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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딱지란 말은 사전에 나와 있진 않지만 참 정감이 가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가지고 꼭 붙어 있는다는 말. 좋아하는 누군가를 졸졸 따라다니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껌딱지' 같다는 말을 한다. 큰 애에 비해 둘째 녀석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는 껌딱지.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접착력이 덜해져서 저대로 떨어져 잘 지낸다. 그렇다고 애정이 식은 건 아니겠지만 왠지 '엄마, 엄마'하고 따라다니던 예전이 더 날 따르고 좋아했던 거 같다는 생각은 든다. 왜 그랬을까? 그건 아마도 그만큼 자신과 시간을 많이 보내주고 필요한 것을 잘 챙겨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딸이 어리기 때문에 더 신경 쓰고 잘해줬을 테고 아이는 그것이 고마워 더 달라붙어 지냈을 것이다. 이 책은 라쌤이라는 담임 선생님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K라는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친구들도 잘 놀리고 장난도 잘치고 더러운 행동만 일삼는 K를 친구들은 모두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K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장난만 더 심해진다. 이런 학생이 있다면 선생님 입장에서 어떨까? 그리 탐탁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 꾸짖기도 하고 벌을 세우기도 하지 않을까? 어느날 K는 라쌤에게 묻는다. 나보다 공부 잘하는 윤지가 더 좋지 않냐고? 라쌤은 고개를 저으며 반 아이들 모두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알려준다. 반 아이들 전체의 특징을 알고 그것을 한 명 한 명 얘기해 줄 수 있는 선생님. 멋진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K는 그림을 잘 그려 좋아한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 라쌤은 말로만 좋아한다 하지 않고 K를 늘 곁에 두며 게임도 같이 하고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K가 실수를 해서 일을 망쳐도 야단치지 않고 늘 다독여 주고 격려한다. 그렇게 선생님을 도와주고 함께 놀기도 하며 K는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말로 가르치고 타이르는 게 아니라 함께 하면서 아이가 느끼고 깨닫게 해 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정말 많을 걸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날 컬러믹스를 가지고 놀던 K는 선생님께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은 이걸로 무얼 만들고 싶어요?" 선생님은 의외의 것을 얘기했고, K는 선생님을 위해 매일같이 그것을 만들어 가지고 온다. 그리고 선생님 책상 주변은 그것으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아마 많이 웃게 될 것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라서, 황당하지만 따뜻한 웃음을 짓게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딸과 함께 읽어보았는데 아이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도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함빡 웃음 지었을 것이다. 그림도 참 잘 그려진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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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스스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_마하트마 간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지요. 사람은 저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엄마의 사랑만을 듬뿍 먹고 자란 아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그만큼 사랑해 주는데 싫은 사람 없을 테고,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하는데 기분이 좋을 사람 없겠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사랑이라는 공통의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사회적 잣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게 되지요. 착한 아이 나쁜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버릇없는 아이, 똑똑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등 늘 평가의 잣대로 아이들을 두 부류로 나누곤 하지요. 가정에서는 나름 사랑받던 아이도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무참히 평가되곤 합니다.
<라쌤 껌딱지>의 주인공은 어떤 아이일까요? 앵그리버드보다 더 유명하다는 아이, 선생님들도 다 알고, 이름 석 자만 대면 엄마들까지도 다 안다는데 좋은 의미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나쁜 쪽으로 너무나 유명한 아이인 거예요. 친구들의 공을 뺏고, 아무렇지 않게 더러운 행동을 하고, 친구들에게도 이름보다는 듣기 싫은 별명을 부르고, 잘못해도 사과하는 법이 없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장난치고 책상에도 올라가요. 말 안 해도 교실 안 분위기가 상상이 갈 정도에요. 친구들은 그런 아이를 싫어해요.
