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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읽은 후 아야톨라 호메이니에게 흘겨보는 눈으로 이 책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설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 소설을 둘러싼 맥락을 의식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체 줄거리가 매우 복잡하고 산만하다. 또 등장인물들이 모두 선과 악을 갖고 있으며 화자와 거리감을 갖고 그려지기 때문에 딱히 감정이입을 할 인물도 없어서 그런지 몰입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그 화려한 상징과 비유, 상상력과 풍자는 압도적이다. 살라딘 참차가 악마로 변해서 수용소에 갖힌다. 수용소에는 다른 이민자들도 각기 괴물들로 변해서 감금되어 있다. 저들이 묘사의 힘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하! 묘사의 힘이라는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이야기 전개에 쓰는 이 장난스러운 상상력. 코란이나 성서에서, 신의 뜻이 아닌 인간 필자의 뜻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당연히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이것도 천연덕스러운 설정으로 보여준다. 지브릴 파리슈타가 대천사가 되긴 했는데, 얼떨결에 예언자에게 불려나가고, 해줄 말도 없는데 예언자는 대천사 몸을 쥐어짜서 대천사 입으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었다던 무함마드의 아내들과 유곽의 창녀들을 유비시켜 그 허구와 사실이 얽혀들어가고 비유가 현실에서 파괴의 힘으로 등장하는 그 대목! 읽으면서 전율이 일어났다. 게다가 실제 소설 안과 소설 밖의 이야기가 비슷하게 전개되기도 하였으니. 이 소설의 자기실현적 예언은 이맘(호메이니)를 묘사한 부분에도 있다. 무소불위의 율법과 권력으로 사람들을 압살하는 이맘의 모습은, 이 소설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를 작가에 대한 사형선고로 연결시키는 독재자의 쪼잔함으로 현실화되었다. 솔직히 무함마드에 대한 비하보다는 호메이니 본인에 대한 풍자 때문에 더 열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우. 찌질한 XXX. 찌질할 뿐 아니라 멍청하다. 이 책에서 가장 심하게 비판하는 것은 영국, 영국인, 런던이다. (당시 영국 이민자에 대한 학대나 폭력진압 같은 것이 당시 문제가 되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영국은 루시디의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영국에 대한 비판을 포용한다. 아무래도 좀 더 성숙한 사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상력과 여유가 소거된 사회. 정말 끔찍하다. 실제로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오직 한 과목 -코란만 가르치기도 하며, 음악과 미술은 사악하다며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살만 루시디는 자기 이름과 같은 살만이라는 캐릭터로 자기비하와 자기풍자를 하고 있기도 하다. 흠.. 쫓기는 입장이 된 살만과 바알이 실제 살만 루시디와 겹쳐지기도 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중에는, 네가 약자일 때 타협하겠느냐. 네가 강자일 때 포용하겠느냐. 이 두 가지 물음이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든 결국은 악마의 손에 넘어간다고나 할까. 다른 말로 하면 시험에 드는 순간 이미 졌다. 우리는 오직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 화자가 신인지 악마인지 끝까지 애매한 것 같다. 무심하고 무능한 신이라고 봐도 신의 묵인 하에 인간을 시험하는 악마라고 봐도 둘 다 무방하다. 번역자는 화자가 누군지 끝에 밝혀졌다고 보던데.. 난 잘 모르겠다. 훌륭한 소설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정도에는 약간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호메이니가 노발대발하면서 오히려 띄워준 것 같다. 이 책 자체가 절묘하게 '악마의 시'라는 비유에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악마가 루시디에게, 작가로서의 명예와 목숨을 건 도피 생활 중 어떤 걸 선택할래? 하고 시험에 들게 했다는... 하지만 작가 루시디는 그렇다치고, 그 살해위협과 테러의 등쌀에 어이없게 희생된 무고한 시민, 서점이나 도서관 근무자, 각국 번역자들은 대체 무슨 죄일까. 수백명의 목숨이 이 책과 얽혀 희생되었다. 인생 무상이고, 이 와중에 끈질기게 살아남아 작품 잘 써내고 있는 작가는 다시 지브릴 파리슈타와 겹쳐진다고나 할까. 인도인의 영국에 대한 애증관계 -식민지로 착취한 영국을 미워하고 싶지만 아무리 봐도 세련되고 고상하다고나 할까?- 영국 연극이 인도식으로 번안되면 난리법석 신파극으로 변형되는 데 대해 살라딘이 아우 싫어싫어 하며 몸부림치는 대목 등에서 큭큭 웃었다.. 루시디도 식민지를 착취한 제국의 언어인 영어가 자신에게 작가라는 직업과 작품이라는 결과물과 명예를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자기분열을 의식하고 있는 듯 했다. 번역을 꽤 공들여 했다는 느낌이 든다. 번역된 문장도 상당히 시적이고 유려하다. 언젠가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우리 나라 번역자 김진준씨는 무사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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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만번하고도 한번 더! 찬사를 바치고 싶다. 어쩜 이런 기발한 상상의 세계가 있을 수 있을까? 어쩜 이런 놀랄만큼 재치있는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살만 루시디는 정말 최고다. 최고중의 최고였다.
