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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이 잊혀진 꽃봉오리 위로도 한결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은 <연인>이라는 영화로 먼저이다. 원작을 읽지 않고 만난 '연인'이라는 작품은 이십대로 들어섰던 내겐 큰 충격같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그 뒷 감흥이 가시지 않고 오래도록 여운을 남겨주던 영화였기도 하지만 십대에서 이십대로 한단계 올라선 나의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하던 감정들과 맞물려 있던 영화라 더 기억에 남는가 보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 책을 구매해 놓았지만 오래도록 바라보기만 하고 손에 잡지를 못했다. 그러다 만난 '모데라토 칸타빌레' 라는 작품은 짧지만 이 작품 또한 강렬한 작품이다. 먼저 읽었던 <좋은 이별>에서 김형경은 작가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상실과 애도가 그녀의 작품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설명해 놓았는데 그 또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상실과 애도 그리고 사랑은 그녀의 작품에 어떻게 그려졌을까? 공장주의 아내로 십여년간 집안에 갇혀 지낸 안 데바레드 부인, 그녀는 어느날 침실앞에 핀 목련꽃을 바라보다 일탈을 꿈꾼다. 그 첫번째 방법으로 자신이 나았는지 안나았는지 궁금한 아이의 피아노레슨을 금요일마다 시키기 위하여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목련꽃이 정말 대단해요.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죠. 그런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앓아 눕는답니다. 창문을 닫아보기도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그 향기가 꽃을 간질이는 계절, 가만히 있는 그 무언가도 바람날 계절에 십여년동안 집안에 갇혀 정숙함의 이미지로 살아온 그녀에겐 못견디게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을때 옆에 있던 그녀는 아이가 모든 것을 알면서도 대답을 못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와 박자를 그녀도 선생님도 아이가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한다며 '모데라토 칸타빌레' 를 주입시키듯 말하는 선생님에게 어쩌면 자신의 삶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피아노레슨 도중 창밖에서 들려오는 강한 여자의 비명과 사람들의 아우성 그리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아이의 집중력은 흐려지고 아이와 함께 그녀 또한 사건현장으로 달려가게 된다. 바에서 본 살인현장, 죽은 여자를 애무하듯 하는 남자. 살인현장은 그녀에게 강한 충격이 되고 죽은 그녀와 그녀를 죽인 남자의 사랑처럼 그녀 또한 다음날 술집에서 만난 쇼뱅을 만나 그들의 사랑을 재현하듯 즐거운 대화를 한다. 죽은 여인의 사랑은 데바레드의 사랑이 된 듯 그들의 상상과 지난 과거속의 그녀는 하나가 되듯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카페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마주한듯 노동자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그녀의 삶은 어쩌면 모데라토 칸타빌레처럼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순조롭게 십여년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목련꽃의 만개에 가슴앓이를 하는 그녀에게 이제 일상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쇼뱅과의 대화로 저녁만찬이 있는것을 알면서도 포도주를 과하게 마셔 파티주인장이면서 만찬 시간에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가슴이 들어나도록 흩트러진 모습으로 나와 남편과 부인들을 놀라게 하는 데바레드 부인, '목련꽃잎은 벌거숭이 낟알처럼 매끈하다. 꽃잎에 구멍이 날 때까지 손가락으로 비벼대다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깨닫고 그만둔다.' 모두가 그녀의 일탈에 대해 알아버린 것이다. 변명을 해 보려 하지만 술에 취해 정숙하지 못한 고백의 표정을 짓게 되는 그녀.목련꽃잎이 바스러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녁 만찬에서 먹은 음식들을 모두 토해내듯 다시 아무일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그녀에게서 봄날의 가슴앓이를 훔쳐본듯 한 것은 비단 목련꽃이 활짝 핀 계절이어서일까. 어찌보면 밋밋한 소설이기도 하다. 해설부분에 '절대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언어의 모험' 이라 했듯이 안의 사랑을 쫒아가다 보면 숨막힐 듯 하다. 모두에게는 우러러보는 대상이겠지만 권위적인 남편과 집안에 갇혀서 박제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녀를 생각할때 자유로이 포도주도 마시고 사랑을 속삭이고 목련꽃의 향기에 취하기도 하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삶이 모데라토 칸타빌레처럼 노래하듯 하는 삶이 아닐런지. 짧은 소설이지만 그녀의 마력에 충분히 빠질 소설이다.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다재다능했던 그녀의 다른 작품인 <연인> 과 <북경에서 온 여인> 등을 읽어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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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제한적인 직접의 묘사와 어떠한 설명 혹은 해명도 없는 소설이다. 인물의 실체는 오직 독자의 해석력과 추론능력에 의존하고, 그래서 기술되지 않은 공백은 독자가 메워나가야 할 몫이다. 이 과정 때문에 인색하다 할 정도로 간략한 문장은 상상의 느낌으로 엄청난 이야기로 불어나고, 그것이 매혹하는 힘을 갖게 되는 소설이다.
