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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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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뭔가 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싶어질 만큼 아들이 미운 그 계기를 나는 영화속에서 느끼지 못했기에 책을 찾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으니까 이 책도 그럴 것이다~ 생각하여 읽었는데 여전히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 이 소설은 그냥 영화를 글로 옮기는 것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거면 차리리 대본집으로 나오지~
"사도" 내용보기
영화를 보며 뭔가 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싶어질 만큼 아들이 미운 그 계기를 나는 영화속에서 느끼지 못했기에 책을 찾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으니까 이 책도 그럴 것이다~ 생각하여 읽었는데 여전히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 이 소설은 그냥 영화를 글로 옮기는 것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거면 차리리 대본집으로 나오지~하는 아쉬움도 크다. 어떻게 아비가 자식을 죽이려 할 수 있나~는 내 편견과 아집이 이해를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금이 왕이고 이선이 왕세자이기에 그런 사단이 났다고 결론을 맺기엔 내게 부모자식간의 유대는 너무도 끈끈하고 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가 어떻게~... 이 생각이 모든 이해를 막고 있다. 허나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가?

소설도, 부록으로 들어있는 기획노트도, 굳이 이렇게 사서 읽을만큼의 필요가 있었던가 싶다. 다~ 영화에서 본 것들이지만, 굳이 영화속 장면들을 떠오르게도 하지 않는데..ㅡㅡ;;

기회가 되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두번째로 보면은 그때는 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YES마니아 : 로얄 j*******7 2015.10.24.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리뷰] 사도 : 아버지와 아들의 기억
"[리뷰] 사도 : 아버지와 아들의 기억" 내용보기
이 책은 영화 "사도"를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흐름과 대사가 거의 일치하여 영화를 보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던 부분이 있던 부분들도, 다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기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조금 더 세심하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를 처음 봤을땐, 왕으로서의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로 보았다. 그러다 보니 "영조" 와  "이선 (사도)"
"[리뷰] 사도 : 아버지와 아들의 기억" 내용보기

이 책은 영화 "사도"를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흐름과 대사가 거의 일치하여 영화를 보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던 부분이 있던 부분들도, 다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기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조금 더 세심하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를 처음 봤을땐, 왕으로서의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로 보았다. 그러다 보니 "영조" 와  "이선 (사도)"의 입장을 생각하며 보았고. 슬퍼 울었다. 그러나 책으로 만난 사도는 왕과 세자를 후 순위에 두었다.

"아버지와 아들" 두사람만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이선"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두려웠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 중 제일 무섭다는 "두려움"... 우리는 조선의 성군을 묻는다면 "세종","성종","영조","정조" 이렇게 네 명의 군주를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고 이 네 명의 군주를 존경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영조"가 무서워졌다.

 

이런말이 있다. 소통은 성군을 낳고,  불통은 역적을 낳는다. 연산군이 폭군이 된 것중 하나도...

신료들의 말에 귀기울이려 들지 않았고, 입을 열면 신언패를 만들어 목에 걸어 주며, 신료들의 충언을

막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폭군이라고 한다면... 영조는 과연 성군이 맞을까? 영조왕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굴레를 벗고자 했으나 그걸 건들고, 난을 일으키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이 왕의 치부를 건들인 죄가 있다면, 연산군의 어머니가 죽게 된 것에 관련된 이들도 연산군에겐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성군이 되고, 연산군은 폭군이 되어 쫒겨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에 있었다. 영조는 신료들의 말을 들었고, 어느 한 당파에 힘이 쏠리기 원치 않았다. 또한 백성의 말에 귀기울이여 했으며. 굶주리는 백성을 생각하여 금주령을 내리고, 곤룡포도 매번 갈아입지 아니했다. 영조는 그런 자신의 애민을 사도가 이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마음의 표현이 너무 엄격했고, 거칠었다. 백성에게 열었던 마음을, 귀를, 아들 '이선'에게도 열어주었다면... '이선'은 우리가 부르는 성군의 이름 중 또 다른 군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이선"은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원했을 뿐이다. 아니 그게 많은 걸 바란 거였다면, 다정한 말한마디 그뿐이었다.

