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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좋은 것 같네요.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보통 한국사람들 자존심때문에 있다고 하겠죠. 그래 어떤 과학이 있냐고 말하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금속배인 거북선, 측우기, 팔만대장경등을 자신있게 말하겠죠. 그리고 어떤 과학자가 있냐고 물으면. 장영실, 정약용, 최무선 하다가 좀 막히면.TV등 매체에 나오는 유명과학 강사 이름을 대기도 한다. 참 가슴이 아픈 현실이다. 물론 매체에 나오는 강사분들도 나름대로 훌륭한 분이지만 한국사에 나올만한 과학자는 아닌 것 같다.
부끄럽다. 한국사를 안다고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그리고 대학에 와서까지도 한국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 우리가 이것 밖에 모른다니. 학교교양시간에 강의를 이 책으로 나가서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라는 책을 알게 되었지만. 수업은 둘째치더라도 우리에게 무언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대학생이라면 이젠 틀에 밖힌 국사암기에서 벗어나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해봐야할때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거의 우상처럼 맹신하던 우리 과학사를 근거있게 잘 정리해 놓았다.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것들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하고 우리만 그냥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더 슬픈 일은 이것마저도 세계에서는 왜곡되어 우리것이 비하되거나 다른 나라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현실이다.
과학 정말 중요한 학문이다. 우리나라가 살긴은 과학뿐이라고 누가 외쳤던가? 이 때 서양것은 무조건다 좋고 우리것은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대다. 물론 서양것이 근대에 우리보다 많이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도 소중한 과학이 있었고. 그리고 우리것을 더 알고 서양것을 받아 들인다는 동도서기정신이 필요할 것 같다. 동도서기가 좋다고 배워왔지만 우리것이 무엇이 뛰어난지도 모르고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민족 과학사'란 이름으로 우리 과학사를 서술해 보려는 이유 중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사를 무시한 채 우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19세기 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까지 과학기술이란 역사 서술에 있어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이후의 역사는 국제화되고 세계화된 상황 속의 역사,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따라서 과학기술을 무시한 한국역사의 서술이란 이젠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오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좋건 싫건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무시할 수가 없다. 과학사는 오늘날 역사의 중심 요소가 되어 있다.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거기서 우리 한국의 미래에 대한 어떤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우리는 한국 과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 과학사의 이해 없이는 한국의 근대사 또한 설명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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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출신으로서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책을 쓰며 살고 있는 나에게 이런 책은 정말 반갑다. 사실 오래 전(몇 년전인지...)에 사놓고 한참을 못 읽고 있다가 이번에 짬을 내 읽었다. 저자의 연륜과 내공이 느껴지는 아주 훌륭한 교양서다. 주변에 많이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특히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과학사의 시각이 있어야 올바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이공계 출신으로서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과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앞으로 이 책을 많이 권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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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의 저자는 우리에게 더 잘 맞는, 우리 전통에 더 잘 어울리는 ‘민족 과학’이란 주제에 맞춰서 과학사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 민족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과학기술의 체제를 저자는 ‘민족 과학’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 왔던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을 얻기를 바라며 책을 저술하였다. 