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착한 책을 받았을 때 두께와 크기를 보고 첫인상은 약간 실망이었다. 가격 대비 두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선 평범한 만족 이상.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독특하다'란 단어를 써야할 것 같다. 대부분의 교양서 특유의 구성과 문체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작가는 스스로 포스트모더니즘적 구성이라고 얘기했다) 전기 형식으로 써졌다는 리뷰를 보고 골랐기 때문에 그냥 중세에 유명했던 인물들을 작가 나름대로 짤막짤막하게 연대기적 전기를 써둔 것으로 생각했고 자료 차원에서 소장하려고 구입을 했다. 그런데 작가는 대담하게 그런 일반적인 구성을 탈피해 인물의 한 시기에 그의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사안(주인공의 개인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그가 속한 시대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다. 물론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이 다 얽힌 내용이긴 하지만)을 격렬하게 토론하는 형식을 택했다. 나레이터에 의한 일방적인 전달보다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통한 메세지 전달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내용을 한순간의 대화로 녹여낸다는 것은... 보통 공력이 아니고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얘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대담한 방법에 한수 접고 들어갔다고 해야하겠다. 여기에 워낙 감탄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찬탄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치우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용을 놓고 봐서도... 상당히 지적이다. 작가가 나름대로 주인공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 중에 그 토론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해 무대에 올려놓았겠지만 반대 토론이건 의견을 같이하는 일치를 향한 토의건 간에 그 내용의 질이 높고 또 대화 내용에 시대의 흐름과 사상의 쟁점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인물들의 평전이라기 보다는 시대별로 선정된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각기 그 시대를 조명하는데 주력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중세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달 수 있는 교회음악 작곡가인(이름이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빙엔의 힐데가르트에 대한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게 음악가로만 인식된 힐데가르트가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놀라운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뻤고... 그외 인물들도 반수 정도가 내가 알지 못하던 인물인 관계로 지식 측면에서도 상당히 보탬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선택에 있어서도 반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지만 나머지 반의 이름과 위치를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듯 싶은데... 그들이 차지하는 시대의 당위성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건 이들이 그들 당대에 이뤘건 이루지 못했던 어떤 시대를 바꿀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안에서 변화를 꿈꾸는 인간들의 모습은 중세에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흔히 중세를 얘기할 때 암흑시대라는 말을 쓴다. 기독교라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장벽을 둘러치고 다른 가치관이나 사상의 유입을 허락하지 않은 극히 폐쇄적인 공간.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는... 뭐랄까... 갈라파고스나 오스트렐리아에서 외롭게 진화한 이구아나며 오리 너구리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내용도 내용지만 독특한 형식미 때문에 신선했던 책. 중간중간 컬러로 삽입된 그림들도 눈을 쉬게 해주면서 좋았고... 이 책으로 인해 자극된 호기심 덕분에 당분간 중세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을 것 같다. 중세라는 거대한 숲에 있는 큰 나무 여덟그루를 만난 느낌인데... 요즘 이런 류의 중세 관련 책들을 계속 읽다보니 갑자기 숲 전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서양 중세사를 다시 한번 읽어볼까... 예전의 느낌과 많이 다르겠지? |
|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중세라는 서양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였다. 학창시절 세계사에 나오는 중세는 로마의 멸망과 더불어 조각조각난 암흑의 시기, 종교의 시기로 점철되고 몇 마디 없이 르네상스로 훌쩍 뛰어버린 잃어버린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서양중세라고 하면 샤를마뉴이후 복잡한 가계국도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기라는 생각뿐이고, 이야기라고는 오로지 카톨릭 신앙에 관한 재미없는 이야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생각에 큰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인류이야기>(빌헤름 반 룬, 아이필드)를 읽고 나서 였다. 거기에서 반 룬은 서양중세라는 시기를 퇴보의 시기라고 했다. 로마와 그리스의 문명과 문화를 잃어버리고 다시 문명의 퇴행을 겪어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발달하게 된 것은 문명과 문화가 잊혀지면서 법과 사회질서가 무너져내리고 의지하고 더불어 살아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마을을 이루면서 교회라는 질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중세라는 고리에서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왜 하필이면 온 땅이 종교로 물들어 극단적으로 생활할 수 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왜 인간역사는 계속 발달해 왔다고 굳게 믿었을까? 