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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차가와진 날씨, 옷깃을 파고 드는 찬 기운에 우리는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봄부터 시작된 숲속의 흥겨운 향연이 끝나고 이젠 더 낮은 곳으로 가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기위하여 제몸 하나 기꺼이 버리고 가는 낙엽들은 차마 무심히 밟고 지나 갈 수 없다. 그저 단풍놀이를 즐기러 산을 찾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아래서 사진 한장 남기기 위해 나무들에게 폐를 끼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젠 제 생을 다하고 또 다른 생을 시작하기 위해 땅위로 내려앉은 낙엽들을 생각했는데 <빈산엔 노랑꽃>을 읽으며 마음에 작은 출렁임이 이는것 같다. 낙엽도 생명이 있어 차마 태울 수 없다는 님의 글이 마음속에 너무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면서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할 때 계절이 몇번 바뀌고 가을의 한가운데 쯤에서는 <빈산엔 노랑꽃>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기를 권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손에서 놓을 때쯤이면 어디 한켠에서 흐르는 산까치 다정히 노래하는 소리나 구수한 낙엽주 내음을 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글은 수필의 교과서로 손꼽히는 글이다. 그러나 나는 낙엽을 태우지 않는다. 낙엽을 죽은 잎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서 잠깐 땅으로 내려와 제가 자란 나무 밑에 머물며, 추운 겨울 모본의 뿌리를 덮고 있다가 이듬해 다시 나무 위로 되돌아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다만 잠시 쉬고 있는 엄연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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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큰 기대없이 가벼운 글을 몇 편 읽어보겠다고 책을 들었다. 처음에는 왕토끼, 딱새, 다람쥐, 억세라는 개, 소나무, 바위,... 이렇게 덩그러니 계곡에 함께하는 자연들을 하나씩 들먹이면서 글이 시작되었다. 그 뒤를 이어서 왕거미, 크낙새, 꾀꼬리, 쑥, 엄나무, 베짱이, 넝쿨식물, 이끼, 낙엽, 파리똥, 가재....이렇게 작은 생명의 이야기로 옮아갔다. 아직 그 숭엄하고 진지한 자연의 세계에 맛을 들이지 못한 나는 거기까지도 책에 젖어들지 못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고, 열과 성을 다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소중하게 만나면서 살아가는 글쓴이의 삶을 엿보게 되고, 그 글에 빠지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에는 모델이 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모습이 그저 최선의 모습인양하고 살뿐이다.
지금부터 10년 뒤, 20년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연장된 나의 삶을 추측하게 하는 모델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나이를 먹고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이 글 속에서 앞으로 살아갈 모습을 찾았다. "늙은이의 소꿉놀이"라는 글은 정말 신선한 감동으로 읽었다. 제 6부에 실린 느티나무 부부 편에 실린 글들 속에서 내가 살아갈 70대의 삶을 미리 그림 그려본 것이다. 그러면서 글들을 다시 음미해보니,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도 알게 되고, 작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진리들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글은 재미있고, 굳이 교훈으로 이끌고 가려고 하지 않아서 좋다. 나이들어서 글을 쓰다보면 무언가 할말이 많아지고, 가르치려고 하고,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려고 하다보니 결론은 진부한 도덕 교과서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글들은 그저 보여주고 내가 한참 뒤에 느끼고 깨닫게 해준다. 오래 덥혀진 온돌처럼, 그렇게 천천히 다가 오지만 오래도록 가시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여운으로 남아 있다. 이 시대에 이런 맑은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한 요소가 될것임을 확신한다. [인상깊은구절] 이른바 문화생활에 길들여졌던 우리는 자연에 묻혀 사는 법에 적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선 돈 쓸일이 줄었고 또 줄였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한 세상 사는데는 그리 많은 돈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터득했다. 돈 때문에 버둥거렸던 지난날이 우스웠고, 돈 때문에 인생을 잃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엔 사업에서 손을 놓자 허전하고 불안했으나 일찌감치 일에서 해방된 새로운 인생이 좋음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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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벗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마음- 사람의 북새속에 사는 이들이 이 설레임을 짐작이나 하랴, 불꽃처럼 일렁이는 온산의 단풍을 혼자 보기 아까워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벗들을 기다리며라는 수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모습이 마치 연애하는 청년의 모습 같다.
그 심정을 나도 조금은 알것 같다. 우리집은 시내 중심가에서 살다가 2년전 산아래쪽으로 이사를 왔다.
전에는 몰랐는데 큰길에서 1킬로미터만 들어온 지금의 집에서는 밤이면 정적이 내린다. 산에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별빛도 곱다.
이사하기 전에는 밤마다 자동차 급정거소리며 술집에서,골목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었는데 처음 이사온 날 밤.너무도 깜깜하고 조용한 집이 오히려 이상스러웠다. 누웠을때 창문으로 비추이던 달빛과 대구에 오고서는 처음 듣는 소쩍새소리에 얼마나 놀라웠던가?
잠자기 조차 아까운 봄밤이었다.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자고도 싶고 초저녁부터 잠든 아이들을 깨워서 달빛을 함께 구경하고도 싶었다.
밤이 밤답고, 철되면 새우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도시인들은 자연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떠나와 있고 스스로를 그렇게 격리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장돈식님의 빈산엔 노랑꽃은 바로 그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30년간 활동하시다가 88년이후 치악산 근처 산속에 살고있는 80고령의 노작가가 틈틈히 써서 모은 수필속에서 바로,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던 그 자연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소로우의 윌든이나 니어링 부부의 글과 삶에 못지않는 동양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철학과 겸허함이 베여있는 참 맑은 책이다.
특히,주위의 친구들-토끼,어치,배짱이,낙엽하나까지-에게 향하는 세밀한 관찰과 따뜻한 배려, 그것을 통해 자연과 인생을 갈파해내는 해안까지, 그 모든 것이 그나이의 연륜이 믿음직스러운 선배를 모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솔이끼 하나 속에서도 우주를 보고 꽃색깔의 변화만으로도 계절과 시간을 본다.대추나무 한그루에도 '보은댁'이라 이름붙이고 정을 나눈다.
이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 자연의 선물을 친구들에게 나눠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낭만적인 사람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집근처로 이제는 고속도로가 나서 더이상 전같지 않다고 한다. 윌든이나 니어링부부가 살던 계곡도 역시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도대체 우리 인간들은 어디까지 자연을 밀어붙여버릴 셈일까? 그리고 나서 우리가 진정 기대고 숨쉴 곳은 어디란 말인가?
솔향기가 나는 에어콘을 달고, 심신산골의 샘물같은 물을 만드는 정수기를 쓰고 시끄러운 소리를 막기위해 방음유리를 하고, 달을 보고 싶으면 대형모니터로 달의 그림을 비추어보면서 살기위해 우리는 이리도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일까? [인상깊은구절] -아침부터 벗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마음- 사람의 북새속에 사는 이들이 이 설레임을 짐작이나 하랴, 불꽃처럼 일렁이는 온산의 단풍을 혼자 보기 아까워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