점점 가중되어가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또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을 드높이기 위해서 과학기술 전개 과정과 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알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 주제를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글의 구성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에피소드 식의 각각의 주제별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총 24개의 이야기로 내용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전개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과학사라는 학문을 소개하면서, 세계 과학사에서 한국 과학사가 차지하는 위상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기술을 무시한 한국역사의 서술이란 이젠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할 수 있으며 우리는 한국 과학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며, ‘민족 과학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첨성대에 관해,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황룡사종과 에밀레종에 관해,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라니경, 팔만대장경, 금속활자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풍수지리설,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는 최무선과 화약,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는 세종 때의 천문 기구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들로 많이 들어왔던 것들이다. 그는 우리가 짤막하게 알고 있는 이러한 것들에게서 진정한 우리 역사 속에서의 과학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리고 세종의 신토불이 생명과학, 실학자, 흥선 대원군의 정치, 조선시대의 과학, 일제하의 과학, 해방 후의 한국의 과학기술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나의 궁금증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책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여 진다. 저자가 그 방면에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지라도 그 글을 읽는 독자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라는 책의 독자들은 한국사에 지식이 있거나, 과학사에 지식이 있거나, 혹은 두 방면에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와 과학사의 두 분야를 같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한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과학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두 독자층을 고려하고 글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들이 삼국시대, 고려, 조선, 해방 전후에 걸쳐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왕조는 그 이름들이 헷갈리고 왕들의 직위 연도도 정확히 외우고 있는 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나라 왕조의 이름을 시대 순으로 정리하여 부록으로 첨부해 놓던지, 하나의 이야기로 따로 엮어 한국 역사의 이해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과학사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시대 순이 아닌, 일종의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구성 방식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흥미로운 주제들로 엮여있어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주제별로 엮다 보니 여덟 번째 이야기의 ‘세종의 천문학은 어디쯤 서 있었나’와 열 번째 이야기의 ‘세종의 신토불이 생명과학’은 같은 시기의 과학사를 다루고 있다. 세종은 1418∼1450년에 직위를 하였다. 그런데 중간에 낀 아홉 번째 이야기는 ‘조선의 객이 일본에 전해 준 것은’으로 1643년의 조선 통신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덟 번째 이야기에서 세종 직위 때의 과학사를 읽은 독자는 ‘아! 그렇구나!’하고 이해를 하고, 그 다음 아홉 번째 이야기를 읽을 것이다. 세종 때의 과학사에서 1643년으로 훌쩍 뛰어 전개되는 것에 한번 놀라는 독자들은 또 ‘아! 그렇구나!’하고 이해를 하겠지만, 그 다음 열 번째 이야기를 읽는 순간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왜 갑자기 또 세종 때의 과학이 소개되는 거지?’하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주제별로 엮고 있는 이 글의 구성 방식은 시대를 왔다갔다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서 그런 것인지 글을 읽다보면 굵은 글자와 *로 표시된 단어들이 각 이야기의 뒤편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굳이 필요할까? 저자는 한국의 역사 속에서 과학을 이야기할 때, 뒤에 따로 첨부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각 인물이나 책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야기 부분에서 해주고 있다. 