지브릴 파리슈타, 살라후딘 참차왈라, 알렐루야 콘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상상속에 있으면서도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었다. 인도에 가서 살라딘의 집을 찾아보고 싶다. 나비로 뒤덮인 아예샤를 꿈꾸고 싶다. 이슬람을 다시 보게 되었고, 후광이 아름다운 지브릴을 만나고 싶다. 이 모든게 꿈같고, 이 모든게 진짜같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태어나려면 난 먼저 죽어야 하는걸까? 지금은 살아있는 걸까? 지금 어딘가에 지브릴과 살라딘이 있는건 아닐까?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책의 구성도 좋았고, 색다른 이야기들이 넋을 빼놓았다. 나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다. 나는 좀 더 다른 느낌으로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루시디가 말하는 환상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내 눈과 마음을 한번 더 새롭게 눈뜨게 해주었다.
번역의 문제로 짜증나는 책들이 많다. 정말 도저히 읽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것도 많이 봤다. <악마의 시="">는 번역의 수준으로 왈가왈부할 수 없는 세계다. 그것은 활자를 보고, 문장을 이해하고, 내용을 머리에 집어넣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악마의 시="">는 더 넓은 세계를 펼쳐준다. 말의 의미와, 문장의 의미와, 이야기의 정확한 전달을 뛰어넘어, 내 안에서 펼쳐지는 그 끝없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게 해준다. 진정한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그 감동과, 경이로움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인상깊은구절] 하늘에서 곤두발질치며 지브릴 파리슈타가 노래했다. "다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네. 이야호! 야호! 젖가슴같은 대지에 내리려면 먼저 날아야 한다네. 파닥! 파다닥! 먼저 울지 않는다면 어찌 다시 웃을 수 있으랴? 한숨없이 어찌 연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랴? 바바, 그대 다시 태어나고 싶다면......" 새해 첫날 무렵이나 그 무렵의 어느 겨울날 아침, 동트기 직전의 쾌청한 하늘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두 명의 성인 남자가 자그마치 이만구천이 피트라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낙하산도 날개도 없이 영국 해협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나 그대에게 말하건대 죽어야 한다네, 말하건대, 말하건대."악마의>악마의> |
| 이 책에 의하면 유령이란, '끝맺지 못한 어떤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이 책에서 나온데로, 우린 유령처럼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굳이 또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많은 매체(심지어 책 표지에도)들이 떠들었으니까. 다만 나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말만 하고 싶다. 만약, 이슬람 쪽이 가만 있었다면 다른 종교단체들이 들고 일어났지 않았을까 싶다. 단지 이슬람 쪽이 극렬하게 반응해서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침묵을 지켰던 듯 하다. 그만큼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는 굳이 이슬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신은 무엇이고, 천사와 악마는 무엇인가. 그리고 살아 있는 자와 유령의 차이는 무엇이며 현실이 꿈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책은 상당히 심오한 주제를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유쾌하게 다룬다. 신은 신이었기 때문이 신이고, 천사와 악마도 각자 그 처함이 달랐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읽어낸 텍스트였다. 그렇지만 아마도, 이 책은 읽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것을 읽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번역이 어려운 만큼 해석 또한 애매모호하도록 수많은 은유와 언어유희와 상황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맘 통하는 친구와 함께 읽고 토론을 나눠 보기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언론의 소개글처럼 천사와 악마의 '숨막히는' 대결 장면은 없었기에 실망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생동감이 넘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살아 있는 책이라 평하고 싶을 만큼이나 역동적이므로. 마지막으로, 상당한 고민과 정성을 기울여 번역했다는 것이 느낌으로 와 닿을 만큼 노력한 번역자에게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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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이라고 해서 읽었으나,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이게?' 였다.
