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 자신 몇편의 시를 읽었던가 잠시 생각한다. 중학교 이래로 국어 교과서의 첫 장은 으레 시를 배우기 마련이었고, 그때마다 대여섯 편씩의 시가 있었으니 중고등학교 6년에다 각 2학기씩 계산하면 적어도 60여편의 시를 배웠다는 계산이 나온다. 거기다 시험에는 교과서에 없는 시도 무시로 나왔으니 제목만 외워 제낀 시가 또 30여편, 그리고 언론사 공부하면서 또 이래저래 맛을 본 시들이 50여편. (솔직히 이 언술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특정 시인의 대표작 제목만 외운 것도 맛을 봤다 말할 수 있는 것인지....)이럭저럭 150여편 가량의 시를 맛봤다 하겠는데, 불행히도 난 그 시들에서 한번도 맛을 느낀 적이 없다. 굳이 맛이란 걸 따진다면 "씁쓸한 맛"이라면 또 모를까... 우리네에게 시를 배운다는 일은,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교과서의 행간에 빼곡이 해석을 받아 적고, 기계적으로 사조를 외우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항상 재미없고 골치 아프게만 느껴지던 시가 새로이 다가온 것은 잠시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 생활을 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곁에 있던 누군가가 내게 자신의 "바이블"이라며 권해 준 시, 기형도의 『오래된 서적』. 다만 한가지는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이 시에 대한 내 이해는 명백한 오독(誤讀)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기형도의 시는 흔히 지극한 체념과 그로 인한 죽음의 시로 이해된다. 그러나 내게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어느 잘난둥이의 넋두리로 이해하고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형도의 시는 아마도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등장할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 오독은 이렇게 잘난척하고 외부에 글을 쓰지 않는 한 영원히 그 누구로부터도 타박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뒤늦게 시 읽기의 즐거움에 눈을 뜬 건 무엇보다도 이런 자의적인 해석의 기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유로운 해석과 그로인한 자유로운 느낌 속에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와 시인과의 은밀한 끈을 만드는 것이다. 그 재미에 더욱더 눈을 뜨게 한건 시집이 아닌 영화였다. 개봉시기는 기형도를 알게된 것과 비슷했던 거 같은데, 정작 내가 본건 한참 후였다. 흔히 최루성 멜로물로만 기억되는 『편지』인데, 여기서 황동규라는, 기형도와는 또다른 면에서 멋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즐거운 편지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사실 영화 「편지」에서 이 시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예쁜 시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게됐을 때, 이 시는 예쁜 시가 아니라 강렬한 시로 내 가슴에 자리잡고 말았다. 작가는 이 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기본적으로 떠나간 님을 그리워하는 우리 전통시가의 흐름을 타고 있고, 또 자신의 사랑의 위대함을 앞세워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도 사소한 일로 치부해버리고 말지만, 그러나 눈과 함께 언젠가 그 사랑이 그칠 것을 믿는다고 언명하는데서 결국 대자연 속에서 이별이란 특별한 매듭도 못된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은 사랑이 반드시 그칠 것을 믿지만, 그 그침이 눈이나 낙엽과 함께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난 동의할 수 없었다. 난 바로 다음 문장에 주목하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지만,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한다는 대목이다. 황동규가, 아니 이건 좀 심한 것 같고 황동규 선생이, 이 시 「즐거운 편지」를 쓴 것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한 여인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등학생치고는 엄청 조숙했던 셈인데, 난 그 감정을 서른즈음해서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황동규가 조숙하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다면, 난 덩치만 컸지 실은 아집으로 똘똘 뭉쳐있었던게 분명하다. 겸손한 황동규는 이별을 대자연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지만, 거만한 나는 사랑이 끝나는 순간에 내가 취하고 있을 멋진 자세를 생각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사랑은 분명히 두 사람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난 사랑이 끝난 그 순간 나 자신의 떳떳함을 먼저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어쩌면 그건 어차피 사랑이 성공할 수 없다는 깊은 체념에 근거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랑이 없다면, 남는 건 결국 비참한 나 자신 뿐일테니 그 비참한 순간에 비참해 보이지 않을 멋진 자세를 생각해 봄직도 하다. 자신의 거만함에 상처입지 않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 기다림의 자세마저도 내려놓게 만든다. 그것은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부동자세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언제까지나 변함없는 기다림의 자세를 딱 한번 영화에서 본적이 있다. 