특히, 인물을 각 이야기의 뒤편에 부록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오히려 삭제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독자가 그 인물의 출생 년도와 사망 년도 등을 알 필요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필요한 부분들은 삭제하면서 책의 분량은 일정하게 유지하는 대신, 차라리 글자의 포인트를 크게 해 책을 읽을 때 빽빽이 채워져 있는 글자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아무리 흥미로운 내용이라도 빽빽이 채워져 있는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읽기 전부터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98년 초판 1쇄 되었고, 내가 읽은 책은 2006년에 나온 초판 11쇄였다. ‘몇 판’이라는 건 몇 번이나 개정해서 책을 냈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읽은 것은 초판 11쇄였으므로,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책이었다. 즉 틀린 내용을 수정한다든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고친다든가, 그림을 추가로 넣는다든가하는 과정을 더 거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 개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오류가 없는 책일까? 나는 이 책이 1999년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라고 표지에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책을 읽기 전 많은 기대를 했었다. 물론 책의 내용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과학은 어떤 모습으로 있어왔고, 한국사 속에서 과학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과학은 무엇일까 등등 많은 지식을 일깨워주고, 여러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내용 면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다고 치더라도 개정을 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248쪽의 밑에서 6번째 줄을 보면 ‘실천되고는 실패로 끝났던 깃이다.’라고 쓰인 부분이 있다. 이는 ‘실천되고는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로 고쳐야 한다. 그리고 250쪽의 사진을 보면 박영효와 서광범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사진 밑에는 서광범이 아니라 서광법이라고 표기되어있다. 이는 인명의 오타이기 때문에 얼른 수정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 266쪽의 밑에서 11번째 줄을 보면 ‘측히 수공업 교육에’라고 쓰인 부분이 있다. 이는 ‘특히 수공업 교육에’로 고쳐야 한다. 이렇듯 여러 부분에서 오타가 눈에 띈다. 오타를 찾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오타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내가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오타들이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판 11쇄가 만들어질 당시는 초판 1쇄가 만들어진지 8년이 지났을 때이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런 오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이는 책을 만들어 놓고,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동안 똑같은 내용의 책을 계속 만들어왔다는 것을 뜻한다. 독자에게 질 좋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책을 만들었다는 그 자체에 치중하기보다는 그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지식을 추가하거나 불필요한 지식은 삭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과학기술로 이루어낸 뛰어난 업적들을 되새겨 보고, 그런 전통을 밑거름으로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 발달을 다짐해 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런 이해가 국민적 교양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우리 과학기술 수준은 한 단계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당시보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광우병, 멜라민, 고유가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비록 구성의 측면에서의 문제와 오타의 오류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이 책은 우리를 인도해주고 있다. 한국 과학의 미래는 저자의 말처럼 바로 ‘민족 과학’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서양 문명을 배우고 흉내 내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민족 과학’ 의식의 확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한국과학의 장래가 민족 과학적 방향에 있다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한국사와 과학의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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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박성래, 교보문고)를 읽고... 서론: '과학이 주목받는 시대, 우리의 자랑거리 과학'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뼈아픈 과거를 지닌 우리나라였지만 이제는 국내총생산GDP(2005년 기준)가 7,930억 달러로 세계10위, 명실상부 개도국의 이미지를 벗고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것도 나라가 남과 북으로 반쪽자리로 갈라졌음에도 이룬 성과이니, 그 자부심은 우리내 국민들속에 이루 말할 것 없이 깊이 뿌리박혀있다. 