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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나이 스물 다섯이면 결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당연지사일텐데.... 닥터 로제타 홀은 생판 모르는 동방에서도 가장 작은 나라에 와서 목숨을 내걸고 복음을 전했다. 우상숭배는 물론 타
종교를 받아들일리가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신앙의 불모지였고 여성들이란 존재감도 없는 나라 조선,
여성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해서도 않되고 그저 다른 사람의 부속물처럼 여김받았던 사회가 바로 조선의 모습이었다. 닥터 로제타 홀은 하고 많은
나라들 중 하필이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목했을까? 가까운 사람들도 지인의 어려움을 보면 돌아서거나 외면하기 일쑤인데 로제타 홀은 솔선하여
무지했던 여성들을 교육했고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듯 양반 중심의 사회, 신분의 격차가 심하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억압된 사회였음을 이 책
닥터 로제타 홀을 읽으며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어려움속에서 더욱 강인한 국민성을 발휘했다고 역사가 말하지만, 나라에 난리가 일어날 때마다
민심수습 차원에서 더욱 고통을 받아야했던 사람들은 바로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남녀가 평등한 세상, 하나님안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평등한 자녀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 사람들은 그동안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을 것 같다. 신분차별로 인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며 세상을 보는 시각이 열렸다. 교육의 특징이며 장점인 의식의 변화는 여성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게 되었다. 더 이상 여성은
누구의 희생물이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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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나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보통 우리의 할머니들께서는 장독대에 물을 떠 놓고 천지신명이라는 신에게 빌고
빌었다. 그 신들이란 얼마나 많은지 이루 일일이 헤아릴수조차 없는 지경이다. 사람은 불안한 마음에서 신앙의 대상을 찾는다고 했던가? 본인도
모르게 엄습하는 뿌리 깊은 불안의 근원을 찾아보면 우리의 온갖 종교적인 행위는 불란한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집집마다 하나의 신이 아니라 삼신, 지신, 수문신, 조상신 등등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신들이 존재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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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소개된 예수님처럼 버림받고 헐벗는 아이들을 위해 도움의 손을 내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은 닥터 로제스타
홀이다. 닥터 로제타 홀에게 청혼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림으로 채운 윌리엄 홀의 이야기를 알고 가슴이 먹먹하다. 사명이 무엇인지...
사명은 무엇으로 어떻게 감당해애 하는지를 일깨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인데, 복음을 모르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닥터 로제타 홀의 섬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교회 물품을 구입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뿐만인가 진행이 원만하지 않을 땐 자신을 더욱 돌아보고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안에서 찾는 성숙한 성찰의 모습도 지닌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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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그리고 또 기다림 끝에 결혼한 닥터 로제타 홀과 윌리엄 홀,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사랑한다면 언제까지든지 함게 있고 싶고 또 함께 나누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들 부부는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스스로
찾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든지 살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성경을 읽다가 은혜받은 말씀이다. 사무엘
상에 등장하는 법궤를 메고 가는 어미소으 이야기이다. 젖먹이 어린 송아지를 두고 어미소는 법궤를 멘 채 앞을 향해 감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던 일화이다.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는 사사로운 감정이 이입되면 역시 안된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닥터 로제타 홀의 부부가 역시 사명을 감당함에 자신의 아픔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역시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선교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가슴아픈 이별...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으니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얼굴을 대면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견딜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닥터 로제타 홀이 직면한 어려움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일이 잘 못되었을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이 누구의 죄로 인한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 습성이 있다. 인간의 연함함에 매일 매일 노력해도 부서지고 주저앉는 일이
되풀이 된다.
우리는 이 책 닥터 로제타 홀이란 책을 통해 25세의꽃다운 나이에 조선에 와서 43년 동안 의료선교를 펼친 로제타
홀의 인생 그리고 사랑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이 그녀와 그의 남편을 이끌었고 기적적으로 복음을 정착하게 한 그들 부부가 섬기는 하나님을
소개받을 수 있다. 신앙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도움을 베풀어준 닥터 로제타 홀과 윌리엄 홀이 아닐수 없다. 선교를 비전으로
삼은 후세대 일꾼들에게 귀감이 되고 선교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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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는가?
누가 자신의 일생을 헌신하여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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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경험이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을 알게된 것이 우선 그러했고, 스물다섯살에 처음 한양땅을 밟은 여성 의료선교사로서 그녀가 43년간 조선에서 헌신했다는 내용에 존경심을 갖게 된 독서였다. 미국 북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 소속인 선교사이자 의사 Dr 로제타 홀은 스물다섯살인 1890년에 의료와 선교사업을 위해 홀홀단신 조선에 왔다. 그곳에서 명성황후가 이름을 하사한 보구여관에서 의사로 일했고, 1년 후 연인이었던 윌리엄 홀도 의사 동역자로서 조선땅에 왔다. 로제타는 이미 몇년전에 윌리엄에게 청혼을 받았었지만 자기는 5년간 선교회에 독신으로 계약되어 있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진료소에 처음 들어온 로제타에게 첫눈에 반했던 윌리엄은 기다리겠다고 했고, 로제타는 고민 끝에 자기의 사랑을 깨닫고 두 사람은 많은 동료 의사,선교사들의 축복 속에 1892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한양에서 같이 일하며 신혼의 달콤함을 누릴새도 없이 선교지부는 윌리엄 홀을 평양 지방의 전담자로 파견한다. 윌리엄 홀은 수차례 평양을 찾는 여행을 거쳐 자신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평양에 가서 의료와 선교활동을 시작하고, 이어 로제타도 아기인 셔우드 홀을 데리고 온가족이 평양으로 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윌리엄은 청일전쟁으로 평양이 전화에 휩싸였던 1894년 병원에 밀려드는 군인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증기선 배에서 발진티푸스라는 병에 전염되었다. 그리고 며칠후 심한 통증을 겪다가 사망하고 만다. 그의 나이 삼십대 초반, 사랑했던 로제타와 아들을 남겨두고 아내의 태중엔 둘째 딸 이디스 마거릿을 떠나고 말았다. 로제타는 일기를 꾸준히 썼는데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난 후의 기록들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몇년후 딸 이디스도 이질이란 병을 겪다가 세 살에 아빠곁으로 떠났다. 로제타는 이후 계속 평양에서 남편과 딸을 기리며 그들의 이름을 딴 병원들을 세우고 20년간 헌신적으로 의료를 통해 아픈 이들, 특히 여성들을 치료하게 된다. 장성한 아들 셔우드 홀도 의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 결핵 환자를 퇴치하는 일에 헌신했다. 숭고하고 진정한 의사였던 닥터 로제타 홀의 삶에 너무도 감동받았다. 그런 일들이 어찌 의무감과 직업으로만 가능한 것일까 싶어 순간순간 많이 울컥했다. 홀 가족은 지금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지묘역에 묻혀있다. 고귀한 삶을 살았고 사랑을 실천했던 닥터 로제타 홀. 그녀를 알고 추모하며 기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감사하고 행복했다. 인류를 고양시키거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기초를 놓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기념물은 살아 있고, 따뜻하고, 길이길이 재생산적인 것이다. (437p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