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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뭔가 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싶어질 만큼 아들이 미운 그 계기를 나는 영화속에서 느끼지 못했기에 책을 찾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었으니까 이 책도 그럴 것이다~ 생각하여 읽었는데 여전히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 이 소설은 그냥 영화를 글로 옮기는 것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거면 차리리 대본집으로 나오지~하는 아쉬움도 크다. 어떻게 아비가 자식을 죽이려 할 수 있나~는 내 편견과 아집이 이해를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이금이 왕이고 이선이 왕세자이기에 그런 사단이 났다고 결론을 맺기엔 내게 부모자식간의 유대는 너무도 끈끈하고 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가 어떻게~... 이 생각이 모든 이해를 막고 있다. 허나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가? 소설도, 부록으로 들어있는 기획노트도, 굳이 이렇게 사서 읽을만큼의 필요가 있었던가 싶다. 다~ 영화에서 본 것들이지만, 굳이 영화속 장면들을 떠오르게도 하지 않는데..ㅡㅡ;; 기회가 되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두번째로 보면은 그때는 좀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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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화 "사도"를 기반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인지 영화의 흐름과 대사가 거의 일치하여 영화를 보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던 부분이 있던 부분들도, 다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새기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조금 더 세심하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를 처음 봤을땐, 왕으로서의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로 보았다. 그러다 보니 "영조" 와 "이선 (사도)"의 입장을 생각하며 보았고. 슬퍼 울었다. 그러나 책으로 만난 사도는 왕과 세자를 후 순위에 두었다. "아버지와 아들" 두사람만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이선"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두려웠을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 중 제일 무섭다는 "두려움"... 우리는 조선의 성군을 묻는다면 "세종","성종","영조","정조" 이렇게 네 명의 군주를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고 이 네 명의 군주를 존경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영조"가 무서워졌다.
이런말이 있다. 소통은 성군을 낳고, 불통은 역적을 낳는다. 연산군이 폭군이 된 것중 하나도... 신료들의 말에 귀기울이려 들지 않았고, 입을 열면 신언패를 만들어 목에 걸어 주며, 신료들의 충언을 막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폭군이라고 한다면... 영조는 과연 성군이 맞을까? 영조왕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굴레를 벗고자 했으나 그걸 건들고, 난을 일으키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이 왕의 치부를 건들인 죄가 있다면, 연산군의 어머니가 죽게 된 것에 관련된 이들도 연산군에겐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성군이 되고, 연산군은 폭군이 되어 쫒겨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에 있었다. 영조는 신료들의 말을 들었고, 어느 한 당파에 힘이 쏠리기 원치 않았다. 또한 백성의 말에 귀기울이여 했으며. 굶주리는 백성을 생각하여 금주령을 내리고, 곤룡포도 매번 갈아입지 아니했다. 영조는 그런 자신의 애민을 사도가 이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마음의 표현이 너무 엄격했고, 거칠었다. 백성에게 열었던 마음을, 귀를, 아들 '이선'에게도 열어주었다면... '이선'은 우리가 부르는 성군의 이름 중 또 다른 군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이선"은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원했을 뿐이다. 아니 그게 많은 걸 바란 거였다면, 다정한 말한마디 그뿐이었다.
"이선"은 엄하고 자신을 멸시하는 아버지 "영조"에게 얻게 되는 두려움과 슬픔을 할머니(대비)와 어머니 중전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다. 그리고 그 투정들을 대비와 중전은 너그러이 받아 주었다. 중전은 이선의 생모도 아니었음에도... 그러나 그런 할머니와 중전이 돌아가신 날 조차, "이선"은 아버지"영조"에게 훈계를 들어야 했고, 마음껏 슬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일한 이선의 소통로가 사라지자, 이선의 광증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그러한건 아니었다. "이선"은 영조가 마흔 둘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처음 영특했던 "이선"을 "영조"역시 기특해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턴가 "이선"은 글공부 보단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좋아했다. 지금이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니 어쩌느니 하지만 사실 조선은 신분의 굴레를 벗어 던 질 수 없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영조"가 이런말을 한다.
"아들이 하나만 더 있었어도.."
그말은 어찌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그 말은 정말 말그대로 "존재 자체가 역모다" 라는 말을 확인 시켜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 영조 - 그의 또다른 이름 "이금" ]
"이금은 태어날때 부터 죽을 목숨이었다." '왕이 될 수 없는 왕자였을때, 사람들은 그를 나으리 라고 불렀다.' 나으리는 이금을 칼날위에 세운 죽음의 호칭이었다.
"이금" 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금"이 태어났을때, 이미 이복형 '이윤'은 세자였으며, 어머니는 천민 출신이었다. 콤플렉스 하나는 바로 천한피가 흐르는 왕은 역모를 부르는 존재 라는 것 이다. 그래서 일찍이 사가로 나가 백성가 함께했다. 어쩌면 "영조"의 애민은 이때 생겨났는지도 모를일이다.