"복도 쪽으로 열려 있는 출입문께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어슴푸레한 침실을 더 어둡게 만들 것이다. 안 데바레드는 헝클어진 현실의 금발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 넘기리라. 이번엔, 그 여자도 사과를 할 것이다. 대꾸가 없을 것이다. "
이 문장은 부정(不貞)을 품은 여인의 심리와 이를 알아챈 남편의 고통스런 관용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림자의 실체나 대꾸의 주체에 대한 어떠한 묘사도 없고, 사과의 객체를 설명하는 내용이 없지만 책을 읽는 이로써 그 의미의 여백을 채워 나가게 하는 묘미가 있다.
소설의 시작도 이와 같이 밑도 끝도 없는 상황의 묘사에서 시작된다. 피아노 레슨 장면,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두고 아이와 아이의 엄마, 그리고 피아노 선생의 공허하고 짜증스런 대화가 반복된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여자는 소리의 현장으로 다가선다.
운집한 사람들, 경찰차와 경찰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여인, 여인의 입가에 흐른 피에 아랑곳 없이 옆에 누워 미친 듯이 절규하는 남자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 외에 이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없다. 그러나 죽음에 이를 만큼의 어떤 지고의 사랑이 빚어낸 극적 결과라는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이 모호한 이미지가 소설을 끌고 가는 모티브이기에 아이의 엄마, 소도시 유력 사업가의 아내인 ‘안 데바라드’의 내면을 휘저은 것이 무엇인지 우린 극히 간결한 이 묘사에 내재될 수 있는 의미들을 부여하고 해석하는 상상의 읽기를 하게 된다.
이 작품에 대한‘마르그리트 뒤라스’, 작가 본인의 말처럼 억제된 표현, 거울의 반사 같은 간접적 묘사를 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면 억압되어 절제된 문장들이 숨기고 있는 관능에 몽롱하게 빠져들게 된다. 아이의 피아노 레슨에 보호자로서 동행하는 행위조차 더 없이 상류층의 현숙한 여인이 반복적인 일상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알게 되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연인을 안고 얼굴을 부비며 울부짖는 남자가 여자에게 죽음으로 완성된 사랑으로 스며든 것으로 이해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 욕망이 일상성으로 진부화되는 것을 막는 완전한 사랑의 재현으로 내면화 된 것이다. 여자의 일탈적 욕망은 그녀의 거주지인 상류층이 있는 지역의 반대편에 있는 노동자들의 거리와 그곳의 카페로 발걸음을 하게하고, 그곳에서‘쇼뱅’이라는 남자와 함께하게 되고, 이 만남의 주제는 죽은 여자와 그녀를 애타게 부르며 절규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할애된다. 삶과 죽음이 서로 스며들 정도의 완전한 사랑의 얘기로. 두 사람은 이 가공된 절대적 사랑의 시공 속으로 몰입되어 간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현실의 실제적인 재현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기를 원할 정도의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체험하려는 방식으로서 수행 될 뿐이다. 이렇게 지독할 만큼 절제된 감정은 오히려 가공할 정도의 엄청난 격렬함, 미칠 듯한 간절한 무엇이 되어 잠자던 감성을 깨운다.
결국 본능의 욕구란 것을 억제하고 엄격하게 통제하여 가리겠다는 우리들의 위선과 기만은 이 소설이 취하고 있는 간결함과 직접적 묘사의 회피와 여백 가득한 공상적 재현의 사랑이란 내용을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드러내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곤 절대적 사랑이란 이처럼 환상 속의 것으로만 완결되어 현실에서 과연 도달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절제미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랑과 욕망의 공백 가득한 몽상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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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표지와 잛은 분량의 소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안착하지 못하고... 그냥 오가며 읽은 책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게 시간의 흐름 기법,인지 하는 것을 활용하지 않았나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보니 그닥 그런 것 같진 않았다. 뭔가, 멜랑꼴리한 분위기도 맘에 들었는데....