오늘 뉴스에 루시디가 잘살고 있다는 (무슨 기사작위를 받았다나 뭐라나..) 소식을 들었다. 이슬람교에 사형선고를 받고,, 도피생활중이지가 언젠데... 숨어지내도모자랄판에 ..라는 생각까지 하다가 문득. 사형선고라는 것까지 다 쇼아냐?라는 생각도 문득..
물론 이슬람교가 루시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린것은 사실일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키워드가 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이고,, 화제가 되서 그의 저서인 '악마의 시'가 문제작이 되었고, 그러한 문제작아닌 문제작이,, 영웅 또는 이야기거리를 찾는 사람들(미디어)에 의해서 과대포장되고,, 그런것에 혹에서 사서 읽은 나같은 사람이 다 읽은후에 '겨우?' 내지는 '이게?'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현상도 하나의 문화라면 문화일 것이고, 이슬람과 다른 종교와의 생각의 차이도 문화의 한 장면에 불과하지 않는다..
참 우낀것같다.. 우리 사는 이 세상이란것이,, 그것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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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잔인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악마역시 신의 피조물이라면 악마의 성향은 어디에서 왔을까. "악마의 시"를 읽으면서 제대로 알수 없는 내용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 장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은 느낄수가 있었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서 지극한 감동을 주기에는 정서적인 어설픔이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세계적인 정서를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의미에서 "악마의 시"는 적어도 내게는 기여한 바가 크다.
이 책에 대해 아무리 알쏭달쏭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읽어봤다면 나름대로 뭔가 남는것은 있을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나 비유적이고 은유적이고 감춰져 있기때문에 그 윤곽이 보이지 않는것 같지만, 사실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부분은 곳곳에 숨어있다.
지브릴 파리슈타와 알렐루야 콘의 관계...살라딘 참차왈라의 심리적 변화.....다분히 공감을 이끌어 낼수 있다. 그러나 내게 무엇보다 이책이 흥미로왔던 점은, 이슬람교의 역사에 대해 조금은 알수 있게 해주었던 점이다. 이슬람교에 대해 우리가 아는것이 대체 무엇이겠는가. 성서에 대해 꼬집은 책들이 나온것처럼 이 책은 종교에 관해 꼬집고 있다. 예언과, 계시와, 예언자의 허구성. 이 점만 파악해도 이 책에서 얻는것은 값지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난해하고 복잡하고(작품 자체가 그렇게 쓰여져 있기에 번역또한 그런것이겠지만) 얼기설기 하지만, 문장의 표현이 대단히 참신하다는것은 정말 거부할수 없는 사실이다. 다분히 아름답고 시적인 내용이 곳곳에 있다. 아직은 나도 제대로 이 책에 대해 파악하진 못했지만,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후회감은 별로 들지 않는다...다만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 차이가 아쉬울 뿐이었다.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수 있는 작품이라고 책장을 덮고난 지금 나는 그렇게 회고한다. [인상깊은구절] . |
|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 이야기 속에는 절대악이 존재치 않으며 절대선 역시 존재치 않는다. 우리가 어릴 적 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지겹게 들어 너무나 익숙해 져 버렸기에 그 틀을 벗어난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어하는 그 이야기 틀을 훌쩍 벗어나 버린다. 어찌보면 평범한 어찌보면 평범치 않은 우리의 이웃들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새 악마와 천사로 태어나게 된다. 