나라의 자산이요, 꿈나무라 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실제 여행을 통해서 지식을 넓힌다는 수학여행장소 1위가 우리나라 최대 휴양지이자 특별자치구인 제주도,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펼쳐진 강원도, 싱싱한 해산물, 공업단지가 위치한 부산이 아닌 옛, 신라의 도읍지 경주인 것만을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경주는 지금 세계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경주의 무엇이 그럼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끌게 한것일까? 경주에는 우리가 어려서부터 본, 자랑거리 우리민족의 뛰어난 과학기술을 담고 있다 할수 있는 석굴암, 불국사, 천문대가 있다. 과학의 '과'자도 잘 모르는 나였지만 나도 고등학교 시절 가본 경주를, 그때 느꼈던 자부심을 기억한다. kbs 다큐, 교과서에서 그토록 자랑하던 우리의 기술의 결정체 석굴암, 그 석굴암을 보고자 비가오는 궂은 날씨에도 산을 올라 유리속에 갇혀있어 가까이는 볼수 없었지만, 빛에 반짝이던 그 불상, 정말 안에 들어가 그 실체를 더 가까이 체험하고 싶을 정도로 그 감동은 컸다. '작고 조그맣고 맨날 이 나라, 저나라에 치이기만 한 우리나라에게도 이런 뛰어난 기술이 있었구나!' 우리옛것에 대한 소중함과 일종의 애국의식마저 고취시켰다. 그러던 내게 2005년 이맘때, 이런 우리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금 상기시킨 사건이 있었다. 사회의 큰 이슈로 온 국민의 자랑거리로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황우석씨의 인간줄기배아세포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21세기 들어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이제 신의 영역이라 할수 있는 인간의 탄생과정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인간의 불치병, 난치병은 물론이거니와 개와 소의 복제로 후에는 이런 가축이 아닌 실제인간을 직접 복제함으로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이 위험하다', '종교적으로 어긋난것이다'라 는 반대를 몰고 올 정도로 생명공학에서 더욱 두드러진 발달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그 찰나, 인간복제의 가장 핵심이요 기초단계라 할수있는 배아줄기세포배양에 성공한 것이 우리내 이웃인 일본, 중국도 아니요, 우리의 영원한 선망의 대상이요, 넘 볼수 없는 대국이라 여긴 미국도 아닌 우리 내 과학자요, 그 성과가 세계적 과학연구지인 science지에 실리고 인정받았다. 이렇듯 우리내, 동아시아에서가 아닌 우물안 계구리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음에 한국국민들은 마치 그들 스스로가 그런 성과를 자신 스스로가 이루어낸것 마냥 기뻐하고 들떴다. 과학이란 그저 실험하고 연구하는것, 중고등학교 시절의 물리화학이 전부이라 생각했었던것, 우주여행이 전부요, 밥벌이가 되지 않는 것이라 여기며 최근 이공계기피현상까지 맞물려 소훌히 하던, 그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생명공학 관련 서적이 불티나게 밝혔고, 때마침 인간복제를 다룬 블록버스터 아일랜드라는 영화는 전 세계 유래없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큰 흥행을 했다. 어린아이들의 꿈은 이제 대통령도, 의사도 검사도 아닌 황우석박사와 같은 연구자가 되어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그의 연구가 새튼박사와의 결별로, 그리고 젊은 공학도와 언론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나 온국민, 세계인을 실망시키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렇듯 이것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이슈가 될수 있었던것은 그만큼 이시대가 과학을 주목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학은 과연 우리내 누구에게라도 뿌리깊은 자부심을 심어줄만큼 과연 자랑할만한 거리요,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라는 저자가 밝힌 책 제목에서처럼 오히려 그 자랑거리에 대한 근거를 한국사라는 우리 역사속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아니 우리 과학이라는 것이 역사속에 과연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이 시간 생각해 보며, 이를 통해 이것이 현대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고자한다. 본론:'1. 우리역사 속에서 자랑거리는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저자는 먼저 예부터 우리나라가 자랑해오던 것 그중에서 첨성대에 대한 논쟁을 밝혔다. 그가 밝힌바에 의하면, 첨성대가 우리가 생각해오던 것처럼 하늘의 별, 천문을 관측하기 위한것이 아니요, 불교 영산의 모양을 본따 제사를 지내는 재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는 수미산설이 있음을 밝혔다. 물론, 후에 저자스스로는 이 설에 대해 첨성대의 위치가 삼국시대 천문학을 관측하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제사는 아닐것이라는 자기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우리내 지폐속에 등장할만큼 존경받는 세종대왕과 그의 업적에 대해 정말 파격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한글을 창제하고, 정약용과 같은 인재를 등용함으로 측우기, 해시계, 거중기등 우리역사내 자랑거리라 할수있는 기술을 발전시킨 조선500년사를 통틀어 가장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 사실 전주이씨인 나로서도 그의 자손인것을 생각할때면 뿌듯하고 흐뭇해지는 그 세종대왕에게 저자는 그가 이런 업적을 남길수 있었던것은 그가 성군으로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기보다는 그가 다스리던 그 시대가 그런 기술을 꽃피울만큼 중앙집권적 왕권강화를 이루어 냄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평화스러웠기에 그가 다른왕조의 여타왕들과 달리 과학기술발전을 추진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다. 