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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 아주 끔찍할 정도로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 까다로움이 불쾌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시비를 가르는 기준이 될 때(조미료를 넣은 음식은 음식이 아니다, 회를 얇게 썰어 먹는 사람은 회 맛이 뭔지 모르는 것이다 등) 듣는 이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도대체 니가 뭘 알아? 맛은 각자가 느끼는 건데!" 로산진은 현대에 태어났으면 딱 꼰대가 됐을 그런 사람이었다. 맛의 기준이 명확해 판단에 거침이 없다. 취향이 없는 게 전반적 취향이 되버렸고 고급과 저급에 대한 감식안이 떨어진 요즘 세상에선 틀림없이 어마어마한 악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호오의 판단을 오로지 주관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100% 동의할 수 없다. 주관 또한 불변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 형성되며 경험이란 얼마든지 더하고 뺄 수 있기에 주관 또한 시간을 거쳐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 따라서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고 나발이고 나는 집 앞 기사 식당의 제육볶음이 제일 맛있다 고 말하는 사람은 물론 매우 행복한 사람일 순 있으나, 그 판단은 아주 미천한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고기는 어떤게 맛있고 어떻게 해야 맛있고를 떠들고 이 와인에선 타르 맛이 나며 젖은 흙냄새, 오렌지 껍질, 장미 향이 난다고 하는 건 단순히 개수작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밤이 되면 태양을 볼 수도 그 흔적을 느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로산진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수시로 분노가 일만큼 그가 보여주는 맛의 기준은 까다롭다. 하지만 그는 엄청나게 많은 음식을 스스로 먹어 본 사람이고 직접 해 본 사람이다. 그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이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직급과 연봉 체계를 거부해야 한다. 오늘날 10년 차의 디자이너가 신입 디자이너보다 직급이 높고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이유가 뭘까? 그래, 때로는 신입 디자이너가 수석 디자이너 보다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낼 수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해 더 맞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확실히 낮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직급 체계는 완전히 거꾸로 되야 한다. 부장으로 입사해 시간이 흐를수록 차장, 과장, 대리, 사원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맛이나 미를 논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평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논하는 건 다른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능력이 객관적으로 평가된다고 믿는다면 지난해 말 당신이 받은 고과를 떠올려 보자. B 혹은 C? 당신은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추호의 의심도 없는 객관적 기준에 의해 내려진 거라고 받아들이는가? 사람들이 맛이나 미를 두고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쉽기 때문이다. 보고 맛을 느끼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1초 안에 누구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볼 수 있고 종로의 유명 평양 냉면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서 먹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미와 맛의 세계는 사기꾼, 비전문가의 영역 좋게 말해 오로지 주관에 달린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하지만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 우리가 프로 화가와 프로 요리사의 지위를 인정한다면(현대 사회에서 이는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다) 프로 비평가와 미식가의 지위를 인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로산진의 요리왕국>에는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고 그 요리를 맛있게 먹는 법, 그 요리를 맛있게 조리하는 법이 등장한다. 딱히 생생한 표현은 없어 건조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확실히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한 번 먹어보고 싶은 걸."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물론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엔 "아니야." 라고 소리를 질러 버린다. "요리 하나에 뭐 이렇게 까다롭게 굴어."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알아줬으면 한다. 까다롭지 않은 요리에 매력이 있듯이, 까다로운 요리에도 마찬가지로,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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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미친 괴짜. 이렇게 내가 알고있는 '로산진'은 그 정도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를 모 델로한 만화 케릭터를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카이바라 유잔' 오래된 만화 '맛의 달인'에 등장 하는 그 캐릭터는 그야말로 맛에 만큼은 그 누구보다 엄격하고 까다롭다. 맛과 영양 뿐만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의 품격, 식재료를 품는 자연에 대한 조건,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에 대 한 조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그 고집... 