지 를 잠시 정기 구독한 적이 있는데
"그래, 왔다." 내용보기
내가 기억하는 한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잡지는 <르네상스>였다. 매달 발행일이 되면 동네 어귀 책방에 들어가 두툼한 르네상스를 사들고 나오곤 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두께가 거의 전과 수준이었다. <1999년생>을, <라비헴 폴리스="">를, <테르미도르>를, <리니지>를 (물론 만화 말이다.) 꼬박꼬박 한 달씩 기다려가며 <르네상스>에서 읽었다. 아하, 가히 그때는 기억력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몇 년 전 격월간지 <오후>를 잠시 정기 구독한 적이 있는데 결국 포기했다. 만화의 수준이 아니라 내 기억의 수준이 문제였다. 두 달 만에 읽는 만화의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각설... <르네상스>를 통해 알게 된 작가가 이정애였다. 나는 그 당시 이정애의 독특한 그림체와 독특한 소재, 그리고 당시로서는 거의 파격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동성애 코드의 은근한 흘림에 끌려 ''이정애 만화는 볼만하다''주의였다. 그렇게 읽은 작품 중 하나가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이다. 그리고 대략 17년이 지난 어제 다시 읽었다. 하하, 세월이 많이 지나긴 했다. 루이스 씨도 나이를 먹었다면 쉰 줄에 들어섰을 나이다. ''블룸즈버리''와 <모리스> 쪽 연보다. 섬세하고 연약한 신경의 소유자 루이스 씨, 그의 캠브리지 동료 휴, 그리고 캠브리지 일원들 그룹의 독설과 장난,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탐닉, 루이스 씨와 휴의 사랑과 우정 사이, 루이스 씨의 퇴폐적 분위기의 얼굴. 물론 추억으로 읽었다. 당연히 예전의 신선함을 찾으려는 게 아니었다. <루이스 씨에게="" 봄이="" 왔는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s*******2 2006.07.06.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말 루이스씨에게 봄은 왔는가?
"정말 루이스씨에게 봄은 왔는가?" 내용보기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때는 중학생이었다.   순정만화라고 하더라도 부드럽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던 나에게 전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림자체의 거칠면서 세밀한 이중성에 한번 반하고   글 속의 대사와 철학에 다시 반하고....   시대를 앞선 느낌에 또 반하고   나이 서른이 넘어서까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하나이다.   한동안 활동을 안하시다 다시 활동하신다는 말
"정말 루이스씨에게 봄은 왔는가?" 내용보기

처음 이 만화를 접했을때는 중학생이었다.

 

순정만화라고 하더라도 부드럽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던 나에게 전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림자체의 거칠면서 세밀한 이중성에 한번 반하고

 

글 속의 대사와 철학에 다시 반하고....

 

시대를 앞선 느낌에 또 반하고

 

나이 서른이 넘어서까지 소장하고 있는 책 중 하나이다.

 

한동안 활동을 안하시다 다시 활동하신다는 말을 들었을때 기뻤다.

 

의도하지 못한 곳이나 것에서 문화의 충격과 미래를 보는 눈을 얻게 되는데

 

이 책이 나에게 그것을 주었다.

 

노엘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겠어.^^

k*****0 2010.09.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