그런데 아이도 애초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을 텐데, 왜 남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걸까요? 어느 날 아이는 선생님께 물어요. 왜 짝꿍 윤지만 좋아하느냐고요. 공부를 잘해서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심부름도 윤지만 시키는 것 아니냐고요. 윤지랑 싸우면 윤지한테는 윤지야~ 하고 부르면서 자기는 왜 성까지 붙여서 말하는 거냐고 묻지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숨만 쉬는 것 같았던 아이에게도 할 말이 많았던가 봅니다. 어쩌면 아이는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아무도 눈치 채주지 못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관계를 맺는 방법이 달랐을 뿐 아이가 비난을 받아야 하고 지적받아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아이를 이해해주고 아껴주는데 그런 나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 맺는 법에 너무 서투르죠. 하물며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를 사귀고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서툰 아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뭐든지 잘 하는 아이들을 모델로 삼고 그런 아이들에게만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닐까요. 잘 못하는 아이들도 있음을 이해하고 그 아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조금은 서툴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관심을 갖고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태건이의 긍정적인 변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더불어 책에 나오는 라쌤같은 분들도 우리 교육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라는 지위를 앞세워 자칫 권위적인 태도를 취한다거나 아이들을 이중적 잣대로 공개적으로 차별하고 편애하는 선생님도 있을 테지요. 교사라면 아이들이 진심으로 다가올 때 그 진심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쌤처럼 아이에게 했던 행동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아이가 보여준 것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교사가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 라쌤 껌딱지라 불려도 좋을 만큼 친근한 관계여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좀 더 예쁜 손가락은 있다는 말을 종종 하죠. 안 예쁜 손가락이 있어서 예쁜 손가락이 유독 빛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다 같은 손가락이라는 것을 말이죠. 비록 안 예쁜 손가락이었을지 모르지만 잘 다듬어준다면 반짝반짝 예쁜 손가락처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지금쯤 라쌤 껌딱지는 또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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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쌤껌딱지 ![]()
툭하면 여기저기서 "쌤"이라 한다. '빨리빨리'의 강박 사회인만큼 축약어가 이상하지는 않지만, "쌤"에 양가감정이 들긴 한다. '스승'이니 '은사'라며 예를 갖춰 존경할 선생님이 드물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친밀함의 농도가 진해서 '쌤'인가? <라쌤 껌딱지>라는 그림책은 표지만 보아도 후자의 이유에서 "쌤"이라 함을 알 수 있다. 표지에서 노란 옷을 입고 입 헤 벌리고 있는 녀석이 바로 그 껌딱지이다. 분홍 원피스에 미소가 고운 이가 바로 '라쌤'이고. 아이 이름, 아니 성씨가 꽤나 특이하다. '감'씨인데, 학교에서 무척 유명하단다. '감태건'이라는 이름을 모르면 간첩일 만큼 유명하다는 설정이다. 저자는 태건이가 '이리이리 부족하다거나, 저렇게 문제 있다'는 식의 설명을 달지 않는다. 대신, "선생님, 감태건이 혼내 줘요." "선생님, 감태건이 좀 봐요." 등 반 친구들의 끊이지 않는 민원을 소개함으로써 감태건의 학교 생활이 평범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태건이가 선생님에게 서운함을 호소하는 대목에서 아이다운 천진함에 미소가 번진다. "윤지한테는 윤지야 하고 부르면서 나는 왜 성까지 붙여서 감. 태. 건. 하고 한 자 한 자 힘줘서 불러요?"하면서 따지는 태건이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나도 3학년 때, 이름 대신 아이들을 번호로 부르는 담임 선생님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으니까. 보통 어른들이라면 태건이의 항의를 웃어 넘기고 말듯한데, 라쌤은 다르셨다. 태건이에게 미안하다시면서 태건이를 품에 꼭 안아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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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최고 말썽쟁이 감태건. 어느 유명한 캐릭터 보다 더 인기(?)있는 감태건. 선생님이고, 학생들이고, 심지어 엄마들까지도 감태건을 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의미로 아는 것은 아니다. 등교때부터, 하교때까지 말썽을 계속 일으키니까 그만좀 하라고 불러대는 이름이다. 그런 감태건이 라쌤을 좋아하게 된다. 다른 선생님이나, 어른들처럼 야단치는게 아니라 태건이도 좋아한다고 말해준 라쌤이 태건이는 너무 좋았다. 태건이가 왜 공부잘하는 윤지만 심부름을 시키냐고 하는말에 라쌤은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태건이에게도 심부름을 시킨다. 심부름 하나 시키면 아주아주 오래 걸리는데도 태건이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붕어빵을 좋아하는 태건이에게 방과후 2천원씩을 주어 붕어빵을 사주시고, 모둠활동에 쓸 이름표를 자르는데 도와달라고도 하신다. 태건이가 신이 나서 오리다가 이름표를 잘못 오렸는데도 다시 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마음대로 오리라고 하신다. 태건이는 점점 라쌤이 좋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들에게 사과도 하고,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라쌤이 똥이 좋다고 하자 컬러믹스로 세상의 온갖 똥들을 다 만든다. 소똥 말똥 쥐똥 개똥 굵은 똥 가는 똥 짧은 똥 긴 똥 깜장 똥 흰 똥 빨간 똥 노란 똥 물똥 진똥 된똥 설사~ 라쌤의 책창은 온갖 똥들이 굴러다니는 똥밭이 되었다.
이 책은 꼭 시같이 음율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아이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게 특징이다. 그리고 라쌤을 만나서 아이가 변화하는 과정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많은 말이나 묘사가 없는데 한 아이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라쌤을 만나지 못했다면 태건이는 어떻게 됐을까? 아마 여전히 사고뭉치로 친구들과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라쌤의 어떤 행동이 그런 사고뭉치 태건이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아이의 장점을 칭찬해준 라쌤의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실수도 나무라기 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해준 덕분일 것이다. 결국 아이를 바르게 변화시키는 것은 열마디 잔소리 보다는 한마디 격려인 것이다.
