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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대한 인문지리적 시선, 그리고 서울에 대한 청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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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을 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은 물론, 하루에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을 들락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서 인문지리적 시선을 가지고 살펴보는 여유가 없었다. 서울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기능해 왔는
"서울에 대한 인문지리적 시선, 그리고 서울에 대한 청사진은?" 내용보기


  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을 주거지로 삼고 있는 것은 물론, 하루에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을 들락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은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삶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해서 인문지리적 시선을 가지고 살펴보는 여유가 없었다. 서울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기능해 왔는지, 서울 내에 일상적으로 다니던 동네가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을지, 도심지의 커다란 빌딩, 넓고 큰 한강 등이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지, 또한 우리가 꿈꾸는 서울의 모습은 무엇일지... 여기에 대해서 대중적인 관심이나 논의은 적은 편이다. 저자가 소설가 김훈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서울이 "만인의 타향"이기 때문이어서 그런가 보다. 많은 이들이 터전을 잡고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타향처럼 느끼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전공자이고, 오랜 기간 동안 서울에 살아왔다. 서울에 대해 인문지리적인 관심을 가져 왔고, 서울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책을 읽고 연구해 왔다. 그리고 서울의 여러 장소를 취재하러 다닌 결과를 종합하여 이 책을 썼다. 책의 제목에서 '택리지'라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저명한 인문지리학자인 이중환이 쓴 책인 <택리지>를 따서 책의 제목을 정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와 유사한 점은, 서울의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각 장소의 모습이 형성된 역사, 장소에 얽힌 사람들의 삶 이야기 등을 풀어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의 모든 장소를 다 둘러볼 수는 없고,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먼저 서울의 도심인 사대문 안 구 한양도성의 영역, 그리고 한강 일대, 또 강남 일대 등이다. 다들 서울에서도 '핫 플레이스'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장소이다.


  서울의 도심 지역에 대해서는, 조선 시대 도읍으로 지정되어 한양도성이 건설된 시점부터의 이야기가 많다. 성리학의 논리로 건국된 조선은 국가적인 통치 경관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다. 특히 궁궐, 육조거리 등이 그것이다. 한편으로 도시계획 과정에서는 성리학적 논리보다는 풍수 사상의 논리가 더 많이 반영되는 모습도 보인다. 내사산이 둘러싸고 있고 명당수 청계천이 앞으로 흐르는 명당 자리에 입지한 궁궐 말이다. 조선 시대 내내 한양도성의 경관은 풍수의 논리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가꾸어진다. 저자는 이렇게 오랜 기간 형성된 한양 도성 600년의 풍경을 역사도시 서울의 정체성으로 본다. 일제강점기와 개발시대에 파괴된 한양도성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사대문 안이 그대로 남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책 곳곳에 드러난다.


풍수 사상의 논리에 의해 건설된 도시, 한양


  육조거리라는 이름을 살렸으면 한다. 또, 육조거리를 재현해야 마땅하다.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청사 사이 주차장 지상 공원에 육조장랑 미니어처를 전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선의 행정관청인 육조라는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제는 거리 이름을 광화문통으로 바꾸고, 육조장랑을 뜯었으며, 그 이름을 쓰지 못하게 금지했다.(p.68)


  지명이란 자연과 지리, 풍속, 제도의 산물이다. 그러나 식민 통치를 갓 벗어난 신생 대한민국은 숙고 없이 즉흥적으로 지명을 바꾸는 데 열중했다. 오늘날 사대문 안을 오가는 숱한 청소년들이 육조거리와 황토현, 운종가 같은 우리 옛 지명을 알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좋은 역사나 전통이라도 계승하지 않으면 잊히기 마련이다.(p.84)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만약 그때 서울의 인구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면서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또한 한강과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p.108, 110)


  흙만 파면 유적과 유구가 쏟아지는 서울 600년의 핵심 지역인데도 그 누구도 훼손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옛 서울 보전이나 복원은 안중에도 없다. 서울시가 추진 중이던 청계천 지천 백운동천이나 중학천 물줄기의 완전 복원도 물건너간 셈이다. 이들 빌딩 아래를 흐르는 백운동천은 인왕산에서 청계천을 거쳐 한강으로, 중학천은 백악에서 발원해 청계천으로 모였다가 한강으로 흘러가는 한강의 35개 지천 중 하나다. 좋든 싫든 이들 빌딩 완공으로 서울 도심은 또 한번 개벽했다.(p.144~146)


대기업 빌딩으로 둘러쌓여서 조선시대의 모습을 잃은 육조거리 풍경



  한편 광화문 네거리를 비롯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 똑같은 모양으로 있는 교보생명 건물이 '그렇게 생긴'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교보문고 갈 때 자주 들리는 건물이었는데... 그리고 그 외에도 군사정권 시대에 개발지상주의로 건설된, 혹은 최근 신개발주의 시대에 건설된 건축물에 대해서 저자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교보생명 건물이)일본 도쿄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의 디자인을 빼닮았다는 이유다. 교보생명은 미국 건축가 시저 팰리에게 같은 건물을 지어달라고 부탁했고 이 디자인을 교보의 전국 지사 건물로 무한 복제했다.(p.76)



  저자는 한강 주변 지역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명하고 있다. 새하얀 모래밭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사이를 구불구불하게 흐르던 한강, 그리고 옛 선비들과 백성들이 물과 가까이 지내던 곳이 바로 한강이다. 그런데 개발독재 시기에 건설된 인공화 작업으로, 한강변은 준설과 매립 등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고 흡사 인공호수처럼 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까워 하고, 한강에서 인공 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어붙은 한강에서 빙상대회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

당시의 한강은 지금보다 폭이 1/5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시민들이 즐기기에 좋았다.