 

"이선"은 엄하고 자신을 멸시하는 아버지 "영조"에게 얻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을 할머니(대비)와 어머니 중전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리고 그 투정들을 대비와 중전은 너그러이 받아 주었다.  중전은 이선의 생모도 아니었음에도... 그러나 그런 할머니와 중전이 돌아가신 날 조차, "이선"은 아버지"영조"에게 훈계를 들어야 했고, 마음껏 슬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일한 이선의 소통로가 사라지자, 이선의 광증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그러한건 아니었다. "이선"은 영조가 마흔 둘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처음 영특했던 "이선"을 "영조"역시 기특해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턴가 "이선"은 글공부 보단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좋아했다. 지금이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니 어쩌느니 하지만 사실 조선은 신분의 굴레를 벗어 던 질 수 없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영조"가 이런말을 한다.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그말은 어찌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그 말은 정말 말그대로 "존재 자체가 역모다" 라는 말을 확인 시켜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 영조 - 그의 또다른 이름 "이금" ]

 

"이금은 태어날때 부터 죽을 목숨이었다."

'왕이 될 수 없는 왕자였을때, 사람들은 그를 나으리 라고 불렀다.'

나으리는 이금을 칼날위에 세운 죽음의 호칭이었다.

 

이금은 본래 무던한 성품이었다.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해결했고, 종들을 괴롭히거나 매질 하는 일도

드물었다. 검소하기보다 번잡한게 싫어서 사치하거나 치장하지 않았다. 식사는 소식이었다. 글공부는

여느 사대부 만큼이나 했으나 열성은 아니었다.  두번째 왕자로 살아가면서 이금은 변했다.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고, 불안한 날에는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궁에서 누군가가 죽어나갔거나

귀양갔다는 말을 들으면 손을 떨거나 식은땀을 흘렸다.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고 어느날 부터

세자가 된 이복형의 안부를 물었다. (p31)

 

"이금" 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금"이 태어났을때, 이미 이복형 '이윤'은 세자였으며, 어머니는

천민 출신이었다. 콤플렉스 하나는 바로  천한피가 흐르는 왕은 역모를 부르는 존재 라는 것 이다.

그래서 일찍이 사가로 나가 백성가 함께했다. 어쩌면 "영조"의 애민은 이때 생겨났는지도 모를일이다.

 

또다른 콤플렉스는 형인 경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것.

경종은 몸이 허약했고, 입도 짧아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어느날은 영조가 경종의 문안차

간장게장을 들고 왔다. 그날은 경종이 물이외에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지 몇일 되던 날이었다.

경종은 입맛이 없었으나, 어여삐 여기던 동생이 가져온 간장게장을 맛있게 모두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감도 가져왔는데, 경종은 그 감을 먹은 후, 먹었던 모든 것을 비워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실록이 있다. 그때 간장게장과 감에 독극물 검사를 해보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금이 선왕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고 일부 남인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본래 주인이 아닌 자가 주인을 칭하면 도적임이 진배없다. 지금 나라에 도적이 상좌에 앉아 스스로를 임금에 칭하니 대저 본국이 도적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대왕은 병이 아닌 흉악한 무리가 음식에 독을 타 돌아가셨음을 그대들은 모르는가. 연잉군은 본래 왕상의 핏줄이 아니요. 왕실의 근간을 흔드는 도적떼들이 데려온 시정잡배에 불과하니...(p45~46)

 

영조에게는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꼬리표가 달려 버렸다. 영조는 그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그 사이 영빈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영빈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내인들은 영빈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이금은 영빈의 웃지 못함을 이해했다. 세자가 태어난 세상은 죽고 죽임의 구덩이 한가운데였다.  귀하게 얻은 아들의 이름은 이선이었다.

 

"내가 살아남았듯이 너도 살아남아 주기를 …"

 

 … 이금은  어린 아들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임금의 첫왕자는 임금이 서른다섯 살때 열 살의 나이로 죽었다. 마흔이 넘어 얻은 아들은 건강했고, 세자로서 위치도 확고 했다. 영특한 아들이었다. 두 돌이 지나기도 전에 붓을 들고 종이에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손길이 여간 야무진게 않았다.  세살때는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가 나오자 입고있던 비단옷을 던지며 이것은 사치이며, 속안에 입은 무명 속옷은 사치가 아니라며 집어 말했다. 왕(王) 자를 보면서 임금을 가리켰고 세자(世子)를 보면서 스스로를 가리키기도 했다. 저녁밥을 먹다가 이금이 부르자 입안의 음식을 뱉어낸 적도 있었다. … 세상 여느 부모들 처럼 이금의 눈에는 제 자식의 자태가 산같이 높고 연못같이 깊었다.이금은 무엇보다 어린나이에도 귀함과 귀하지 않음을 바라보려는 아들이 기특했다.

