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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18세기 영-미의 하층선원에 관한 역사이다. 우리는 이 시기 유럽의 식민지 경영과 해외무역에 관해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접해 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대개 선박을 모는 사람들보다는 선박에 실린 상품 - 설탕, 면화, 카카오, 담배, 차 - 과 그 흐름에 주된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설혹 사람을 주목할 지라도 콜럼버스 이래 “모험가”와 “개척자”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살펴왔을 따름이다. 갤리선에 몸을 실은 하층선원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해적을 다루는 책들이다.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도 마지막 장(章)은 해적에 할애된다. 그러나 하층선원의 생활형태 가운데 하나로서 제기되는 해적이다.
2.
하층선원은 토지로부터 밀려나(인클로저) 노동을 팔아야만 하는 이들로 부둣가에 모여든다. 아직 공장제 노동이 성립하지 못한 단계에서 전통적 수공업 기술이 없는 이들은 “땅 위에서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와 더불어 팽창하는 해외무역은 자본주의의 과정이다. 하층선원은 본격적인 임금노동자이자 세계적 노동자였던 셈이다.
그래서 “검푸른 바다” 이상으로 “악마”는 하층선원들에게 위협이 되었다. “악마”는 선장을 말한다. 상인에게 고용된 선장은 선원들의 노동을 통제하며 망망대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집단노동자, 임금노동자로서 하층선원은 나름의 생존전략을 도모하며 극히 제한된 공간인 배 위에서 독특한 선원문화를 형성한다. E.P 톰슨의 논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유효하다.
3.
해적도 이와 같은 논리에서 읽어낼 수 있다. 단순히 방랑열에 사로잡히거나 한탕을 노리는 낭만적인 자들이 아니었다. 군함과 상선에서 선장을 비롯한 상급자에게 학대를 당하던 자들의 일탈이었다. 따라서 해적 조직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민주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이들의 약탈은 복수의 형태로 나타난다. 체제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하층선원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준 상선선장을 만났을 때 해적들의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배를 돌려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대신해 상품을 팔아주기를 기대하며 자금을 몰아주어 런던의 상인들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 동인도 회사의 낡은 선박을 나포했을 때, 한 해적은 동인도 회사에 대한 선원 시절의 회한을 담아 산산조각내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미 낡은 배를 부수는 것은 오히려 동인도 회사를 도와주는 것이며, 그 배에 달린 선원들의 생계를 어렵게 할 뿐이라는 중론에 선뜻 포기한다. 에릭 홉스봄이 말한 “혁명적 전통주의자”의 해양판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절판상태다. 즉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고 대형서점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좋은 인문사회서적은 절판으로서 그 가치가 표명되는 괴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책을 대학가 서점, 지역 중규모 서점에 발품을 팔아서만 구할 수 있음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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