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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은 읽기에 재미나는 잡지다. 학술잡지로서 사학자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기고문을 통해 값진 지식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이 교양을 읽힐 마음에서, 아니면 그저 재미로 뒤적거려 보아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역사비평] 1999년도 각 권에 게재되었던 글들을 묶어서 '한국적 근대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주제삼아 편집한 책이다. 건축에서 의학, 법률, 철학, 가족 등 우리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근대화 과정의 명암을 분석하였다.
그러나 필자들이 일관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일환(우리 주거는 죽었는가), 최열(미술-서구화 지상주의의 환상), 황상익(한의학과 서양근대의학의 만남) 등은 그동안 추진된 맹목적인 서구화, 근대화 때문에 우리의 것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비합리적, 비현실적, 비현대적 등의 멍에를 덮어쓰고 코너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제부터라도 이런 잘못된 상황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쪽이다. 반면 문소정(한국 가족의 근대성에 대한 고찰), 윤가현(성과 성의식의 변화) 등은 서구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문제되는 것이 우리의 '봉건적' 전통구조였다고 하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봉건적 잔재(호주제 등)'를 철폐하고 제대로 된 서구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쪽이다. 한편 허영란(근대적 소비생활과 식민지적 소외), 이승환(황색 피부 하얀 가면: 철학의 식민화), 장석만(돌이켜보는 '망국의 종교'와 '문명의 종교') 등은 서구화에 밀린 우리의 사라진 옛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이미 대세는 어쩔 수 없으며 전통은 과거일 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정긍식(서구법 수용의 왜곡) 등은 우리의 '서구화'가 일제에 의해 왜곡된 과정을 지적하고 전통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서구화부터 제대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오늘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쓰는 말이며 예절, 가족관계, 혈연과 지연 의식, 명절풍속 등을 보면 아직도 전통문화와 사상을 지키고 사는 것 같지만, 정치, 경제체제를 포함해서 사회의 기본적 원리는 서구에서 도입한 것들이다. 이런 이중성은 지식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시민단체 대표가 가정과 회사는 가부장적으로 운영하거나, 동양사상의 부활을 외치는 철학자가 온통 하버마스니 로티니 하는 서양 사상가들의 동양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다.
IMF는 그런 이중성, 적당주의로는 언제까지나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 교훈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근대사 자체에 대한 관심 외에도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이 책을 한 번 읽고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것이 "전통(동양)문명=정신문명=근원적, 서구문명=물질문명=표피적.실용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이며,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동도서기론"일 것이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그렇게 분리할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이기 어렵거니와, 서구의 근대사 특히 근대과학의 역사를 볼 때 그 발전의 동력이 '실용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리공담'에 가깝다고까지 보이는 비판적이고 근원 천착적인 사유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예를 들어, 공간을 구성하는 '에테르'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물리학자들의 오랜 논란은 실용적인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서도'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은 채 주로 실용적으로 '서기'만을 받아들이고는 '서구문명=물질문명', '정신(동도)의 상실'이라고 하는 엉뚱한 논리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서구 근대정신'을 충분히 섭취하여 소화해낸 적도 없으며 따라서 근대성의 과잉은커녕 여전히 '근대적 주체'의 확립이 근본적 문제인 우리 사회에서 때아니게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고 있으며, 근대화의 외압적이며 계급계층적인 측면과 그 귀결이 충실히 규명되지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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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쾌쾌먹은 사고 방식은 아닐까? 정약용의 실용주의적 주장들은 그 당시 너무 파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의 권력체계에 도전하는 괘씸한 주장이었다. 실용이란 원래 세습을 타파하고, 무의미한 형식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 자체가 전통적이다.
지금 우리는 근대의 시대를 넘어서 현대에 집입해 있다. 근대와 현대는 시간의 차이가 아닌 철학의 차이로 보아야 한다. 근대는 합리주의 시대요, 현대는 상대주의 시대이다. 소위 말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하여 개방되고 반강제적으로 계발되었기 때문에 근대정신에 대한 반감이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기억할 필요는 있다. 우리나라,, 조선이 망한 이유는 바로 근대를 수용하지 못한 전통-권위적 권력구조 때문이다.
천주교를 통해 들어온 서구의 정신, 즉 합리주의와 과학정신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 속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전통을 옹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시대는 변하고 우리는 생존해야 한다.
생존은 곧 적자생존의 세계 속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
|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로 이렇게 쓰여진 책이 하나쯤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근자에 출판이 되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이 책은 정말 다양한 필자들이(현직 교수에서부터 건축가까지. 그리고 철학에서부터 법학, 종교, 미술, 음악까지) 한국의 근대성 형성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즉, 그 과정에서 우리의 주거문화나 가족구조의 변화, 성의식의 변화, 미술의 서구화, 소비생활과 패턴의 변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더듬고 있다. 그리고 음악이나 의학, 법, 종교에서의 변화도 살펴보고 있다. 게다가 '황색 피부 하얀 가면'을 단 논문처럼 식민지성의 문제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전통이 서구의 근대성 속에서 어떻게 변이되었으며, 그것을 복구하는 작업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전통이 그냥 전통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의 계승 작업이 우리의 정신의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잡종과 변이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
| 이 책은 전통과 근대화 사상과의 충돌을 역사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현재 미완으로 남아있는 '한국적 근대성'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저자 가 말하는 바,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대립이 아닌 전일적인 통일성'을 가능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삶의 패러다임'으로서 '자아와 타자가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세상의 나머지와 일체감을 느끼는 인간 사이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를 감싸고 있는 자연과의 연대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과 서구 근대성이 지닌 장점과 단점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그 장점들의 상호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세계사적인 보편성과 우리의 독자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지식인들은 지적 식민지주의를 청산하고, 탈모방적인 사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 역사, 문화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을 가져야 하며, 일반적인 이론지침을 서구에만 찾으려고 했던 과거를 냉철하게 자기성찰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