  한강은 사람들을 위해 심장(잠실)과 내장(여의도)을 아파트 택지로 내놓았다. 두 개의 보가 한강의 목젖과 다리를 각각 누르고 있고, 30개의 다리가 한강을 포박하고 있으며, 고층 아파트 숲이 태양과 바람을 가로막고 있다. 양팔과 두 발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도로가 돼 꼼짝달싹 못한다. 이제는 한강을 풀어줘야 한다. (p.63)


  옛 선비들은 한강을 동호, 서호, 남호 등 3개의 호수로 미화해 풍류를 즐겼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한강은 사실상 인공 호수로 변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p.202)



  빌딩 숲을 이루는 첨단 업무지구, 불야성을 이루는 초호화 상가들, 서민들은 엄두도 못낼 가격의 주택지역... 저자는 우리가 보는 강남의 모습을 현대 서울의 모습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70년대 이후 군사정권 주도의 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본다. 서울에 편입된 이후에도 한동안 시골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강남이, 70년대 이후 정부 정책과 민간 주택시장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현재의 화려한 시가지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한강의 기적과 천민자본주의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평가한다. 


  우리에게 강남이란 무엇일까. 새 서울도, 제2 서울도, 남서울도, 영동도 아니다. 바로 서울이다. 강북이 조선 왕조의 도읍 한양이라면 강남은 우리 손으로 건설한 '진짜 서울'일지도 모른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강북에서 조선을 느끼고, 강남에서 현대 한국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지 않는가. (p.294)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 만한 곳"의 정의를 내리고, 이러한 조건을 찾아서 전국을 유랑하며 지역과 사람들의 삶에 대해 관찰, 분석, 비교하였다.이 책은 어떠한가? 초반에 택리지처럼 "살 만한 곳"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택리지와 유사한 점이라고 하면, 장소의 인문지리적 특징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저자가 그리는 서울의 이상적인 모습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서울의 모습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도심인 사대문 안은 조선시대의 성곽도시 풍경이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빌딩 숲, 조선왕조의 풍수논리와 지명이 사라진 모습이 아니다. 사대문 안을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풍경으로 재현하여 세계적인 역사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강은, 시민들이 다가가서 물과 가까이 할 수 있는 한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금처럼 콘크리트, 보, 강변도로 등으로 시민과 분리되고 호수같은 한강의 모습이 아니다. 한강의 생태가 살아나서, 강수욕장에서 시민들이 수영하고 시민들이 강과 함께 호흡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리고 역사성과 생태성이 되살아나면서 시민들이 행복하기 사는 공간으로서 서울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최근에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및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과거 600년 간 조선 왕조의 핵심적인 경관이었던 한양도성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면 저자의 의견대로 역사도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양도성의 경관이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 시기에 파괴되어, 그 사이에 빌딩과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형성되어 버린 것도 몇십년은 지났다. 저자의 안타까움도 이해는 가지만, 한양도성 경관의 복원을 위해서 기존의 경관을 또 파괴해 버리는 것도 현실적이진 못하다. 그 막대한 비용은 어디서 충당할 것이고, 기존의 대기업들과 거주자들이 이에 대해서 공감하고 물러날까? 역사성과 생태성을 위해서 기존 경관을 파괴하는 것 또한 개발독재와 다를 바 없는 폭력이다. 또한 역사성의 경우, 조선왕조의 오랜 시기 중에서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느냐, 상업성과 역사성의 충돌을 어느 정도 조정하느냐 등도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여러 정치적 쟁점을 조정하여 한양도성이 서울을 대표하는 경관이 된다면 좋겠지만 이 순간이 당장 오기는 힘들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이 책을 비롯하여 여러 서울의 이상적인 미래 모습을 그리는 책을 읽고 열린 토론의 장을 공유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 '만인의 타향'이라고 하지만, 정작 현재 서울 시민 중 많은 부분은 서울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생활터전으로 삼거나,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서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다(난 여기 포함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인 서울의 경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읽어보고, 우리가 꿈꾸는 서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사실 서울에 대한 인문지리적 시선을 가지는 책은 제법 많다. <한강의 기적 : 콘크리트 걷어내고 도요새 날아드는 한강 탐구생활>, <서울 스토리 : 장소와 시간으로 엮다>, <서울 에세이>,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등은 개인적으로 리뷰를 쓰기도 했고, 이외에도 많다. 하지만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일부의 사람들만 읽을 뿐,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은 서울 맛집 기행 관련 책만 많이 보는 듯 하다. 이 책은 서울의 여러 장소 모습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상적인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r*****0 2015.01.27.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