뭐랄까.
"그래서 뭐 어쨌다구?" 하는 말이 책을 딱 덮자마자 나왔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었는데...'연인'이 생각 나는 이유는 무얼까. 예전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았을때에는 소녀가 중국놈과 끝내 헤어지고마는 모습이..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랑으로 남아 있음이 그저 짠~ 했었는데... 그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보니, 아마 연인을 다시 읽는다면...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혹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이 책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뭐냐. 뭐 이런 저런 저런 생각해서 끼워맞춰볼 수도 있겠으나...귀찮다. 책은 그냥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와야지, 수학책도 아니니..해석을 위한 깊은 생각은 어쨌거나 싫다.
여하튼, 이 책으로..독서 다시 시작이다.
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은 앞으론 다시 읽고 싶지 않을 것 같고.
눅눅한 날씨때문에...책 읽기가 수월하지 않았고, 과감히 책을 덮어버렸는데, 8월이고..장마는 끝날 것이고...한 권 한 권 읽다보면, 또 이 여름은 지나가 있으리라. |
|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인 사랑. 그런 사랑이 과연 존재할까?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어쩌면 진부한 표상을, 뒤라스는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 풀어낸다. 일탈적인 사랑을 꿈꾼다는 점에서 [꿈의 노벨레]와 닮아있기도 하다. 뒤라스만의 애매모호한 문체와, 의미없이 반복되는 대화들. 솔직히 익숙해지기 힘들다. 그리고 익숙해질 때쯤, 소설은 끝이 나 있다. 남겨지는 공허함.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결국 사랑을 하라고, 절대적이든 타나토스적이든간에 어쨌든 사랑을 하라고, 당신은 말하고 싶은 겁니까, 뒤라스 씨? |
| 친구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프랑스 소설들이 흔히 그렇듯이 <모테라토 칸타빌레=""> 역시 물 흐르듯 흘러가는 느낌으로 읽어야만할 소설인 것 같았다. 표지에 등장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아한 눈길처럼 시종일관 전개되는 이야기는 얼핏 집중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숨겨진 메세지 하나는 오래토록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보통 빠르기로 노래 하듯이. 사랑도 일도 삶도 그렇게 즐기며 살아가야 하는 법! 이미 소설을 두 번이나 읽어보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섬세한 문장들 틈에 박혀진 그 무언가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두고두고 여러 번 읽어볼 참이다. 뒤라스의 세심한 떨림을 전수받기 위해서라도.모테라토> |
|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었습니다. 읽었다기 보다 그냥 봤다는게 맞는 표현일것 같습니다. 문고판이라 얇고 작아 금방 읽어 내려 가게 됩니다. 하지만 금방 읽어 쉬울것 같았던 소설은 읽고 나면 머리가 아픕니다. 큰 사건이 없어 극적 긴장감도 없는 소설이지만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뒤라스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연인>의 원작자로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음...하지만 이 소설에서 영화 <연인>과 같은 이미지를 기대하면 안됩니다. 소설은 묘사도 설명도 사건도 없습니다. 그저 두사람의 주인공 안 데마레드와 쇼뱅의 대화로 모든걸 어림짐작할 뿐입니다. 공장지대 제철소 사장 부인인 안과 노동자 쇼뱅의 사랑이야기가 큰 줄거리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어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거나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사건들이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둘의 동문서답식 대화로.... 그리고 소설속에서 벌어진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대화로 두사람이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유추할 뿐입니다. 뒤라스의 이 소설은 상류사회에 속해있지만 일탈을 꿈꾸는 안과 노동자 쇼뱅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신파적인 인물설정과 소재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새로운 소설로 읽히게 됩니다. 소설을 읽으면 예의 나오는 인물에 대한 주변상황이나 외모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어 처음 읽기 시작할때는 좀 황당하고 헷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읽어 나가면서 대화를 통해 유추하고 상상하며 만들어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짧은 독립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디서나 사랑이라는 것은 에술작품이나 현실에서 영원 불멸의 화두인가 봅니다.연인>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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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모데라토'의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보았던건 사전이 아닌 이 책, 바로 <모데라토 칸타빌레="">... 