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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그동안 반복해서 보긴 했었지만, 리뷰를 써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글을 쓰게 되면 상당부분 느낌이 사라져버리는 데다, 일부 밖에 드러내지 못해서 뜻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 번에도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기억하고 있는 몇 가지 장면들을 되살리고 싶어서 짧게나마 감독에 대한 생각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배창호]고, 주연은 그의 아내 [김유미]다. 감독 남편과 주연 아내가 호흡을 맞춰 영화를 만드는 일은 새로울 것도 없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바로 저예산 독립영화였기 때문에 아내를 쓰지(캐스팅)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제목이 ‘정’이고 남편과 아내가 돈들이지 않고 만든 영화라면 벌써 청승스러워하거나 뭣 때문에 만드느냐며 비웃는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만들어 놓은 영화를 본다면 예사로운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배창호 감독에 의하면 “영화는 문화유산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담아서 언젠가는 하나의 문화자료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중국과도 다르고 일본과도 다른 한국만의 것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서 담은 것이 이 영화의 제작의도”라는 것에 영화를 본 후 공감하게 되었다. 목적이 지나치게 강하면 영화가 교훈적이거나 지루하기 쉽고, 전통적인 것을 담으려고 내세우면 식상하거나 구태를 벗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한계를 잘 극복하고 있다. 우리 것을 새롭게 알게 하면서도 재미도 준다. 결혼식, 장터행사, 옹기 굽기, 시집살이, 한의치료, 집, 의복, 음식 등을 과거자료를 근거로 충실히 재현하여 한국인의 색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어머니(김유미 분)가 시집오던 날부터 도시로 유학간 아들이 타고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현재까지 회상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어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수많은 하루하루가 아니다. 인물 중심으로 회상하고 있는데, 특히 정이 깃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중 영화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정, 첩과 본처와의 정, 남편과의 정, 더부살이 하던 아기 엄마와의 정, 어머니와 아들 간의 정을 중심으로 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살려내는데, 절제된 연출과 정교한 편집으로 이 영화는 well-made 한국영화의 숨겨진 걸작으로 입선전이 되고 있다.
DVD로서도 드물긴 해도 강하게 추천되고 있다. 우선 영화자체의 장점으로 인해 추천되는 듯하다. 헐리웃 류의 상업영화와는 달리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가 있도록 연출한 감독의 관객에 대한 존중이 주는 기분 좋음과 아름다운 영상이 주는 따뜻함, 전통음률이 주는 정겨움, 안정된 연기로 인한 편안함, 억지와 강요가 없는 웃음, 한국인의 정서가 가져오는 그리움 등 다양한 감정선을 터치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DVD가 갖춘 장점으로 인해 추천될 수 있을 것 같다. 뛰어난 화질로 아름다움 장면들을 깨끗하게 표현하고 있다. 유채밭과 진달래 길이 나올 때면 아름다워서 슬플 정도다. 그리고 배창호 감독의 커멘터리는 그야말로 ‘적어가며’ 들어야 할 정도로 알차고 재미있다. 영화학도라면 어지간한 몇 개 강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줄 것같다는 생각이든다. 영화감독과 영화가 갖는 진정성이 저런 것이구나 하고 느껴진다.
이 영화는 프랑스 베노데에서 열린 제1회 베노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들이 뽑은 관객상을 수상하고 나서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직 보지 않은 분들에겐 DVD로 보시라, 권하고 싶다. 초반 결혼식 장면도 새롭게 해석했다하지만 예사롭게 보면, TV 사극에서 본 듯한 장면으로써 나른해질 수 있는데, 조금만 인내 한다면 편견을 깨고 금방 재미를 주기 시작한다.
[인상깊은구절] 술취해서 집으로 돌아올 때, 육자배기 부르는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