영화 「K2」에서 산악구조대원인 아내는 얼음 속에서 4년동안 남편을 같은 자세로 기다렸다. 물론 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 순간 "멋있을 수 있는" 기다림의 자세는 처음부터 마지막을 기다릴 때는 절대 취해질 수가 없다. 살아있는 내내 처절한 몸부림이 계속될 때 마지막의 기다림도 비록 비참할지는 몰라도 멋있을 수 있는 것이다. 기형도를 인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다른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내 기다림의 의미를 물은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무척이나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 생각없이 「즐거운 편지」를 인용해 주었다. 황동규의 친절한 자작 설명이 없었으면 나는 언제까지나 그 아름다운 시어에 파묻혀서 "기다림의 자세"만을 떠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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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을 시와 동고동락한 시인의 글인데, 제목처럼 시가 태어나는 자리를 설명하기도하지만 자신의 지난 시들을 되돌아보고 시를 향한 여전한사랑을 적어내려간 자서전이란 느낌도 들었다.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고 고치는 과정을 즐겁게 반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인지...그 길을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알 수는 없을 테지만 지금도 여전히 젊은 시들이 탄생하는 그 길 위에 존경을 표한다. |
| 이 책은 황동규 시인이 1994년에 발행했던 것을 최근 <문학동네>에서 다시 편집하여 재발간 한 것입니다. 모두 잘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황동규 시인은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나왔으며, 영국 에딘버러 대학, 미국 아이오와 대학, 그리고 뉴욕 대학에서 수학하였습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지요. 황동규 시인은 지금까지 <어떤 개인 날>, <악어를 조심하라고?>, <풍장>,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열한 권의 시집을 상재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흡모하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많은 시들이 대중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예리하게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그의 시선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 시어들, 그리고 끝없는 고뇌와 열정이, 황동규 시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 될 지 모르나 서정주 이후 우리 시단에 있어 가장 넓고 심오한 세계를 구축한 시인이 아닌가 합니다. 이 책은 시인의 자서전이나 평범한 산문집 혹은 수필집은 아닙니다. 물론 시집도 아니지요. 이 책의 특징은 자신이 시인으로서 살아온 생을 돌아보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자신의 시를 스스로 풀어나가는 형식을 가지고 있는 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완숙한 경지에 이른 시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기회라 생각됩니다. 본인 스스로 '시 세계 염탐기'라고 명명하고 있기도 한데, 조금은 쑥스럽게 또 조금은 솔직하게 자신의 시를 풀이하고, 또 독자를 위해 시를 쓸 당시의 마음에서 현재 그 시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진 시들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 시를 감싸고 있는 시인의 정신세계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시를 습작하는 사람들이 지녔으면 하는 따뜻한 노시인의 배려가 스며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를 사랑하고 또 한 평생 시를 쓰면서 살아온 이 시인의 정직한 마음이 시에 다가가는 또 하나의 초석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우리가 막연히 좋다고만 생각한 시나 혹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시인의 해석에 있다고 봅니다. <풍장>이나, <조그만 사랑노래>, 혹은 <즐거운 편지>와 같은 시들이 과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또 그 시를 쓴 시인에게는 어떤 마음이 스며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편지'가 고3 시절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연상의 여인에게 실연을 당하고서 쓴 시라는 것에 적잖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물론 시인이 자신의 시를 풀어 놓았다고 그것이 그대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유력한 증언이 되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시를 즐거 찾는 독자나, 혹은 지금 시인의 길을 가기 위해 습작을 하고 있는 문학청년들에게는 보석처럼 느껴질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를 떠나서라도 한 생을 깊이있게 견디어온 우리 시대의 맑은 정신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탁한 세상에서 손쉽게 맛볼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