이러한 생각들이 문명의 퇴행인 중세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나는 중세의 사람들을 좀 더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이다. <위대한 8인의 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3명의 여성과 5명의 남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기는 AD 200년 후반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직전인 1400년 중반까지의 1000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여성이라는 지위가 철저히 무시되고 지참금과 함께 재산의 일부로 치부되었던 그 때에 8명 중 3명의 여성이 선정된 것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여성들도 역사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헬레나 황후, 아우구스티누스, 앨퀸, 훔베르트, 힐데가르트, 엘레오노르,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베드퍼드 공작 등 시간순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들 중 5명은 성직자인데, 시대를 지나면서 독특한 주장을 했던 성직자들로 어떤 이는 중세라는 시기 동안 중심점이 되었지만, 어떤 이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 노먼 F. 캔터는 이 책에 서문에 주인공들의 삶과 시기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상황을 연출하고 소설적인 기법을 도입하였으며,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각 인물들의 삶을 극명하게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책은 각 인물들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죽었는지 명확하게 기술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이 언제 무엇을 어떤 때에 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단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였는지, 그 시기에 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였는지, 마치 연극무대의 한 씬을 보는 것 같이 한 장소에서 그 모든 것은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내용은 매우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몇몇 성직자들이 시대를 통탄하며 논하는 대사에서는 중세에 풍미했던 기본적인 인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도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 그 난해한 시기를 이렇게 간략하게 보여주는 책자도 그리 많지 않을 거란 생각에 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반 룬이 이야기 한 것처럼, 서양 중세는 문명의 퇴행이였나… 고민했다. 분명 그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또다른 문명을 낳기 위한 산고였다고 생각한다. 1000년이라는 산고의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의 독특한 유럽를 만든 것은 중세라는 시간이였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중세라는 시기가 암흑의 시기만은 아니였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좀 더 성숙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전설이 숨어 있고, 많은 신비와 환상이 그들을 사로잡았지만, 그런 환타지 마저 지금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
|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에 앞서 한가지 밝혀 두고 싶은 게 있다. 우연히 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먼저 접하고 난 뒤에 이 책을 읽은 뒤라 책을 읽는 동안의 관점과 앞으로 전개할 서평은 아무래도 그 서평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거다. 여하튼 나는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이 책을 다시금 읽게 되었고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중세라는 막연함 안에서 조금이나마 중세라는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중세라 함은 암울하고 무겁고 그 시대를 공부한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어려울 것 같고 해서 별로 그렇게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고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게 중세에 대한 지식의 전부인 내게 솔직히 중세 이야기라는 이 책의 제목은 내겐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에 신문에서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땐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그렇듯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자의 견해나 들어간 그런 유형의 책으로 간주하고 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서평의 독특한 접근방식이라는 굵고 진한 소제목은 그냥 지나치려는 내 눈길을 잡았고 서평을 읽은 뒤 책을 읽는 어떤 새로운 재미와 중세에 대해 아니 중세의 인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 [중세이야기]를 이틀만에 다 봐버렸다. 그만큼 잘 읽힌다. 