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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열기가 다소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하지만 한때 온 나라는 걷기 열풍에 휩싸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길들이 이곳 저곳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느리게 걸으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한다는 걷기를 위한 길이 이제는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것 같기만 하다. 나 역시 지금도 품고 있는 소망가운데 하나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내 삶을 반추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산티아고 길이나 일본 에도시대의 옛길이 아니래도 우리나라에도 걷기에 좋은 길들이 많다고 한다. 굳이 영남대로나 관동대로, 삼남대로가 아니래도, 비록 걷기열풍에 따라 만들어진 길이지만,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모악산 마실길, 강화 나들길, 소백산 자락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들이 그것이라고 한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길들도 있지만 이 책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길들도 많다. 그 많은 길중에서도 저자는 특히 전북지방에 있는 길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고향이 진안 백운이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도내道內 곳곳에 있는 길들을 그 지방의 역사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길 위에서 만나는 문화유산답사기인 셈이다. 진안에 있는 마이산 가는 길은 초등학교 때 매번 소풍을 다니던 길이다. 저자가 찾아가는 그 길을 읽으면서 나 또한 어릴 적 생각 속으로 젖어든다. 섬진강과 금강이 발원하는 진안은 산과 물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이 의외로 많다. 어릴 적 동네 앞을 흐르는 냇물이 섬진강 상류라는 걸, 그리고 지금은 용담댐이 건설되어 수몰되었지만 냇가 옆 하얀 자갈밭에 누워 물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던 그 곳이 금강상류라는 걸 알고서 다시금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지금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물길을 찾아가는 길을 언젠가는 다시 한번 걸어보며 삶을 생각해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그 밖에도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길중에 가본 곳이 의외로 많다. 전주 천년고도 옛길은 무시로 다니던 길이었고, 완주의 화암사나 송광사 가는 길, 그리고 무주의 금강길 등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길이었지만, 당시는 그저 가보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그 길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니 문득 내가 보았던 것이 기억 속에 있는 것과 맞는지 아리송해진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전에는 걷는다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걷는 것은 특별한 활동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 학교를 가기 위해 오리, 십리를 걷는 것은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큰 맘먹고 하는 행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길을 걸다 보면 매일같이 만나는 들풀과 들꽃, 그리고 나무들의 이름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만큼은 주변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의 기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그것들을 알기 위해 돈을 주고 배운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헛웃음을 지은 적이 있지만,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시대가 되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씁쓰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