모데라토의 뜻찾기를 빌미삼아 뒤라스를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책의 초반부에 등장했던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찾기 위해 책을 정신없이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처 뜻을 찾기도 전에 한편의 예술영화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노을이 지는 해안가를 걷는 안 데바레드, 그녀가 아이의 피아노 레슨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것도 카페의 포도주를 위해서도, 안을 흠모하는 쇼뱅을 위해서도 아니다. 귄태로운 일상속에서 실현키 어려운 사랑에 대한 맹목적 그리움, 그 갈망의 고통을 뒤라스는 마치 노래하듯이 풀어낸다. 보통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뒤라스는 소설속에서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뒤라스의 흡인력은 바로 이것이다. 단순한 외적 구성에 반하여 복잡다단한 내적구성, 그 흡인력있는 심리묘사에 주인공과 나는 하나가 된다. 마지막엔 당혹스럽고도 모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고 독자는 이제 터널을 빠져나와 현실에서 '네버 엔딩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영화 <연인>을 보면서 참으로 많이 울었다. 이 소설 또한 <연인>에 버금갈만한 여운을 주었다. 뒤라스란 작가가 여자이기에 동성의 공감대로 그 감동의 폭이 커진듯도 싶다. 이 가을엔 뒤라스처럼 치열한 삶을, 치열한 사랑을 꿈꾸고 싶어진다... [인상깊은구절]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연인>연인>모데라토>모데라토> |
| 책을 두 페이지 쯤 넘겼을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아~ 이와 비슷한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책 어디에도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다는 글귀는 없었지만, 나는 언젠가 같은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마도 EBS에서. 아마도 흑백 화면으로. 그래,그 때의 주인공들 역시 낯설고 외로운 프랑스어로 말을 했겠지.. 뒤라스의 소설은 "연인" 이후 두 번째다. 대학 도서관, 프랑스 문학 코너에 서서 단숨에 "연인"을, 사회인이 되어 출퇴근하는 기차 안에서 역시 단숨에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었다. 이미지가 강한 뒤라스의 언어들. 그저 실루엣만으로도 인간의 비린 권태와 즙물처럼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욕망을 잘 묘사해낸 문학의 스타일리스트. 아이가 치는 단조로운 소나티네, 지친 하루를 끝내고 술집으로 모여든 공장 노동자들의 잡담, 도발적 살인사건에 매료된 여인의 발그레한 볼, 그녀 집앞에 툭툭 터지던 목련꽃.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책을 덮고 눈을 감은 후, 나는 잠시 그녀가 되어 말한다. 저기 저 짙은 목련꽃 향기처럼, 바로 여기 날 취하게 하는 포도주처럼, 내 인생을 마구 헝클어지게 해주세요. 지금 내 인생은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처럼 상투적이기만 하니.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모데라토 칸타빌레- 평범하게 일상을 견뎌내는 건 이제 고통스러워요. 그래, 절대적 사랑이라면 좋겠지. 사랑이 삶의 일상성을 함께 통과하면 그 절대적 의미를 잃어버리니,,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죽여주세요... 내릴 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눈을 뜬 나. 현실로 돌아온 나는 시니컬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완성한 절대적 사랑 따위, 어디에도 없다. 생각보다 긴 삶의 행로에 지친 우리들이 만들어낸 환타지일 뿐,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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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짧은 책이었다... 하지만 그 길지 않은 책을 읽으며 페이지 넘어가는 것이 어찌나 힘든지... 그렇다고 이 책이 아주 깊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읽는 문장 하나 하나에서 뒤라스의 마음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읽는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듯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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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그리트 뒤라스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게 다예요'를 통해서였다. 하얀 표지에 정말 짧은 시편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언어에 대한 충격과 그의 평범치 않은 삶에서 받은 느낌이 엉켜서 그런 것이었으리라. 그의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 모데라토 칸타빌레. 이 소설은 단지 두가지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 교습 받는 곳과 카페 안. 우리는 그 단순한 공간에서 미묘한 감정들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정말 노래부르듯이 간절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은 말하지 않는 과거.. 그 긴장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여성으로서, 또는 제약이 많은 인간으로서 작가, 주인공의 마음상태어 어떤 파동을 따라 전해지는 것 같다. 아릇한 첫사랑이 떠오를때 읽어보면 좋을 듯. 소설책은 그리 어렵거나 한 내용은 아니나 심리묘사라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느껴질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