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율 사전 책갈피에 꽃을 끼워 놓았다고 해서 그 사람은 내게 벌을 주었다. 그건 정말 진저리나는 책이었다. 우리는 그 사전을 사용해서 라틴어 시를 지어야 했다. 아이들의 졸렬한 시귀에 뮤즈의 신은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다. 아마도 선생님이 바라던 것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파란 꽃방망이 한 송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운율 사전보다 훨씬 더 시정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엾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그를 대표할 만한 유명한 책이 있다는 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의 곤충기가 너무 유명한 탓에, ''식물기라는 책''이 있다는 것 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제목까지 비슷해서, 식물기의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그거 곤충기 아냐?''라는 말이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파브르의 대표작은 바로 ''식물기''라고 말하곤 한다. 이 책은 식물과 아이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잔뿌리에서부터 새순까지, 식물의 모든 것을(꽃과 열매는 완성하지 못하였지만) 많은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차갑지 않다. 아이들을 앉혀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듯한 말투 역시 정겹다. 군데군데 들어가있는 삽화들은 고색창연한 것들이라 더욱 애정이 생긴다. 이 책을 읽고, 바로 밖으로 나가서 길 가에 핀 작은 잡초라도 바라보라. 눈 앞에서 기적이 펼쳐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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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가 봉긋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햇살 한줌만 있으면 꽃잎을 터트릴것처럼 아슬아슬 하였다.아침에 눈을 뜨니 앞산이 온통 하얗다. 눈이 쌓여 나뭇가지가 휘청 늘어져 있는것도 보였다.산수유가 걱정되어 밖에 나갔다. 꽃봉오리는 눈 속에 파묻혔지만 얼어붙지는 않은 듯 했다. 아차, 싶었다. 식물은 스스로 온도를 조절하고 어린 눈이 얼지 않게 몇겹의 옷을 껴입힌다고 했는데...
경이롭고 위대한 세계가 바로 식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부지런하며 깐깐하고 절약정신이 강한 식물. 이동할 수 없지만 한 곳에서 양분을 취하고 자식을 잉태하고 가족 부양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 식물의 세계는 감동적인 드라마 같기도 하였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쓴 일기이다. 나는 나무가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양분이 있고 환경이 좋을때는 널찍하고 보기좋은 나이테를 새겨넣고, 춥거나 가뭄이 계속되어 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촘촘한 나이테를 새겨 자신의 몸에 기록을 남긴다. 심지어 동상을 입었으면 갈색을 띤 벌레먹은 상처같은 흔적으로 일기를 쓴다. 언젠가 나무를 만나면 그의 일기장을 꼼꼼히 읽고 싶다. 파브르는 70살 된 밤나무의 일기장을 읽었다. 사람의 도끼가 아니었으면 2천 4백년도 걱정없이 살았을거라는 밤나무의 고백은 자연을 너무 쉽게 훼손하는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무심코 먹는 야채 한잎. 그 속에도 무수한 사연이 숨어있었고, 야생의 식물을 길들여 식탁에 올려놓은 이름없는 농부의 수고도 있었다.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식물을 달래고 길들여 달고 맛있는 야채로 만들어 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이었다. 인간또한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습관과 태생대로 살기마련인데 자신의 야성을 버리고 인간에게 길들여진 식물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식물들도 자존심과 똥고집이 있었다. 인간이 아무리 바꾸려해도 옛부터 내려오는 습관을 무섭게 고집하는 식물의 주체성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본질을 분명히 인식시키며 인간의 잔소리와 간섭을 거부하는 식물들의 자존심을 높이 존중하고 싶었다. 어쩌면 식물들은 자존심과 똥고집으로 힘든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는지도 모르겠다.
식물의 한살이는 인간의 삶과 많이 닮았다. 자식을 교육하는 방법, 질서를 중요시 하는 생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시련을 참고 견디는 방법등이 인간과 하등 다를바가 없었다. 오히려 식물에게서 절약정신과 치밀한 삶의 계획을 배웠다. 또한 나보다 다른 잎을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는게 바로 식물이었다. 이렇게 똑똑하고 야문, 생각깊은 식물의 속내를 발견하고 글로 옮긴 파브르의 열정과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곤충기를 쓴 작가로만 알았던 '파브르 식물기'를 읽으며 진정한 탐험가는 무한한 사랑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애정과 탐구정신이 있을 때 상대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그가 식물기를 쓰기위해 얼마나 많은 식물을 연구하고 관찰하였을까?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이 책을 앞에 두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치열한 식물의 삶이나 그것을 탐구하여 비밀을 밝혀내는 파브르의 열정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하였다. 식물의 부분적인 호칭이라든지, 생태를 기억하기보다 식물이 들려주는 진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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