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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술 목적에 대해 저자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적층(積層)되어온 일본군 '위안부' 담론의 지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류 역사 아래 존재했던 '위안부' 서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랐는지, 생존자의 목소리는 어떻게 담론을 재구성하게 되었는지를 살피겠다고 하였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공개 증언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공론장 한가운데로 불러냈다. 그녀의 증언은 성폭력 피해를 '여성의 수치'에서 '제국 군대의 전쟁범죄'로 바꿔 놓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은 침묵의 시간이었을까. 이지은의 『웅성이는 기억의 지층』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해방 직후의 소문과 목격담, 전쟁회고록과 수기 속에서 '위안부'는 끊임없이 이야기되었다. 다만 그 이야기는 그녀들의 것이 아니라 남성 목격자들의 것이었다. 국문학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이 문제를 역사학이 아닌 문학의 자리에서 다룬다. 저자에게 '위안부' 서사 연구는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일이 아니라, 그 실체 위에서 공동체가 '위안부'를 어떻게 인식해 왔는지 묻는 일이다. 그래서 책은 사료보다 텍스트를 파고든다. 그동안 연구에서 밀려나 있던 목격담과 수기, 대중소설이 분석의 대상으로 불려 나온다. 저자는 전장에서 돌아온 목격자들의 기록에서 출발해, 일본군 병사의 회고가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으로 옮겨 쓰이는 과정을 거쳐, 공개 증언 이후의 증언 소설에 이른다. 상호텍스트성과 되받아쓰기라는 문학 이론의 도구가 한국과 일본, 중국을 넘나들며 옮겨지고 바뀐 이야기의 지도를 그려 낸다. 이 책의 가장 큰 성취는 문학 연구가 역사 논쟁에 무엇을 보탤 수 있는지 보여 준다는 데 있다. 저자는 먼저 지금까지의 '위안부' 논의가 지닌 한계를 진단한다. 논의는 늘 '제국주의 비판 혹은 면책'이라는 구도로 되돌아가고, 그 과정에서 여성주의가 제기한 문제의식마저 세부는 사라진 채 결론만 남는다. 저자는 그 원인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찾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공동체 내부의 차별과 왜곡된 여성 인식을 묻는 목소리조차 단순한 정치 논리로 수렴되고 만다는 것이다(41쪽). 저자의 비판은 한 방향만을 향하지 않는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 사이에 연애 관계가 성립했음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목소리를 억압한 것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비판의 언어가 『제국의 위안부』가 그토록 비판했던 민족주의 남성의 언어와 같다고 지적한다(233쪽). 저자는 '소녀' 표상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소녀'는 식민지 여성의 피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상이지만, '소녀'가 피해자의 표상이 될 때 배제되는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8쪽). 이처럼 저자는 각각의 표상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지우는지를 끝까지 묻는다. 그러나 문학 연구의 제안이 역사적 현실과 만날 때 생기는 긴장도 있다. 저자에 따르면 증언은 운동 초기에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다루어지다가 2000년대 이후 증언자와 연구자의 '공동작업'으로 이해되었지만,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다시 '증거'로 좁아지고 성역화되었다. 저자는 증언을 원본 그대로 보존하려는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증언을 물화한다고 보고, 증언이 '살아있는 기억'으로 달리 말해지고 다시 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 연구로서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역사부정론이 '위안부=매춘부'라는 표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현실에서, 사실을 입증하는 일을 내려놓기는 어렵다. 저자 역시 이러한 수세적 태도가 현실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증언을 새롭게 해석할 자유와 사실을 지키는 단단함은 어떻게 함께 설 수 있을까. 어쩌면 저자의 답은 책의 마지막에 있다. 증언이 기억 유산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권위의 승인과 보존이 아니라, 증언을 새롭게 청취할 수 있는 시각과 듣고자 하는 청중이라는 것이다. 증언집에 담기지 못한 채 여전히 문서고에서 웅성이고 있는 말들이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그 말을 들으려는 청중이 되어 달라고 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