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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그렇게 엉망이었나..? 한때 이 영화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영화가 나온 해에 여성관객들이 뽑은 올해 최악의 영화로 여균동 감독의 <미인>이 뽑혔단 기사를 접했다. 정말 그렇게 <미인>이 최악이란 말인가? 글쎄,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최근 관객이나 평론가라는 단어 앞에 '여성' 이란 단어가 붙음으로서 영화를 감상하거나 평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치게 고정된 하나의 잣대만이 쓰이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앞선다. 물론 지금까지 영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 대부분이 남성중심이었던 것까지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놓고나서 앞으로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감상만을 말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페미니즘이나 사회학, 심리학등의 분야에 그닥 아는 바가 없으며, 남다른 관심마저 없는 이유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우선, <미인>은 이른바 웰메이드 영화는 아니다. 감독으로서의 여균동은 매끄러운 주류보다는 거칠고 조금은 엉성한 영화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몇억이 투입된 영화가 이른바 독립영화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감독은 그런 영화를 만드려고 한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그리고 배우로서의 여균동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감독의 전작들이 어느 정도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정도가 심하긴 했지만, 곰곰히 들여다보면 여균동 감독의 영화는 절대 매끄러운 타입이 아니다. <세상밖으로> <맨> <죽이는 이야기>가 다 그렇다. 감독의 재능은 뭔가 거친 것, 상식 밖의 것들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미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사실 주인공들의 연기는 몹시 서툴다.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고심했던 거 같다. 초짜 연기자들의 대사처리의 미숙함은 민망할 정도이다. 대신에 몇가지 대사들은 정확하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숙함을 밀어부치는 것은 한마디로 패착이었다. 당시에 <씨네21>에서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인생의 깊이를 나름대로 견지한 남자주인공은 '문성근씨나 가능했을' 배역이었다. 그럼 문성근씨랑 모르는 사이도 아닐텐데 왜 오지호란 배우를 고집한걸까?
그건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배우의 몸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해본다. 감독이 영화의 제목을 <미인>으로 한 것은 그런 이유일테고, 미숙한 연기보다는 아름다운 몸에 좀 더 큰 비중을 둔 것이다. 심지어 안은미씨를 불러들여 몸 연출가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비난하는 대부분 사람들도 단 하나 동의하는 것은 아름다운 그들의 몸이었다. 또하나의 주인공인 이지현의 연기는 나름대로 불안을 품고사는 젊은 여자아이를 나름대로는 소화한 것 같다. 모든 20대초반의 여자가 그렇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닥 진지하지 않은 사랑에 집착하고, 불안해하고, 때로 그것을 즐기기까지하는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그건 때로 남자인 자도 있었고, 여자인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그녀의 불안한 연기가 의도적이었다고 하기에는 엉성한 구석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납득하기 어려웠던 급작스런 살인, 배우의 미숙한 연기, 그리고 결국엔 꿈이었다는 식의 결말은 영화의 단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선 '육체와 사랑' 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감독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영화 속에 녹아있으며 - 다만 그것이 크게 어필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 문학적인 대사의 영화에서의 쓰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하는 작품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커다란 스케일이 유행이 되어가는 한국영화의 이상한 풍조에 이런 영화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인>이 최악은 아니었던 거 같다. 물론 뛰어난 작품도 아니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