정말 세종대 이후로 최근 반영되는 영조, 정조, 우리 근대의 고종까지 때로는 세도정치, 당파싸움, 외세 때문에 그 닥친 현안들을 처리하는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실제 그분들은 그분들 직권기간 내내 정치적안정을 도모하는데도 그분들의 평생의 제임기간에 걸쳐 노력을 해야했던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 과학적 기술연구를 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을것이다. 즉, 세종대왕에게는 할아버지태조, 아버지 태종이 진수성찬으로 차려놓은 밥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일을 했던것이다. 그러나 잘 차려진 밥상도 눈만껌뻑껌뻑뜨고 손놓고 있는다면 그 밥상은 금새 식어 그 본연의 맛을 잃고 결국은 버려짐으로 그 노력과 수고가 헛수고가 되듯, 그 밥상이 주어졌다 해도 그 밥상을 받는 걷처럼 그 주체의 행위와 태도가 100%로 그 밥상의 본질을 좌우함으로 나는 세종의 업적을 높이 사고 싶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나 그 행위와 태도마저 그것이 국익을 생각한것이요 백성을 위한 애민정신이 아닌 순전히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해,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물론 라이트형제나 에디슨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글라이더나 전구를 개발하진 않았다. 자신들의 호기심과 그 기술에 대한 열망이 그들의 발명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생각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아니 그럴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세종은 만국의 어버이요,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에게 어떻게하면 편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게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자신의 업적 안위를 위한 기술을 개발한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실제 백성들의 생활에 있어, 우리가 자랑거리라 여기던 측우기나 수표같은 것이 실제 강우량을 젬으로서 백정들의 농사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는 고사하고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음을 저자는 지적했다. 과학의 일부분이라 할수있는 발명품이라하면 생활의 불편함을 없애줌으로 편리를 도모한다는 생활과도 연관된 것인데, 세종의 발명품은 그런 면에서 또한 뒤쳐진 것이다. 저자는 또한 화약이라는 무기의 있어서의 새로운 발명도 최무선이 최초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최무선이 중국의 기술책을 보고, 그것을 우리내의 것으로 보급하려는 노력이 수반된 것으로 그것을 아예 평가절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내 속에서는 자랑할만한 것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저자는 이런 내게 후반부,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그것은 근대에 오히려 일본에게 기술전수를 받았던 우리가 일본에게 오히려 기술을 전해주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도 일본의 당대 천문학자에게 조선통신사로간 박안기라는 사람이 기술을 전해줌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그러한 기술을 배운것을 자랑으로 여길정도니 말이다. 이것은 적어도 우리가 항상 뒤쳐진민족이 아니요, 과학발달의 여건과 우수성을 지님으로 어쩌면 일본보다 뛰어난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루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하게 여기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가 기술을 전수해주던 일본에게서 오히려 기술을 배우며, 지배를 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살게 된것일까?
2. '낡은관념과 사고, 소극적 수용의 지배층 권위적 사고가 우리를 뒤처지게 하다' 우리가 왜 개화를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 1순위로 꼽는 것이 바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손에 꼽을 것이다. 저자가 밝혓듯 그가 서원철폐, 세도정치 타파, 왕권강화등 긍정적인 개혁을 이루어냈음을 나도 이미 근현대사 공부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을 주도하던 민비와의 대립, 갑신정변,임오군란과 같이 그는 항상 보수를 대파하는 수장이요 나라의 문을 꼭꼭 걸어닫은 폐쇄적이며 시대에 흐름을 읽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를 통해 나는 그가 프랑스신부를 직접면대하고자하며 중국의 서양농업기술을 번역한 책을 사들여 그 기술을 직접 적용한 화포의 실험이나 농사법등 나름대로 서양기술에 대한 지각이있고 이를 수용하고자 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돌연 서양신부들을 탄압하고 죽이며 보수의 대표를 도맡아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도 정치가였다. 그 아들이 나라살림 국정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안정이 급선무였다. 때문에 그는 조선조시대부터 내려오던 기득권층인 보수의 말에 기울이고 그들의 입장에 서야했던것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서양선교사들의 100여년이나 늦은 우리나라의 방문을 그 이유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우리의 지배층의 권위적사고 소극적 수용을 큰 문제점으로 꼽고 싶다. 