서양에는 이미 이런 종류의 대중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그리고 생생한 역사 관련 저작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최근에 와서 부쩍 이런 책들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아마 [로마인 이야기]의 대중적 성공에 힘입은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특히나 중세 관련 책들이 많은데, 서양에서도 그쪽이 붐을 일으킨 적이 있고 우리 나라 독자에게 신비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이 책은 서양 중세인들의 삶과 사상을 현실감있게 일러주기 위해, 과감하게도 소설적인 기법을 도입한 역사서이다. 지은이인 노만 캔터는 나무랄 것 없는 경력의 중세사 전문 연구자이자 전임 뉴욕대학 교수이며 왕립역사학회 회원이면서 이런 작업을 해냈다. 대중적 글쓰기를 '잡문'으로 폄하하는 우리 학계 풍토로 보아서도 놀라운 일이겠지만, 사회사, 문화사, 미시사가 보편화된 서구에서도 이런 문학적 글쓰기가 역사 서술에 적합한가는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늙은 유대인 매춘부가 카이사리아의 주교와 함께 수행원을 거느리고 이리로 오고 있어...."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늙은 유대인 매춘부란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이다. 저자는 크리스트교 문화의 본격화라는 관점에서 중세의 시작을 상징하는 인물로 성 헬레나를 등장시키고 크리스트교가 유대교나 영지주의, 이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였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대화를 펼쳐보인다.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보편적 교회의 이념을 선포하며 도나투스파 사제와 논쟁하고, 샤를마뉴의 재상 앨퀸은 크리스트교 문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넘쳐나기 시작하는 세속주의에 저항한다. 하인리히 4세를 카놋사의 굴욕으로 이끌었던 그레고리우스 7세의 정신적 동지인 로렌의 훔베르트는 교회의 우위를 열정적으로 주장하고, 빙엔 수녀원의 원장 힐데가르트나, 루이 7세의 왕비였다가 이혼 후 잉글랜드의 헨리왕과 결혼한 막대한 영지의 상속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종교적, 세속적 재능을 이용하여 여성의 지위를 억압으로부터 구해내고자 고군분투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이 위세를 떨치던 시기, 링컨의 주교 로버트 그로스테스트는 합리주의에 맞서 기독교적 인문주의를 주장하며, 르네상스가 시작된 백년전쟁의 끝자락에서 프랑스내 잉글랜드령 사령관인 베드퍼드 공 존은 아서왕 이야기의 비극성에서 중세의 몰락을 예감한다. 중세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각 장마다 등장하여 그 반대자와 논쟁하는 식으로 글이 짜여 있는데,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섬세하게 드러나는 논쟁을 통해 더욱더 실감나게 중세인들의 이상주의적인 사고 방식이 드러난다. 중세를 그저 '기독교의 지배'가 완전히 관철되던 '암흑시대' 쯤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 의하면 중세에도 기독교 주변과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사상 투쟁'이 일어났고 그것은 또 현실에서의 권력 다툼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장면 장면이 매끄럽지 못하다거나, 중세를 현재화하는 작가의 관점이 너무 드러난다거나, 지배층의 이상주의에만 주목되어 대다수 민중들의 삶을 놓치고 있다거나, 말투나 대화 내용이 너무 현대적인 점(중세인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든가 하는) 등을 지적하기는 쉽겠지만, 이 만큼 생생하게 중세인의 사고 방식에 접근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독. 고상한 중세의 이상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과감히 그들의 논쟁에 뛰어들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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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멸망 이후부터 르네상스가 도래하기까지의 유럽의 중세 시대를 암흑기라고 비유하는 표현을 종종 보게 된다. 대략 1천년 동안의 이 시기를 왜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일까? 아마도 수준 높았던 로마 문화가 소멸된 이후 그 문화를 계승하여 가시적인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역사적인 기록물이 많이 남지 않아서 당시의 사회상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서로마가 게르만족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유럽은 게르만족의 왕국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한 상황에서 통일된 로마 시대의 화려한 문화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기독교가 종교로서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과거 로마 시대의 다신교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지게 된다. 정치, 문화, 종교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와 함께 시작된 유럽의 중세 시대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페르디난트 자입트의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와 같이 유럽의 중세 시대를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책도 좋지만, 이번에 읽은 노만 F.