또다른 콤플렉스는 형인 경종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것. 경종은 몸이 허약했고, 입도 짧아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어느날은 영조가 경종의 문안차 간장게장을 들고 왔다. 그날은 경종이 물이외에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지 몇일 되던 날이었다. 경종은 입맛이 없었으나, 어여삐 여기던 동생이 가져온 간장게장을 맛있게 모두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감도 가져왔는데, 경종은 그 감을 먹은 후, 먹었던 모든 것을 비워내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실록이 있다. 그때 간장게장과 감에 독극물 검사를 해보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금이 선왕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고 일부 남인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조에게는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꼬리표가 달려 버렸다. 영조는 그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그 사이 영빈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영빈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내인들은 영빈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이금은 영빈의 웃지 못함을 이해했다. 세자가 태어난 세상은 죽고 죽임의 구덩이 한가운데였다. 귀하게 얻은 아들의 이름은 이선이었다.
"내가 살아남았듯이 너도 살아남아 주기를 …"
지금 세상이야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하고, 노력여하에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라고도 하며,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말하지만, 때는 조선,.. 정해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없었다. 특히나 "이선"은 왕이 될 왕세자였다.
[사도 - 그의 이름 "이선"]
"검의 끝과 화살이 가르는 허공, … 이선은 세상을 보았다."
이선은 휘두르는 검의 끝과 화살을 가르는 허공에서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대리청정이 결정되던 날, 이선의 스승들은 걱정했다." "스승님들, 대리청정은 아바마마를 위한 것이지 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염려 마십시오."
이선이 임금의 눈밖에 난 후, 이금은 이선의 생모인 영빈과 이선이 가까이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의례적으로 올리는 문안 외에 어미가 병이나 문병을 가는 모습만 보아도 이금은 이선을 쫒아냈다. 이선은 임금에게 문병을 들키면 문으로 달아났고 급하면 창문을 넘거나 담을 타기도 했다
"중전의 환갑... 귀를 닫는 대비" ' 광증의 시작'
이선은 비어있는 임금의 왕상을 바라보고 대죄했다. 죄를 지엇으나 죄목이 없고, 용서를 구하나 용서 받을 이가 없는 이선의 몸 위로 눈이 수북이 쌓였다. 대비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음을 금방 알아챘다. 선위를 윤허한 것은 자신이니 세자가 겪는 고충과 임금의 칩거로 마비된 국정의 책임은 오롯이 대비의 몫이었다. … 솜옷도 막지 못한 추위로 이선의 몸이 얼고 얼어 손가락과 발가락, 귀 끝에 벌겋게 동상이 들어갈때 쯤, 중전과 헤경궁은 대비전에 나아가 세자의 목숨을 살려달라며 대비에게 빌었다. 대비는 … 버티다가도 내관에게 날씨를 물었다. 눈이오면 얼마나 오는지, 인정전 앞뜰에는 얼마나 쌓여있는지 걱정했다. 내관은 울며 엎드린 자의 의복이 눈에 덮여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아뢰었다.
'주상의 심술은 날씨도 부리나 보다'
대비는 도승지를 불러 선위를 거두었다. … 대비는 이선이 찾아와 투정을 부려도 예전처럼 받아주지 않았다. 대비는 윤허를 거둔 이후로 간혹 소리가 안들린다고 하소연 했는데, 정말 들리지 않는 것인지 들리지 않는 시늉을 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섯 해 후 대비는 나이들어 죽었다. 중전은 대비보다 한달 먼저 죽었다. 중전의 병은 숙환이었다. 죽은 중전의 손톱은 파란색이었다. 이금은 중전이 죽어갈때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이금은 중전의 죽음이 목전에 왔을 때가 되어서야 대조전을 찾았다. 대조전에서도 중전을 살피는건 제쳐두고 마침 울고 있는 이선을 꾸짖었다. …… 마음을 털어놓던 대비와 중전이 죽고 이선 앞에 전 이는 이제 이금 뿐이었다 (p111~113)
"돌아갈 곳이 없구나"
"역모로 몰리다 " '존재 자체가 역모다'
[왕과 세자, 아버지와 아들 그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아들이고 싶었던 "이선" , 그리고 그런 아들이 죽는 순간까지 왕이어야 했던 "영조" 아버지와 아들의 기억은 머랄까... 읽는동안 마음이 무거웠고 답답했다. 슬펐다. 단 한순간 만이라도, 아니 적어도 이선이 죽기 전 그 잠깐이라도 아버지가 되어 줄 수는 없었을까? 참... 어렵다... 아버지의 마음이 무엇인지. 왕의 마음이란 무엇인지... 왕의 자리란 어떤 것이었을지,. 무섭고.. 무섭고...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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