일본은 화란어를 배우고 직접 그 화란어를 번역한 서적을 출판해냄으로 적극적으로 서양문물의 수용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에 기술을 배우겠다는 통신사를 파견함에 있어서도 영어한마디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없어 중국, 일본인을 대동하고가 2중 3중으로 번역해야 할정도로 그 수용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저 호기심으로 그문물을 접했을뿐, 그것을 어찌하든 우리의 것으로 자기것으로 소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 우리에게 과학을 전해준다는 과학잡지의 과학자이름들은 어떤때에는 한문으로 어떤때에는 한글로 뒤죽박죽 이리저리 섞여 나오는 실정이었다. 그럼으로 과학기술의 대중화는 고사하고 전문가, 기술자 하나조차 양성하기 어려웠다. 이렇듯 답답한 우리역사의 한편을 보며 나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두드리면 열릴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는 우리 사람의 노력으로는 안될것이 없다, 어떠한 성과를 이루어 내기위해서는 반드시 그에따르는 노력이 필요함을 나타내는 말, 적극적 자세를 나타낸다. 만약 우리내 지배층이 이런 적극적자세로 열심히 영어도 배우고 번역해 내 그 글을 소개했더라면 적극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을 자신의 출세성공의 수단이 아닌 나라를 위해사용하고자 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미국의 손을 빌려 일본에게서 독립을 이루어내지 않았지 않았을까, 손쉽게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지 않았을까를 가정해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현대, 나에게 아니 우리나라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줌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무한경쟁 국제화시대를 맞아 발빠르게 움직이고있다. 이제는 왠만하게 표준화된 기술력으로는 승부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디자인, 브랜드를 부각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고, 우물안의 개구리를 넘어 세계시장을 공략, 플랜트를 건설하고 자원을 개발함으로 세계인에게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심어주고있다. 그래서 이미 초고속인터넷강국, IT강국, 세계수주조선업계 1위, 메모리반도칩분야 1위등 그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강자가 되면 될수록 더욱 경계를 늦추지 말야함에도 우리가 조금은 그런 부분에서 느슨해지고 있는것 같다. 아니 부족하다. 건설의 기본은 튼튼함과 안정성에 있음에도 우리는 해마다 안전사고로 인한 인재가 발생하고 있고 그 기술의 발전속도도 이제는 좀 늦쳐짐으로 경쟁사에게 추월당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1등국가요 기술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저자가 밝혔듯 우리내 현 위치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더욱열심히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할것이다. 물론 기업이 나라가 그런모토를 품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내 국민들, 나 각자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것이다. 기계가 유기적으로 잘 움직이기 위해서 부품하나하나가 제대로 작동이 되며 맞물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결론: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 무엇이든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는 내가 되자! 사실 과학이란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요 이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것은 내가 경영학과란 과목을 택하게 되며, 기술혁신이라는 과목을 듣고서였다. 끊임없는 기술개발, 고객이 원하는 개발을 창출했을때만이 기업이 사는 것이고 나라가 사는 것이라는 것을 들었을때 였다. 그러나 문과, 이과라는 이분화된 교육과정에서 문과적 지식만을 알고있던 내가 기술이라는 이공계를 접하고 배운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요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던 내게 이번학기 한국과학기술의 문명이라는 교양과목이 눈에들어왔다. 사실 역사를 좋아하던 내게 매번 근현대사, 국사등 똑같은 모토로 이어지는 역사보다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대한 호기심에 대한 접근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역사속에 숨은 과학을 보며 참 신기하고 또 그 우수성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하는 무슨학문이든간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학문, 관심분야 시급하다는 것에 대해서만 적극적인 자세, 선택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를 태면 세계화시대에 발맞추어 필요되는 중국어, 일어와 같은 어학분야 혹은 경영학과 내에서도 자신에게 흥미가 유발되는 생산관리분야, 마케팅분야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대학교제외에도 책을 사서 볼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재무, 통계와 같이 어렵다 생각하는 분야, 국문, 역사와 같은 것은 흥미가 가긴 하나 나중에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라 생각하며 그저 교양수업 한 두 개 들어두는것 적당히 떼우는 식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저자가 지극했듯, 극히 한면만을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고요 자신을 뒤처지게 할뿐만 아니라 나라를 뒤처지게 하는 잘못된 자세임을 이시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한분야의 전문가이기보다 이렇듯 멀티플레이어, 어디를 갖다 놓아도 적재적소로 자신의 능력을 수용하며 전체를 볼줄 아는 인재임을 생각할 때 이런 나의 조그마한 인식의 변화가 옳은길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계획을 세운다. 