캔터의 <중세이야기 - 위대한 8인의 꿈>과 같이 그 당시 인물을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재구성해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자입트의 저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방대한 천년의 중세 유럽의 역사를 단숨에 접근하는 것보다 인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접근을 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아닐까 여겼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의 고리가 역사를 형성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8명의 인물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는 이들을 통하여 중세 유럽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최초로 소개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부터 마지막에 소개된 베드퍼드 공 존은 각각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중세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와 르네상스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던 시기를 살았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즉, 중세 시대의 성립과 끝을 8명의 각기 다른 인물들을 시대순으로 등장시켜서 그들의 이야기가 곧 중세 시대의 역사의 한 단면을 구성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만 F.캔터는 어떠한 기준으로 8명의 인물 - 헬레나 황후, 성 아우구스티누스, 앨퀸, 훔베르트, 힐데가르트, 엘레오노르,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베드포드 공 존 -을 선정한 것일까?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도 한 두명을 제외하고는 생소한 인물들이다. 중세 시대의 수많은 인물 중 과연 이들은 중세 시대의 어떤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실타래를 풀기 위하여 첫번째로 등장하는 헬레나 황후의 사례를 잠시 살펴보면 그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로 소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헬레나라는 존재보다 콘스탄티누스에 곧바로 시선이 쏠린다. 비록 작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로서 로마 말기의 부흥을 꾀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헬레나 황후는 예루살렘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잠시 머무른 숙소에서 유대인 랍비, 그리스계 이교도 출신의 숙소 주인, 기독교 주교와 함께 기독교가 공인되어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에 대하여 토론을 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서로마가 멸망하기 전의 기독교의 대두와 함께 벌어지는 당시 사회상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각기 다른 입장으로 서로의 의견을 개진하는 이들을 통하여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벌어지는 혼란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인물을 통하여 나는 저자가 중세 유럽의 다양한 특징 중에서 기독교라는 신앙이 측면에서 이 책이 쓰여질 것으로 추측을 하게 된다. 뒤이어 소개되는 인물들은 모두 기독교와 연관된 사람(엘레오노르와 베드포드 공 존은 예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은 분명해진다. 사실 암흑기라 불리우는 중세의 모습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교황의 권위가 절정에 달한 시기를 모두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기독교는 중세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한 기독교의 교리 정립이라든지 앨퀸에 의한 교리의 문서화 작업, 성직자 서임권 및 교황의 선출 방식을 놓고 신성로마제국과 대립의 각을 세운 훔베르트, 독자적인 교회 세력의 구축 및 합리주의가 아닌 경험주의 측면으로 교리를 해석하고자 하였던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의 역사이자 중세의 이야기 그 자체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배웠던 중세 유럽의 역사적인 단편을 살펴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 삼위일체의 교리를 정통으로 세운 니케아 공의회, 카노사의 굴욕, 수도사에 의한 서적 보급 등이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모두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당시 인물들을 통하여 재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실 중세 유럽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에 비하여 낮을 수 밖에 없었다.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로마 시대에도 여성의 지위는 분명 남성보다 낮았으니, 결국 고대부터 중세까지 여성의 지위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 암흑기의 역사로만 알고 있던 중세 시대에 이러한 체제에 반발한 사례가 있었는데, 바로 힐데가르트와 엘레오노르를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다. 힐데가르트는 빙엔의 수녀원을 건설하였고, 교리 해석, 음악, 문학과 같이 다방면에서 뛰어는 재능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녀가 최초로 수녀원을 건설한 사례를 남긴 것이다. 주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이라는 한계점을 넘어서서 당당히 중세를 극복한 인물로 묘사가 된다. 여기에 더하여 엘레오노르는 자신의 영지에서 남편인 헨리 5세의 불합리한 요구에 당당히 맞서기도 하며, 여성 문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과의 토론을 통하여 여성이 차별받는 당시 중세 유럽의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장적인 당시 사회에서 힐데가르트와 엘레오노르는 페미니즘에 대한 선구자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중세 시대의 이야기는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와 베드포드 공 존을 통하여 그 종말을 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콜라 철학의 대표자라 일컬어지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신 비웃으며 합리주의와 인문주의의 사이의 갈림길에서 고뇌를 하는 그로스테스트라든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치루면서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를 