 

이금은 다섯번의 수라중 점심과 밤참은 들지 않았다. 쌀밥보다 잡곡밥을 찾았고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처소 문풍지에 구멍이 나면 손수 종이를 잘라 붙였고, 헌 버선을 기워 신었다. 용상은 비단 대신 무명천으로 지었다. 사치를 싫어해 여인의 머리를 장식하는 가체를 못하게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귀함에 눈이 끌리면 속에 담긴 참된 귀함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금은 세자가 학문의 도 안에서 그것을 깨우치기를 바랐다.  (p56)

 

 

 

이선은 나이를 먹어가며 …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딱딱한 경전보다는 소설을 찾았고, 글을 읽기 보다는 붓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세자는 틀에 두면 틀 바깥을 보았고, 선을 그으면 그 경계를 지키기 보다는 선을 지우길 바랐다. 꽃과 돌 그림을 보면 그려져 있지 않은 나비와 개미가 세자의 머릿속을 날고 기었다.

 

 

이금은 이선의 맑은 얼굴에서 어느날 부턴가 불안감을 느꼈다.  이금은 아들을 유교의 예에 통달한 호학의 군주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문득 살펴보면 아들은 문(文)에 가까우면서도 멀어, 어느때는 한낱 백성보다 못한 문맹처럼 보이기도 했다. 불안을 이기지 못하면 임금은 이선을 불러 시험보았다

 

지금 세상이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하고, 노력여하에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라고도 하며,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말하지만, 때는 조선,.. 정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없었다. 특히나 "이선"은 왕이 될 왕세자였다.

 

 내관들은 이선에게 무골의 기질이 보인다고 보고했지만, 조선의 임금은 무인이 될 수 없었다. (p59~66)

 

 

[사도 - 그의 이름 "이선"]

 

"검의 끝과 화살이 가르는 허공, … 이선은 세상을 보았다." 

 

 이선은 본서와 잡서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학의 도리는 본서에 있었으나, 유학이 세상을 다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이선은 저녁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자란 꽃 몇송이를 아꼈다.

…이선에게 꽃은 그저 꽃이고 이슬은 그저 이슬이었다. 이선은 꽃을 꽃이라 말할 수 없어 한없이 답답했다. 답답함이 가슴 깊이 쌓이면 이선은 검을 뽑아 휘두르거나 활을 들어 쏘거나 귀신과 요괴가 나오는 글을 찾아 읽었다. 휘두르는 검의 끝과 화살이 가르는 허공과 귀신을 부르는 독경안에서 이선은 세상을 보았다. (p102)

 

 이선은 휘두르는 검의 끝과 화살을 가르는 허공에서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대리청정이 결정되던 날, 이선의 스승들은 걱정했다."

"스승님들, 대리청정은 아바마마를 위한 것이지 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염려 마십시오."

 

 

"너는 백성의 어려움을 아느냐?"

 

"책으로 읽고 대신들에게 들어 말은아나 그를 감히 다 헤아리지는 못하옵니다.

 

"네가 읽고 들은 말 중에 아름다운 말이 있더냐."

 

"임금은 산과 같고, 백성은 흙과 같다는 좌의정이 말이 좋았사옵니다."

 

"사부가 모두 들어와 있는데 좌의정만 칭찬하면 영의정이 궁색하지 않겠느냐"

 

이선이 고개를 들어 이금을 쳐다보았다. 이금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쪽을 버리고 한쪽을 취하면 반드시 화가 일어난다.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니까 좋더냐? 너는 그게 병이다. 너는 아비의 뜻을 거스른 자들의 편을 들었으니 이제 조정은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렸다."

 

 

"몰라서 그냥 두지 않았다. 내가 이십오 년 동안 당파 간 죽고 죽임이 없도록 만든일을 너는

단 하루만에 무너뜨렸다. 새겨들어라,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신하의 결정을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이선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이금은 자리를 뜨려다가 이선을 돌아보고 몇마디 덧붙였다. 목소리가 작아 대신이 알아 들을 수 없다거나, 대님이 똑바로 매어 있지 않아 옷차림이 모자르다는 이야기였다.

 

그해 가을에 가뭄이 들어 많은 백성이 죽었다. 이금은 세자에게 덕이없어 재난이 일어난다고 주변에 말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이선은 비가오고 바람이 불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p 88~89)

 

 

이선이 임금의 눈밖에 난 후, 이금은 이선의 생모인 영빈과 이선이 가까이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의례적으로 올리는 문안 외에 어미가 병이나 문병을 가는 모습만 보아도 이금은 이선을 쫒아냈다.