그들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진 적도 천국으로 승천한 적도 없으나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을 뿐이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기도 전에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 속에 이제껏 쌓아 왔던 그들의 믿음은 무너지고, 그와 동시에 나의 믿음 역시 흔들린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이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인가? 판단을 내리는 것은 누구인가? 만약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당신 머리에 달린 뿔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불안정한 사회, 무슨일이 닥칠지 누가 아는가? 미리 미리 준비해두자. |
| 1988년 출간되고 1년 후 이란의 정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에게 이슬람교 모독죄를 적용하고 이슬람교도들에게 루시디의 처형을 명령한다. 그 이후 작가 루시디 뿐 아니라 관련 출판사, 신문사, 번역자들에게 수많은 테러를 일으키며 아직까지도 도피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작 『악마의 시』의 국내 첫 완역판.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가 살아남는다. 두 주인공이 각각 천사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생각보다는 무섭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의외로 초반엔 지루할 정도였다. 생을 사는 건 누구든 악마든 천사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던 책 |
| "악마의 시" 출간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소설 그 자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었고, 국내 출간시에도 역시 초점은 소설과 관련하여 살해된 사람들과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루시디에 맞추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이슬람 사회의 반발을 일으켰을까" 하는 호기심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이슬람 사회의 반발을 일으킨 부분은 책의 일부분일 뿐이며, 선과 악이 변화를 거듭하는 내용을 볼때 책속에서의 선악의 구분도 무의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마의 시"는 선과 악, 신과 신의 메세지를 해석해서 전달하는 전달자들, 인도의 영화계 발리우드, 식민지 인도와 인도를 지배했던 영국, 남녀의 관계를 납치된 후 폭발한 비행기에서 추락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인도의 인기배우와 영국에서 성우로 활동하는 인도인을 통해 실재와 환상의 세계를 교체시키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루시디의 소설은 다양한 종교와 민족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인도의 모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강렬한 향료들이 섞여서 맛을 내는 인도요리처럼 다가온다. 그만큼 우리가 제 맛을 즐기기엔 어느정도 역부족 인것 같다. 하지만 루시디의 소설은 그만큼 매력적이고 개성이 뚜렸하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을 읽고 반해버린 후 바로 '악마의 시'를 보게 됬는데, 루시디소설의 독특한 매력들(특유의 유머감각과 현란한 사건전개, 강한 여성상 등)을 발견하게 된다면 아마 좋아하게 될것 같다. 책의 이해를 돕기위해 ( )를 이용해 단 설명들은 복잡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어려움을 주고, 밑에 "주"로 달아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 관련된 리뷰는 많이 올라있는데, 신문기자들중 책을 다 읽고 쓴사람은 몇명이나 있을지. |
| 번역된 소설을 보면서 짜증난 적은 굉장히 드물었는데... 이 책은 이런면에서 처음부터 상당히 짜증을 돋궜다. 번역가가 나름대로 독자들을 배려 해서 달은듯이 보이는 원문 단어(본문을 읽으면서 번역된 단어를 원서에선 어떻게 썼었는지를 지나치게 친절하게 달아놓고 있다) .... 별로 알고 싶지 않고 봐도 모를 그런 단어들 때문에 다음 문장을 이어가는데 굉장히 짜증이 많아 났고 덕분에 작품의 재미까지 반 이상 반감되어 버렸다. ..... 그리고 작품성에 비해 너무 떠벌려지게 광고가 되었단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역시 책은 남의 평가를 보고 사는게 아니라 자신의 감성으로 사는게 제일 바람직 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