지배하던 베드포드 공 존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당시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인문주의의 태동을 토론하는 장면은 곧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시기로 접어드는 시발점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스스로도 분명 시대의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동시에 아서왕의 이야기를 통하여 점차 사라지는 과거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중세이야기 - 위대한 8인의 꿈>은 실제 역사적인 인물과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간의 대화를 통하여 생생한 중세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직접적인 역사적인 서술은 가급적 피하고 있으며, 서로 입장이 다른 인물간의 토론을 통하여 당시 사회를 대표하는 각각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8명의 인물이 동시대의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물줄기처럼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중세 역사서를 읽는 듯한 시간적 흐름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다보니 방대한 중세 유럽의 역사를 접하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먼저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묵직한 다른 책들에 뒤지지 않는 역사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같다. 저자가 실제 인물과 가공의 인물 또는 대화를 적절히 배치하여 서술하였기에 독자로 하여금 당시 역사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중세의 특징으로 선정하여 이를 인물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노만 F.캔터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이 책을 통하여 새로운 측면에서 중세 시대를 이해하는 계기로 삼으면 괜찮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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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구성. 물론 재미를 기대하고 고른 책이긴 했지만 그 특이한 구성과 내 예상을 뛰어넘는 스타일의 내용 때문에 말랑하지 않은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전기 형식으로 써졌다는 리뷰를 봐서 그냥 중세에 유명했던 인물들을 작가 나름대로 짤막짤막하게 연대기적 전기를 써둔 것으로 생각했고 자료 차원에서 소장하려고 구입을 했다. 그런데 작가는 대담하게 그런 일반적인 구성을 탈피해 인물의 한 시기에 그의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사안 (주인공의 개인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그가 속한 시대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다. 물론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이 다 얽힌 내용이긴 하지만) 을 격렬하게 토론하는 형식을 택했다.
나도 글로 먹고 사니 넓게 보면 작가 나부랭이에 속하고 또 일방적인 나레이터에 의한 전달보다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통한 메세지 전달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깊이 있고 녹록치 않은 내용을 이렇게 대화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었다.... 여기에 워낙 감탄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찬탄은 아무래도 당분간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더 치우칠 수 있겠다.
그러나 내용을 놓고 봐서도... 상당히 지적이다. 작가가 나름대로 주인공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 중에 그 토론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해 무대에 올려놓았겠지만 반대 토론이건 의견을 같이하는 일치를 향한 토의건 간에 그 내용의 질이 높고 또 대화 내용에 시대의 흐름과 사상의 쟁점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인물들의 평전이라기 보다는 시대별로 선정된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살았던 각기 그 시대를 조명하는데 주력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중세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달 수 있는 교회음악 작곡가인(이름이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빙엔의 힐데가르트에 대한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내게 음악가로만 인식된 힐데가르트가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놀라운 이론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어 기뻤고... 그외 인물들도 반수 정도가 내가 알지 못하던 인물인 관계로 지식 측면에서도 상당히 보탬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주 지적인 대화장에 참관인으로 앉아 있었던 느낌이었는데... BBC나 프랑스 방송국에서 소위 세기의 석학들을 앉혀놓고 하는 그런 토론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 중세 이야기는 미국 고교생들의 역사 참고 도서로 많이 애용된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들으며 우리 교육은 뭘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다시금... 무엇이든 왕성하게 빨아들이는 10대 시절에 역사를 배울 때 이 정도 수준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나름대로 독후감을 쓰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들은 또 얼마나 수준높은 대화 문화와 사상을 몸에 익힐 수 있을지 부럽단 생각이 든다.