이선은 임금에게 문병을 들키면 문으로 달아났고 급하면 창문을 넘거나 담을 타기도 했다 

 

"중전의 환갑... 귀를 닫는 대비"

' 광증의 시작'

 

"영빈이 중전의 환갑잔치를 물으로 왔을 때, 이금은 아랫목에 배가 부른 문소원을 앉혀 놓고 있었다.

"중전의 회갑이 목전인데 전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준비를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금은 묵묵히 수염을 어루만졌다. 영빈은 임금의 침묵을 침묵으로 받았다. 임금의 침묵을 말로 받으면

이금은 시끄럽다는 듯 물러 가기를 명하면 그만이었다.  영빈에게는 겨우 한마디가 남아있을 뿐이었으나

중전의 환갑은 명분이 분명해 침묵으로 버티자면 버틸 일이었다. …임금의 침묵이 길어지자 입을 연견 문소원이었다. … 영빈의 가슴에 불이 일었다. …세자의 친모를 젊은 내인이 능멸했다는 소문은 금방 돌았다. 대비는 문소원을 불러 직접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다. 문소원은 한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치마를 걷어 올려 매를 맞았다.…이금은 가만있지 않았다. 이금은 직접 대비전에 찾아 대비와 맞섰다.

 

"대비가 후궁을 모질게 다룬다 들어 내 따지러 왔습니다."

 

"주상이 아무리 중전에게 정이 없다 하나 낼 모레가 중전의 환갑인데 아무런 하교가 없으니 그게 주상의 뜻이오. 문소원의 뜻이오? 중전의 환갑을 챙기자는 영빈의 뜻이 얼마나 아름답소? 저것이 같은 후궁의 처지로 그 마음을 배우지 못할망정 방자하게도 영빈에게 대들었다기에 내가 내명부의 법도를 세웠소."

 

"……대비께서 이러시면 저는 더 이상 임금 노릇 못합니다."

 

"뭐요? 저 천한 것 배 속에 주상의 씨가 들었다 하여 지금 역성드는 거요?"

 

"천해요? 그럼 천한 저를 임금으로 만든 분이 대비시니, 이참에 제 임금자리를 거두십시오. 세자에게 보위를 넘길테니 윤허하세요.!"

 

"그래요? 그럽시다! 윤허하오."

 

이금은 그날로 선위의 뜻을 내렸다. (p111)

 

 

 

이선은 비어있는 임금의 왕상을 바라보고 대죄했다. 죄를 지엇으나 죄목이 없고, 용서를 구하나 용서 받을 이가 없는 이선의 몸 위로 눈이 수북이 쌓였다. 대비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음을 금방 알아챘다. 선위를 윤허한 것은 자신이니 세자가 겪는 고충과 임금의 칩거로 마비된 국정의 책임은 오롯이 대비의 몫이었다. … 솜옷도 막지 못한 추위로 이선의 몸이 얼고 얼어 손가락과 발가락, 귀 끝에 벌겋게 동상이 들어갈때 쯤, 중전과 헤경궁은 대비전에 나아가 세자의 목숨을 살려달라며 대비에게 빌었다.

대비는 … 버티다가도 내관에게 날씨를 물었다. 눈이오면 얼마나 오는지, 인정전 앞뜰에는 얼마나 쌓여있는지 걱정했다. 내관은 울며 엎드린 자의 의복이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아뢰었다.

 

'주상의 심술은 날씨도 부리나 보다'

 

대비는 도승지를 불러 선위를 거두었다. … 대비는 이선이 찾아와 투정을 부려도 예전처럼 받아주지 않았다. 대비는 윤허를 거둔 이후로 간혹 소리가 안들린다고 하소연 했는데, 정말 들리지 않는 것인지 들리지 않는 시늉을 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섯 해 후 대비는 나이들어 죽었다. 중전은 대비보다 한달 먼저 죽었다. 중전의 병은 숙환이었다. 죽은 중전의 손톱은 파란색이었다. 이금은 중전이 죽어갈때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이금은 중전의 죽음이 목전에 왔을 때가 되어서야 대조전을 찾았다. 대조전에서도 중전을 살피는건 제쳐두고 마침 울고 있는 이선을 꾸짖었다. …… 마음을 털어놓던 대비와 중전이 죽고 이선 앞에 전 이는 이제 이금 뿐이었다 (p111~113)

 

"돌아갈 곳이 없구나"

 

 

 … 거듭 술을 들이켜는 이선의 모습을 본 별감들은 간혹 이선의 과음을 말리기도 했다.

