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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이라는 젊은 청년이 ‘몽수’의
탄광지역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는 기계공이지만 전 직장에서 관리자와 주먹다짐을 하는 바람에 해고 되고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있는 참이다. 때는 산업공황인 시절인지라 광산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하지만, 갑작스레 인부 한 명이 죽는 바람에 그는 ‘마외’라는 채탄부의 추천으로 광산에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여차저차해서 ‘마외’의 집에 하숙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 가족의 불행이 싹트게 된다.
그 불행의 중심점에 위치한 ‘마외’의 가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본모르 영감 : 마외의 아버지 마외 : 에티엔을 추천한 채탄부 마외드 : 마외의 아내 자카리 : 마외의 첫째(아들)로 탄광에서 일함 카트린 : 마외의 둘째(딸)로 탄광에서 일함 장랭 : 마외의 셋째(아들)로 탄광에서 일함 알지르 : 마외의 넷째(딸)로 선천적인 곱추 레노르 : 마외의 다섯째 앙리 : 마외의 여섯째 에스텔 : 마외의 막내로 아직 젖먹이
‘에티엔’은 노동자가 세상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회주의자다. 그는
‘몽수’에 탄광 노동자를 위한 조합을 결성하고자 하며, ‘마외’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주입하고, 탄광촌 전체에 퍼트린다.
산업공황을 겪고 있는 탄광회사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갱목작업의 수당을 별도로
지급하고, 탄차 한 대분의 채탄 가격을 낮춰 광부들의 호주머니에서 경비를 절감하고자 한다. 결국 ‘에티엔’의 신념에
설복된 탄광 노동자들은 회사의 횡포에 맞서고자 파업을 결정하게 된다. 얼마간 모아놓은 광부들의 공제기금은
곧바로 바닥을 보이게 되고, 배고픔을 참지 못한 노동자들은 파업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위에 위치한 탄광 노동자들과 동맹파업을
계획하게 된다. 동맹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여전히 탄광에서 일하고 있는 광부들을 끌어내기 위한 시위로
인해 탄광회사를 지키기 위해 군대가 투입되고 만다. 탄광회사는 파업으로 인해 중지된 채탄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벨기에로부터 노동자를 수급하게 되고, 막다른 길에 내몰린 탄광 노동자들의 시위는 폭력사태로 변질되고
만다.
파업과 시위 그리고 폭력사태로 인한 마외 가족 구성원의 변화 본모르 영감 : 완전히 정신을 놓아
버려 탄광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더러 연금도 수령하지 못함 마외 : 폭력 시위의 진압 과정에서
총에 맞아 사망 마외드 : 살아 남은 가족을 위해 탄광
인부로 전락 자카리 : 갱도에 갇힌 여동생 카트린을
위한 구조작업 중 가연성 가스 발화로 사망 카트린 : 갱도에 갇혀 사망 장랭 : 무너진 갱도에 깔려 다리를
다치고, 정상적인 일을 할 수 없어 탄광에서도 가장 급료가 싼 청소부로 일하게 됨 알지르 : 파업 기간 동안 배고픔으로
인해 아사 레노르 : 살아 남았으나 탄광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4, 5년이 필요 앙리 : 역시 살아 남았으나 레노르와
비슷한 처지 에스텔: 젖을 떼고 왕성한 식욕으로
식구의 일원이 됨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탄광 노동자로 일하던 구성원들은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되어 홀로
남은 ‘마외드’가 몸이 불편한 장랭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역사의 발전이란 개인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는
역사적 진리일 것이다. 하지만, 각 개인들은 선택의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고통스럽다. 늘 옳지 않다고 믿어지는 선택을 한 자들만이 살아남아 옳은 선택을 한 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마외’의
가족들도 산업공황의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뎠더라면 배고픔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가의
편에 서서 개인의 희생을 거부했다면 부끄러울지라도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 그들의 선택은
온전히 자기의 몫이었을까? 아니면, ‘에티엔’이라는 혁명가에게 강요당한 것이었을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혁명가인 ‘에티엔’은 살아 남는다. 그리고, 2군
무대인 ‘몽수’에서 1군
무대인 ‘파리’로 콜업된다.
소설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맺지만 아마도 화려한 배경을 확보하게 된 ‘에티엔’은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었으리라. 살아남은 그는 성공 가도의 끝에서
‘강한 자’로 남았을까, ‘부끄러운
자’로 남았을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BOOK : 2017-025-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