어떤것을 하던지 간에 조금씩해서 이도저도 아닌 뜻뜻미지근한 물의 결과를 얻기 보다는 정렬적으로 도전해 그것이 찬물이던 뜨거운물이던 간에 확연한 결과를 얻자고! 그래서 내가 꿈꿔왔던 것처럼 나를 이 세상에 펼치고 세상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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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과학사에 대해서 읽은 후라 '한국'에 대한 책을 보기로 했다. 나온지 10년된 책이지만, 시대순이면서 동시에 첨성대, 다라니경 등 항목별 구분이 잘 되어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몇년 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이 문제화되고 있는데, 이 책이 집필되던 10년전엔 나는 중국의 그러한 작업에 대해서 들은게 없었다. 다만 일본이 과거에 수없이 우리 문화유산을 파괴나 훼손해왔고, 식민사관으로 그 의미마저 격하시켰었다는 정도만 알고있었다. 아직 일반인에게 대대적으로 중국의 작업이 알려지기 이전에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포함한 우리 문화재를 가져간 프랑스 등 유럽 여러 강국들로부터도 우리 것을 지킬 사람은 우리뿐이라는걸,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알리고자 애썼음이 보인다. 동북공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베이징올림픽으로 중국의 기세가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2008년을 맞이하여,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이런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단순히 '그렇구나'하고 흥미거리로 치부하듯이 넘어가는 독자가 있다면 아주 곤란하다. 여러 국제 학회와 같은 자리에서의 발표만으로도, 그걸 반박해내지 못할 경우에는 어쩌면 순식간에 우리 조상들의 업적이 외국의 업적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걸 깨달았고, 게릴라전처럼 철저한 준비끝에 기습적으로 나오는 외국의 엉뚱한 주장들에 반박하려면 우리도 평소 실력을 갖추고 언제든지 반박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실력이란 정확한 지식을 갖추는걸 포함해, 외교력, 정치력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총체적 파워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IT최강국이라 한다. 수많은 우리 연구원들이 개발해낸 CDMA나 WiBro 같은걸, 이에 대한 정치외교적 지원없이 그대로 수십년이 흘렀다고 가정해보자. 일본이나 중국이나 어쩌면 인도에서 이 기술들이 자기네가 개발했던거라며 전화나 인터넷 할 때마다 로열티를 요구한다고 상상해보라. 얼토당토않지만 이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공계와 인문계간 서로 무지하지 않도록 상호교류와 지원이 잘 이뤄지면 좋겠다. 국가 실무를 다루는 정부 부처 현직 공무원들부터 수능준비하는 수험생까지 모두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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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제는 여러 분야로 번지고 있다. 박성래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한 뒤 유학을 통해 역사를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속의 과학사를 평생 연구한 인물이다. 다만 이 책은 그러한 학문적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과 우리 과학사의 발자취를 풀어 쓴 입문서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노력과 깊이를 느낄만하다.
현재에 이루어지는 세계의 역사속에서 한국의 모습은 불과 200년간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년간 서구에 일본에 과학기술의 선두를 빼앗긴 결과가 오늘에 이르고 있기때문이다. 요즈음 한국의 인문학이 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치게 과학기술을 숭상하는 풍조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학기술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 이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전공으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누이가 아니라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하는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입시문제, 조기 영어교육, 해외유학과 기러기 현상, 돈 벌이 위주의 진학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구한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아니 지난 20-30년전의 대한민국 현실을 돌아보면 이 모든것을 부정적으로만 볼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언어와 문물의 흡수를 위한 열화와 같은 노력, 돈때문이던 명예때문이던 기필코 남을 앞서 나가려는 투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한국인의 모험심이 과정에 문제와 고통을 남기기는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잊지 말아야 할 일은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것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일이라고 생각한다. |