 

"너의 눈엔 이게 술로 보이는가?! 내가 죽인 할머니의 피눈물이다."

 

이선이 술을 들이켰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따르느냐."

 

"저는 저하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사옵니다."

 

"너도 그러하냐 …… 나도 돌아갈 곳이 없다."

 

…… 취기가 혈기를 누루는 날, 이선은 죽은 대비와 중전의 넋을 바라고 제를 올렸다.… 이선은

술이 깨면 마셨고, 마시면 취했다. (p 139~142) 

 

 

 

"역모로 몰리다 "

'존재 자체가 역모다'

 

… 자신이 역모로 몰렸다는 소식은 임금을 끝끝내 보지 않으려던 이선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모든 죄를 비켜갈 수 있는 세자도 역모의 혐의는 그냥 넘어가기 어려웠다. 역모는 이 나라의 권세가 관련한 가장 무겁고 중한 죄로, 권세에 가까이 있으나 그것을 움켜쥐지 못한자가 꾀했다면 그 죄는 더 깊을 수 밖에 없었다. 이선이 서둘러 이금을 찾아왔을 때, 이미 나경언은 참수장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이선은 자리에 엎드려 소리 쳤다.

 

"전하 어찌 거짓된 말을 믿으십니까? 나경언을 참수 하기 전에 배후를 캐주소서! 자식을 역적으로 까지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이금은 이선의 얼굴을 보자마자 역정을 냈다.

 

"네가 내관을 함부로 죽이고 여승을 궁으로 들이며 관서로 놀러다녔는데 이게 세자로서 행할 일이냐! 이러다가 네가 데리고 있는 여승이 웬 사내자식을 데려와 왕손이라며 문안을 하겠구나? 이게 나라가 망할 징조다!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이니라. 내 이제 까지는 네가 하는 짓들을 곁가지로 들었으나 고변서를 읽고 확실히 알겠다. 왜 사람을 죽이고 패악을 떠느냐?"

 

"모든 것은 저의 울화 때문이옵니다"

 

"차라리 미쳐서 발광을 해라! 썩 물러가라!"

 

"어떤 경로로 저자가 고변을 했는지 묻고자 합니다. 나경언과 대질하게 해주소서!"

 

"세자가 왜 죄인을 면질하는가. 안될말이다."

 

이금은 옷자락을 떨치고 돌아갔다. 이선은 동궁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금천교에서 대죄하며 임금을 뵙기를 청했다. 이금은 귀를 씻을 뿐 이선을 만나주지 않았다. (p163)

 

[왕과 세자, 아버지와 아들 그 마지막]

 

 이선이 죽기 하루 전, 이금은 뒤주로 나와 이선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머뭇거리는 말은 사관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 ……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소......"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을 아느냐.... 나는 겨우 살았다...."

 

"공부가 중하오....옷차림이 그리 중하오..."

 

"공부가 국시다. ...예법이 국시다..."

 

"임금 자리 싫소...아비처럼 말 붙여주시오..."

 

"어찌하여 이제 와서야 ...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 어찌 이런일이 있겠느냐.."

 

"나를 살리려오...세자를 살리려오....."

 

"역적이 아니라 광인으로 남아라,...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이산은 여덞 날을 견디다 죽었다. 뒤주를 흔들어도 소식이 없자 이금은 하루를 더 기다렸다.

다음날 이금은 뒤주를 뜯었다. 뒤주안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금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뒤주로 손을 넣어 끊어진 이선의 맥을 확인 했다. (p170)

 

 

 

죽는 순간까지 아들이고 싶었던 "이선" , 그리고 그런 아들이 죽는 순간까지 왕이어야 했던 "영조"

아버지와 아들의 기억은 머랄까... 읽는동안 마음이 무거웠고 답답했다. 슬펐다.

단 한순간 만이라도, 아니 적어도 이선이 죽기 전 그 잠깐이라도 아버지가 되어 줄 수는 없었을까?

참... 어렵다...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왕의 마음이란 무엇인지... 왕의 자리란 어떤 것이었을지,.

무섭고.. 무섭고... 무서웠다....

 

 

r**********2 2016.01.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