묘하게도 어제 읽은 '부모가 바뀌면 자식이 산다'라는 책과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같다. 그냥 지켜보기, 잔소리 하지 않기, 칭찬해주기.... 짧고 재미있고 쉽게 읽어진다. 그리고 한참동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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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봤을때는 처음에 껌딱지가 우리가 씹는 껌을 얘기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껌은 그 껌이 아니라 누구옆에 딱 붙어다니는 그런 껌딱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 껌딱지라면 우리집에도 한 명 있다. 초등2학년인데도 길을 걸어갈때면 허리춤에 딱 붙어있어 엄마 좋아~ 앙 하는 귀여운 껌딱지..^^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한다. 책 머리에는 라샘과 아이에게 바친다는 작가의 말이 씌여져 있다. 이쯤에서 선생님이 라쌤이고 아이가 껌딱지인건 누구나 알것이고, 그럼 왜 이 아이가 껌딱지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아이는 하루종일 교실에서 그 이름이 불려진다. 학교의 하루는 아이의 이름으로 시작한다는데.. 00이 더러워요~ 00이 공 뺏어서 안줘요~ 000, 000,000.. 어느날 아이는 반 친구 윤지와 싸우는데, 윤지는 아이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고 짝을 바꿔달라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의 시력이 안좋아서 그렇다고 윤지를 달래고.. 라쌤을 좋아하는 아이는 선생님이 윤지만 좋아하고 자기는 싫어한다고 슬퍼한다. 윤지는 다정하게 윤지야 하면서 부르지만 자기를 부를때는 0. 0. 0. 이라며 한자 한자 힘주어 부른다고 눈물을 흘린다. 라쌤은 이런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꼭 안아준다.
이일을 계기로 라쌤과 아이는 더 친해지고 라쌤은 평소 붕어빵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매일 2000원을 주며 붕어빵 심부름을 시킨다. 아이를 위해 보드게임도 사다 놓고, 모둠활동 이름표 오리는것을 도와 달라고 하기도 하고, 교감선생님께 드릴 서류봉투 심부름 시키기도 하신다. 아이는 라쌤이 점점 좋아지게 되고 선생님께 반 친구들의 특징을 재잘재잘 말해주기도 한다.
라쌤 덕분에 아이는 변하게 된다. 친구에게 사과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알림장 쓰기 1등도 되었다.
컬러믹스를 만들면서 라쌤에게 무엇을 만들고 싶냐고 묻는 아이. 선생님은 똥! 나는 똥이 좋더라 하신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똥이란 똥은 죄다 만들어와서 라쌤 컴퓨터와 책상에 붙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도 라쌤 책상은 온통 00이표 똥들이 굴러 다니다닌다나~~^^
유쾌한 그림책이었다. 교실에서 한명쯤 있을법한 말썽꾸러기가 선생님의 사랑으로 얼마나 좋게 변할수 있는지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아이의 익살스런 모습도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인성이 너무 존경스럽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사랑이 필요하지만 사람이기에 말처럼 실천하기가 사실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고 의지하는건 아닐까.. 그 사랑이 태건이 같이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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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나 이름 석자면 대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아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 중에는 부러워서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아이도 있다.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아이의 모습은 장난꾸러기 이상일 경우가 많다. 그 아이의 진짜 모습은 보지 못한체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가끔은 나에게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때가 있어 반성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가 수업받는데 방해가 된다며 한 반이 되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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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쌤 껌딱지>에서도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인물이 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감태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감태건을 모르면 그 학교 학생이 아닐 정도라고 말한다. 심지어 엄마들까지 그 아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전교생에게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하루종일 감태건의 이름을 말한다. 대부분 불만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감태건을 혼내주라는 아이, 공 뺏어서 안준다고 말하는 아이, 감태건이 더러워서 밥을 먹지 못하겠다는 아이 등 모두 감태건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모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우리들은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생각하는 여유는 없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에 대한 결과만 생각할뿐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아이에게 일일이 말할수 없으니 어떨때는 무시하며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훈계를 넘어 무관심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문제아이는 없다고 했던가. 태건이를 말썽꾸러기 문제아로만 생각했다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뜻하게 안아주며 태건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라쌤이 있었기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검딱지가 될만큼 라쌤을 좋아하는 태건이. 좋아하는 라쌤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아이다. 이렇게 손을 내밀어주며 보듬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며 간과할수는 없다. 분명 아이의 학교에도 태건이와 같은 친구들은 있을 것이다. 그럴때 아이들은 어떻게 발아들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말씀드릴 것이다. 현실에서도 책속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말한다. 그럴때 라쌤과 같은 분들이 있다면 태건이는 더 이상 친구들의 불만은 담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실적 상황에서는 힘든 일임을 알기에 책을 읽으며 태건이가 라쌤을 만난것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라쌤과 같은 분들이 많을거라 맏으며 우리도 태건이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