허나 그것에 의해서, 그의 아들인'지로'와 상당한 마찰 을 빚어내는 것이 만화의 주 내용이다. 그렇기에 내가 품은 로산진에 대한 호기심은 의외로 크다. 비록 만화로 알게되었지만, 그의 괴짜같은 성격은 정말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오로지 먹는것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한 인물이자, 세상에 정착되어있는 식문화에 대하여 잔인할 정도의 비판을 퍼부었던 사람. 그 렇기에 그는 존경보다는 적을 더 만들었던 사람이였으나, 그래도 고집만큼은 꺾지 않는 자신 의 신념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이 책도 그 자신의 신념을 적어넣은 것이기 떄문에 그에대한 가치관을 상당히 엿볼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 '과연 오늘날의 사 람들이 그를 접하며 무엇을 배워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그 교훈에 대한 것에는 책을 읽는 나 자신도 그다지 '그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산진. 결과적으로 그는 고립되었고, 또 직속부하에게도 버림받았다. 그러나 반대로 국가가 부여한 명예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만이 정답이다. 주장한 오만한(소신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과연 그 고집을 배워야 할까? 아니라면 엄격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맛의 탐구와 열정 을 받아들여야 할까? 정말로 슬픈 일이지만, 1920년대 (일제시대) 그시대와 2017년 오늘날 의 식생활은 로산진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기에, 그의 레시피는 커녕 줄곧 주장한 먹는다에 대한 정신론적 가치를 제현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졌다. "현실성이 없다" 허나 그럼에도 그는 매력적이다. 어째서? 그 증거로 만화 맛의 달인에서 그는 맛을 위 하여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하는 '고집스런 환경론자'로서 새롭게 재평가되고 또 그려지고 있 는 중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수 많은 식재료와 문화. 그리고 건강한 맛 을 추구하는 새로운 욕구에 있어, 로산진은 다시 한번 그들의 스승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과연 오늘날의 로산진은 어떻게 재평가 되어갈 것인가? 나는 그것에 대한 정답을 이 에세이를 통하여 한번 엿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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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는 웃으면서 시작하고 울면서 끝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일본 음식에 적응해도 무방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음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본 음식은 회, 초밥, 우동, 소바가 전부요, 웬만한 건 외국 음식을 자기 식대로 모방한 음식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일본 음식을 알면 알수록 식재료도 폭넓고 조리법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요리 철학의 역사가 깊어 제대로 알려면 수십 년은 '각잡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일본 요리의 전설 로산진의 요리 철학을 담은 산문집이 나왔다. 제목은 <로산진의 요리왕국>. 로산진(1883~1959)은 일본의 서예가이며 도예가, 요리인으로 서예, 회화, 전각, 도기 등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어지러운 시대를 풍미했다. 로산진은 일본 최초의 미식기아기도 하다. 요리만화의 바이블 <맛의 달인>에 나오는 최고의 미식가 '우미하라 유잔'의 모델이 로산진이라고.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일찍이 미식의 세계에 눈을 떠 요리의 길을 걸은 로산진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먼저 '요리하는 마음'에 대해 논한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미식에 눈뜨고 요리의 매력을 알아가는데도 그가 보기에 맛을 알면서 맛을 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으로 맛을 알고 마음의 즐거움으로 삼은 이는 많지 않다." (p.11) 맛을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비싼 재료만 맛있고 유명 맛집의 음식만 맛있는 줄 알면 곤란하다. 요리의 진수는 진심과 친절이다. 값싼 재료로 만든 음식일지언정 만든 이의 진심과 친절을 느낄 수 있으면 진정한 미식가이며, 고객의 기분과 상황에 맞는 요리를 내놓을 줄 아는 요리사가 진짜 요리사다. 고급 식재료와 맛집이 넘치는 요즘. 우린 맛있는 걸 먹으면서 정작 '진짜 맛'은 모르는 게 아닐까. 음식을 할 때는 재료를 함부로 버리거나 낭비하지 않으며, 음식을 담아 대접할 때에는 어울리는 그릇에 담아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요리를 할 때 음식쓰레기를 많이 만들지 않고, 음식을 대접할 그릇까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유명했다. 음식을 그저 맛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된 생명체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며, 음식을 하나의 예술로 여기는 일본 특유의 음식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도미에 대한 예찬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1912년 조선에서 도자기와 전각을 공부한 이래로 조선 음식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28년에는 '조선은 새도 물고기도 도통 맛없는 곳이라 여겼'던 그가 순천, 마산, 부산 방면을 여행하며 맛있는 도미를 먹고 그 매력에 빠졌다. '나는 꼭 조선에 그 도미를 먹으러 다시 가고 싶다. 순천, 마산 주변의 도미는 실로 잊을 수 없으므로. ... 조선에서 이처럼 엄청나게 좋은 도미를 잡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바보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pp.133-4) 대체 어떤 맛이길래! 그가 맛본 도미와 같은 맛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올 여름 나도 우리나라 도미를 꼭 맛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