시험관들의 취향을 맞춰 논술 특강 혹은 논술이나 수능 대비용 문학집을 억지로 머리에 쑤셔넣고 그 형식미와 내용미를 느낄 겨를도 없고 시험용으로 해부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한심... 어쨌든 전체적으로 내용도 내용지만 독특한 형식미 때문에 신선했던 책. 중간중간 컬러로 삽입된 그림들도 눈을 쉬게 해주면서 좋았고... 이 책으로 인해 자극된 호기심 덕분에 당분간 중세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당신은 오늘날 유럽의 귀족 여성들이 새로이 인지하는 것들이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특히 남성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애증의 감정, 스트래스와 고통에 대해 새로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감정들이 제가 쓴 이야기체의 연시와 로망스에 잘 나타나 있답니다. 프랑스 북부와 독일 서부에 있는 귀족 가문의 수녀 몇명이 이 새로운 여성 문화에 참여해왔습니다...(중략) 당신의 이야기는 완전한 남성중심 문화의 산물입니다. 그안에서 여성은 벽이나 선반에 고정되어 있는 비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비조차도 감정이 없는 고귀한 물건에 지나지 않지요. |
| 상당히 깔끔한 제책방식과, 내부 구성, 사진자료의 풍부함 등을 보고 고른 책인데... ....한마디로, 기대한것에 못미치는 책이었다. 작가는 서론과 머리말로 소설에 가까운 형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썻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글쎄 내 입장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딱딱하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중세를 기독교의 시대로 보고 쓴 책이기에 더한 걸까? 인물들이 말하는, 신학토론을 보고있자면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씨의 저서들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 둘다 책에 소설적인 방식을 도입했지만 나에게는 이 책이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이 시대에 관심이 많고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읽어볼만한 책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던 책이었다. |
| 저자 노만 F. 캔터는 딱딱한 보통 중세학자들과는 달리, 이렇게 쉽게 소설형식으로, 당시의 인물과 상황을 어느 정도 가정해서 쓰는 방식을 좋아한다. 대화가 중점적으로 나오는데, 그 대화에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 상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해당 인물의 특징적인 성격과 사고가 묻어 있다. 물론 그 주 내용을 제외한 주변 대사들은 모두 저자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모두 저자의 기본적인 중세 지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빙성 있고 사실감 있게 다가온다. 편집도 좋다. 줄 간격은 너무 넓지 않나 싶지만, 읽기는 쉽다. 일반 교양서 치고 전문인에게 도움이 되는 책은 드문데, 이 책은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중세의 시대별로 8명의 주요 인물(물론 유명한 인물들로, 중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들을 등장시켜서 그들과 그들의 주변 상황이나 타인과의 갈등, 해소 등을 단편소설처럼 보여준다. 8편의 중세 배경 단편소설(그러나 매우 현실에 바탕을 두었으므로 저자가 지어낸 건 대사뿐인)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
| 종이질감도 참 좋다 그림도 칼라 그림이다 서양 세계사에 관심이 있어서 이책을 골랐다 물론 독자 리뷰를 읽고 선택했다 그렇지만 이책을 몇장 넘기면서 너무나 화가 나고 기분이 참 아니다 소설은 아니고 역사서인것도 아니지만 번역가가 너무 불친절하다 최소한 일반 독자들을 생각 했더라면 예를 들어 프랑크족이 누구인가 그 외의 많은 낯선 지명 인명에 대해서 간단한 주석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서양 중세를 전공하지도 않은 일반 독자로서 이책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책 값을 생각 한다면 글쎄 속은 느낌이다 독자 리뷰 쓴 사람이 의심이 가기 까지 한다 내용도 평이하다 정말 책 값 아깝다 |
| 내가 이 책을 주문한 이유는 ,중세의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 아쉬웠다. 내가 알만한 사람은 헬레나 왕후와 아우구스티누스 정도 일 뿐. 좀 더 보편적이고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나마 이 책을 읽는데 좋았던 점은 책 내용이 소설처럼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대화도 있고 읽기에도 편하고 중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권할 만하지만...생소한 인물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 좀 더 읽기 편한 것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